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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의 작가와의 대화 4편- 사진가 민병헌
민병헌은 서울의 카이스 갤러리를 비롯하여, 미국 잰 케스터 화랑(Jan Kesner Gallery), 포토 아이 화랑(Photo-eye-Gallery), 프랑스 보드왕 르봉 화랑(Baudoin LeBon Gallery)의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립조형예술관, 미국의 하와이 현대미술관, L. A 카운티 뮤지엄, 시카고 현대 사진 미술관, 산타 바바라 미술관, 한국의 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 등 나라 안팎의 여러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평소 민병헌의 사진을 유심히 보아왔고, 그의 사진에 대한 평론도 쓴 적도 있지만 아직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서 이번 ‘작가와의 대화’는 여느 때보다 호기심과 기대가 컸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의 기분은 상당히 허탈한 것이었다. 이미지와 글 사이에, 좁게 말하자면 사진과 평론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이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작가가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여 인터뷰의 모습을 담아오지 못한 점이 아쉽다.
"내 사진은 특별할 것 없는 뻔한 사진"
김응수(이하 김)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평소 민 선생님 사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야 뵙게 되는군요.
민병헌(이하 민) :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의 뻔한 사진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김 : 뻔하다니요?
민 : 사진이란 게 원래 뻔한 거 아니겠어요? 제 사진은 제가 본 그대로를 재현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뻔한 사진이죠.
김 :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민 선생님의 사진이 다른 풍경사진들하고 다른 점은 명부, 암부 차이가 별로 없다는 거예요. 존 시스템으로 치자면 거의 한 두 단계 차이가 날까 말까할 정도로 밋밋한 사진들인데 표준적인 현상, 인화방식으로 한다면 선생님 사진 같은 이미지가 나올 수가 없지요. 선생님 프린트는 흉내내기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개성이 있습니다. 그냥 본 것 그대로 사진으로 재현했다는 것은 지나친 겸손처럼 들립니다.
민 : 보시는 분들이 톤이나 콘트라스트 같은 것들 때문에 제 사진을 다르게 보시는 것 같은데, 전 정말 제가 본 것 그대로를 사진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존 시스템을 이야기 하셨는데, 솔직히 전 존 시스템이 정확히 뭔지 잘 모릅니다. 존 시스템이라는 게 암부에서 명부까지 단계를 나누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보시는 분들이 그런 것들을 너무 먼저 염두에 두다 보니, 제 사진을 보았을 때 상식적이지 않게 보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아요. 존 시스템이 정확히 뭔지, 또 왜 한 장의 사진에 밝은 곳에서부터 어두운 곳까지 전부 나타나야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보는 풍경이 꼭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잖아요?
김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사진에서는 프린트가 대단히 중요한데, 그것은 그만큼 주관적 시선과 표현이 사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선생님의 재현의 방식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민 :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전 제 작업을 하면서 대상이나 그 대상을 재현하는 표현방법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의 사진작업은 여행을 가거나 연애를 하는 것처럼 그저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지 그것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사진을 보시는 분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진을 훨씬 더 깊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이따금 제 사진을 깊게 봐주시는 분들한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과연 제가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작업을 한다면 지금의 사진보다 더 좋아질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제 작업 스타일은 그래요. 제가 좀 놀다가 이제 좀 해야겠다 생각 들면 하는 것이고, 또 하다가 지겨우면 안 하는 거고…. 가령 음악감상을 할 때 어떤 계절에는 음악이 더 좋게 들려서 많이 듣게 되고 한동안은 음악에 별로 신경이 안 쓰여서 안 듣게 되고 그렇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합니다.
김 : 국내작가들의 사진을 좀 보아 온 사람이라면 ‘민병헌 사진’ 하면 어떤 스타일의 사진이라는 것이 딱 떠오를 겁니다. 그만큼 선생님은 자신만의 사진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사진 잘 찍는 사람은 많지만 작가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사진 스타일, 자신만의 표현의 질을 획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작가에게 있어 스타일은 중요한 문제인데, 본인 스스로는 단지 대상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선생님 사진의 프린트를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프린트는 아니거든요. 대상과 그것의 사진적 표현에 대한 고민 없이 그런 이미지는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표현방법을 획득하기 위한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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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점을 들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 항상 가져"
민 : 물론 고민이 전혀 없진 않죠. 작가가 사진작업을 할 때 아마도 다 그런 고민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더라도 아마 작가들 중에 제가 가장 적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저는 무슨 일을 하든 기본적으로 즐기자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전 그래서 사진에 대해 별 부담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 사진이 만족스러워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 솔직히 말해서 전시 할 때마다 불안합니다. 제 프린트를 보고 이러이러한 점이 문제고 엉터리라고 지적할 수 있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사람한테 허점을 들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제 프린트를 보면 허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와서 프린트가 너무 좋다고 합니다. 전 오히려 불안하고 들킬까봐 조마조마 하는 마음이 스스로 느껴질 때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제 사진의 미흡한 점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는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좀 더 신경 써서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저의 단점이 제 눈에 보인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그 단점은 제가 계속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 자극제가 되고 사진에서 재미를 잃지 않게 하는 요소가 되지요.
