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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미의 사진여행 - 런던의 박물관 탐험
테이트모던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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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와 알버트 박물관
V&A Museum (http://www.vam.ac.uk/)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런던에서 박물관, 화랑을 전부 다 찾아 볼려면 아마 한 달도 더 걸릴 것이다. 그룹 관광으로 가는 경우라면 대영박물관도 틀림없이 코스 속에 끼어 있겠지만 '빅토리아 와 알버트 박물관(V&A)'은 그런 코스 속에 들어갈 만큼 세계적으로 알려진 박물관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과 디자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복잡한 대영 박물관에서 이집트 유물이나 거대한 석상을 보는 것보다는 아마 여기를 찾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런던에 살 때부터 이곳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가 찾아가던 날은 10시 문 열기 10분전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계단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한국관 이었다. 혹시 그 사이에 멋지게 변신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찾아갔다. 그러나 역시나 실망뿐이었다. 예전에 한국관을 보면서 느꼈던 그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 한국관의 정식 명칭이 "Samsung Gallery of Korean Art" 인데 그 안에 전시된 우리나라의 물품들은 다른 일본, 중국, 심지어 동남아시아 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부신 중국의 황금색 황제 복, 일본 무사들의 비장한 갑옷, 화려하기 그지 없는 일본의 기모노가 전시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양반들의 생활 모습을 전시 한다는 미명하에 보잘것없는 한복과 도자기 몇 점, 커다란 항아리가 전부였다. 일본관의 정식 명칭은 "Toshiba Gallery of Japanese Art"이다. 삼성이 도시바보다 재력이 약한 것일까. 아니면 문화에 대한 사고방식이 달라 투자를 안 한 것일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아름다운 박물관에 우리나라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할 것이 정말로 그것뿐이란 말인가. 영국 전역을 다니면서 오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현대차와 다들 부러워 하는 삼성의 휴대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적이 무척 많았는데 이 박물관에 와서 그러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삼성은 모든 것을 세계 1 류를 지양 하면서 어째서 유서 깊은 박물관의 한국관을 그처럼 초라하게 방치해 놓았는지 아무리 고민에 고민을 해도 상식적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처럼 또 다시 그저 유명한 박물관 한 켠에 자리잡은 것만이라도 대단하다고 자위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공개적으로 삼성관계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과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화려하다고 다 좋은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건 다른 나라가 대표주자로 1군 선수를 내보냈는데 우리는 3군 선수를 내 보낸 것과 다름이 없다. 분명 우리가 뭔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한국관을 지나 캐논 포토그라피 갤러리로 갔다. V&A는 1856년 영국에서 최초로 사진을 수집한 박물관으로 지금까지 300,000점이 넘는 작품을 보관하고 있다. 1998년 캐논에서 후원해서 박물관내에 사진 전시실을 따로 만들었는데 그때 사정상 가보지 못해서 이번에 꼭 가겠다고 벼르던 곳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를 말해주듯 갤러리에는 더 이상 캐논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캐논 측에서 지금은 후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진가들의 작품이 있었는데 특히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책에서 만 보던 에드위드 마이브리지 Eadweard Muybridge 의 사진으로 동작을 연속적으로 찍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일반 영국사람 이름 같지 않아서 늘 어떻게 발음해서 번역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터라 이번에는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겠다는 생각에 먼저 그 곳에 있던 관리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그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전시를 다 보고 현관의 안내 센터로 갔다. 그러나 그 역시 확실히 알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나는 그럼 사진갤러리 담당 큐레이터 한테 전화를 해서 알아봐 달라고까지 부탁했다. 조금 무리라는 생각은 했지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정확하게 그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그는 연락처를 여기저기서 찾은 뒤 친절하게도 큐레이터에게 전화해서 물어봐 주었다. 