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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려낸 침묵의 아우성 인터뷰 기사 실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개인 수필집 서문에 종종 등장하는 말이다. 대개의 자비 출간으로 청탁을 받은 것도, 마감 압박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지만 밤잠을 설쳐 펴낸 첫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고백하곤 한다. 오래도록 하얀 모니터 속을 맨발로 헤매는 고난의 시간을 설명할 길은 이뿐인 듯하다. 지나간 서사나 서정 속에 웅크린 무언가에 손 뻗는 간절함. 아득하고 모호한 것에 테두리를 치고픈 조바심. 뒤돌아 세우고 싶지만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애 끓이는 마음을 예술적 형태로 드러내 놓는 것은 모든 작가의 숙명 이전에 욕망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사진작가 임향자, 그녀가 작년 서울 성곡미술관 <신화(神話)>전으로 선보인 작품에서는 이런 욕망이 말문을 열지 않는다. 설명하고 싶고 호소하고 싶은 마음은 흑백 모노톤의 자연물 속에 감추고 만다. 너른 바위 홀로 고독을 삼키게 둔다. 땅 혼자 억눌려 붙들린 채 풍화하도록, 나무 혼자 머리 풀고 통곡하도록 내버려둔다. 작가는 스스로 말하지 않고, 제목으로 힌트조차 주지 않은 채 30인치 세계 앞에 우리를 세워놓는다.
“작품 속 메시지를 설명하고 싶진 않으세요?”
작품을 이렇게 읽어달라고 독자를 이끌어 가는 작가도 물론 있습니다. 실내 스튜디오에서 상황을 연출하거나 피사체를 이리저리 건드려 주제를 더 명확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찍어본 적이 없어요. 관객이 자유롭게 사진을 감상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을 함께 느끼는 그 희열은 정말이지 엄청난 감동이거든요.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 또한 저에게 값진 피드백이 됩니다. 전혀 어느 쪽이든 행운인 것이지요.
“운이 좋게도.” 인터뷰 중 그녀가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여고 시절 사진반 동아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나 마침 장롱 서랍에 언니가 첫 월급으로 사놓고 고이 모셔둔 카메라가 있었던 건 모두 행운이었다 한다. 교실 밖 생동하는 삶 속으로 렌즈를 들이대는 일이 퍽 마음에 들었고, 민간인 최초로 국가기록원에 작품 15만 점이 소장돼 있는 당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작가 최민식을 스승으로 만난 것까지도 그렇다 치자. 하지만 가족의 반대 속에 단돈 100달러만 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더 이상 운의 영역이랄 수 없다.
일본 전 지역에서 매해 편찬하는 예술대학 졸업작품 도록에 그녀 사진이 대표로 실렸고, 전 세계 작가들이 열망하는 도쿄 <니콘살롱>에 한국인 최초로 작품을 올렸다. 주경야독의 힘든 유학생활 끝날 때 전시회나 한번 열면 좋겠다던 꿈은 규슈대학원 재학 중에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초대전으로 일찌감치 이루었다. 젊은 작가의 빛나는 금의환향만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대개 이쯤에서 ‘그러나’가 등장하는 법이다. 돌아온 고국에는 창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 어느 잡지에서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작가의 작품 여섯 점을 싣고도 저작권료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 조심스레 문의한 데 대한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작품을 실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 아닌가요?”
그러면 사진작가는 대체 뭘 먹고 살란 말인가. 완전히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국내 최초 이미지 스탁포토 에이전시 <타임스페이스>를 설립했다. 상업광고나 홍보물, 여러 인쇄매체에 필요한 이미지를 손쉽게 검색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외국 잡지를 뒤적여 적당한 이미지를 복사해 쓰던 기존 작업물의 퀄러티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고, 사진 및 일러스트 작품의 무단 도용을 막고 원작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밖에도 사진과 비즈니스를 합친 거의 모든 일은 그녀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불모지였고 그만큼 어려웠다. 타국에서 사진 밥만 먹고 돌아온 젊은 여성 사업가에겐 더욱 막막한 일이었다.
회의 전에 서로 명함을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묻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자인 저는 아무런 학연도 끼워맞출 수가 없어서 형부가 나온 고등학교 이름을 대곤 했었지요. 사업 설명은 커녕 업무 결정권자와 편하게 인사를 나누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어요. 그때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은 것이 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최고경영자과정 입학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일단은 연령 제한이 있었고, 경영하는 사업체 규모가 임직원 숫자나 연 매출액 등에서 얼마 이상이어야만 가입이 가능했다. 몹시 젊은 CEO였던 임 대표는 다시금 ‘운 좋게도’ 어느 제약회사 회장님의 추천을 받아 그곳에서 본격적인 경영 공부와 인맥 쌓기를 해내갈 수 있었다. 큰 회사를 건실히 일궈가는 최고경영자의 탁월한 감각과 근성, 돌파력을 엿본 것이 가장 큰 자산으로 남았다 한다.
