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김응수의 작가와의 대화 3편 - 작가 강홍구 (2)
코드와 예술의 장
김 : 얼마 전 월간지
에서 우연히 선생님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동세대의 작가 모두는 얼마 전 우리를 뚫고나와 결국 길거리에서 잡힌 청계산 늑대와 비슷하다.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 잡히지 않을지 잘 모른다.” 라는 말로 코드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상황을 이야기하셨습니다만, 선생님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 지긋지긋한 코드의 실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 : 코드의 실체. 그거 정말 어려워요. 물론 두리뭉실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관습적인 것이고, 문화적인 것이고, 생산하고 작업하는 데에 있어 토대이며 한계라고. 코드의 정체가 뭘까? 코드를 단순히 역사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유전자속에 각인되어 있는 어떤 것의 발현인가? 코드의 실체를 정확하게 말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거에요. 코드는 의식뿐만 아니라
작가 강홍구
무의식적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또 코드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갖고 있는 모순된 지점이 있잖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이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코드들이 싫어서 그것에서 이탈하면 그 이탈이 또 하나의 코드가 되어서 다시 역사를 이루고...또 완전한 이탈을 했다고 한다면 코드의 이탈로 말미암아 커뮤니케이션이 안될 수도 있으니 그것이 문제고. 따라서 코드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봐도 그렇고 대가들의 작품을 봐도 그렇고 무지무지하게 많은 코드들의 배치만 바꿔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코드의 배치를 약간 바꾸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코드를 앞에 놓고 딴 건 뒤로 미뤄두고 이런 식이죠. 이게 포스트모던한 관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렇게 보여요.
김 : 그런데 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작가들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 코드,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까지 벗어나야만 하는 것인가. 맹목적으로 코드를 따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코드를 조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나름대로 코드 안에서 깊이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고, 코드 안에서 이루어진 작업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차이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작은 차이, 작은 흐름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안에서 충분히 나름대로 길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강 : 그게 바로 제일 중요한 지점이에요. 문제는 그게 쉽지는 않다는 거죠. 그런 작품을 생산해 낸다는 것은 테크닉을 알아서, 코드를 알아서, 많이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지요. 가령 고대시대의 작품을 보면 확실히 역사를 뛰어넘어서 오는 뭔가가 있습니다. 그걸 뭐라고 불러야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본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순수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근원적인 뭔가가 있어요.
김 : 그 부분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개인적으로bc. 3~4세기 그리스 작품들을 보면 요즘 작품들하고는 그 느낌이 달라요.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만드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일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 : 고대 그리스 시기나 이집트 시기의 작품을 보면 정말 거기에는 절실함이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죠. 요즘 말로 하면 진정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성이라고 하면 값이 떨어지는 것 같고... 아무튼 절실함과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신뢰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좋은 작품들에는 그러한 것들이 있죠.
김 : 요즘 작품들을 보면 그 크기는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지만 그런 크기에도 불구하고 공허해 보이고 가벼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작품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예전과는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한 결여를 크기로 커버해 보려는 듯한 느낌마저 들고요.
강 : 결여는 우리시대 예술의 특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 예술이 우리시대의 예술이지요. 사진을 봐도 그래요. 잔더나 아버스의 사진을 보면 이 사람들은 진짜 뭔가 절실함이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죠. 그런데 그런 건 기교라던가 뭐라든가 하는 걸로는 분석도 안 되고 쫓아갈 수도 없는 것이에요. 그건 본질적인 것이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근원주의자니 본질주의자니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김 : 그런 작가들이 진짜 ‘a급 작가’들에 속할 수 있겠군요.
강 : 그렇죠. ‘이건 뭐 어떻게 할 수 없다’ 에요. 반면에 진정성, 절실함이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코드를 아주 잘 활용하는 작가들도 있지요. 가령 작년에 더그 앤 마이크 스탄의 전시를 봤는데 제가 갖은 느낌은 ‘완전히 제품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코드들을 모조리 꿰고 난 후에 그 코드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포장해야 되는지 알고 상품화시킨 명백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 : 그런데 제품과 작품을 구별해 낸다는 게 가능할는지 모르겠어요.
강 : 물론 객관적인 증거는 없어요. 그것이 예술이 가지고 있는 애매모호함 때문이기도 하지요.
김 : 사실 저도 어떤 작품을 보면서 그런 의혹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강 : 분명히 그럴 겁니다.
