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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의 즐거운 책보기 - 06. 시각적 사고

『사진으로 생각 키우기』글·사진 / 강재훈, 진선출판사

보기와 생각하기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물을 본다는 행위는 언어에 선행한다. 우리들은 언어로써 이 세계를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진 세계에 둘러싸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주고 받는 대화는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비유적, 언어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이고, 또 상대방이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우리들이 보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의 관계는 항상 불안정하다. 황혼이 질 무렵 태양이 지는 것을 보지만 실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보는 행위를 통해 수집된 정보들로 구성된 지식이지만, 또한 보는 것은 아는 것에 의해 해석되거나 재구성되기도 한다. 우리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보는 행위의 기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극에 대한 기계적인 반응의 측면, 즉 생리학적 시지각의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시지각은 시선이 미치는 범주 내에서만 이루어지며, 또한 ‘선택’의 결과이다. 우리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지속적으로 움직이면서 둥근 형태의 시야를 구성하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불리는 영역을 형성한다.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각적 특성은 ‘상호성’이다.내가 한 가지 대상을 보는 것은 그 대상의 위치에서 스스로 하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시점에서 어떠한 태도로 대상을 관찰하느냐에 따라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는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나의 눈과 타인의 눈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들이 시각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시각 매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이 도출된다. 이미지란 새롭게 만들어져 재생산된 시각이며, 모든 이미지는 사물을 보는 시각을 구체화한다. 따라서 이미지의 생산은 일상적인 시각의 대지 위에 견고한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미지는 인식의 기초가 되는 시지각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핵심적인 매개인 것이다. 모든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은 인식의 바탕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활용된다.

시각 매체를 통한 사고 훈련

도구를 활용한 소통은 인간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소통은 지식을 구성하고 사고하기 위한 가장 초보적인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통의 기본 도구 중의 하나인 시각 매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익히는 것은 말이나 글을 배우는 것만큼 필수적인 과제이다.과학과 이성을 강조하는 교육 시스템 하에서 기존의 시각 매체에 대한 교육은 ‘예술’의 이름으로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것은 과학과 예술이 서로 분리되고 독립된 분야이며, 예술은 과학적인 사유양식인 사고 과정을 포함하지 않으므로 과학보다 열등하다는 판단 하에서 관례화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에서 미술과목이 전체 수업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은 감각기관을 통한 교육이 단어와 숫자의 개념을 습득하기 위해서 보조적 수단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술 관련 교과는 단어와 숫자의 학문과 완전히 분리되어 피교육자의 정서함양에만 도움이 되는 부가적인 과제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직관과 지능, 감성과 이성, 예술과 과학이 공존하기는 하지만 서로 협동하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의 실험심리학과 인지심리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시지각은 특정한 성질, 물체, 사건에 대한 단순한 정보수집이 아니며 보편성의 파악에 관여하고 있다. 이것은 곧 예술과 과학이 수단과 목표 면에서 근접해 있음을 뜻하며,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이 과학과 혹은 과학이 예술과 얼마나 다른가를 주장하는 대신 양자 간의 공통점이 얼마나 많은 가를 깨닫는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과학과 예술 간의 거리는 어쩌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오늘날 과학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의문들이 예술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철학적 이원론이 과학적 논리의 우월성을 편파적으로 파급시켰다면 예술 또한 그 나름대로의 배타성으로 생존해 왔음은 자명하다. 과학 교육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력을 배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져왔다면, 예술교육은 심성을 풍요롭게 하고 감수성을 계발한다는 이름으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21세기의 예술과 과학은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상태에 있기보다 상호 협력하는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과학 기술의 개발에 인간의 요소(human factor)를 반영하고자 하는 시도는 기존의 예술의 관심사였던 인간의 감성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환경은 과학의 영역에서 개발된 기술에 의해 가능해졌지만, 그에 따라 변화된 매체적 환경은 인터엑티브 아트(interactive art)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만들어 냈다.과학과 예술은 모두 질적 사실들을 추구함에 있어 양적 측정을 사용한다. 과학에서 감추어진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외양에 나타난 현상들을 유의미하게 보듯이 예술에 있어서도 표현된 이미지의 형태나 색과 같은 양식적 특징들이 작가의 시각적 진술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예술 대한 교육도 이제 정서나 감수성의 범주에만 국한시켜 다룰 과제가 아니라 시각적 사고환경에 대한 적응 훈련의 차원에서 고려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눈으로 생각하고 사진으로 말하기

