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렬
이흥렬 - 나무展 2015.06.16
갤러리 인덱스(02-722-6635)
2015-07-08 ~ 2015-07-13
이흥렬 - 나무展

푸른 나무

사진가가 나무를 찍는 것은 익숙하고 흔하다. 꽃, 바다, 일몰이나 일출을 찍는 것과 같다. 다른 이들이 흔히 찍는 것을 다시 찍는 것은 위험하다. 익숙함은 식상함을 불러온다. 따라서 그 식상함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푸른 나무’가 그런 것인지 따져보아야 하는 이유다.
내가 ‘푸른 나무’를 오래 보고 있다는 것은 식상함이란 위험지대를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나무는 한 밤에 출몰한 벌거벗은 나무이고 컬러풀한 나무이다. 촬영 시간대가 상식을 벗어난다. 작품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나무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진 앞에서 ‘왜?’를 연발하고 사진은 충실한 답을 내놓는다.

사진을 찍은 시기다. 제가 제 몸을 달궈 만든 잎을 다 털어 낸 가을부터 새 잎이 나오기 직전인 이른 봄까지다. 이 무렵의 나무는 모든 부끄러움을 내려놓는다. 대신 자신의 살아온 한 해의 신산한 삶을 과거의 삶에 얹어 드러낸다. 어떻게 한 그루 나무가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는지 사진가는 내력을 모르고 나무 또한 말하지 않는다. 나무가 내력 없이 태어 나, 그 자리에서 소멸되어 갈 때, 존재감이 크게 느껴진다. 큰 나무는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살아왔지만 입을 열어 제가 본 것을 말하는 법이 없다. 사진의 대상은 시간의 풍화를 상처처럼 간직한 늙은 나무들이다. 살아 있는 것 중 늙어서 아름다운 것은 나무가 으뜸이다. 그러니 늙어 아름다운 것을 찬양하라!

사진가의 찬양은 사진으로 한다. 어둠을 배경으로 무대 위의 스폿 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처럼 조명을 주는 것이다. 사진가의 역할 중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모든 사진이 그렇다. 누구는 찍는 순간에 사진이 만들어 진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이 사건을 다루는 사진이 아닐 때에는 더욱 그렇다. 사진가도 화가나 여타 예술가들과 매우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대상을 선정하고, 그것을 돋보이기 위한 무대장치를 고안하고, 모든 기술력을 동원해서 자신의 의도를 확정하는 것이다. 그의 사진 또한 대상 선정부터 조명까지, 치밀한 계획 하에 얻어졌다. 지나가다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이 식상한 나무 사진에서 벗어나게 하는 까닭이다.

특히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제주도 팽나무다. 하나의 나무를 위해 세심하게 세운 계획은 뒤쪽과 앞쪽에서 동시에 조명을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후면 빛은 나무의 잔가지 하나하나가 손상 없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정면 조명은 나무의 전신을 오롯이 보여준다. 이것으로 늙은 팽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았다. 아니 사진가의 찬양을 알았다.

온 몸으로 땅에 뿌리를 박고,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저 늙은 나무들. 한 번 쯤은 스폿 라이트를 주어도 마땅하리라. 자기 온 몸으로 스스로 헐벗고 겨울의 추위를 견디어 내는 나무를 생애, 한 번쯤 주목하자. 그런 무명의 나무가 이 땅에는 참으로 많다.

사진의 강렬함은 삶의 추위를 무방비로 받아 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온 힘을 다해 제 몸 속의 푸른 새잎을 밀어내려는 의지에 경의를 표함에 있을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그 일을 해내는 나무들. 나무는 그렇게 스스로 나무가 되며 나무로 늙어가는 것이다.

- 사진평론가 최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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