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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대 배병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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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빛나
(포테이토 명예기자, 서울예대 사진과)
사진가 배병우 (서울예대 교수)
‘인터뷰? 어디다 뭐하려고 그러니? 작업실 탐방? 그래? 그럼 아예 우리 작업실에서 수업을 하자. 애들한테 다음주에 다 오라고해 넌 거기서 하면 되겠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것도 빨간 날(쉬는 날)에 헤이리 작업실로 모이라고 하시다니...
나는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밖 에 없었다.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셨는지 못보셨는지, 선생님께선 ‘자 그럼 다음주에 보자’ 라고 하시며 급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선생님 특유의 심드렁한 말투에 나는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 하지 못했다.
자유로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작업실로 향하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였는지 맘은 벌써부터 들떠 있었다. 마을 입구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저 멀리 회색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일찍이 나와 계셨는지 조금 늦게 도착한 일행을 보시곤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늘의 일정대로라면 자동차 사진가 하봉호 선생님의 특강이 있을 예정이였던 지라 일층에서는 학생들이 간단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무엇을 들고 부엌으로 향하시는 교수님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따라가 보았더니 특강 후 학생들과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신다면서 요리를 준비 하시고 계셨다.나는 잘됐다 싶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을 위해서 요리 중인배병우 교수
헤이리 작업실로 언제 옮기신 거예요?
작업실 이사온건 작년 10월인데 짐을 완전 옮긴 건 2월말 정확히 말하면 3월초지.
헤이리 마을이 아직 조성중인 가봐요?
집을 지어야 끝나는 거니깐.. 헤이리 마을이 자리를 잡은 지는 6년 정도 됐지.
평창 동에 계실 때 준비하시고 계셨던 건가 봐요?
그렇지 집 짓고 있었지 이게 재작년 10월에 진거니깐.
헤이리 마을은 입주하기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
처음에는 까다로웠겠지. 처음에만 형식적으로만 그랬었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어렵지 않았어.
그냥 소문만 까다로웠지.
평창동에는 몇 년 계셨었어요?
2년 있었지.
선생님이 좋아하신다는 작가가 아놀드 뉴먼이죠^^? 아닌가요?
웨스턴 좋아했지 뭐. 지금은 뭐 여러 사람이지 작품 좋으면 다 좋은 거지.
지금까지 사진작업하시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크게 기억에 남으신 게 있으시다면요?
작업이란 게 지금도 하고 있잖아. 전시라면 미토 미술관에서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
왜 미토미술관에서 하신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지요?
미토 미술관에서 소나무전을 했는데 그거 끝나고 나서 소나무 안하려고 했었거든 근데 미토미술관에서 한국 대표 미술작가전을 5명을 초대해 줬어. 근데 방이 여섯 갠데 방두 개를 나한테 주더라고 가장 중앙에 있는 좋은 방을 그러면서 나더러 디스플레이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에 대한 금전도 지원하고 암튼 거기서 그동안 내가 했던 소나무 작업을 딱 정리 하게 됐어. 방도 좋고 미술관도 좋고~암튼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지. 그 후에도 외국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했었는데 그래도 거기가 가장 좋았던 거 같아.
미토미술관에서 전시 하셨던 작품들은 여기서 다 준비해서 가지고 가신거죠?, 전시 하실 때 작품 판매도
하시게 되는지요?
미술관 전시에서는 판매를 안 하는 거야. 갤러리 전시에서만 팔수 있는 거지.
작업실 1층에서 서울예대 학생들에게 강의 중인 모습
선생님 20대 꿈이 있으셨다면?, 어떠셨어요 학생 때는?
20대때 나는 사진하고 싶었어. 그땐 운동을 할까 미술을 할까 문학을 할까 여러 가지 왔다갔다 고민을 미리 했었기 때문에 대학 1학년 때 딱 사진하기로 결심하고 LAND SCAPE 하기로 결정한거야. 그 뒤로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지.
그렇다면 그때 사진학을 전공하실 수 도 있으셨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때 서라벌예대 2년제가 있었고 4년제는 없었지.
서라벌예대라면 지금의 중앙대이죠?
그렇지 그게 2년제였는데 4년제로 바뀌고 아마 그게 중앙대로 바뀌면서 4년제로 바뀐걸 거야. 가서 사진을
할까 했었는데.. 글쎄 그냥 지금이 더 좋지 않나? (웃음)
그렇다면 20대땐 어떤 생각을 주로 하셨어요?
걱정 이였지 사진과도 하나밖에 없고 사진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라는 걱정뿐 이였지 과에서 나랑 같이 사진했던 친구랑 같이 DP점 했대도. 둘이서(웃음) 남산학교 밑에서 코닥 대리점을 했었다니깐. 내 친구가 사장, 난 종업원 이였다고 할 수 있지.(^^) 망했지 뭐. 1년 반하다가 그게 되겠어? 주인이 필름을 쓰는데. 술장사가 술 먹으면 망하는 거 거든…….
현재의 지금은 꿈이 있으시다면? 앞으로.. 사진으로요.
축구선수가 메이저리그 분데스리가에 가고 싶고 프로 일류축구 리그로 가고 싶어 하잖아. 야~(옆에 있던 학생한테 물으시면서) 댄서는 카네기 홀이니? 링컨센터니?
카네기홀이 가장 귄위 있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음악이 아닌 댄서는 또 모르지. 미술 하는 사람은 세계서 가장 큰 미술관인 뽕삐도 미술관이랑 뉴욕현대미술관? 거기서 개인전 하고 싶은 거지. 축구선수가 월드컵이나 젤 좋은 리그에 가고 싶어 하듯이, 그림 그리는 사람은 젤 좋은 시장에 가서 전시하는 거지. 그거는 곧 뭐냐면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는 거지.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메이저급 전시관에서 전시한 사람은 백남준씨 밖에 없어. 개인전을 한 사람이.
