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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규 인터뷰, 잊혀진 흔적을 쫓는 사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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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배남우(아이포스 웹진)
- 장소 : 포스갤러리(Phos Gallery)
작년에도 오사카에서 전시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최근(5월) 일본 도쿄의 갤러리 3곳에서 <존재하는 꿈 - 청학> 전시를 개최하셨습니다. 일본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열리는 것도 아니고 같은 도시에서 연이어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이 조금 색다른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진행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좌)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 중인 류은규 (우) 바쿠로초 ART+ART 갤러리 전경
류은규 2007년에는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 전시를 했었습니다. 그 때 기무라 가츠아키라고 하는 도쿄에 사는 설치미술가가 청학동 사진을 보고 도쿄에서 전시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갤러리에서는 전시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요. 사실 1994년에 도쿄의 니콘살롱에서 전시를 했던 적이 있어서 굳이 도쿄에서 다시 전시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거든요. 그랬더니 자신이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어느 날 기무라씨가 제게 알려오기를 <류은규 전시 실행 위원회>를 만들어서 회원을 모집했는데(일종의 팬클럽 같은) 그 결과 처음에 30명 정도가 모였다고 했습니다.(지금은100명까지 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모임을 통해 ‘전시를 추진하자.’ 고 의견을 모았고 회원 분들이 각자 회비를 걷어 전시를 진행할 수 있는 예산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외 아사히신문문화재단에서도 기금을 받았지요. 어느 정도 예산이 마련된 다음에는 위원회 분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전시 진행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청학동 시리즈 같은 경우 약 27년간 작업해 왔기 때문에 작업량도 많아 한 곳에서 전시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3군데로 나누어 전시를 하게 된 것이죠. 전시가 열리는 동안 오프닝을 비롯한 전반적인 진행은 모두 실행 위원회 분들께서 맡아주셨고요.

류은규 <존재하는 꿈 - 청학> 도쿄 전시 스케치.
왼쪽부터 쿄도 통신사, 바쿠로초 ART+EAT 갤러리, 오쿠라야마 기념관 갤러리
전시는 쿄도 통신사, 바쿠로초 ART+EAT 갤러리, 오쿠라야마 기념관 갤러리 이렇게 총 3곳에서 열렸습니다. 같은 청학동 시리즈지만 3곳 모두 다른 사진을 걸었고요. 쿄도 통신사의 경우 일본에서 가장 큰 통신사, 예를 들면 국내의 연합통신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그 쪽에서는 청학동 시리즈 중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한 사진들을 전시했습니다. 두 번째 전시가 열린 바쿠로초 ART+EAT 갤러리의 경우에는 상업 화랑이었기 때문에 청학동 사진들 중 상업 화랑의 성격과 잘 어울릴 만한 사진을 전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쿠라야마 기념관에서는 청학동이라는 공간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를 제시할 수 있는 사진들을 전시했습니다. 이처럼 주제는 같지만 3곳에서의 사진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관객들이 어떤 전시를 봐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축하 공연 등 이벤트도 많이 열렸고, 일본 관객들의 반응도 무척 좋았습니다. 오프닝 파티의 경우 일본의 <코오단샤>라는 출판사에서 전액 지원을 해줄 만큼 청학동 사진에 깊은 관심을 보여줬고요.
일본에도 청학동과 같은 지역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인들에게 청학동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궁금하네요.

