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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의 작가와의 대화 1편 - 사진가 오형근
아이포스 웹진은 제5회 사진비평상 수상자인 김응수씨와 함께 '작가와의 대화'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매달 그 시기 가장 만나보고 싶은 작가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새로운 코너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형근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브룩스 사진대학과 오하이오 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순수사진과 영화를 공부했고, 「Uncertain Presence」, 「오형근. 사진. 영화」, 「아줌마」, 「소녀연기」등 개인전과 그룹전 「한국사진의 수평전」, 「한국 현대 사진의 흐름전」, 「생활의 발견전」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했다. 현재 계원 조형예술대학 사진예술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진가 오형근
‘작가와의 대화’의 첫 번째 작가 오형근을 지금 <소녀연기>가 전시되고 있는 일민미술관에서 만났다. 주말 오후답게 관람자들이 꽤 많았다. 평소 흥미를 갖고 있던 작가와의 대화라서 어떤 대화가 오가게 될지 내심 기대되었다. 인터뷰 경험이 전혀 없는 터라 어떻게 대화의 흐름을 조절해 나가야 할지 은근한 걱정을 안고 커피샵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김응수 (이하 김) : 관람객이 상당히 많군요. ‘작가와의 대화’ 첫 손님으로 평소 관심 있던 오형근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인터뷰를 많이 해 보셨을 텐데 제가 인터뷰 기술이 좀 부족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작가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해 보는 것이 이 대화의 의도입니다. 다소 무거워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잘 부탁합니다.
오형근 (이하 오) : 예. 사실 이번 전시와 관련해서 인터뷰가 참 많았습니다. 대부분 대중잡지나 신문사와의 인터뷰였는데, 사진전문 사이트와의 인터뷰이니만큼 신경이 좀 쓰이네요.
톤에도 감성이 있다.
김 : 아줌마 사진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여고생 사진에서도 선생님의 보여주기 방식이 상당히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이라 느꼈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보여주기에서 선생님다운 섬세함과 사진적 감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혹자에게는 평범하고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선생 사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던 전면 플래시를 근접한 거리에서 터뜨리는 방식을 이번 작품에서는 쓰지 않으셨더군요. 물론 플래시를 사용하긴 했지만, 피사체를 강조하고 피사체 주변을 어둡게 만들던 기존의 플래시 사용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밋밋하다고 느껴질 만한 흑백 톤이더군요.
오 : 의외였나요?
김 : 의외는 아니었지만, 표현의 방식에서 상당한 변화를 느꼈습니다. 그간 오형근 사진에서 강한 전면 플래시 사용은 상당히 중요한 효과를 가져다주는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플래시의 사용이 없었더라면, 그 사진들은 전혀 다른 사진이 되었을 겁니다. 제가 느끼고 있던 선생님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빛은 “자, 똑바로 봐라!” 하는 빛에 가까웠습니다. 대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빛은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이나, 이미지를 한꺼번에 걷어내 버리죠. 말하자면 이미지의 화장발을 싹 지워버린다는 말입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플래시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제껏 즐겨 사용하던 전면으로부터의 강한 플래시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여고생 사진의 표현방식은 이전 작업과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방식을 취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오 : 음….한 십 몇 년 전쯤에 바닷가에서 누드를 찍은 Jock Stulges라는 사진작가의 사진집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사진집 이름이 「The last day of Summer」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당시 무슨 대회가 있어서 작품을 냈는데, 그 친구가 1등을 하고 저는 3등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서로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 친구 사진을 눈 여겨 보게 되었는데, 이 친구 사진은 전면성이라든가, 인물을 배경과 고립시키는 부분에서는 저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다른 점은 이 친구의 사진은 규정짓기 힘든 여린 톤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지요. 응수 씨가 좀 전에 밋밋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 밋밋하다는 말은 그러한 미묘한 여린 톤을 일컫기에는 좀 부족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전 그런 톤을 지니고 있는 그 친구의 사진이 참 맘에 들더군요. 그 당시에 저는 아버스나 위지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강한 질감, 거친 피부의 표현 등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던 시기였습니다만, 그 친구 사진에서 부드러운 피부의 톤이 잘 표현된 것에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지요. 당시 자주 보았던 샐리 만의 사진에서도 어린 아이의 여린 피부 톤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 때 좀 더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톤에도 분명히 감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줌마 사진을 찍을 때는 좀 강한 톤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아줌마를 사회로부터 정서적으로 격리되고 고립되어 있는 섬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 인물을 표현하기에는 배경은 어둡게 하고 인물은 강한 조명으로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강한 조명은 아줌마의 피부 질감을 잘 표현해주지요. 