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주 Ko, Hyun Joo
허무와 빛, 그 사이에서 2002. 11. 13
관훈 갤러리
2002. 11. 13 - 11. 19
허무와 빛, 그 사이에서

고현주- 떠난 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집/방의 이미지

고현주는 재건축아파트 현장이라는 무척 '센' 소재를 찍었다. 그 소재 자체가 힘이 있고 무수한 의미를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나로서는 고현주가 세계를 살핀 눈에 그 소재가 걸려든 것인지 혹은 우연히 센 소재가 포착된 것인지 아직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녀가 이런 소재가 아닌 다른 소재들은 어떻게 찍어낼 수 있을까가 그래서 궁금해졌다. 문제는 의미와 개념으로 가득 찬 소재의 선택만은 아닐 것이다. 소재 너머, 세계의 모든 풍경을 자신의 삶에서 연유하는 감수성과 감각으로 포착해낼 수 있는, 읽어낼 수 힘일 것이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현재, 고현주의 이 사진은 좋다. 그녀의 사진 앞에서 나는 무척 많은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감정의 겹쳐짐을 감상한다. 그런 즐겁고 의미있는 경험의 시간을 기꺼이 주고 있는 사진들이다.

재건축공사가 진행중인 아파트란 장소에서 찍은 방 풍경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콘크리트건물들이 개발이란 이름 하에 무참히 파괴되는 현장풍경의 하나이자 또 다른 욕망의 창출을 위해 급격히 폐기되고 죽어야 되는 것들, 새로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충족되지 못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현장인 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쓸만하지만 개발논리와 안전에 대한 조바심, 비싼 가격을 받기 위해, 더 넓은 평수를 차지하기 위해, 좋은 학군과 환경으로 옮기기 위해 떠나버린 이들에 의해 버려진 집/방은 상처처럼 아프다. 사실 집/방은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의 증좌들이다. 그것은 자본이며 욕망이자 관능이고 투자가치인 동시에 신분과 관계된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의 집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소시민들은 대개가 몇 억씩을 그냥 깔고 앉아있는 거지들이다. 오늘날 집은 그만큼 변질되어 버렸다.

한때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몸을 보호해주고 안온한 삶의 거처를 마련해주던, 추억과 소중한 기억과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 방은 간편하게 잊혀지고 무심하게 지워져 버렸다. 곧 잔해도 없이 사라져버릴 이 텅 빈방은 비어있지만 비어있지만은 않아 보인다. 분명 그곳에 살았던 누군가를, 그 누추하고 비릿한, 적나라한 삶의 흔적들을 가슴아프게 증거한다. 그 방에는 여전히 한때 살았던 사람들, 그 방 주인들의 육신과 관계된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이불, 배게, 소파, 침대, 책상, 웨딩사진 액자(신혼부부가 활짝 웃음을 짓고 있는 이 웨딩 사진이 폐허로 돌변한 방 한 벽에 기대어져있다! 의도적으로 버려진 것일까, 혹은 이미 두 사람의 관계가 파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달력과 옷걸이, 포스터('오아시스'라는 문구가 선명한 이국적인 풍경사진) 등등이 유리조각과 먼지, 부서진 시멘트 파편들과 엉켜있다. 사람이 살다 빠져나간 빈방이 주는 느낌은 참혹함, 썰렁함, 비애감과 상실감 등 복합적이다. 우리들은 이사를 다니면서 그런 감정을 자주 체험해 왔다. 빈방이 증거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유한한 삶의 덧없음, 혹은 지독히 세속적이고 물신적인 욕망의 허물, 그런 것일까?

고현주는 방을 정면으로 응시해 가득 담아냈으며 천장과 바닥이 비슷한 비율로 채워져 있다. 가운데로 뚫린 창으로 들어온 빛에 의해 어둡고 차가운 방안의 흔적들이 조금씩 눈에 밟히듯 다가온다. 중심을 차지한 빈 공간은 건너편 아파트의 겉모습을 알려준다. 그것들 역시 곧 허물어지고 파괴될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 한 장의 사진은 안과 밖을 동시에 비쳐주는 셈이다. 안/밖을 넘나드는 시선의 교차로 인해 우리는 방/집, 주거공간/세계, 일상/현실 등에 대해 복합적인 사고를 펼친다. 사실 우리들 삶의 공간은 벽 하나를 경계로 세상을 차단하고 등지고 있다. 모든 집, 방은 절대적인 개인성의 공간이자 타자들에게 금기시 된 영역이다. 은밀하고 배타적이며 완강한 고립의 영역인 동시에 유일한 삶의 거처이다.

우리는 늘상 방을 떠나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방으로의 변함없는 귀환이 일상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그 방은 평생 수없이 많은 거처를 옮겨다니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삶의 영역으로만 자리한다. 우리들 한정된 생들은 그렇게 잠시 방을 빌어 생을 살다 마감한다. 방에서 태어나 방에서 죽을 것이다. 또한 방은 한 개인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생의 모든 것들이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공간은 그 공간에 살고 있는 몸과 함께 한다. 몸과 공간은 그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렇다면 한 개인에게 자신의 집, 방이란 세계의 끝이자 시작이다. 아울러 그/그녀의 살림살이, 경제성, 취향과 감각, 습관과 기질 같은 것들은 공간에 시간과 함께 서식한다.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문화적이며 사회학적인 차원과도 결부된다. 그런 모든 것들이 흥미롭게 읽히는 고현주의 사진은 결국 동시대의 일상, 집/방 문화, 공간의 사회학, 근대성의 그늘 등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국내 최대의 사진전문 포털사이트인 아이포스 웹진에서는 각 미디어와 화랑의 전시담당자, 프로사진가, 전국의 각 대학 사진학과 교수 및 전공자, 미술계와 광고 디자인계, 출판 편집인,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인사, 국내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임원, 사진동호인 등 27만6,790명에게 사진문화에 관한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