류은규, <청학동 시리즈>
류은규 ‘청학동’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푸른 학이 머무는 곳’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인 공간입니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눈으로 볼 수 없고, 찾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유토피아를 동경하고 찾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찾는 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청학동’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공간이며,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일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진을 통한 간접 체험이 아닌 실제로 청학동을 가보고 싶다는 일본인 관객들도 많았습니다. 언제 함께 같이 가자는 분들도 계셨고요.(웃음)
국가 간의 교류에 있어서 문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트를 기록한 일본인 사진가 바쿠 사이토씨의 포스코미술관에서의 전시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한 나라의 전통문물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캄보디아, 한국, 일본 3국이 문화적인 교류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청학동 시리즈도 그러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좌) 바쿠 사이토 전시에 참석한 내빈들, 포스코미술관
(우) 바쿠 사이토, 앙코르의 천 년의 얼굴
류은규 당연히 가교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상세계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은 다양한 나라의 국민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점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모두 이상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의미는 조금 다르다는 점이지요. 예를 들어, 한국인이 생각하는 이상세계는 만인이 평등하고 적당한 노동을 하며 배불리 사는 것이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아무런 노동도 없이 풍류를 즐기며 배불리 사는 것이 이상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국에는 청학동이 있는데, 일본에는 무엇이 있느냐?”라는 제 질문에, 전시를 보러 오신 분들께서는 <아미쉬공동체(Amish)>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 아미쉬공동체(Amish)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3백년 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 16세기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유럽에서 개신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아미쉬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이들 종교의 뿌리인 유럽의 경우 1937년 아미쉬 집단이 해체되어 사라진 반면, 미국 내 아미쉬 집단은 점점 늘어나 미국 25개 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에 걸쳐 18만명이 여전히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아미쉬 집단이 많은 곳으론 최초의 이민자들이 정착한 펜실베이니아주 랭카스터가 가장 유명하며 이외에도 인디애나주와 오하이오주 역시 수많은 아미쉬 마을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아미쉬 사람들은 신자들끼리 서로 돕는 게 기독교인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개인 재산을 소유하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공유하며 살고 철저히 자신들의 종교지침서에 의거한 생활을 고집한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께서 중국에서 진행 중이신 조선족과 관련된 작업은 한국과 중국 사이의 문화적 다리를 잇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선족 작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류은규 조선족의 역사는 크게 1945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45년 이전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만주나 경성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가까웠고 하나의 나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은 1939년에 촬영된 사진인데 1945년 이전에 촬영된 사진이므로 우리의 사진이라고 봐야 합니다.

화룡현 신화(新花) 부락의 특별자위단 단원들, 1939년 3월 20일
그런데 1945년 이후 만주와 한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서로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만주는 더 이상 한국과 같은 땅이 아니고, 만주에서 생활하는 동포들은 더 이상 같은 동포가 아닌 타인이 되어 버린 것이죠. 하지만 제가 봤을 때 1945년 이전까지는 정치적인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 동안 잃어버린 역사의 1/3이 그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우리’가 아닌 ‘타인’의 역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의 사진사를 얘기할 때 중국, 북한의 사진은 늘 배제한 채 이야기 합니다. 모두 다 같은 우리의 사진들이며 역사인데 말이죠.
조선족에 관해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작업해 오신 걸로 압니다만, 작업의 종류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조선족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류은규 청학동 작업이 그러하듯이 조선족 작업 역시 아직은‘만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계속 작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한 부분, 한 부분씩 정리를 해 나갈 뿐이죠. 제가 진행하고 있는 조선족 작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옛날 조선족의 사진들을 컬렉션하는 작업이 있습니다. 조선족 학생들은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그리고 그 위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해 사는 교포들의 자녀들은 미국의 역사를 배우지 한국의 역사를 배우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은 중국의 역사를 배우지 조선족의 역사, 한국의 역사를 배우지는 않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자신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게 된 것이죠. 따라서 나는 조선족이지만, 다시 말해 한반도에서 넘어온 민족이지만 정작 내 조상들의 역사가 어떠했는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럼 이때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글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제가 생각할 때에는 그들이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사진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역사의 1/3을 찾아주는 계기가 될 수 있겠죠. 두 번째는 제가 직접 사진작업을 진행하는 조선족 작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1990년 초반부터 사진 컬렉션과는 별도로 과거 만주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했던 분들의 후손들(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와는 상관없이)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소장하신 자료들의 양은 어느 정도 되시는지요?

류은규, 중국 흑룡강성, 1994
류은규 조선족 사진은 지금까지 필름, 유리건판 사진 등 약 5만장 정도를 컬렉션 했습니다. 내년에는 조선족 사진들을 적절하게 분류해서 전시를 할 계획도 있는데, 문제는 컬렉션된 사진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체계적으로 분류해 나가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러한 분류 작업은 역사학자들과 함께 진행해 나가야 하는데, 역사적인 검증을 거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이라면 상관없지만, 제가 촬영하지 않은 사진들에 대한 명확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잘못된 정보가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개인들이 갖고 있던 사진들이라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을 걸로 생각됩니다만, 그렇게 소장된 사진들을 관리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류은규 컬렉션한 조선족 사진들은 중성파일에 넣은 후, 마트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이박스 안에 넣어서 보관합니다. 제가 봤을 때 개인이 보관하는 환경 하에서는 그보다 더 좋은 보관방법이 없습니다.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온도나 습도도 적당하고요.
사진 컬렉션을 위해 일일이 조선족들을 찾아 나서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만.