그럼 여고생은 어떻게 찍을 것인가 생각을 해 보았을 때, 여고생 피부는 질감으로 다가가기보다는 톤으로 다가가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질감보다 톤이 우선된다면 여고생 피부는 밋밋하다 할 수 있는 중간 계조가 중요해집니다. 아줌마는 제게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지만, 여고생은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상생활에 스며있다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인물도 배경으로부터 고립시키지 않고 전반적으로 밝게 하고 배경 또한 인물과 비슷하게 밝게 나간 겁니다. 중간 계조에 대한 관심은여고생사진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이가 들면서 중간 계조를 보는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중간을 보는 시각은 사진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사진의 톤과 사진가의 인생을 따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화가에게 색깔의 시기가 있듯이 사진의 톤을 보면 그 사진가의 인생의 흐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리두기와 메타적 시선으로부터 오는 사진의 힘
김 : 제가 선생님의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였지만, 이번 전시 작품을 봐도 거리 두기의 감각이 대단합니다. 제가 보기에 오형근 사진의 미학은바로 이 거리 두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오 : 전 사진이 너무 명백하게 읽히는 것을 싫어합니다. 물론 사진이 처음에는 정보와 자료의 역할로 시작을 했지만, 명백하게 무엇을 지시하는 사진에는 흥미를 못 느낍니다. 사람의 표정도 마찬가지예요. 희로애락이나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표정에는 재미를 못 느낍니다.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니까요. 거리 두기를 ‘대상을 익명성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전 또 익명성으로까지 가는 거리 두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너무 애매모호해 지거든요.
김 : 선생님의 사진에는 작가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요. 모델과의 거리 두기뿐만 아니라 관람자와의 거리 두기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제가 선생님의 사진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오 :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모델들이 왜 이렇게 무표정하냐는 둥 왜 이렇게 사진에 이야기가 없냐는 둥 이야기하죠. 하하….
김 : 대상을 너무 냉정히 바라보고 객관적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건조하게 보이지만, 사진을 보면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과 세상을 보는예민한 눈이 느껴지더군요.
오 : 그런 걸 읽는 사람을 가끔씩 보면 저와 공통된 부분이 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을 말해주는 사람이 많진 않습니다.
김 : 제가 선생님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예전에 전시했던 광주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오 : 오….흔치 않은 일인데….
김 : 전 광주 사진에서 오형근 선생의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확연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사실 속에 스며있는 허구성을 보는 시각이죠. 그리고 바로 이러한 시각은 선생님의 사진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이러한 시각은 이번 여고생 사진에서도 크게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고생 사진을 보면, 여고생 사진의 주인공들은 전부 여고생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녀 연기’ 라는 제목에서처럼 이 여고생들은 여고생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은 여고생에 의해 연기된 여고생의 이미지라는 것이지요. 실제 여고생이 더 여고생처럼 보이도록 여고생을 연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 여고생을 진짜 여고생이라고 해야 하나 가짜 여고생이라 해야 하나 상당히 헛갈리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비록 언어로 '진실', '허위', '본 모습', '가식'이라고 나누어 부른다 하더라도 실제 현실에서는 진실과 허위가 매끈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지요. 구분할 수 없게 묘하게 엉켜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태는 우리의 언어처럼 간단하게 구분되지 않지요.
광주이야기 中에서 '고등학생 자원 연기자'
오 : 그렇지요. 간단하게 구분되지 않지요. 음….그런데 진실과 허위를 다루는 작품이 외국에서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애초부터 뭐가 진짜인지 뭐가 가까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거든요. 최근 최정화 씨의 사진에 대해 평론가 이영준 씨가 쓴 글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는데, 최정화 씨는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를 만드는 게 작품의 의도라고 말하더군요. 저도 그런 면이 조금은 있습니다. 그런데 최정화 씨의 ‘진짜 같은 가짜’는 외국에서 흥미를 가질 만한 사진인데, 저의 ‘진짜 같은 가짜’는 아마 외국에서 별 흥미를 못 느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진짜에 대한 선입견, 가짜에 대한 선입견은 약간은 한국적인 것이거든요. 아무래도 최정화 씨의 ‘진짜 같은 가짜’사진이 좀 더 유니버설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 여고생 사진은 진실과 허위가 묘하게 엉켜있잖아요?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 여고생의 모습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연기된 여고생의 모습인지 관람자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마 이 부분을 느낀 관람자는 인식에 상당히 혼란을 느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객의 혼란을 혹시 기대하고 작업하셨는지요?
