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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진계의 큰 별이 지다 - 故히라키 오사무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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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진계의 큰 별이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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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식도암으로 작고한 사진평론가 히라키 오사무(平木収, 규슈산업대 교수, 59세) 교수의 추모식이 5월 10일 일본 사학회관에서 거행되었다. 히라키 교수는 1980년 초 사진평론 활동을 개시한 이래, 작고하기 직전까지 수많은 평론을 지상에 발표하는 한편, 와세다(早稻田)대학, 오오사카(大阪)예술대학, 규슈(九州)산업대학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해왔다.
가와사키(川崎) 시민뮤지엄의 학예원으로서 ‘어메리칸 다큐멘터리’, ‘사진발명 150년전’, ‘Matrix of
Photography’, ‘휴먼 다큐멘츠’, ‘미국의 1930-40년대’, ‘루이스 볼츠’, ‘바우하우스 – 예술교육의 혁명과
실험’, ‘전후 일본사진의 전개, 1945-1980’, ‘퓰리처상 사진전’ 등 수많은 국내외 사진가들의 전시를 기획하는 등,
활발한 기획과 평론을 통해서 일본 사진문화의 지평을 넓혀 나왔다.
그는 1982년부터 일본은 물론 아시아 지역에서의 최초의 사진 페스티벌인 히가시가와(東川)
포토페스티벌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으로서 27년 동안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에서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김수남과 김녕만이 각각
이 히가시가와 국제사진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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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평상 심사중인 故히라키 오사무 교수. |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의 한국의 사진비평상 심사와 동강사진축제의 포토폴리오 리뷰어로 참석했으며, 포토스페이스에서 매년
연말에 주최하는 ‘좋은 날, 좋은 사람’ 송년회에는 평론가 이이자와 코오타로(飯澤耕太郞) 씨와 함께 참석하는 등, 한국
사진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맺어왔다.
또한 고 히라키 교수는 한국과 일본에서 세 차례에 걸쳐 개최된 ‘아시아 사진문화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구상’에 적극 참여하는 등,
아시아 지역의 사진문화 교류에 큰 힘을 기울여 왔으며, 2003년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20명씩의 젊은 사진가들이 참가한
대규모 그룹전 <한일 청년작가>전을 도쿄의 세 군데의 장소에서 동시에 개최하는 등 한국의 사진에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평론활동을 시작하는 1981년부터 김승곤과 친교를 맺어왔고, 1994년에 개최된 제1회 <동경국제사진비엔날레>에서는 미국의
앤 턱커(휴스턴 포토페스타), 프랑스의 장 뤼크 몽테롯소(유럽사진미술관 관장), 김승곤 등과 함께 심사위원을 맡았다.
도쿄도 사진미술관 학예실장인 가네코 류이치(金子隆一)와 사진평론가 다케우치 마리코(竹內眞理子)의 진행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은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400여 명의 사진계와 문화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고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추모식에서는 고인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이시하라 에츠로(石原悦郎, 자이트포토 대표)과 니혼(日本) 텔레비전의 하야가와 요시코(早川與志子),
김승곤이 각각 고인에 대한 조사와 추억담을 피력해서 일본 사진계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온 고인의 넋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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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이포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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