류은규 조선족의 예전 사진들을 컬렉션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힘들게 찾아가도 보관하고 있는 사진들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문화혁명당시 생존에 위협을 느낀 조선족들이 사진을 모두 태워버렸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 시기에 중국에서 살던 조선족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값비싼 카메라를 소유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점도 자료수집에 어려운 점으로 작용했습니다. 10곳을 찾아가면 한두 군데 사진이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으니까요. 1970년대 이후의 사진들은 구하기가 수월하지만, 그 이전의 사진들은 구하기가 힘들다고 봐야 합니다.

류은규, 중국 서안, 2004
항일운동을 했던 분들의 후손들을 찾아갈 때에는 과거 항일운동이 일어났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뽑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찾아갑니다만, 그 지역에 어떤 사진이 있을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조선족이 주로 거주하는 동북삼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의 크기만 해도 어마어마 합니다. 그 지역 내를 찾아다니며 소요되는 경비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모든 경우에 있어 사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컬렉션 합니다만, 사실 사진을 컬렉션 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사진을 구하기 위해 그 지역에 찾아가는 교통비, 식비가 더 많이 듭니다. 사진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왕복으로 부산을 다녀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 같은 경우는 1993년부터 15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왔던 작업이기 때문에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일반인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에는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2007년 <사진예술>에 실린 기사에는 조선족 작업을 책으로 엮어내실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향후 조선족 작업은 어떤 형태로 대중들에게 공개될 예정인지요?

류은규 조선족 작업은 이미 200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잊혀진 흔적 - 사진으로 보는 조선족 100년사> 전시를 하며 동시에 같은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현재 남경에 거주하고 있는데, 남경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족들입니다. 물론 소수의 조선족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만, 한국 국내에서는 조선족과 한국 사람들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조선족을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로 치부해 일만 시키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조선족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은 중국인인데 왜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한족보다 낮게 보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 사람들과 조선족 모두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모른다는 얘깁니다. 만약 조선족이 자신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조선족이 자신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겠죠. <잊혀진 흔적>은 조선족, 한국인 모두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잊혀진 흔적>은 조선족,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족의 경우에는 조선족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북경 이남 지역의 중국인들은 조선족의 역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조선족이 중국에 남게 된 이유가 일본인들에 의해 의한 것인 줄로만 알고 있지, 왜 중국으로 넘어왔고 남게 됐는지 그리고 조선족이 역사적 격동기를 어떻게 해쳐 나왔는지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그들에게 조선족의 역사가 담긴 사진자료를 제시했을 때 그들은 그제 서야 조선족이 어떻게 생활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한족뿐만 아니라 조선족도 모택동과 함께 문화혁명에 동참했었던 자료를 보고서는 많이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조선족의 사진자료는 조선족과 한국인, 조선족과 중국인,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초상,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의 초상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작업을 보면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대비시키는 형식으로 전시를 많이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2007년 출간하신 <청학동> 사진집의 뒷부분에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만 조선족 작업은 어떻습니까?
류은규 말씀하신 표현 방법을 항일운동가들의 후손들에게도 적용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청학동의 경우에는 제가 한 지역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작업하면서 작업량이 축적되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일운동가들의 후손들은 중국이라는 광활한 영토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공간적인 간극이 크고, 제가 찾아갔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시간의 간극도 크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작업은 힘들다고 봅니다.
선생님께서는 결혼 이후, 1990년대 초반 조선족 작업을 위해 방문한 중국에서 현재는 연변대학교 예술대학의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중국에서의 사진교육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어떻게 다르게 이루어지는지요?
류은규 중국의 대학들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커리큘럼에 차이가 좀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으면 중국에서의 강의는 어떻게 하고 한국에 들어와 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중국의 미술대학은 한국과는 달리 한 과목을 한 학기동안 강의하지 않고 단기간에 강의를 마칩니다. 예를 들어, 2학점 짜리 과목을 강의한다고 했을 때 일주일 동안 매일 강의해서 3주면 끝납니다. 2학점짜리 수업을 한 학기에 총 24번 강의한다고 하면, 매일매일 강의해서 그 횟수만 충족시키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전, 오후로 나눠 강의를 하다 보면 한 달 정도면 한 학기 수업이 모두 마무리 됩니다. 물론 장/단점은 있을 수 있겠죠. 특히 실기 수업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띄엄띄엄 진행하는 것보다는, 매일매일 진행하는 방식이 집중력 면에 있어서 더 낫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에서는 사진학과에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데셍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학부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중국미술사와 서양미술사를 모두 공부하기 때문에 미술과 사진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 합니다. 또한 풍부한 인적자원도 한국과는 다른 점입니다. 250여개의 중국 대학의 사진학과들 중, 한 학교당 한 명의 뛰어난 작가가 양성된다고 해도 250명이나 되는 작가 군이 형성될 것입니다. 여기에 회화나 조각을 전공했다 하더라도 다루는 매체가 사진이라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나겠죠. 풍부한 인적자원은 그만큼 다양한 작업들로 환원될 것이고요.