오 : 관객에게 기대했다기보다는 일단 제 자신이 그 부분을 흥미로워 하죠. 저도 예전에는 그런 성향이 있는 줄 몰랐어요. 제 공식적인 첫 작품이 「미국인 그들(Uncertain Presence)」이었는데, 그 작품의 초기 아이디어는 상당히 단순한 거였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미국인들을 보고 느낀 것은 우선 '미국인들은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구나.'였습니다. 그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영화 속의 조연이나 단역배우처럼 옷을 입고, 영화배우처럼 실없는 농담을 하고 그러더군요. 허구인 영화가, 영화 속의 허구의 인물들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영화 속 인물을 흉내 내고 있는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얼마나 미디어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내가 보여주겠다. 길거리에서 존 웨인, 게리쿠퍼, 케빈코스트너를 찾아내겠다. 얼마나 영화나 TV드라마에 빠져 있는지 보여주겠다. 그런 거지요. 나중에 제 작품을 쭉 보니깐 꼭 의도한 건 아니더라도 어디까지가 진짜냐, 가짜냐에 대한 저의 관심사가 담겨 있더라구요. 그리고 진짜, 가짜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느끼면서 작업했던 ‘광주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작업하면서 스스로 웃기더라구요. 정말 리얼리티라는 것이 무엇인지….
김 : 갑자기 세상이 생경하게 느껴졌겠군요.
오 : 그렇죠. 그 이후 아줌마와 여고생 작업을 하면서 진짜, 가짜에 대한 고민은 없어졌어요. 오히려 모든 것이 다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한 5, 6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들 사이에서나 작가들 사이에서도 다큐멘터리와 저널리즘과의 차이는 무엇이냐, 진실된 것과 사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얘기가 많았었지요. 그때만 하더라도 흑백논리가 지배할 때였고,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얘기가 오갈 때였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 : 네. 중요한 건 구분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의 경계 사이에 있는 잘 드러나지 않는 섬세한 결들을 보는 눈이 중요한 것이지요. 인간의 사태 인식은 언어에 의해서 지배받기 때문에, 사태의 섬세한 결들을 잘 포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중요한 건 사이와 틈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 딱 부러지게 구분해서 생각하면 생각하기는 편하죠.
오 : 그러고 보니 이번 「소녀 연기」처럼 「아줌마」 사진도 「아줌마 연기」라고 했으면 더 적절한 제목일 수도 있었던 것 같네요. 하하….
김 : 그렇죠. 사실 아줌마들도 나름대로 연기한 것이라 볼 수 있으니까요.
오 : 저처럼 사진이 전면성을 갖고 있고, 게다가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경우 모델이 연기를 안 할 수가 없지요.
김 : 사실 누구나 카메라 앞에서는 조금씩 연기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찍히고 싶다’는 모델의 욕망이 있으니까요. 모델이 카메라를 보고, 찍히는 것을 알고, 또 어떻게 찍히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상태에서 촬영을 하는 경우 사진에는 모델과 작가간의 묘한 갈등이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특히 작가의 욕망이 모델의 욕망과 일치하지 않을 때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모델이 카메라를 응시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이미지로 사진이 나왔으면…,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그 모델의 연기를 찍는 것이 되어버리지요. 이미 모델은 연기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바로 이러한 사실 자체를 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예쁜 여자의 사진을 보면 사람들은 ‘이 사진의 여자는 예쁘구나.’ 하고 느끼겠지요. 그런데 선생님의 사진을 보면 ‘이 여자는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구나.’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모델의 욕망에 가장 반하는 사진을 찍는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메타적인 시선이 작품에 드러나니까 말이에요.
오 : 특히 이번 사진에서는 그런 면이 좀 강하죠.
김 : 네. 아줌마 사진에서 그것이 미묘하게 드러났다면, 이번 여고생 사진에서는 좀 더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드러내기 방식이 거칠고 직설적이어서 감정이입을 강요하는 듯한 사진을 보면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더군요.
오 : 재미가 없지요. 자칫 신파가 될 소지가 있지요.