김 : 선생님 사진을 보면 사진의 대상이 정말 진부한 것들입니다. 너무나 평범한 것들이고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듯한 사물들인데, 그것이 선생님의 흑백사진으로 나타날 때에는 서정적이고 시적인 이미지가 되지요. 선생님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표현인데, 제 생각에는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보다는 그 대상의 표현을 어떠한 방식으로 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을 통해서 작품이 미학적 수준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지요.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바로 표현의 문제인데, 그러다 보니까 소재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겠죠. 제가 선생님 사진에서 프린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프린트에서 선생님만의 표현방식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방금 말씀하셨듯이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람이 프린트의 허점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프린트에 그러한 기술적인 허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선생님 사진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사진이 가지고 있는 표현의 질은 객관적으로 평가 가능한 기술적 완성도와는 다른 것이니까요. 선생님 사진의 프린트 방식과 표현방법은 어떤 생각에서 나온 것인가요?
민 : 그건 저도 모르죠. 어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제 사진의 표현방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진작업을 계속 해오다 보니까 그러한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이니까요. 스트레이트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뭔가 하면 남들하고 다른 걸 찍는 겁니다. 남들이 못 본걸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세요. 사진이 생긴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대상들을 찍었겠습니까.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고 남들이 안 찍은 대상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전 좀 웃겨요. 남들이 안 찍은 건 없죠. 전 그러한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이 바다를 찍었다고 해서 내가 바다를 안 찍고, 다른 사람이 나무를 찍었다고 해서 내가 나무를 안 찍고 그러면 뭘 찍겠어요. 정말 찍을 게 없죠. 그런 대상, 소재 중심적인 것에서 편해지면 남들이 찍은 것이라고 해서 못 찍을 게 없지요. 수많은 사람들의 감수성이 다 다를 텐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본 바다하고 내가 본 바다하고는 분명 다르지 않겠습니까? 대상에서 자유스러워져서 자기 감성대로 풀어 가면 얼마든지 할 일이 많아요. 그렇게 되면 작업하기가 더 편해지고 수월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선생님은 애초에 사진작업을 하면서 사진의 룰이나 정석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분처럼 들리는군요.
민 : 저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공부도 안 했어요. 스스로 생각해도 전 진짜 공부를 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서른이 넘어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결혼도 했고 애도 있는 상태였는데 당시 제일 고민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왜 진작 사진과를 안 들어갔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사진을 정식으로 배웠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죠.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참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너무 다행스러워요. 만약에 제가 정식으로 사진을 공부했더라면 아마 지금 사진을 하고 싶지도 않았겠지요. 전 그 당시에 어떻게 해야 사진이 올바르게 가는지 몰랐어요. 혼자 사진을 찍다 보니 제 사진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점이 부족한 점이고 어떤 점이 잘된 점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후지 사진콘테스트에도 사진 하나 내보고 어디 충청도 지부 사진공모전에도 내보고 그랬어요. 저는 지금 그랬던 거 하나도 창피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누구한테 사진을 보여주고 무슨 말을 들어야 할지 전혀 몰랐거든요. 그런데서 입선이라도 하면 되게 기분 좋았고….
"동시대의 사진경향 등에는 관심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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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오히려 사진교육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것이 선생님의 개성 있는 사진이 나오게 되는 결과가 된 것이군요.
민 : 제 사진에 개성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그렇다고 봐야죠. 그 개성이라는 것이 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전 의식적으로 제 사진에서 개성을 추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걸 해야겠다고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작품이나 책을 읽어 본 적도 없습니다. 제 작업실이 양수리에 하나 있는데 거기에 친분 있는 분들이 와 보고는 어떻게 작업실에 책 한 권이 없냐고들 종종 그래요.