최근 중국에서도 사진학과의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알고 있습니다.
류은규 연변대학에 사진학과가 개설될 때만 해도 중국 내 대학에 사진학과가 개설된 곳은 12곳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00개가 넘을 정도로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지만 중국이 워낙 넓은 나라라 정확한 통계를 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농업대학, 의과대학에서도 사진학과를 많이 개설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농대에 무슨 사진학과가 있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농업대학은 종합대학이기 때문에 회화과, 음악과, 사진학과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작업과 강의를 병행해 나가다보면 힘든 일들도 많으실 텐데요.
류은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많이 했습니다.(웃음) 작업을 목적으로 중국에 갔기 때문에, 그 외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일들에 대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중국 가서 조선족 작업 하겠다, 항일운동 후손들 찾아 작업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중국인들도 제가 조선족 작업을 한다고 하면 “우리도 못한 일을 당신이 할 수 있겠어?” 라는 반응을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200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조선족 작업을 전시와 책으로 발표했을 때, 그리고 그 결과를 중국 관계자들에게 보여줬을 때에는 모두 놀라더군요. 중국인들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그들 역사의 일부분을 제가 정리해 낸 것이기도 하니까요. 목적이 없으면 다른 나라에서 생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학생들에게 그 나라에서 가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력해야 국내로 돌아와도 인정받을 수 있지, “학위 받았으니 이제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해서 국내로 돌아오면 아무런 인정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워낙 땅이 넓은 나라라 지역 간 사진 스타일도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여러 작가들의 사진작업을 보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간략하게 중국사진에 대해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류은규 중국이라는 나라는 지역적으로 크게 북경, 남경, 상해, 광주, 운남성, 홍콩, 난저우, 우루무치(이슬람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도상에 위치한 한국의 위치를 보면 한국은 동북아시아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워낙 땅이 넓은 곳이라 지역에 따라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으로 나뉩니다. 한 번 볼까요? 북경은 동북아시아에 속하지만 홍콩을 비롯한 인근 지역은 동남아시아에 속합니다. 특히 해안가에 위치한 상해, 남경의 경우에는 인도네시아, 싱가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사의 해상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콩, 광저우, 해남도의 경우에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과 관계를, 티벳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와 같은 서남아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속하는 지역은 러시아, 몽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요.
문제는 한국에서는 중국사진에 대해 동북아시아적인 개념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각 지역의 성격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유행하는 사진 스타일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따라서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유행하는 중국 사진밖에 볼 수 없고, 한국에서 생각하는 중국사진에 대한 관념만으로는 중국 전체의 사진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서안지역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강하지만, 상해, 광둥성 지역은 파인아트와 상업사진이 강하고, 남경지역은 설치사진이 강합니다.(이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이처럼 지역마다 사진의 색깔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지역만보고 나머지 지역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한국은 다양성이 적어서 특정한 유행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중국사진은 워낙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어서(중국에는 56개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 다른 지역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현재 중국의 인구는 총 13억 이라고 합니다. 개개인들이 선호하는 기호와 취향이 얼마나 다양하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중국 현대예술의 가장 큰 힘은 ‘다양성’이라고 봅니다.
최근 중국현대예술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중국예술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류은규 오늘날 중국미술이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서양의 주요 경매에서 부유한 화교들이 중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컬렉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때 작품의 검증은 누가하느냐? 바로 서양의 유명 미술관, 경매사에서 합니다. 국내에서 불고 있는 중국미술 붐도 서양에서 중국미술이 뜨니까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죠. 한국에서 재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중국에는 4천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이 자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컬렉션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 모습, 2007년 11월 29일
이날 경매에는 중국작가 카이궈창(Cai Guo-Qiang)의 <에어펙 프로젝트>
연작이 화교 컬렉터에 의해 한화 약 92억원에 낙찰됐다
예술은 경제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생활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족이 머물 집이 있고, 자가용도 있고, 자녀들 학비도 보태고, 그 외에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죠. 소득이 충분치 않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생활하는 것만 해도 빠듯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생기지 않겠죠. 중국의 경우 7, 8년 전부터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새로운 투자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5000 이상 되는 사람들이 약 3억명 정도로 늘어났는데, 이 시기가 중국현대미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와 함께 맞물리면서 현대예술의 중심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중국의 경우 빈부의 격차가 매우 심해 어떤 사람들은 소득이 $5000가 넘지만, 어떤 사람들은 $400도 되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중국인들의 생활소득은 $1500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지요.) 한국 같은 경우에도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는 일반인들이 문화, 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 있었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올림픽 이후 소득수준이 $10000을 상회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중산층들도 생활의 여유가 생겼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니까요.