그렇다고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물어본 사진담당 큐레이터 조차 100% 정확하지는 않다고 토를 달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복잡한 박물관을 헤맨 덕분에 금방 피곤해져 커피를 한잔 마시러 갔다. 박물관에 딸린 카페를 가보는 것도 나만의 즐거움이라서 어느 박물관을 가던 시간이 허락하면 꼭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곤 했었다. 식당이 두 곳이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갬블 룸이라는 곳을 먼저 갔다. 이름이 좀 그렇지만 도박장은 아니고 제임스 갬블이라는 사람이 1868년 디자인해서 그의 이름을 따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 방은 처음부터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앉아서 가볍게 식사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용도로 디자인 되었기 때문에 불과 수증기에 강하고 냄새도 스며들지 않는 타일을 이용해 화려하게 치장했다고 한다. 그 방에 들어가고 나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사진 찍을 일이 없을 것 같아 그냥 편안하게 박물관은 본 다음 숙소로 돌아가서 오후에 카메라를 들고 다시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호화로운 카페를 보고나니 내가 이곳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것을 증거로 남겨두고 싶은 욕심이 났다. 또다시 이렇듯 역사가 깊고, 화려한 방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였다. 입장료가 없는 관계로 단돈 3천원에 이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장소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행운 같았다. 부자던 가난하던 너무 쉽게 일상을 떠나 한가롭게 삶을 음미할 수 있다. 특이하고 멋진 장소에서 좋은 사람과 커피 마시는 것을 하나의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내게 그곳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찍어 둘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늘 그렇듯 여행자에게 다음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날 커피를 마시면서 난 분명히 결심했었다. 런던을 떠나기 전 다시 와서 꼭 사진을 찍겠다고. 하지만 나와 한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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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
Tate Modern (http://www.tate.org.uk/modern/)
테이트모던 (인공태양을 바라보는 사람들)
런던에는 테이트 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박물관이 두 곳이 있다. 하나는 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이고 하나는 테이트 모던 Tate Modern이다. 테이트 브리튼은 말 그대로 영국의 유명 작가들과 19세기 초반까지 활약했던 작가들 전시가 대부분이다. 이와는 반대로 테이트 모던은 템즈 강 옆 발전소를 개조하여 만든 현대적인 박물관이다. 테이트 모던이 개관할 당시 세계적으로 예술계에 커다란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와우! 였다. 들어서는 순간 사람을 압도하는 것은 유니레버 사에서 후원한 올라퍼 엘리아슨 Olafur Eliasson의 "날씨 프로젝트 The Weather Project" 때문이었다. 테이트 모던이 원래 발전소였기에 터빈이 있던 내부 공간은 일반 건물과는 달리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그러한 장소의 벽에 태양 같은 커다란 조명을 설치 했고 천장에는 거울을 달아 사람들이 까마득히 높은 천장을 바라보면 그 밑에 서 있는 실제보다 아주 작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가 있다.
박물관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서자 마자 저마다 할 말을 잠시 잊고 그 광경에 취하게 된다. 그 다음 하는 행동은 천장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다양한 몸짓으로.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작품은 모든 이에게 상상, 놀라운 경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을 구경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혹은 친구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 할 것이다. 예술이 어렵지 않아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설치 작품을 보았지만 이처럼 강렬하게 와 닿은 적이 없었다. 테이트 모던 안에 있는 유명한 작품들에게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질 만큼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테이트 모던 역시 멋진 카페를 갖고 있다. 4층은 편안하게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고, 7층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두 곳 다 창 밖으로 보이는 전망은 런던 내에서 최고중의 하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테이트 모던 역시 카페를 가보지 않고는 테이트 모던을 다 봤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보통 음식값이 비쌀 것 같아 걱정하는 분도 많이 있지만 커피만 놓고 볼 때 세금이 붙어도 4000천원에서 5천원 이면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등심이나 생 갈비 먹는 수준이면 이곳에서 풀 코스로 먹어도 된다. 보통 정장을 입은 웨이터들이 서빙 하는 최고급 호텔이나 음식점이 아니면 서울에서 하는 외식비용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음식을 주문해도 된다.
