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욱
임채욱 - 인터뷰 설악산展 2016.03.11
아라아트센터(02-733-1981)
2016-01-06 ~ 2016-03-22
임채욱 - 인터뷰 설악산展

임채욱의 <인터뷰 설악산>展에 부쳐 - 박인식/소설가


설악산은 산의 형상을 지닌 자연에 머물지 않는다.
이 땅의 가장 빼어난 산수미의 상징으로 선택되어 천팔백만 명이 넘는 산사람들과 각별한 관계를 맺어오는 사이, 설악은 동해와 가까운 강원도 동북녘 어디쯤에 자리 잡았다기보다,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더 높이 솟아오르게 되었다.
설악은 산을 믿고 산에 기댄 선조들을 산악민족으로 만든 삶과 역사를 통해 한민족 영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임채욱이 설악산에서 금강산의 수려함과 지리산의 장엄함을 찾아낸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는 설악을 ‘무한한 존재’로 바라본다.
어떤 시인이 설악을 모두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떤 화가가 설악의 모든 것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무한의 경지에 설악은 닿아 있다.
그 설악의 무한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삶의 무한으로 들어서게 된다. 설악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이 산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한 표상, 감정, 기억, 열정, 의지, 희망, 의욕, 상상, 동경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서 떨어진 실재의 설악산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가슴 속의 산이 오히려 실재성을 지닌다.
그 가슴 속의 설악은 상상력으로 구성된다. 그 상상력의 크기와 풍부함에 따라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 설악산이 태어난다. 산행은 그 상상의 설악을 구성하고 결정하는 데 따르는 동기 유발에 지나지 않는다.
설악은 유일하다고 할 만큼 개성적이며 표현적이면서 파격이다.
판소리 가락처럼 물결치며 유장하게 흘러가는 한국 산수에 예외를 두기로 작정한 조물주의 바로크적 야심작이다.
대개의 풍경 사진가들은 설악산을 공간적인 형상으로만 보여줬다. 한국 산수미의 상징을 물질적 조형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은 산을 바라본 시선의 물질성을 말해준다.
임채욱의 사진은 물질로서의 실재 산보다 한국인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정신으로서의 산이 훨씬 더 설악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한국적인 모든 문화는 산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산은 자연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다. 설악에 얼마간 삶을 묻으며 설악으로 스며들었던 매월당 김시습, 삼연 김창흡, 만해 한용운 등은 ‘무한한 존재’로서의 설악산을 인터뷰하여 설악산이 한국 문화의 정수임을 보여줬다.
자연을 객체로 바라보는 서구 예술가들이 산을 공간적 형태로 표현한 데 비해, 자연과 일체감을 가졌던 우리는 정신적 형태로 산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의 산은 단순한 물체이거나 단순한 정신에 머물지 않는다. 기운생동하며 구체적인 생명을 만들어가며 우주 질서를 따르는 생명체가 된다.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 제 품으로 들어오면 ‘무한한 존재’로서의 설악산은 그 사람과 심층 인터뷰하듯 자신의 내면세계까지 표현해낸다. 인터뷰어가 표현하는 게 아니라 산이 표현해내는 것이다. 임채욱의 사진은 산 자신의 표현주의적 표현이다.