김 : 제가 오형근 선생님의 거리 두기 감각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거리 두기가 작품에 긴장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거리 두기를 잘못하면 사진의 긴장이 확 떨어지게 되는데 선생님의 사진에서는 거리 두기가 사진이 갖고 있는 미학적 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 : 거리 두기 이야기가 다시 나와서 말이지만, 사실 제가 분명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저 나름대로 진실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스의 사진을 보면 정말 거리 두기의 감각이 돋보이죠. 아버스도 분명 거리 두기를 유지하고 있고 또 진짜와 가짜가 왔다 갔다 하는 부분도 사진에 존재하지만 그 사람 사진에는 상당한 진실성이 들어있습니다. 아마 한 5, 6년 후에는 저도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버스와 비슷한 코드를 갖고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저한테 과연 아버스와 같은 진실성이 어느 정도 있는가, 하는 고민이요.
아줌마시리즈 中 '호랑이 무늬 옷을 입은 아줌마'
소녀연기 中 '윤진선 18세'
작품의 형식과 오리지널리티
김 : 아버스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입니다만, 오형근 선생님의 사진은 형식상의 유사점 때문에 아버스의 사진과 상당히 자주 비교되어서 이야기되곤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줌마 사진이나 여고생 사진에 대해 70년대 초 해외에서 유행했던 도감사진을 한국에서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가지고 있지요. 아마 자신의 사진이 아버스나 해외에서 유행했던 도감사진의 단순한 반복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작가로서 상당히 불만일 듯싶은데, 아버스의 사진이나 외국에서 유행했던 도감사진과 선생님의 사진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 : 물론 외견상으로 보기에는 유사하겠지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마도 사진의 형식이 유사하기 때문일 겁니다. 가령 전면성이나 플래시 사용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런데 사진의 형식만 갖고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말한다는 건 좀 문제가 있지요. 인물사진을 찍을 때는 어떠한 인물 군을 선택했느냐, 그 인물 군을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또 그 인물이 카메라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담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그 부분에서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형식만 가지고 작품을 규정지어 버린다는 건 일종의 폭력이죠.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예요. 제가 1993년도에 「미국인 그들」이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를 했었는데, 그 사진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아버스 사진과 비슷한 점이 많았을 겁니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 전시는 정말 패배전 이었지요. 전시기간 내내 관람객이 서른 일곱 명밖에 안 왔으니까요. 그 관람객들에게서 유일하게 들은 말이 딱 두 마디였어요. 비아냥이 섞인 말투로 “프린트는 잘 하는구만.”하고 “자네 그런데 아버스라고 아는가?” 그 두 마디였습니다. 입자가 크고 화각이 기울어져있으면 로버트프랭크 베낀 것이고, 이상한 사람이 하얀 배경 앞에 서있으면 리차드아베돈 베낀 것이 되는 건 아니죠. 예전에는 좀 민감하게 반응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말들에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실 저 스스로는 아버스와 제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버스를 반이나 따라갈 수 있을까 생각하죠. 전 아버스를 존경하고 있고 아직도 아버스 사진집을 종종 꺼내어 보곤 합니다. 그리고 아버스 사진과 제 사진을 비교해 보자면 아버스 사진은 제 사진보다 훨씬 날 것입니다.
사진에서의 연출 혹은 디렉토리얼 모드
김 : 저도 아버스 사진이 훨씬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스보다 오형근 선생님의 사진이 훨씬 세련된 사진이지요. 아버스의 사진이 자동 카메라로 플래시 터트려서 어떻게 보면 막 찍은 듯한 느낌이라면, 오형근 선생님의 사진은 촬영에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드러나지요. 하지만 아버스 사진의 그 날 것 같은 느낌은 아버스의 의도나 연출과 완벽히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스가 촬영하는 대상은 그러한 날 것 같은 느낌이 굉장히 잘 어울리지요. 오형근 선생님의 사진은 아버스 사진보다 작가의 연출이 좀 더 보이는 사진이고, 그래서 아버스 사진이 더 날 것 같은 느낌을 주지요.