그때의 일이 인연이 되었는지 그녀는 국내 굴지의 기업 CEO들에게 사진 예술 가르치는 일을 17년째 해오고 있다. 서울 서초동 <한국사진예술원> 원장으로서 그녀가 가르친 원우는 600명이 넘는다. 커리큘럼 이수 후에도 수준 높은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는 졸업생도 많다. 주말에 요양원 등에서 촬영 봉사활동을 시작한 분이 있는가 하면, 회사 홈페이지에 실릴 사진을 직접 찍는 사장님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가족 모임에서 최첨단 카메라를 목에 건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포토그래퍼 역할은 다들 해내신다고.
제 수업을 들으러 매주 부산에서 오는 분도 계세요. 사회적 지위, 경제적인 여유, 명예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분들이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서 끝없이 질문하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도리어 제가 영감을 얻습니다. 이제는 이분들 때문에라도 가르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네요.
강의실 문을 일시 닫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집합금지 때문에 모여서 실습 다니기도 어려웠다. 사업, 출간, 강연 등으로 바쁘던 그녀에게 그간의 작품들을 찬찬히 정리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때마침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획전시 제안이 들어왔다. 국내외 유명 미술관에서 임 작가의 작품을 매입, 소장한다는 소식이 잇달아 언론에 보도되었다. 다시 관람객 앞에서 자신의 작품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41년 만의 개인전으로 앞서 말한 <神話>전인데, 정작 작품들은 오랜만의 재회에도 독자에게 긴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감상하는 두 가지방식을 정의했다. 스투디움과 푼크툼. 전자가 사회 문화적 맥락을 살핀 지적 이해라면, 후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디테일한 감정적 충격이다. 푼크툼의 뜻이 ‘찔리다’인 데서 알 수 있듯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 사진의 우연한 요소나 뉘앙스 등에 독자가 강렬히 사로잡히는 것이다. 가령 ‘총 든 군인과 환자를 돌보는 수녀’가 한 프레임 안에 있을 때 사람들은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상실과 회복 같은 것을 연상하기 쉽다. 이처럼 작가는 의도된 메시지를 통해 독자들의 자연스럽고 상이한 감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한편 임향자 작가가 포착한 나무로부터 내가 한스러운 절규를 읽어낸 것은 바로 푼크툼의 감상이다. 푼크툼은 주관적이고, 미세하고, 비언어적이어서 작가가 이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순간 스투디움으로 바뀌고 만다.
롤랑 바르트는 사상 전반에 걸쳐 ‘저자의 죽음’에 대해 말했다. 더 정확히는 ‘독자의 탄생’을 꿈꾸었다. ‘쓰다’라는 이기적 행위는 ‘읽다’라는 공감적, 능동적 활동에 의해 유의미해지는 거라고. 사진뿐 아니라 문학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우리의 문장이 오로지 ‘노에마(그것은 존재했다.)’밖에 보여줄 수 없다면, 그것을 따라다니는 빛과 그림자, 여운과 태도까지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결과물은 냄새도, 질감도 없는 기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 스스로 해석하고 음미할 여지가 없는, 꽉 닫힌 글 덩어리 말이다.
임향자 작가는 언어를 생략해, 아니 사회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압축해 사진으로 펼쳐 보인다. 순간적으로 포착한 듯싶지만 사실 오래 관찰하고 오래 연구하여 주제를 이끌어낸 결과물이다. 촬영은 빛과 바람의 일이기도 하므로 한없이 기다리기도, 주저 없이 움직이기도 해야 한다. 긴 시간 사냥감을 따라다니고 이해하고 마침내 동화되었다가 결정적 순간 잽싸게 창을 꽂는 선사시대의 사냥꾼같다. 그녀는 그렇게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거친 계곡을 달려 피사체를 낚아챈 다음, 날것 그대로 관객 앞에 내보인다. 그것을 어떻게 감상할지는 독자 개개에게 맡긴다. 운이 좋게도, 작가와 같은 감정에 흔들렸다면 그것은 감동적인 연대라 여기면서.
다시 그녀의 작품을 본다. 고독한 거석과 재갈 물린 땅과 오열하는 나무. 이번에는 그 맞은편에 카메라를 든 그녀가 보인다. 오랜 시간 피사체를 바라보고 살피고 마음쓴 그녀의 눈길이 보인다. 나무 혼자 울게 두지 않았구나. 그녀 말없이 거기 있다. 말없이 말하는 방식으로, 사진 뒤에 그녀 있다.
최아란
2016년《에세이문학》등단.
제10회 매원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언니 의자》 ,《소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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