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호
최광호 사진전 - 흙으로부터의 시간
류가헌
2012.02.28-03.08
흙으로부터의 시간

‘흙’을 화두로 한 최광호 사진전

사진가 최광호의 근작 ‘흙으로부터의 시간’이 3월 18일까지 류가헌에서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류가헌이 지역 갤러리들과 연을 맺고 여는 두 번째 교류전으로서, 강원도 평창 다수리갤러리의 전시작을 서울 류가헌에서 선보이는 것이다.

사진가 최광호는 그가 낸 책의 제목 ‘나는 사진이다’처럼, 살아온 걸음걸음이 모두 사진적 족적을 이루어 온 사진가다. 1977년의 첫 개인전 이래 나열할 수 없을 만큼의 전시 이력이 깊이를 키워왔다면, 출판, 수상, 소장,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외연의 너비도 넓다. 물론 모두가 사진 안에서의 행보다. 때문에 그는 ‘사진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사진가’라고 불리는, 몇 안 되는 한국의 사진가 중 한 사람이다.

흙으로부터의 시간. 화려한 색상의 원형무늬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가하면 세포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화면 전체를 메우기도 하고, 그 속에 사람의 형상, 혹은 앤디 워홀, 안중근, 원효대사 등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중앙부를 차지하기도 한다. 막막한 먹색이지만, 그 형상으로 바나나, 혹은 배, 가지 등도 제 존재를 드러낸다.
언뜻 보면 추상표현주의 회화나 판화인가 싶은 최광호의 이번 전시작들은, 그러나 물론 사진이다. 그것도 최광호가 자신의 삶과 사진을 어떻게 합일시키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자연이 나를 먹이고 키우는구나. 평창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느낀다. 그 중 첫 번째 가르침을 준 것은 흙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정을 처음 느낀 것도 흙 때문이었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서 학교 운동장이 물바다가 되었었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흙을 날라서 메워 주었다. 선뜻 마음을 먼저 연 동네사람들. 흙은 나와 마을 사람들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그 마음을 사진으로 담자. 내 흙 작업은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최광호는 몇 해 전부터 평창의 산골마을 다수리의 폐교를 다듬어 작업실과 갤러리로 쓰고 있다. 자연 속에 머물게 된 이래 흙과 돌 같은 자연물들과 가까워졌고, 흙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흙이 화두가 된 것이다. 看話禪(간화선)의 결과는, 흙이 그냥 흙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 안중근과 원효가 죽어있는 물질이자 자신 또한 언젠가는 그리 될 것이며 오늘 자신의 마음과 몸, 정신도 모두 그 흙이 보듬고 키워낸 것들을 먹고 이뤄진 것이라는 답을 낳았다.

“내 뼈 내 살은 땅이 거저 준 선물. 받았으니 나도 다 주자. 야채와 과일이 내가 되고. 내가 야채와 과일이 되고. 돌과 흙과 먼지와 야채와 과일이 인화지와 판화지, 한지에 뒹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생각을 사진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최광호다. 이러한 분명함이 그의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를 확연케 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강원도 평창, 아니 더 먼 곳일지라도 최광호의 전시라면 기어이 보러가는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그의 전시작을 서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고 고민하고 살아가는 한 사진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 그 정신의 산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이제 우리에게도 하나의 화두로 주어질 최광호의 ‘흙으로부터의 시간’. 마지막으로 작가는 말한다. “땅에게 내 감사하는 마음이 전해져 이 작품을 보는 모두에게 활력소가 되기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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