테이트 모던에서 예정시간보다 거의 두 배나 머물렀기 때문에 오후에는 싸치 갤러리로 갈 시간이 부족했다. 테이트 모던 안의 책방에는 사진은 물론 시각예술 전반에 관련된 책들이 즐비하고, 테이트 모던 로고를 모티브로 한 기념품들이 많아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더군다나 테이트 모던에서 나와 리버플 거리에 있는 현대적인 빌딩 건물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한 상태에서 다시 차링 크로스 거리로 가서 책을 사고 리젠트 거리에서 선물을 사기위해 쇼핑을 하다 보니 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차링 크로스 거리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차링 크로스는 런던의 중심부인 레스터 광장과 코벤트 가든 중간에 위치한 지역으로 사진 관련 서적은 물론 고서적, 디자인 관련 책이 몰려 있는 곳이다. 특히 고서점에는 현재 구하기 어려운 사진책도 있고, 철 지난 책을 싸게 팔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런던에서 꼭 들려야 할 코스 중의 하나다. 새책은 요즘 워낙 발달된 인터넷 덕분에 서울에서 사도 되지만 이런 책방에서 의외의 책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V&A 박물관에도 없는 "사진: 독립적인 예술 Photograpy : An Independent Art" 과 ( 1839년부터 1996년까지 V&A에서 수집한 사진에 관한 것), 제리 율스만의 사진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었다.
차링크로스 거리 뿐만 아니라 영국의 대부분의 헌 책방에 가면 이런 행운이 종종 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싸치 갤러리에 간다 해도 10분 정도 밖에는 못 볼 것 같았고, 그리고 가는 도중 교통상황이 나쁘면 비행기 시간에 늦을 수 있다는 위험도 있었다.
고민 끝에 단 10분이라도 가서 보는 것과 안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택시를 타면 위험 부담이 줄고, 박물관에서 최소한 20분 정도는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일단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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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치 갤러리
The Saatchi Gallery (http://www.saatchi-gallery.co.uk/)
싸치갤러리 입구 안내판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문을 연 사치 갤러리는 한 개인이 현대 미술에 광적으로 집착해 순전히 본인의 취향에 따라 수집한 작품을 전시한 것이 시작이 되어 런던 한복판에 진출한 특이한 갤러리다. 최초의 갤러리는 비록 런던의 외진 곳에 있었지만 입 소문을 타고 계속 관람객이 증가했고, 그 당시 전시했던 무명의 작가들은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가 되어 현대 미술계를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1998년 리차드 윌슨이 폐유를 이용해 자연의 빛과 조화를 이루도록 만든 작품"20:50" 을 사치 갤러리에서 본 후 설치 미술의 진가를 보는 것 같아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었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현대 문명, 그 문명의 찌꺼기를 가지고 햇빛과 공간을 이용해 만든 그 의 작품을 구경하는 절차는 무슨 성지를 관람하듯 흥미 진진한 것이었다. 한 사람만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통로를 통해 들어가면 고약한 폐유 냄새가 진동하지만 그곳에서 연출되는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돌아왔다. 심할 경우 그 작품만 보기 위해 20-30명씩 줄을 서 있기도 했던 그 사치 갤러리가 고전적인 건물인 카운티 홀에 전시장을 오픈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 변신이 궁금했었다.
전시장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노숙자의 모습과 듀에인 한슨 Duane Hanson 21세기 새로운 유목민족 같은 여행객의 모습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노숙자의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경제는 더욱더 발전해도 빈부의 차는 오히려 더 커지고, 기본 생계조차 유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현 시대에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작품들을 다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고전적인 건물 안에도 현대적인 작품이 전시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답게 박물관이나 예술도 극도로 상업화 되었다는 사실 역시 명백하게 보였다. 찰스 싸치라는 한 개인의 사치스러운 현대미술 수집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다른 모든 미술관을 제쳐두고 그의 광적인 수집품을 보러 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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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현경미 (사진가,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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