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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의 ˝사진,미술을 초대하다˝ - 사진과 포토리얼리즘의 관계
사진과 포토리얼리즘의 관계
김석원(ksw5053@hanmail.net)
미메시스(Minesis)와 리얼리즘(Realism)
고대에서는 근본적으로 예술 행위 자체를 모방으로 인식하였으며 기존의 예술을 하나의 기술에 해당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예를 들면 물품과 가옥 등을 잘 만들면 그것을 예술로 생각했다. 즉, 예술(art)이라는 말은 아르스(테크네, techne)라 불렀다.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예술에 대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대의 예술가들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 예술가의 직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하는 미메시스와 리얼리즘을 적용해서 살펴보면, 우선 플라톤(Platon, BC 429?~BC 347)의 미메시스(mimesis) 개념은 예술을 기술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모방을 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전제는 예술은 실제를 모방한다는 개념에서 단순모방(imitation)이라고 생각했으며,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데아(idea)의 세계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예술을 하찮은 것으로 평가절하 했고 예술을 비합리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단순 모방에 근거해서 사진을 대입해보면 사진은 실제를 모사하지만 사진가에 의해서 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동적인 입장에서 판단할 때 사진은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플라톤과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는 예술행위가 근본적으로 미메시스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에서 그것이 아름답게 만드는 본질을 모방한다고 생각을 했다. 즉, 어떻게 모방하느냐에 따라서 실제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고 덜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 비해서 미메시스를 자유로운 개념으로 인식한 것으로 느껴지며,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모방이론이 가장 잘 나타난 장르를 연극이라고 간주하였다.
하지만 수잔 손택(Susan Sontag)의 ‘해석에 반대한다’ 는 저서를 보면 위에서 언급한 두 철학자 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모방이론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그녀가 문제점으로 지목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서구의 대부분의 의식들이 예술을 모방과 재현으로 인식했던 그리스 예술이론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작품을 해석하는 입장에서 형식과 내용으로 분리하면서 내용을 우선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해석의 의미를 작품전체에서 일련의 요소를 끄집어내는 것이며 해석이 해야 할 역할을 번역작업이라고 비유했다. 그러한 해석 작업은 작품자체에 대한 감상보다는 작품의 외적인 요소인 전통적 가치나 도덕적 진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는 예술 작품들까지도 비평가들이 의도적 해석을 통해서 길들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손택은 예술에서 고정된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을 예술자체로서 경험해야하며,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면서 작품 속에 있는 내용을 더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 속에 숨어 있는 실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손택은 그것을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라고 언급하면서 해석을 위한 해석을 비판하였다.
한편, 19세기는 모방이론에 근거해서 발전된 형태의 사실주의(Realism;寫實主義)가 등장하게 된다. 이 개념은 우선 추상예술, 고전주의, 낭만주의에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여기에서 시대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적 사건이며, 그 뒤를 이어서 19세기의 산업화가 뒤따랐고 신흥 중산계급이 새로운 후원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점차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던 이 계급의 가치관은 근본적으로 유물론적 이었기 때문에 낭만주의 예술의 모호함과 환상보다는 오히려 눈앞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각적 사실들을 전달하는 묘사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방이론은 실제를 추구하는 것인데, 예술이 리얼한 것을 얻으려는 과정이 중요하게 인식되었으며 그런 과정의 결과로서 리얼리즘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또한, 리얼한 것은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접근하는 사람의 접근 방식에 따라서 달라져 보인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리얼리즘을 실제에 도달하기위한 길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 번째 완벽하게 실제를 모사하는 방법과 두 번째 눈으로 본 것으로 의지하지 말고 실제에 바탕을 둔 작가의 관념이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사진과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포토리얼리즘 (極寫實主義 : Hyper realism, Super realism)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으로 같은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시도된 비슷한 경향의 미술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극단적인 사실적 묘사에 의하여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일순간 정지시켜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강조해 표현하려는 미술의 한 경향이다.
이 용어는 ‘초사실주의(超寫實主義)’, 슈퍼리얼리즘(superrealism), 포토리얼리즘, 샤프 포커스 리얼리즘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점에 있어서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포토리얼리즘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포토리얼리즘 회화는 현실의 복사물이 아니라 사진 ― 그것은 이미 원본의 복사물이다 ― 의 복사물이다고 하였다. 이렇게 사진을 이용해서 그린 포토리얼리즘 회화는 사진과 어떤 밀접한 연관성을 획득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 번째, 포토리얼리즘 회화를 처음 접하게 되면 대부분 그것이 사진이 아니라 손으로 섬세하게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 때문에 놀란다. 감상자를 놀라게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대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매체가 사진이라는 믿음이 깨지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사진처럼 구체적인 묘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보기 보다는 우리가 보고 있는 사진 같은 그림이 사실은 허구(Fiction)였다는 점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사진1,),벤숀자이트, <푸른 게>, 1973.