누군가 영혼이 고독한 사람은 산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독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입산을 권한다. 산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가장 큰 선물은 고독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는 제 몸뚱아리 그 자체라는 실존적 고독을 산에서 실감할 때, 산행의 의미와 가치가 살아난다.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기어오르지 않는한 사람에게 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산에서의 고독에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미적 유혹이 있다. 때로 죽음을 불사하는 불나방으로 산사람을 끌어들일 만큼 그 미적 유혹은 강렬하다.
아름다움과 순수함의 진실은 산에서 느끼는 고독의 순수한 맛에 있다. 누군가 산에 중독되어 있다면 그 고독의 맛에 중독되어 있을 터이다.
산을 바라보는 임채욱의 시선을 보라. 그 시선이 얼마나 고독한지 느껴보라. 그 시선의 고독함이 끌어당기는 미적 유혹은 또 얼마나 강렬한가!
산에서 느끼는 고독의 아름다움으로 사람은 산에서 아름다와진다. 산의 고독함으로 사람은 산에서 순수해진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고독으로 산이 제 내면을 표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때, 사람은 보다 사람다워 질 수 있다고 임채욱의 사진들은 말한다.
그의 작업은 산행이 인간 사회의 질서와는 다른, 보다 깊고 높은 차원의 질서로 연결되기를 꿈꾸는 기도행위다.
그는 설악이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짓는 시간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산에 들어 산의 아름다움을 카메라로 산책하며 즐긴 게 아닌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설악산을 만들어냄으로써 산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었다.
그가 창조한 설악은 우리들이 실재 설악 산행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감각을 일깨워 준다. 우리가 설악에서 만나거나 본 적이 없는 설악이 여기 있다. 새롭게 깨어난 그 감각과 의식의 주체를 그의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오해하고 있었기 쉽다. 그것은 산을 바라보는 사람 속에 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산의 감각이자 산의 의식이었다.
새롭게 깨어난 그 감각과 의식은 사람에게서 산으로, 또 산에게서 사람 쪽으로 시선의 주체를 이동시킨다. 사람과 산이 서로를 주고받으며 섞여드는 교감과 소통은 이 순간 가능해진다.
그의 사진은 설악을 사유하게 하지 않는다. 다만 설악의 무한을 체험하게 만든다.
사유로는 도달할 수 없고, 오직 체험할 수 있는 설악산의 무한이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악의 무한은 아름답고 변화무쌍한 경관의 미학적 감상 가치로서의 무한이 아니다. 아무리 그 풍광이 뛰어나다 해도 사진 미학적 작업과 구성만으로는 무한과 관계 맺을 수 없다.
무한한 설악에 있어서는 골짜기나 암봉이나 나무 한 그루 같은 자그마한 부분도 설악산 전체와 조화되고 한정되어 생겨나는 것들이어서 설악의 모든 구성 요소들은 설악산 전체를 관장하며 표현하고 표상한다. 이 지점에서 임채욱은 사진가의 눈을 뜬다.
임채욱의 카메라 시선에 얹혀 설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때, 실존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설악의 개성 전체를 느끼게 된다.
무한한 것은 이처럼 개성적인 표현이 받쳐줄 때 우리들 삶 속으로 스며든다. 문화와 예술은 그 무한한 존재와 일체가 되는 일의 또다른 이름이다.
설악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몸을 높여가는 일은, 등산차원을 넘어 자신의 영혼을 높여가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면 그 영혼이 닿은 높이에 맞춤한 설악의 영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설악이라는 한민족 영혼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영혼을 느낄 때, 설악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달리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설악의 절대미美라 부르고 싶다.
그 설악의 절대미는 지금 이 시각에도 무한한 존재의 숨을 내뿜으며 신의 손길로 다듬어지고 있다.

산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거대한 공간, 그것만이 아니다. 실은 그 공간보다 더 큰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입산 또는 산행은 공간적 크기를 압도하는 산의 시간적 크기에 동화하는 일이다.
산의 거대한 시공간의 중심에 자신의 중심을 겹쳐 놓을 때, 산과 하나가 된다.
임채욱처럼 하루 산행은 천년 만년 천만년의 영원한 시간 체험으로 이어진다.
산의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에 든 사람은 깨달음의 길, 바로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들은 한겨울에도 구슬땀 흘리며 설악산 봉정암을 오르리라.
끝내 봉정암 자연암봉 부처바위 앞에 서리라.
거기서 영원과 무한의 시공간을 향해 두손모아 기원하고 있는 자연 반가사유상이 설악의 영혼인 동시에, 그 영혼에 동화하려던 자신의 영혼이었음을 깨닫고 뜨거운 눈물 훔치게 되리라.
여기에 케이블카는 없다.
이 그림에 케이블카가 등장하는 순간, 산의 시공간과 동화하려던 한국인 영혼의 혼불은 꺼지고 만다.
설악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올려 놓는다는 것은 관광 수익증대라는 경제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의 정체성과 영혼차원에서 바라볼 때 그 본질이 드러난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한국인의 가장 고매한 영혼의 영역을 제 영혼마저 정치적 타산에 팔아 넘긴 정치모리배들의 ‘관광개발 경제가치창출’ 이라는 속임수에 현혹된 관광객이 야단법석을 떠는 난장판으로 바꿔치기 하려는가.
지금, 임채욱의 사진으로 속내를 털어놓은 설악산은 케이블카로 조마조마하다.
설악이 조마조마 하자, 한국의 명산들이 죄다 조마조마하다. 지역 이기주의를 정치 밑천으로 삼는 지자체 단체장들이 그 명산마다 케이블카를 놓을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의 정수리에 케이블카를 놓을 철탑을 박는 일은 자신들의 핏줄에서 산악민족의 유전인자를 일찌감치 찾아낸 이 땅의 천팔백만 산사람들 부모의 영혼에 철탑을 박는 일에 다름없다.
진정 산사람이라면 이 엄청난 음모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으랴.
분노하라! 분노의 힘으로 뭉쳐라! 분노의 힘으로 떨쳐 일어나라! 천팔백만으로 뭉친 분노의 힘으로 케이블카 음모에 당당히 맞설 때, 이미, 케이블카는 없다.
임채욱의 작품이 설악의 절규를 전한다.

나, 설악의 파멸은 한국인 영혼의 파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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