오 : 연출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신문이나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하려 온 기자들은 대부분 “어디까지 연출하셨어요?” 하고 물어 보더라구요. 사실 사진에서 ‘연출’이라는 말은 상당히 미묘한 것입니다. A.D. Colemann이라는 평론가가 쓴 「빛 읽기」(Light Reading)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directorial mode’ 라는 말이 나와요. 번역하자면 ‘연출방식’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만….사진가가 할 수 있는 연출은 소나무나 산을 찍을 때하고 인물을 찍을 때하고는 굉장히 다른 것이죠. 소나무나 산을 찍을 때는 프레임이나 빛의 선택이나 톤의 선택 등이 연출이 되겠지요. 사람을 찍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을 찍을 때는, 가령 응수 씨를 찍는다 할 때, 응수 씨를 사진에 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촬영자에 대한 응수 씨의 반응을 담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가 응수 씨를 처음 만나자마자 존대 말, 반 말 섞어가면서 “어이 응수. 한 번 찍어 봅시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히 무슨 반응이 있을 겁니다. 그럼 사진에는 그러한 반응이 찍히는 거지요. 또 만약 무언으로 만나서 담담하게 “사진 찍죠.” 하면서 감정의 결을 안보이고 사진을 찍는다면 또 다른 반응이 나오겠죠. 종종 사람들은 사진가가 모델을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찍는다’는 말보다는 ‘담는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델을 찍는다기보다는 모델의 저에 대한 반응을 담는다고 생각해요. A.D. Colemann이 ‘directorial mode’ 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죠. 내가 입는 옷, 내 냄새, 내 말의 억양, 내 나이,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 등이 앞에 있는 모델을 조정할 수 있는 거죠. 저처럼 20여 년 동안 인물사진을 정면에서 찍어온 사람이라면 앞에 있는 모델을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반응이 나오도록 조절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렇게 파고 들어가면 도대체 연출이 어디까지냐 하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물사진에서 연출은 간단히 여겨질 문제는 아니지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연출, 그러니까 포즈는 어떻게 취하게 했느냐, 고개를 기울이라고 했느냐 숙이라고 했느냐 하는 건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사실 연출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정도의 연출이지요. 연출의 기본적인 의미를 떠나서 미학적인 의미를 따져본다면, 좀 전에 이야기했던 진실과 허구의 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과연 어디까지가 연출이냐는 문제가 또 다른 게임 중에 하나가 되겠지요.
김 : 이번 전시 작품은 전부 디지털 프린트더군요. 특별히 디지털 프린트로 작업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오 : 디지털 작업은 예전부터 꼭 한 번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고생 사진의 이미지는 고급스러운 화이버 인화지와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인화지 표면이 반질반질한 RC 인화지로 할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이전부터 디지털로 한 번쯤은 작업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디지털로 작업하게 된 거죠. 남들은 디지털 프린트가 손쉬운 것 인줄 알지만 정말 아닙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제가 직접 암실에서 작업하는 것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시간도 덜 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 : 예전부터 영화 포스터 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스터를 보니 꽤 유명한 영화들이더군요. 최근 작업은 「태극기 휘날리며」이던데….
오 : 보통 때는 사실 블록 버스터 영화 같은 건 잘 안 하는데, 작년에는 개인적으로 돈 들어갈 일이 많아서 틈틈이 닥치는 대로 일을 많이 했죠.
김 : 영화 포스터작업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지는 않나요?
오 : 많이 얻지요. 그게 또 그 일을 못 놓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사실 「광주이야기」도 영화 포스터 때문에 하게 된 작업이니까요. 「아줌마」도 영화 포스터 찍으러 갔다가 일련의 아줌마 연기자들을 보고 ‘저 아줌마들은 왜 아줌마들이 아줌마 연기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된 거구요. 이번 「여고생」도 처음에는 거리의 여고생을 찾아 다녔는데 연예연기학원에서 여고생들을 보고서, 소녀가 소녀를 연기한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작업하게 된 것이지요. 돈을 떠나서 저한테는 상업 작업이 제 작업에 영감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까지 놓지 않게 될 것 같아요.
김 : 선생님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기도 합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작가로만 활동할 때보다는 교수가 되고 나서의 작품 발표가 좀 뜸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집중도가 좀 떨어지지 않습니까? 작품 활동과 교수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오 : 이번 「여고생」작업은 여름에만 찍긴 했습니다만 3년 걸렸습니다. 사실 작업에만 몰두했다면 빠르면 1년, 늦어도 2년 정도면 끝낼 수 있었던 작업이었지요. 가르치는 일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솔직히 상업사진 하는 재주는 있으니까, 교수라는 직업이 제 생활을 지탱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만 둘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만, 상업사진에서 제가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끌어오듯이 학생들의 사진이나 학생들의 행태를 보면서 제가 얻는 것도 많습니다. 이번 「여고생」 작업도 제가 젊은 친구들과 계속 접하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상업사진을 하다 보니까, 또 그 나이 또래의 젊은 친구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까 그들의 욕망을 알겠더라구요.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녀연기 中 '한진희 18세'
여고생사진에서 드러나는 미시권력의 모습
김 : 이번 「여고생」은 이전의 작업들과 비교해 볼 때 대상을 보는 사회학적인 시각이 눈에 띄더군요.
