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철 개인展 ˝사진가 이규철을 만나다˝
포스갤러리(02-2264-2381)
2009-02-21 ~ 2009-03-05
2009-02-21 오후 1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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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 841의 휴가 (1990-1991)

... <군인841의 휴가> 사진은 사회적, 정치적, 개인적으로 중요한 화두를 가지고 있다. 이규철의 사진을
통해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인내심을 경험하며, 공동 집단에서 개인의 함몰과 도구화되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어쩌면 군대가 가지고 있는 집단적 정체성은 사회와 뚝 떨어져 존재하는 이상한 곳 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영화 <마파도>처럼 상식적인 것이 통용되지 않는, 절대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은 ‘그들만의 세계’ 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규철의 <군인841의 휴가> 사진은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군대의 구조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어떤 실제적인 상황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에게는 묘한 추억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사 하는 점이 크다. ...


글/ 김석원


● 비온 날의 오후 (1993)

...<비온 날의 오후>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겪어야할 고독, 존재의 허무 등 자기성찰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적막한 공간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경하다. 부유하듯이 떠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유령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사진에는 존재에 대한 고뇌의 흔적이 엿보인다. 사진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드러내고, ‘인간/생명’과 ‘땅/물성’의 관계에 주목한다...


글/ 김석원


● 달빛 소금에 머물다 (2006-2007)

그가 보여주는 야성에선 오히려 공들여 가꾼 듯한 유려함이 먼저 느껴진다. 이 역시 그가 자연을 심미적인 태도로 마주하고 있음의 반증일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눈 덮인 산길이나 해변에서 마주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공간을 지배하는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풍경의 일부처럼 등장한다. 작가에게 자연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모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길거리에선 우연히 만난 사람이나 소금을 나르는 염부 모두가 그에게는 심미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달빛이 스미는 새벽, 염전에서 소금을 퍼 담는 염부의 모습은 이러한 작가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동현장에 대한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과 달리 그는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서정적인 자연풍경에 통합시켰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자연과 삶, 양자의 매개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심미적 해석으로 제시했다.


글/ 박평종 (미학, 사진비평)


● 서문

전쟁이 끝나고 60년대 중반 남한의 국민들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 기근때문에 농사를 포기하고 작가 이규철의 부모님은 이제 돌이 막 지난 한살된 아이(이규철)를 데리고 대구로 이주를 하게됩니다. 이게 바로 농민공아니겠습니까. 마침 대구에서 건설업쪽 일을 하고 있는 친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70년대가 됩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70년대 많은 아버지들이 해외로 떠났고 외화를 벌어 왔습니다. 다들 야시카 카메라 한대씩 기념으로 사오는 시대였지요. 사우디로 떠났던 작가 이규철의 외삼촌은 돌아올때 레인지파인더 방식의 야시카 카메라를 사와서 고등학교 1학년이된 작가 이규철에게 선물을 합니다. 이 카메라가 있었기에 사우디에서 흘린 땀이 있었기에 사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이런 카메라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80년대가 됩니다. 88올림픽이 열립니다. 대학생 이규철은 정말 운이좋게도 88올림픽 기간동안 연합뉴스 인턴으로 그 역사의 순간을 기록을 하는 소중한 체험을 하게됩니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신화통신, AP등의 세계적인 사진가들과 조우하게 되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개발도상국이었던 80년대 한국은 많은 댐을 건설하였습니다. 대학생 이규철의 고향인 진안이 용담댐건설로 모두 물에 잠기게 되었고 이 과정을 사진으로 담아 졸업전시회에 출품하게 됩니다. 그리고 8년동안 꾸준히 이 작업을 진행하게됩니다. 작가 이규철이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40대 초반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6.25전쟁이 막 끝나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을때 극도로 가난한 시대에 태어난 이들입니다. 이들은 경제적 도약을 위해 수 많은 아버지들을 희생시킨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거쳐오면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모조리 전부 그들의 얼굴위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작가들의 얼굴에 들어난 생채기, 주름들 모두가 그 역사와 시간의 기억들입니다. 방공교육을 받고 독재의 우울한 시대를 겪었으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화염병을 던진 세대입니다. 그 시절에 군대에 가서 3년간 분단상황을 육체로 받아들였씁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천안문 사태, 체르노빌원전폭파, 발트 3국의 독립,구소련의 붕괴를 모두 겪었습니다. 그리고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을 지나 90년대의 풍요로운 시절부터 아주 본격적으로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들의 지난 20년간의 기록은 모두 우리 모두가 지켜야할 문화유산입니다. 그리고 이런 한국 근현대사를 모두 스스로 체득하였음과 동시에 아직도 작가로서 전위적인 실험들을 한참 벌일 수 있는 나이입니다.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군과는 본질적으로 다른존재입니다. 앞세대의 사진가들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40대 초반의 작가들은 이제 주도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의 실험과 발전을 (앞세대 사진가들의 업적을 기반으로) 한국땅에서 주도적으로
이루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평생동안 딱 40년간 작업을 더 할것이라는 것 이점이 또 중요한 지점입니다. 언젠가는 이 작가군들의 작품을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 할 날이 올 것입니다. 90년대까지만해도 정말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안타깝게도 생계를 이유로 작업을 멈추어버렸습니다. 혹은 순수사진이나 상업사진으로 전향을 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묵묵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고 있는 살아남은 소수의 40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존재는 우리모두에게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이들이 있기에 지난 세월이 모두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진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샘입니다. 물론 뉴스매체도 시대를 기록하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언론은 그동안 정권 혹은 언론사의 이데올리기를 관철시키는 도구였습니다. 거대자본을 갖고 있는 언론이 기록하지 못한 것들을 기록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독립적인 기록작업은 그 가치가 남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지금부터 40년이 지나면 인생의 끝부분에서 다시한번 제가 다시 나서 이 작가군들의 60년에(평생)걸친 작업을 총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다시 진행할 계획입니다. 40년 후에 또 관객들과 만나겠습니다. 이번 작가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앞으로 40년간 평생에 걸쳐 작업을 할 작가인가 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그만두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고 해야할까요.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해야할까요. 이번 프로젝트는 40대 다큐멘터리 작가군들의 `삶의 중간보고서`입니다. 다음 타자는 사진가 최항영입니다.

글/ 강제욱(사진가)



기획/ 강제욱
주최/ 아이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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