김 : 사진관련 책마저도요?
민 : 사진책은 물론이고 어떤 책이라도 전 거의 안보는 편입니다. 전 그게 창피하지 않아요. 제가 책 보기 싫어서 안 보는데 그게 뭐가 창피합니다. 사진에 대해 글을 쓰시는 분께 초면에 이런 말을 하면 돌아가셔서 무지 욕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제 사진에 대한 글조차도 거의 보지 않습니다. 본다 하더라도 두어줄 정도 읽다가 말아요. 왜냐하면 제 사진을 보고 글 쓴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 생각인 것일 뿐이고, 제 사진에 대한 다른 이들의 생각을 제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지가 않아요. 전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거의 보지 않습니다. 일례로 제가 전속을 맺은 화랑의 관계자 분들과 한두 번 외국에 같이 간 적이 있어요. 저와 같이 가신 분들은 미술계 쪽에 계신 분들이니까 외국 어디를 가면 어디 어디 미술관에 꼭 가야 되고 누구누구를 꼭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지요. 저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요. 저는 어쩌다 외국에 가는 경우에는 자의적으로 한 번도 갤러리에 가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전 외국에 가면 일행들하고 낮에는 따로 다니고 밤에만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고 그럽니다. 전 미술관 갈 시간 있으면 차라리 중고 청바지나 레코드판 사러 가는 편입니다. 전 제가 가진 시간을 갤러리들을 찾아다니면서 딴 사람들의 작품을 보러 가는 데에 사용하기가 싫을 뿐만 아니라 두렵습니다. 살아보니까 분명히 자기와 비슷한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어요. 사진가가 되었든 화가가 되었든 조각가가 되었든 간에 분명 있습니다. 저는 그런 비슷한 감성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어떤 글을 읽었을 때에나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내 안에 들어와 버리잖아요. 그런 것들이 두렵습니다. 그냥 놀고 즐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가령 어느 길거리나 뒷골목에서 무엇을 보았던 경험이 작업을 할 때에 생각이 나서 전혀 연결이 안 될 것 같은 것들이 작업과 연관이 되었을 때 너무 기분이 좋죠. 오히려 갤러리를 다니고 다른 사람 사진집을 보고 글을 읽고 하는 것 보다 제가 작업하는 데에는 그런 일상적인 경험들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김 : 정말 의외네요. 그럼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나 동시대 사진의 흐름이나 경향 같은 것들도 전혀 궁금하지도 않으시겠네요.
민 : 전혀 궁금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오히려 전 그런 것들이 이해가 안 갑니다.
김 : 그래도 자신이 현재사진의 흐름이나 예술의 흐름 속에서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 가늠하거나 작가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거나 하지 않으시겠어요? 작품의 위상이란 것이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것이니 만큼 과거의 사진들과 현재의 사진들이 어떠한지 아는 것은 적어도 전업작가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민: 전 그런 거 모릅니다. 정말로 한 번도 그런 거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사진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저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사진작업을 할 만한 것이 있으면 하는 거고, 안 되겠다 싶으면 마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김 : 그래도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시는 분이시니 작업에 대한 마음의 짐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민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진이 재밌고 좋으니까 하는 생각이지 작가로서의 부담을 갖고 하는 생각은 아닙니다.
김 : 많은 사람들이 민 선생님 같은 사진가가 되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민 선생님은 사진가로서 성공한 케이스에 속하기 때문일 터인데 정작 선생님은 인생을 즐기는 차원에서 사진을 한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되어 버린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민 : 그 말이 솔직히 맞습니다. 물론 저라고 사진을 하면서 전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진을 처음 시작하면서 힘든 기간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갈팡질팡 했고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했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소외감도 느꼈지요. 그래도 어떻게 하다보니까 이만큼까지라도 오게 된 것인데…. 제가 밟아온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 자신이 생각하기에 제 성격이 낙천적이기 때문에 그래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일을 겪었을 때 저는 무지 좌절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싹 잊어버려요. 그게 어떤 면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장점으로 더 많이 작용한 것 같아요.
김 : 힘든 시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사진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잘 안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힘든 것이었나요?
민 : 사진작업 때문에 고민해 본적은 없어요. 결혼을 했는데 벌이는 없고 사진을 계속 할 수 있겠는가, 다 포기하고 유학이라도 가야하는가, 뭐 이런 고민이었죠. 항상 할 것이 있었고 그게 눈에 보이니 작업에 대해서는 고민할 것이 없었지요.