김 : 작품이 아니라 제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시스템 내부에서 환영받을 수 있으려면 제품이 되는 속성도 알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죠.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제품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자기 혼자 보고 만족하려고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내부에 들어가서 보여주어야 하는 작품을 생산하다보니 오히려 제품을 흉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가 가짜를 모방하는 꼴이 되어버린 거에요. 물론 이러한 현상은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것도 의식적인 차원보다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복잡한 매커니즘이죠. 그래서 제품과 작품을 구별해 낸다는 것이 힘든 것이겠죠. 예술의 장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볼 때도 그렇지만, 한 작가의 작품들 안에서도 작품과 함께 작품의 시뮬라크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처음에는 진지함과 열정과 자신감과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작품을 생산해 내지만, 주위로부터 찬사와 인정을 받게 되고 일정 수준의 위치에 서게 되면 왠지 맥 빠진 작품들이 나오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치열함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것일 테지요. 하지만 처음에 내놓았던 좋은 작품들이 일종의 보험으로 작용하는 것 같더군요. 저는 안이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하는 작품에도 주위의 평가는 너무나 호의적이어서 어리둥절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작품이 아니라 ‘작품의 시뮬라크르’라 칭하는 것이 적절한 듯싶습니다. 전체적인 예술의 차원에서, 또 개인적인 작품생산의 차원에서 이러한 현상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 작가의 문제도 있지만 비평가와 감상자의 태도에도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아니라 ‘작품생산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주목하게 된다면 어느덧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물신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모종의 객관화된 ‘믿음’이 주관적인 ‘판단’을 대신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거죠.
강 : 예술작품이 상품과 다른 것이 그런 부분인데,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은 소비자들이 워낙 냉혹하게 불량품들을 구별해내지만 예술 쪽에서는 작품의 특수성 때문에 한번 명품이라고 도장이 찍히면 유효기간이 죽고 나서까지 계속되죠.
예술은 사기다
김 : 선생님 작업에 대해 줄곧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떤 것을 내 놓으시려나 궁금해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선생님의 작업이 그다지 새로워 보이진 않습니다만...
강 : 새로워 보이라고 한 작업은 아닙니다. 일종의 자기방어적인 것에 가까운 요소가 크고, 우리나라 작가들이 처한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변방에 있어요. 변방에 있으면서 나도 세계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럴 듯한 꿈이기도 하지만 헛꿈이기도 하다는 것이 안타깝죠.
김 :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닐까요? 가령 백남준 같은 세계적인 작가도 있잖습니까?
강 : 물론 백남준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분 같은 경우 우리나라라는 백그라운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활동무대가 처음부터 우리나라가 아니었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어떤 작가가 세계적인 시장, 세계적인 전시회, 비엔날레 같은 데에 출품하면 작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그러한 사실 하나만으로 바로 ‘a급 작가’로 부상하곤 합니다. 그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현대예술에서 ‘a급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시스템에 잘 들어간다는 거에요.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꿰고 있어야 하고 전략 전술을 잘 구사해야 하죠.
김 : 작가가 꼭 인정받으려고 작업을 하는 것이냐, 작품을 작가의 실존의 기록이나 세상에 대한 외침이라고 볼 수는 없겠느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강 : 매우 모범적인 입장이고 극히 당연한 믿음 같지만, 어찌 보면 그건 대단히 아마추어적인 입장이지요. 물론 어느 작가나 예술이 좋으니까 하겠죠. 또 작가 나름대로의 진정성이 있겠죠. 하지만 예술가처럼 예민하고 질투심 많고 욕망이 큰 사람도 없지요.
김 : 예술가와 예술은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순진한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
강 : 네. 그건 굉장히 순진한 태도에요. 예술사의 기술 방법, 예술을 보는 관점, 예술은 순수한 것이라는 관념, 이런 것들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예술이 순수했던 시대는 특수한 한 시대의 이야기에요.
김 : 너무 시니컬한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강 : 물론 시니컬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웬만큼 알면 다 공유하고 있는 생각일 겁니다.
김 : 어떻게 보면 작품과 작가의 순수성에 대한 당연한 믿음을 갖고 갤러리를 찾는 사람은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는 것일 수도 있게 되는군요.
강 : 그렇죠. 예술도 50%는 사기죠.
김 : 백남준씨가 예전에 “예술은 사기다.” 라고 이야기 했었잖아요. 예전에는 그 말을 듣고 그 말에 무슨 깊은 뜻이 숨겨져 있나 곰곰이 생각했었는데, 요즘 생각해보니 그 말에는 뭔가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말 그 뜻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더군요.
강 : 그렇죠. 멀쩡한 사기에요. 백남준이 맘에 드는 건 그런 점이에요. .