그다음으로는 뭐 이우환씨 정도? 그러니깐 사진하는 사람으로 세계적인 전시관에서 전시하는 게 꿈이지 뭐. 다른 게 뭐있겠니? 그거 하는 동안에 작업을 계속하면서 작업비가 나오면 끝인 거지 인제. 작업비는 나오지 않을까? (웃음) 희원이가 좀 도와주겠지 뭐 무쏘를 팔아서라도. (하하)
앞으로 불가능하리라고 생각지 않고, 내심 기대하실 거 같은데 그런 기회는 어떻게 생기는거에요? 그런 큰 전시장에서 하려면요?
옛날에는 60-70대에는 미협에서 작가를 추천해서 가서 전시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한국을 들여다보고 있단 말야. 어느 작가가 있는지 알지 세계적인 큐레이터들이 나를 알고 있다고 이미. 그런데 내가 구태여 내 작품 들고 가서 봐 주십시오 할 이유도 없어요. 그러니깐 기다리는 거지. 그러면서 그거보다 못한 좋은 미술관이 있다면 전시하고 책을 세계에다가 알려야지. 그러다보면 한국의 세계적인 작가가 누가 있느냐 윗사람을 한번 해주고 싶다 하는 기회가 올 거 아냐? 그때 내가 준비를 갖추고 있으면 되는 거 아냐.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하시면서 생긴 좌우명이나 촬영 전에 앞서 되새기는 말이 있으신지?
뭐 특별한건 없고 아침 일찍 일어나면 되지. 매일 아침 한 시간씩만 일찍 일어나면, 일생동안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면 성공한다는 거 아냐?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한 시간만 일찍 하고 한 시간만 더 하면 그 업에 성공하는 거잖아. 그렇잖니?
교직에 오래 계셨는데 처음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81년에 학생이 들어 왔으니깐, 80년에 학교에서 과를 만들겠다고 연락이 와서 가을부터 준비를 했거든. 횟수로는 25년 됐는데 그때 학생들은 사실 많이 몰랐지. 지금이 더 훨씬 많이 아는 거고 사진에 대한 열정은 중간쯤 되서 좋아진 거 같아. 처음에는 너무 몰랐었고.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여건은 좋아진 거 같아.
제가 어디서 얼핏 들은 얘긴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장비 쓰는 나라로 인식 되었다고 하던걸요?
에이 그건 꼭 그렇지도 않아. 아마추어들이 좀 그런 경향이 있지 장비 이따만 한거, 큰 거, 좋은 거 가지고 다니지 뭐 학생은 그저 그렇지 않니? 장비 좋은 거 가지고 있는 학생있니 우리? 기본 장비만 있으면 돼. 내가 얘기하잖아 렌즈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난 렌즈하나만 가지고 15년 먹고 살고 있는데 내 사진 전부 파노라마잖아. 그런데 지금 돈 벌잖아 (웃음).
학교는 어떠세요? 요즘은?
65세가 정년이니깐 뭐 앞으로 십년이겠네. 모르지 뭐(하하).
그 중에는 교직을 그만두고 싶으신 적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처음 시작하고 십년정도 지나니깐 그만 두고 싶더라고 그때가 89년 정도? 쉬고 싶기도 하고 암튼 그때 1년 동안 독일에 있었지. 근데 아마 그만뒀었더라도 다른 학교로 갔겠지 뭐.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선배들은 거의 대부분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의 많은 부분에 있어 학생들과 교수의 사이에서 상당히 오픈 마인드 수업하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으로서 나는 잘 하는 건가? (웃음) 그냥 애들한테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특별하게 내가 강의를 잘하는 거 보다 나를 보면 내가 어떻게 작업하고 어떻게 사는지 참고가 되면 그냥 그걸 보고 배우라는 거지. 나는 그렇게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해.
마지막으로 드릴 형식적인 질문인데요... 아직 못찍으신, 앞으로 찍고 싶으신 주제가 있다면 어떤 게 있으세요?
남해안. 내 고향 한 테마는 찍었거든. 바위. 마지막으로 가서 배나 요트 하나 사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면서 쉬면서 찍어야지. ‘안녕하세요~’ 어 이제 오니?......
다행인지 아닌지 가볍게 시작한 선생님과의 짧은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밖에서는 한창 바비큐 파티가 진행중이였다. 선생님을 모시고 뒷마당으로 향하였다.
바베큐 파티중인 모습
처음으로 하는 인터뷰여서인지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나름대로 준비해간 인터뷰 질문들을 제대로 물었었는지, 혹 내가 실수한 말들은 없는지 되씹어 보았다. 인터뷰 진행을 잘할 수 있을까 하던 내 걱정은 선생님의 이어지는 즐거운 얘기들로 꼬리를 물며 잘 마칠 수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인터뷰라는 형식보단 늘 학교에서 해주시던 말씀들을 한번 정리한 게 아닌가 싶었다. 교육자의 입장에서의 모습과 작가의 입장에서의 선생님 모습을 보며 앞으로 뒤를 이어야 할 후대로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시간 이였다. 짧은 시간이나마 허락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필자와 함께 기념컷 (정말 무뚝뚝해 보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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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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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외관
싱크대 옆에 걸려진 배병우 사진달력
수많은 사진책들
암실 내부
작품 보관실
침실
해질녘의 작업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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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내방 ]
[2004.01.19] 배병우 서울예술대학 교수
2004.01.19
사람.바람한국현대사진의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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