김: 민 선생님 사진은 대부분 평면적으로 다가옵니다. 사진에서 원근감이 거의 느껴지지가 않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이미지는 추상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개 연작에서는 구체적 형상이 안개에 묻혀 있었고, 물 연작에서는 물결의 추상적 형태만이 드러났으며, 산 연작에서는 극단적인 로우 톤으로 대상을 거의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선생님 사진은 대상을 드러내는 방식보다는 숨기는 방식에 더 초점을 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선생님 사진을 특이하게 본 것은 ‘구체성’을 기본으로 하는 사진의 속성을 흔히들 말하는 메이킹 포토의 방식으로 뒤트는 것이 아니라 정공법인 스트레이트 사진으로 뒤틀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위반’입니다. 예술에서의 ‘위반’은 곧 ‘창조성’이죠. 많은 현대 사진가들은 그러한 위반을 위해 메이킹 포토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메이킹 포토는 그 시도 자체만으로 볼 때에는 더 이상 위반적인 요소가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진부해진 거죠. 현대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스트레이트인가 메이킹인가가 아니라 작품의 표현의 질을 미학적 수준에서 얼마나 견지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선생님 사진의 특징은 추상성에 있다고 보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회화에 있어서의 추상과 본인 사진의 추상은 어떠한 점에서 비슷하거나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혹 추상화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지요?
전시작품을 감상중인 관람객
"기분대로 느끼는대로 작업"
민 : 솔직히 지금 물어보신 것에 대해서는 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 사진이 평면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리고 저 스스로도 그런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왜 제가 모르느냐면 그걸 의도적으로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보면 때서야 아 내 사진이 평면적이구나 하고 느껴요. 그래서 어떤 생각을 갖고 했는지 이런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요. 저는 제 자신을 생각해 볼 때 가장 부족한 것이 진지함과 논리인 것 같아요. 저는 거의 99% 제 기분대로 느끼는 대로 작업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 사진을 보면 좀 갑갑해요. 너무 생각을 안 하고 사진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냥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찍은 것들이 거의 다니까요. 그래도 그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김 : 어떻게 보면 사진작업들이 일관성이 없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선생님 특유의 풍경사진들과 비교해 보면 작년에 전시하셨던 포르노 이미지를 차용한 사진들이나 일전에 보여주었던 신체사진들은 전혀 분위기가 다릅니다. 전 정말 작년에 포르노 이미지를 이용한 사진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민 : 제 변덕이 워낙 심하고 기분 내키는 데로 작업을 하기 때문일 거에요. 전 그런 사진이 무지 많습니다. 제 작업실에 가면 심지어 꼴라쥬 사진들도 꽤 있어요.
김 : 이제까지 선생님 사진을 보면 전부 흑백이었습니다. 작년에 전시했던 포르노 이미지를 이용한 사진은 컬러로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선생님 사진이 줄곧 흑백이었던 이유가 뭘까요?
민 : 전 흑백사진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컬러사진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못하고 있는 거지요. 지금 하고 있는 흑백사진조차도 해야 할 일이 많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이지 제가 컬러사진을 싫어해서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컬러사진도 찍어 놓은 것이 좀 있습니다. 발표를 안 한 것뿐이지요. 구체적으로 일정이 잡히진 않았지만 아마 조만 간에 제 컬러사진도 전시할 기회가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김 : 촬영을 어떤 스타일로 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안개 연작을 보면 이 연작을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민 : 짐작하시는 것과는 달리 전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버리는 스타일입니다. 대신에 아주 집중적으로 찍지요. 전 일년에 카메라 잡는 날이 열흘이 될까 말까해요. 하지만 카메라를 안 잡는 날이 사진작업과 무관한 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괜찮은 대상을 발견할 때마다 그 때 그 때 찍는 스타일이라면 일년 내내 카메라가 몸에 붙어 있어야 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오랫동안 대상들을 보고 생각해 오다가 때가 되면 짧은 기간 안에 작업을 끝내버리는 스타일이니까 이것저것 보면서 생각하는 것이 작업에 꼭 필요한 시간이지요.
김 :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더 깊은 대화가 오갔으면 했는데, 왠지 좀 아쉬움이 남네요.
●
대담 및 정리 /
김응수
(사진비평 객원편집위원)
글쓴이 김응수는 제5회 사진비평상 평론부분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사진비평, fotato.com 객원편집위원 및 사진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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