김 : 벌써 십 이년 전이네요. 백남준씨가 국내에서 대규모 전시를 했을 때 세계적인 작가이니까 작품이 얼마나 심오하고 깊이가 있을까 기대를 하고 전시장에 갔는데 의외로 작품이 기대와 달리 심오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백남준의 위트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지금 다시 그 작품들을 본다면 참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예술은 진지하고 심오하고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날카로운 유머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기대만큼 안 나와 줘서 아쉬움을 느끼게 되네요.
강 : 예술은 심오한 것이고 의미심장한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 그런 거죠.
강홍구 오쇠리풍경 시리즈 中
무의미한 작품은 정말 무의미한 것인가?
김 : 이브 미쇼가 쓴 『예술의 위기』 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대예술은 그의 공허와 아무것도 아님을 감추는 지적인 사기의 효과이다. 현대예술은 과도한 역사화의 산물이다. 현대예술은 미술관의 보호아래서만 존재한다.” 이런 진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미쇼의 글은 내 생각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을 아니까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김 : 이러한 것들이 사실 제겐 몇 년간을 고민해온 화두이기도 합니다. 현대예술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예술이 이제 우리에게 무엇인가. 적어도 나 자신에게 있어 예술은 무엇이고 그 실천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죠.
강 : 괴로워하거나 답답해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술사를 보면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 화가들이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뭔가 다 해버린 것 같고,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역사를 보면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흐름들이 탄생했죠. 현재의 상황도 흐름이 바뀌면서 뭔가 변화가 있겠지요. 어쨌거나 지금은 미쇼 말대로 작품이 예술사에 과도하게 기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김 : 예전에는 진부해지려는 노력이 예술에서 참 독창적인 것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로 인정을 받고 예술사에 남고 그랬는데, 그 이후에는 진부해지려는 노력이 말 그대로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죠.
강 : 코드화 되었으니까요.
김 : 그래서 보드리야르도 “예술은 자신이 ‘무가치하다, 무가치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무가치하다.” 라고 말을 한 것이겠지요. 선생님께서도 지난 전시 「드라마세트」작가의 말에서 “나는 지극히 무의미한 가짜사진을 만들고 싶었다.” 라고 하셨는데, 그런 무의미한 것을 전시하고 사람들이 바 주길 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 : 그게 어려운 문제에요. 그게 욕망이죠. 무가치하고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봐다오. 이것이 커다란 딜레마에요. 하지만 그냥 떠돌아다니는 무의미한 사진하고 제도나 전시를 통해 보여지는 무의미한 사진하고는 다르죠. 그래서 전시장에 걸린 작품이 진짜 무의미해지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죠. 의미를 요구하고 무의미한 것은 가차 없이 털어내 버리는 세상에서 무의미한 것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한 생각과 가치조차 담겨있지 않는 무의미한 것이라면 시스템에서 배제되어 버리겠죠.
김 : 그래서 비슷한 이미지라도 예술사를 등에 업고 보여주는 이미지와 그렇지 않은 이미지하고는 차이 없는 차이가 존재하게 되는 거고 외관상은 비슷해 보여도 그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 되겠지요.
강 : 다르지요. 아니, 다르다고 주장하지요.
이미지 폭발의 시대에서 예술은?
김 : 올해 초 뉴욕에 있는 미술관들을 쭉 보고 왔는데,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 작품까지 보고 느낀 것이, 정말 옛날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 :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에요. 나도 작년에 한 번 돌았는데, 자꾸 눈에 띄는 것들은 옛날 작품들이에요. 근대이후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제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완전히 사라졌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들라크루와나 세잔의 그림들, 기타 조각들을 보면 정말 이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구나 하는 것들을 느낍니다.
