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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의 작가론 - 2) 최항영 : 소외의 산물
소외의 산물
김석원 (쿤스트 독 미술연구소 미디어 팀장,ksw5053@naver.com)
1999 - 코소보 난민
“지금은 비록 폐허가 된 자신의 땅으로 돌아갔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만 했던 그들의 상심은, 아마도 숨을 거두는 날이 되더라도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이러한 전쟁의 시작은 그들의 만들어낸 종교, 역사와 지역 등의 대립이 가져온, 그것도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던 갈등의 산물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 작가의 작업노트 중에서..
사진의 역사에서 전쟁사진을 처음으로 찍은 사진가로서 로저 펜튼(Roger Fenton)이 거론된다. 그후에 브래디는 남북전쟁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알렉산더 가드너(Alexander Gardner), 티모시 오설리반(Timothy H. O'Sulivan) 등으로 전통이 이어졌다. 현대에서는 1936년 스페인 내란을 찍은 로버트 카파(Robert Capa)에 이르기까지 전쟁사진을 찍은 사진작가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진작가들이 전쟁사진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의 초창기에는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한 시기였다. 일부 사람들은 전쟁을 좋은 소재라고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전쟁의 위험성을 모르고 사진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사진가들이 전쟁 사진을 찍는 근본적인 이유는, 전쟁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일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담보로 하고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은 인간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와 죽음에 대한 문제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전쟁의 부산물로 발생되는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은 사진가들에 의해서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로 제 생산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항영이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전쟁사진을 선택한 이유를 살펴보자. 그는 코소보사태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국가들의 이익관계에서 발생한 전쟁의 구조적인 측면과,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일반 시민들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인다. 최항영이 코소보 난민을 촬영한 시점은 로이터 통신, AP와 뉴욕 타임즈에서 활동을 하다가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코소보 내전을 취재하면서 시작된다. 코소보 난민 사진은 국내를 비롯해서 국외는 제임스 나크웨이(James Nachtwey)와 세바스티앙 살가도 (Sebastiaolsalgado)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에게 다루어졌다. 최항영의 <코소보 난민>을 찍은 사진이 다른 사진작가들의 사진과 차이점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에게는 첫 번째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으로서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그는 저널리즘의 한계를 느끼는 시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바뀌는 과도기적인 상태에서 촬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항영, 1999-Kosovo-003
사진(003)은 유고에서 알바니아로 가는 국경에서 유엔 HC 버스를 타고 난민촌을 가는 도중에 촬영한 것이다. 유리창에 비추어져 있는 형제로 보이는 어린 소년과 아이의 모습이 애처롭다. 어린 아이와 형처럼 보이는 소년의 모습은 시선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의 왼쪽 아랫부분에 입술을 꼭 다물고 자신의 동생을 안고 있는 소년의 표정은 울분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의 모습은 힘든 환경 속 에서 무엇인가를 초월 한 듯한 표정이 엿보인다.
최항영, 1999-Kosovo-005
사진(005)은 사진(003)과 마찬가지로 유고에서 알바니아로 가는 국경에서 마차를 타고 난민촌을 가는 도중에 촬영한 것이다. 마차 안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아버지와 아이들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는 장면을 본 후에 놀라움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방금 전에 느꼈던 공포를 미처 벗어나지 못한 흔적이 느껴지며, 눈빛 에서는 두려움과. 피곤함이 묻어있다.
2000 - 2008 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
“모든 작업은 소외의 산물이다. 만들어진 전쟁의 뒤편에 몸을 뉘였던 1999년 코소보 내전 난민 작업이 그랬고, 2000-2008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도 다르지 않았다. 그 후에 이 작업은 유라시아 횡단열차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길은 예전부터 있었으되 잊혀진 그늘에서 자라났던 소외의 길에 관한 내용이다”.
- 작가의 작업노트 중에서
최항영이 8년 동안 사진작업을 한 ‘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 는 동, 서양을 연결해서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rans-Siberian railroad)에 관한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해서 알아보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까지 9259km를 6일 만에 횡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스크바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는 열차표는 이 구간을 보름 동안 달리는 완행열차다. TSR에 탐승하게 되면, 바깥의 세계와 단절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국의 일반적인 열차와 다른 점은 인터넷을 할 수 없으며, 일부 구간에선 전화 통화도 안 된다. 또한, 낯선 사람들과 상당히 긴 시간을 함께 있어야 하는 부분도 개인의 취양에 따라서는 낭만적일수도, 괴로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하기 위해서 같은 침대칸에 누워 있는 승객들과 장시간 아무 말 없이 보내는 것은 유쾌한 체험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불편한 상황 속 에서 사진작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TSR에 탑승했을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는 이 열차 안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작가가 뚜렷한 목적이 없이 긴 여정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 한 것일지도 모른다.
