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Kim, Jee youn
김지연 사진전 - 낡은 방 2012.08.29
류가헌
2012.09.18-09.30
김지연 사진전 - 낡은 방

‘낡은 방’, 기억의 외연을 찍다

낡은 방. 방의 하늘인 천정은, 그 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다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빛바랜 벽지도 빛이 바랜 만큼 그 방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는 듯 보인다. 누군가가 태어나고 죽고, 울고 웃던 순간들, 혹은 무심한 일상들을.

또 다른 낡은 방의 벽은 온통 지나간 시간들과 사연들의 전시장이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배우자의 초상사진 옆에 산 자의 옛 얼굴 사진이 나란하기도 하고, 자녀들의 결혼사진에서 이미 다 커버린 손자의 돌 사진까지, 시간들이 박제되어 있다.

액자에 걸린 사진이 아니어도 낡은 방에는 고집스러운 기억이 또 있다. 몇 년이나 벽에 그대로 붙어 있는 인조 카네이션을 비롯한 여러 사물들, 즉 유선전화기, 파리채, 유행과는 거리가 먼 오래된 TV 등이 그들이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힘들었을 삶의 기억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낡은 방. 방은, 그 방에 사는 사람이 속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외연이다. 우리들의 삶에 관해 나직나직 침묵 속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다.

사진가 김지연이 이 낡은 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속’의 외연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정미소, 이발소 등 우리 삶에서 잊혀지고, 지워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함께 공유하는 작업을 통해 ‘추억을 찍는 사진가’로 불리는 작가이기에, 외딴 시골마을 외따롭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낡은 방에 눈길을 둔 것도 자연스럽다.

“문득 남의 방문을 열어 제치며 그들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내려는 공격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조심스러운 때도 있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하지만 방에는 “어느 무뢰한 침입자에 의해서도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시간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고 덧붙인다.

멋진 집, 우아하고 세련된 방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에게 낡은 방은 관심권 밖에 자리한다. 머지않아 지금의 낡은 방들은 사라지거나 새로운 방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과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낡은 방이 가뭇없이 사라져 갈지라도 사진을 통해 우리는 그 방의 시간과 의미들을 공유할 수 있다. 사진가 김지연이 지켜가는 사진의 역할이 거기에 있다.

김지연 사진전 <낡은 방>은 9월 18일부터 9월 30일까지 종로구 서촌에 자리한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다. 전시 문의 : 류가헌 02-7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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