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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 한국’ 40년간 렌즈에 담은 일본인 사진작가 구와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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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72)는 한국과 가장 인연이 깊은 외국 사진작가로 불린다. 1960년대 중반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그는 40년 가까이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을 테마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이 같은 한국과의 인연은 운명에 가깝다. “대학 학우 가운데 6·25때 밀항해서 건너온 완도 출신의 한국 친구가 있었어요. 우리는 함께 어울리면서 싸구려 위스키에 취기가 오르면 ‘아리랑’이나 ‘도라지’ 같은 노래를 불렀죠. 구슬픈 가락이 ‘한국’이라는 미지의 나라를 상상하게 하곤 했어요.”
시마네현 출신의 구와바라는 도쿄농업대학과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수은 중독에 의한 ‘미나마타 병’을 주제로 한 첫번째 작업으로 일본 사진비평가협회가 주는 신인상을 수상(62년)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입문했다. 당시 이 사진은 공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세계의 주목도 받았다.
“64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특사가 오가면서 국교 수립에 대한 소문으로 양국 사회가 술렁거렸어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머릿속을 스쳤어요.” 그는 한국 취재에 필요한 자료들을 조사하는 한편 한국으로 갈 방법을 찾았다. 마침내 그는 일본의 화보잡지인 ‘타이요(太陽)’의 특파원 자격으로 64년 김포공항에 첫 발을 내디뎠다.
“60년대 중반 서울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테마가 될 만한 피사체가 온통 널려 있었어요.”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첫 입국 후 넉 달 체류하는 동안 그는 부산의 판자촌과 근대화 이전 농어촌 서민들의 궁핍한 삶, 일제 강점기가 남겨놓은 잔재 등 ‘분단 한국’을 기록해 나갔다. 이후 한일회담 반대시위, 베트남 파병, 팀스피리트 한·미 연합군사훈련, 미군 기지촌 등 격동하는 한국을 사진으로 포착했다.
“한국의 치부에 렌즈를 겨누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더구나 일본 사진가의 작업은 더더욱 반기질 않았죠.” 그는 ‘김태명’이라는 한국인으로 행세하며 위기의 현장을 피하기도 했고, 촬영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필름을 팔다 걸려 관세법 위반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토록 어려운 여정과 작업이었지만 그가 포착한 피사체는 어떤 것보다 선명하고 힘이 느껴진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철저하게 비연출, 철저한 스냅주의의 태도를 지켰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사진가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마치 스포츠 선수가 경기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철저한 사전준비와 집중, 판단이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또 과거에는 필름값이 비싸 많이 찍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1~2컷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그의 사진작업은 그동안 ‘격동의 한국 1964~2002년’이라는 제목으로 몇 차례 국내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한국에서의 사진작업을 결산하는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집](눈빛출판사)을 내고, 출판기념 전시회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02-418-1315)에서 내년 2월21일까지 하고 있다.
사진비평가 김승곤 순천대 명예교수는 “60~70년대 당시 우리의 상황은 역사의 현장을 기록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는데, 구와바라가 그 일을 대신해냈다”면서 “그래서 고맙다”고 말했다.
“축구로 치면 제 인생은 경기 종료를 앞두고 가지는 러프 타임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5년은 그동안 제가 작업해 온 60만컷 정도의 사진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면서 보낼까 합니다.” 그는 이렇게 러프 타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본 게임에서 충분히 골을 넣었고, 자부심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기록해야 할 역사를 그 시대의 유산으로서 남겨 두지 못한 사진가는, 다만 그 시대를 살았을 뿐인 한 사람의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 / 김후남(경향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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