중국 현대미술이 힘을 받는 또 다른 원인은 중국미술의 원류 및 역사가 매우 깊다는 점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미술’에 대해 말할 때 기원전 시기의 동굴벽화부터 얘기하는데, 중국에서는 지금도 기원전 미술작품들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남경에만 가더라도 길가에서 기원전 시기의 돌 조각들을 볼 수 있을 정도니까요. 이처럼 중국의 미술은 그 뿌리가 매우 깊기 때문에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서양인이 보는 아시아 문화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점입니다. 워낙 역사가 깊다 보니까 서양인도 중국의 문화는 존중한다는 것이죠. 특이한 점이 있다면 중국의 고대미술은 인정하지만,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모택동 양식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들, 반론을 제기하는 작업들을 위주로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정치적 이데올로기 때문이지요. 이는 국내에 소개되는 중국작가들의 작품들이 사회 비판적이거나 풍자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이 서양이나 한국에 많이 소개되었다 해서 중국 내에서도 주류예술인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의 영향력은 있겠지만 중국미술의 원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제3세력, 언더그라운드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점입니다. 제가 <중국현대아트>라는 책을 번역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중국현대미술의 다양성에 대해 알 필요가 있으니까요.
디지털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들이 늘고, 그들의 작업이 대외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점도 중국현대예술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Miao Xiaochun, [The Below View], 2006, C-Print,
289 x 360 cm
류은규 “그림은 더하기고, 사진은 빼기다.”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이 수용되면서 사진도 더하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회화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만의 전유물 이었지만, 디지털이 나오고 나면서부터는 특별한 손재주가 없어도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우스만 움직일 줄 알면 되는 것이니까요. 최근에는 디지털이 사진의 영역에서 더 많이 얘기 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사진은 발달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은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국작가들 중 디지털로 좋은 작업 작가들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셨는데요, 부연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류은규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사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또한 국내에 소개되는 중국작가들 사이에는 편차도 거의 없습니다. 매번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만 골라서 들여오게 되어 있고, 내가 아는 사람을 통해 작품을 들여오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매우 좁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다양한 작품들 중 극히 일부분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똑같은 땅을 그리라고 해도 중국에서는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등 각 지역에 속하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르게 그립니다. 서남아시아 지역의 작가들은 황폐하고 건조한 대지, 사막으로 변해가는 땅의 모습을 그리지만, 남쪽 지역의 작가들은 푸른 잔디와 그 위에 솟은 나무들을 그릴 것입니다. 내가 사는 곳의 문화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 결과 같은 소재나 주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서로 다른 다양한 작업들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한국의 예술계는 매우 좁기 때문에 다양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다릴 줄 모르는 급한 성격도 다양성을 결여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겠죠. 우리는 ‘사진’이라고 하면(물론 최근에는 그러한 구분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습니다만) 미술 쪽 영역하고 다르게 보잖아요? 하지만 중국에서는 구분을 짓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사진학과 교수는 사진을 전공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지만, 중국에서는 판화를 전공한 사람들이 사진학과 교수가 되는 경우도 많고요.
청학동 작업부터 조선족 작업까지, 중국사진의 현재와 최근 중국현대예술의 성장 배경까지 찬찬히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 드리겠습니다.
류은규 개인적으로 “기다리는 것도 용기다.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습니다. 자기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나가면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조선족 작업이나 청학동 작업 모두 제가 한창 작업 중일 때 좋은 얘기를 들었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나가다 보니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10년 전이나 후에 봤을 때에도 좋은 작품이, 100년, 200년 후에 봤을 때에도 좋은 작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젊은 작가들이 당장의 유행을 쫓지 말고 좀 더 긴 시간을 내다보고 작업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중국미술이 10년 후에도 지금처럼 잘 나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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