최항영이 그의 작업을 ‘철의 실크로드’ 라고 명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작가는 첫 번째, “ ...일반적으로 알려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구간에서 벗어난 그 의미를 한반도와 아시아 그리고 유럽으로 확장시켰다. 의미를 확장하지 않았다면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단순히 러시아의 국내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으로 끊어졌던 경의선 철도가 복원됨으로써 이 길은 온전하게 확장 완성될 수 있었으며, 다시 한 번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단순하게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아니라 철의 실크로드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두 번째, ” 철의 실크로드는 특정교역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소통을 상징하는 의미로 성장했으며....소통의 방법 또한 예전보다 다양화 되었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주체와 내용의 변화다. 소통의 주체가 절대적인 혹은 이해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변화 되었고 소통의 내용 또한 특정물품에 제한되지 않는 개인의 고유한 감수성도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그리고 그 시작과 끝에 한반도가 있다.“고 한다.
최항영에 있어서 ‘철의 실크로드’는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인 상황을 연결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한반도의 정서는 과거의 실크로드의 역할에 있어서 중국을 통해서 로마와 교류를 하고 있었다면, 현대에는 경의선 철도복원을 시발점으로 철의 실크로드가 완성 되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동, 서양의 대표적인 실크로드에 새로운 구조를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최항영의 사진(008)을 살펴보자. 미국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슈퍼맨 모형물 앞에 일반 시민들이 모여 있다. 이 사진의 상황적 배경은 2006년 <슈퍼맨 2>가 전 세계 동시개봉을 했는데, 마드리드(Madrid)에서 영화의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촬영한 것이다. 다른 의미로서 슈퍼맨의 이미지는 앞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시민들이 선망하는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슈퍼맨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대단한 힘을 상징하고 있는 듯이 보이고,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아무도 알 수가 없고, 그의 등위에 있는 붉은 망토는 내면의 야망이 길게 뻗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항영, 2000-2008-TSR-008
최항영, 2000-2008-TSR-011
사진(011)은 파리 북부 역을 촬영한 것이다. 복잡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기차역을 찍은 것 자체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지역은 예전에 기차의 역할이 물건을 이동하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소통하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최항영,2000-2008-TSR-005
2007-2008 태안 기름유출 사고 - 암묵적 동의
2000년도에 발생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매스컴을 통해서 온 국민들이 알게 된 경이스러운 사고였다. 태안에 갑작스럽게 쏟아진 기름 때문에 환경오염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태안 자체의 제한된 사건이 아니라, 이미 바다 전체에 광범위하게 오염이 되어있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선박 혹은 해안가의 공장에서, 상습적으로 조금씩 오염물질들을 유출시키고 있지만, 육안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오염의 심각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향도 있다. 영화 <괴물> 에서 포르말린을 유출시킨 미군이 한강에서, 괴물생명체를 만들어 내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괴물은 미군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기름이 순식간에 해안에 퍼져 나간 속도와 비래해서 태안의 기름때를 빠른 시간 안에 제거한 우리들의 속도가 일치 하다는데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선행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기름유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에 대한 논의는 슬며시 없어져 버렸다.
결국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환경을 오염시켰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윤추구에만 몰두해 있는 한국의 대표 기업과 성장의 뒷면에 있는 상실된 도덕성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최항영의 사진(002)을 살펴보면, 굴 껍데기의 모습이 상반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조형적으로 구성한 화면의 윗부분에는 하얀 굴 껍데기는 봄이 올 때, 가장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목련 꽃 잎처럼 보인다. 아랫부분의 어두운 굴 껍데기는, 식물의 뿌리처럼 강한 생명의 의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사진(006)은 해안에 기름이 범벅이 된 상태에서 자원 봉사자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서고 어른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나온 곰돌이 모자를 쓰고 빨간색 고무장갑을 낀 학생의 모습은 암울한 현실과는 다르게 밝아 보인다. 빨간색 고무장갑에 묻은 기름때가 거친 현실이라면, 곰돌이 모자의 이미지는 이 학생의 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느껴진다.
최항영, 2007-Taean-002
최항영, 2007-Taean-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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