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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연장
운영자 2005.10.24 2708
구와바라 시세이 「1965년, 청계천 생활사 」사진전이 갤러리카페 포스에서 연장전을 갖습니다.
(10월 31일까지)


1965년부터 청계천 주변을 기록한 그의 오리지널 작품 27점을 보며, 지긋지긋하게도 어려웠던 그때를 돌아보고, 우리가 거쳐 나온 고난의 시대와 그가 남긴 사진기록의 역사적인 무게를 잠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아직 보시지 못하신 분은 서두르세요.




2005년 10월 1일, 복원을 끝낸 청계천이 개통되었습니다. 지난 9월 14일에는 이틀 동안 내린 늦은 장마 비로 냇물이 가득 흐르던 청계천에서 팔뚝만한 잉어와 메기 같은 큰 물고기에서부터 버들치, 피라미, 송사리, 미꾸라지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주변의 공기도 훨씬 맑아졌다고 합니다.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선 서울의 회색 도심에 맑은 물이 흐르고 청계천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청계천 일대에 고가도로가 세워지던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피난민들의 하루살이와도 같은 삶이 영위되던 빈민가였습니다. 썩은 물이 고인 냇가에 세워진 가느다란 나무기둥 위에 3층 판자 집들이 금새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얹혀져 있고,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하꼬방’ 안에는 그 ‘하꼬방’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연을 가진 고달픈 삶들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한 사람의 젊은 사진가가 마치 반세기 후에 청계천이 되살아날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이제 막 공사가 시작되고 청계천 바닥에 철근 콘크리트 기둥들이 꽂히는 공사현장과 그 주변에서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많은 한국의 사진가들이 광나루나 뚝섬 주변 같은 ‘그림’이 될만한 곳을 찾아 다닐 때, 그는 시커먼 시궁창 물에서 나오는 악취를 들여 마시면서 광교에서부터 청계천 6가까지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주변의 판자 집들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일본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였습니다. 말이 통할 리가 없었고 사진을 찍는 일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을 드나들며 우리의 고난의 시대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언들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역사는 항상 빛나는 것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썩은 물이 고였던 청계천에 다시 맑은 물이 흐르게 된 지금, 우리는 부끄러움 대신 마치 향수와도 같은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그 암울했던 시절을 찍은 그의 사진들을 통해서 시궁창 물속에서 뛰노는 철부지 어린아이들이며 빨래 줄에 매달린 남루한 옷가지와 헤진 이불들이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피난민들의 고달픈 삶의 모습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무렵, 28세의 청년이었던 구와바라 시세이는 이제 70세를 눈앞에 둔 노인이 되었습니다. 수표교 가까이에 새롭게 문을 연 갤러리카페 <포스(PHOS)>는 1965년부터 청계천 주변을 기록한 그의 오리지널 작품 27점을 모아 「1965년, 청계천 생활사」라는 이름으로 사진전을 엽니다. 지긋지긋하게도 어려웠던 그때를 돌아보고, 우리가 거쳐 나온 고난의 시대와 그가 남긴 사진기록의 역사적인 무게를 잠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김승곤 (사진평론가 , 국립순천대학교 석좌교수)


포스 찾아오시는길



● 종로2가 시네코아 영화관 과 뎀셀브즈 커피숍 사잇길로 들어와서 끝에 보이는 4층 빨간 벽돌 건물 지하. 삼성모텔 맞은편 건물

● 지하철 1, 3, 5호선 15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파고다공원 정문 건너편에 있는 YBM 시사영어학원 골목으로 50미터 들어와서 왼편 빨간 벽돌 4층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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