김 : 현대예술이 이전의 예술을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면서, 예술은 전복과 극복의 역사라는 태도를 갖고 성장했는데, 이러한 태도가 현대의 예술을 왠지 공허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강 : 모더니즘 초기만 해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러한 확신이 완전히 코드화되었죠. 확신자체가 코드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전통적 믿음이 사라져버린 거죠. 확실히 전통적 예술과 현대예술은 그런 점에서 단절이 있다고 보입니다. 사진의 경우도 그래요. 앤젤 아담스나 그때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모던한 사진의 법칙들과 그것들에 대한 신뢰, 재현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그 이후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개별적 믿음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 흐름 속에서 보면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 선생님도 디지털 사진이미지를 갖고 작업하시지만, 요즘 보면 디지털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이 꽤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사진들 중 상당 부분은 인터넷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 사람들이 찍는 사진들과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겠더군요. 아마추어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만, 작가들의 상상력이나 창조력이 아마추어와 그만큼 차별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현대 예술가들은 이상주의적이고 초월적인 예술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떠돌아다니는 이미지하고 작품이 구별이 안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엄청나게 가속화 되었어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겠지만, 이젠 정말 비예술과 예술을 구분하는 내재적인 기준은 사라지고, 단지 작품이 갤러리 안에 걸리느냐 갤러리 밖에 걸리느냐에 따라 예술이냐 아니냐가 판가름 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강 : 그건 명확하게 사실이에요. 이미지의 생산수단이 디카 이후에는 완전히 공유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까 미술의 존재자체가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술은 나름대로 방어를 하게 되는데 그게 시스템이고 제도인거죠. 그리고 그 제도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실천되는데 그 중 하나는 예술계를 단단히 구축하는 거지요. 내부에서 보여지고 내부에서 유통되고... 또 하나, 비평적인 언어를 들 수 있겠는데, 비평은 작품을 예술사에 편입시키면서 규정 지워주죠. 즉, 어떤 전통에서 어떻게 연계되어 왔는지 보여주면서 이 작품이 어떤 선상에 있는지 말하는 거죠. 내가 보기엔 그것이 우리시대 예술의 유일한 생존수단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이미지가 엄청나게 유통되는 시대에서 예술이 살아남을 수가 없겠지요.
김 : 책을 꾸준히 펴내시는데 혹시 지금 집필 중이거나 계획하고 계시는 책이 있는지요?
강 : 하나 생각해 놓은 것이 있긴 있지요. 제목도 정해놨어요. 『디카를 들고 어슬렁』. 디지털 카메라를 다루기 이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했던 것들을 쭉 정리해서 작품의 배경과 작품들을 다루는 책을 한 번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은 오래전에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계약도 하고 책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만 그 출판사가 망하는 바람에 그만두었죠. 이번 방학 때 한 번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요. 제대로 한 번 솔직하게 써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수위가 문제긴 하죠.
김 : 최근 젊은 사진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다큐먼트」전에 가보니 2층 전시장 사진은 대부분 젊은 작가들의 사진이더군요. 최근 여러 전시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전시에서도 현재 우리나라 사진의 현상이자 증후로서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낀 ‘증후로서의 현상’은 면밀한 분석과 엄격한 논증이 뒤따라야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므로 여기서 상세히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고,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일반화된 사진적 시각의 주관적 내재화’ 정도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선생님께서도 후배 작가들의 사진을 보면서 뭔가 느끼신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강 : 저도 「다큐먼트」전을 봤는데 2, 3층 전시를 보면서 솔직히 힘들더군요. 어떻게 이렇게 공허한가, 비슷한 프레임에, 대상에... 물론 일부러 모아 놓은 경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다큐인데. 눈과 감각이 코드에 물들어 있다고나 할까요. 재주도 있고 기본적 교양도 갖추었고 웬만큼 다 할 줄 알지만 맨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자기에게 이게 정말 절실한 것인지 스스로 질문을 안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이것이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죠. 그래서 아마추어들 사진을 보면서도 어쩔 땐 작가가 아마추어에게 배워야할 점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추어들은 적어도 진짜로 자기들이 좋아서 찍고 있으니까요.
김 : 오늘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 많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
대담 및 정리 /
김응수
(사진비평 객원편집위원)
글쓴이 김응수는 제5회 사진비평상 평론부분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사진비평, fotato.com 객원편집위원 및 사진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 행사&세미나 ]
강홍구 강연회-영광문화예술원 8월 특강
2008.07.22
[ 행사&세미나 ]
<불안, 불-안> 작가와의 대화 - 정주하, 강홍구, 오형근
2008.05.20
[ 출판 ]
강홍구 포토 에세이집 <게으르게 사진 찍기 -디카를 들고 어슬렁> 출간
2006.11.23
강홍구
강홍구 개인전 <녹색연구-Study of Green>
강홍구
강홍구展(사람의 집_ proxemics : 근접공간 학/ 생존의 건축 `부산` )
강홍구
강홍구 <사람의 집 - 프로세믹스 부산>
강홍구 Kang, Hong Goo
오쇠리 풍경
강홍구 Kang, Hong Goo
풍경과 놀다_Play with Landscape
국내 최대의 사진전문 포털사이트인 아이포스 웹진에서는 각 미디어와 화랑의 전시담당자, 프로사진가, 전국의 각 대학 사진학과 교수 및 전공자, 미술계와 광고 디자인계, 출판 편집인,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인사, 국내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임원, 사진동호인 등
27만6,830명
에게 사진문화에 관한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