사진은 영상 시대가 요구하는 적응적인 시각적 사고를 위한 교육에 적합한 대표적인 매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여름 진선출판사에서 출간된 『사진으로 생각 키우기』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사진 입문서로 눈길을 끈다.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기술적 방법을 다룬 사진 기술서는 이미 포화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사진이라는 도구와 친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우선 그 착안점에서 차별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인 ‘사진과 함께 떠나는 여행, 사고력과 창의력이 쑥쑥’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인 강재훈은 사진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세심한 관찰과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법을 통해 생각하는 훈련을 유도하고자 하였다. 사진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우선 카메라라는 도구의 기술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진 기술서는 ‘사진술을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사진으로 생각 키우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찍고자 하는 대상을 유심히 들여다봄으로써 일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사진을 통해서 사고하도록 만드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삼았다.제 1부, 「사진으로 생각 키우기」를 구성하고 있는 각 장, 「사진과 함께 떠나는 자연관찰 여행」, 「사진으로 엮은 자연관찰 일기」, 「생각을 키우는 사진 속 이야기」, 「사진 찍는 우리 가족」은 사진을 통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고 그 정보들을 근거로 대상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며 나아가 자신이 파악하고 판단한 바를 사진을 통해 표현하도록 하는 시각적 훈련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어린이들이 다양한 기능을 갖춘 복잡한 카메라를 조작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컴팩트형 자동 카메라만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내용들 위주로 다루었다고 했지만, 실제로 일반인들을 상대로 하는 사진 교육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진술 자체가 아니라 사진이라는 매체가 개입되는 시각적 사고 과정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사진 교육의 핵심은 모든 사람들을 사진전문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시각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자신의 언어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진으로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 사진으로 소통함으로써 모국어와 같이 구사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사진 기술서들은 이 중에서 쓰기나 말하기에 해당하는 창조적인 활동을 사진을 통해서 경험하도록 효율적인 지침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생각 키우기』의 제 2부, 어린이 사진교실은 분절적이지만 필수적인 이러한 지침들을 담았다.

초심자를 포함해서 사진가가 되고자 훈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시각 훈련의 지침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나의 언어로 만들기’이다. 사진가들은 셔터를 누르고 현상을 하고 인화를 하고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는 모든 과정에서 사진을 통한 소통의 효과를 결정한다.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사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진가 스스로 자신의 사진을 진단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사진이 나의 의도를 잘 반영해서 성공적인 소통을 가능케 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의도만을 되씹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방법들이 적합한 것인가를 보아야한다. 어떤 카메라와 필름을 선택했나, 사진 속에 담긴 시간과 공간은 적절한가, 사진의 입상성과 콘트라스트와 톤은 어떠한가, 어디에서 어떠한 형태로 보여질 것인가 -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해본다.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서 우리는 나만의 사진이 아닌 ‘소통의 도구로서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둘째는 ‘자꾸 해보기’. 처음 말을 배울 때,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 내는 소리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로 가다듬기 위한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진을 공부한다는 것은 사진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입장을 끊임없이 오가며 사진적 표현과 분석틀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보다 정교한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 방법들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사진이라는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초 근대의 사진가들이 사진의 고유의 속성을 실험하고 기능적으로 서로 다른 활용 영역을 개척해냈던 것처럼, 처음 사진이라는 말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과제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부합하는 사진적 방법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이다.셋째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생각하기’이다. 말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익혔다면, 그 다음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사진 찍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일생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한번쯤은 꼭 말하고 싶은 것,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어떤 것, 농담처럼 툭 던져보고 싶은 것, 일생을 걸고 펼쳐 보이고 싶은 것... 그것이 무엇이든 나에게 말하고자하는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고, 그리고 나서 사진으로 보여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헝가리 태생의 사진가이자 교육자였던 라즐로 모호이-나지는 이미 1930년대에 사진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문맹과 다름없이 취급받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적응적 기제의 개발을 위해 사진적 경험을 통한 교육을 활용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요사이 유행하는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를 보면서, 바야흐로 찾아온 이 ‘온 국민 포토그래퍼의 시대’에 그가 살아 있다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궁금해진다.

● 글 / 신수진 (사진심리학, 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즐거운 책보기』는 사진과 관련된 글이나 이미지를 담고 있는 모든 책에 관한 컬럼이다.글쓴이 신수진은 사진이론과 시각을 전공한 심리학 박사이며, 현재 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의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본 기사의 내용은 '월간 포토넷'에서 제공해준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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