두 번째, 사진과 회화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의 특성 중에 하나인 초점(Focus)에 있다. 초점은 사진작가가 찍고자 하는 대상을 강조하는 기능을 하는데 회화에서는 초점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림을 감상하거나 비평을 할 때 초점이 맞았다 혹은 안 맞았다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토리얼리즘에서는 사진을 가지고 회화로 재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사진의 고유한 기능인 초점의 느낌을 그대로 복귀시킨다. 또한 완성된 예술작품을 복제하기 위해서는 다시 카메라의 기계적 기능인 초점이 사용된다. 필름으로 재현된 이미지는 신문 및 지면 등에 게제가 될 경우 사진적 메카니즘인 초점의 효과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즉, 사진을 대상으로 그림으로 재현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다시 사진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초점이 사용된다는 것인데 결국, 사진의 고유한 기능인 초점의 역할이 변질되거나 복원된다는데 의미가 있다. 아래의 그림은 포토리얼리스트 벤숀자이트의 (푸른 게, 1973)란 작품이다. 이 그림은 사진의 기능적인 특성인 초점을 사용하여 특정부분에 초점이 맞고 나머지 부분이 아웃 포커스되는 현상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효과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인 것이다.
세 번째, 포토리얼리즘에서는 사진의 특성인 선택성을 사용했다. 포토리얼리스트와 사진가들이 발견한 대상은 대상의 전체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선택한 것인데 그것은, 공간적으로 이어진 장면이나 연속된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의 한 부분이 찍혀진 것이다.
사진가들이 선택해서 촬영한 사진을 다시 포토리얼리스트의 작품에서 선택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미 사진가들이 제한된 선택적인 상황을 수용한다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화가들이 직접 사진을 찍은 다음 그 사진을 다시 그림으로 재현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사고에 부합하는 포토리얼리스트가 위에서 언급한 벤숀자이트인 것이다. 그는 전문적인 사진가 못지않게 사진기술이 뛰어났으며 사진을 직접 찍어서 자신의 작품에 활용했다는데 의미를 들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포토리얼리스트 존 케이시어(John kacer)의 <로레타, 1972>,와 <쥬타, 1972>란 작품이다. 이 그림은 현대사회에 있어서 광고를 통해서 여성의 속옷을 선전하는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그가 그린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은 대부분 하체를 강조하고 여성의 곡선과 함께 여자의 은밀한 부분을 감상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특이한 점은 여자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서 익명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익명성은 요즘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신체의 일부분을 드러내는 사진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익명성이 확보되는 것인데, 그림의 모델이 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감상자로 하여금 상상을 유발시켜서 외설스런 느낌이 더 강조된다. 사실 속옷은 기능적인 측면 외에도 남성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성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로레타, 1972> 작품을 보면 왼쪽으로 뒤돌아서 누워있는 여자의 엉덩이 부분은 하트 모양의 이미지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듯한 팬티 라인의 윤곽선 때문에 도발적인 느낌이 증폭된다. 또한 그림에서 보이는 여자들의 포즈와 옷 주름과, 레이스의 모양이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연출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도한 듯한 인상을 준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 정리를 한다면 포토리얼리즘의 등장으로 인해서 회화의 대상이 현실을 바라보고 재현하는 행위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찍은 사진을 통해서 다시금 현실의 모습을 재확인한다는 것에 있다. 또한, 포토리얼리스트은 기존의 미술이 가지고 있는 비평적 방법들 예를 들면, 미술을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서 형식주의적인 비평적 담론에서 얘기를 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설명과 형식적 요건을 분석 비평하는 행위에 대한 접근방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제를 통해서 예술 감상의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들은 사진을 모티브로 제작했지만 포토리얼리즘 회화는 대상과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즉,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록적인 기능과 인식을 재조명함으로서 미술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사고를 확장시킨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1,),벤숀자이트, <푸른 게>, 1973.
(사진2,),존 케이시어,<로레타>,1972..
(사진,3),존 케이시어,<쥬타>, 1972.
(사진,5),힐로 첸,<해변30>,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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