오 : 미디어의 영향으로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가 그 나이 또래의 시기이고, 미디어의 욕망이 소녀들의 욕망에 반영되는 시기가 그 때이기도 하지요. 제 생각에 여고생 시기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기입니다. 아줌마는 여고생이 갖고 있는 그런 불안함은 없지요. 여고생 시절은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은 시기이고 정체성 형성에는 미디어든 어른의 욕망이든 뭔가가 개입하게 되지요.
김 : 제가 보기에 선생님의 사진은 유형사진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사실 유형사진이 아닙니다. 무슨 여고생이 하나같이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겠어요? 똑같은 옷을 입혀놓은 여고생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일종의 미시권력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 합니다. 푸코가 잘 정리한 것처럼 권력은 억압적으로 행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즉 권력은 여고생에게, “너 여고생은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이어야 하고, 너는 처녀여야 하고 순진한 여자여야만 해!” 라고 억압적으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력은 여고생이 “아, 나는 청순하고 처녀이고, 착한 여자가 되어야지.” 하고 스스로 마음먹게끔 하지요. 즉 ‘나는 여고생’이라는 주체성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고생의 이미지는 철저히 외부에서 오는 이미지이죠. 그러니 이 주체성은 타자에 의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에 가장 은밀하게, 가장 영향력 있게 작동하고 있는 미시권력의 모습입니다. 선생님이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은 ‘소녀’입니까? ‘여고생’입니까? 소녀를 여고생이게끔 하는 ‘외부적 힘’입니까? 아니면 이 모두가 빚어내는 그 무엇입니까?
오 : 설마 그냥 소녀를 찍은 거라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지요? 교복을 입은 여고생의 모습에는 말씀하신 모든 게 스며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보면 여고생들이 교복을 전부 하복으로 입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전 하복이 여고생을 정말 잘 표현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동복은 꼭 제복이나 군복처럼 형식적이고 규정적인 성격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흔들리는 정체성, 불안한 정서의 여고생은 그런 꽉 짜여진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당히 피부가 드러나고 적당히 자유로운 느낌이 들지만 그러면서도 바깥의 법칙을 강요하는 느낌이 남아있는 하복이 여고생을 잘 표현해 준다고 생각했지요. 하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미시권력의 모습과 여고생이 가지고 있는 불안함, 흔들림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전 개인적으로 나쁜 나라일수록 미시권력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시적인 권력이나 폭력보다 잠재적으로 작동되는 권력이 많은 나라가 나쁜 나라지요.
사진의 표면성과 표면의 미학
김 : 오형근 선생님의 사진을 보면 표면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표면을 정말 잘 다루는 작가일 뿐 아니라 표면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표면은 껍질에 불과한 것이고 본질적인 것은 내부에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그릇된 고정관념이고 본질주의적인 사고방식이죠. 과거에는 이러한 생각 때문에 사진이 다른 예술에 비해 수준이 낮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일차적으로 직접적으로 표면을 드러내는 일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바로 그러한 사진의 ‘표면성’이 사진에게는 가장 커다란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깊이는 중요하죠. 그러나 이 깊이는 은폐되어 있는 비밀,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진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깊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표면에서 깊어지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전 표면과 본질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본질이 이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Blow Up」을 보면 살인사건의 모든 열쇠는 은폐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진에 있었죠. 이미 표면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주인공은 사진을 확대(blow up)하는 과정에서 사진의 표면에서 사건의 본질을 발견하게 되죠. 중요한 것은 은폐되어 있는 진실, 늘 비밀인 채로 해석을 기다리는 본질이 아니라 이미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본질은 표면에서 나오죠. 그렇다면 표면을 어떻게 드러내느냐, 어떻게 표면에 깊이를 주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선생님께서는 냉정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표면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사진의 깊이는 ‘무 깊이의 깊이’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벼운 듯,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 어떤 심오함도 담기지 않은 듯 시침 뚝 떼고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죠. 그러나 바로 거기에서 사진의 깊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선생님은 사진의 표면성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작업을 하십니까? 거리 두기는 사진의 표면성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오 : 사진에는 뒷면이 없지요. 사진은 표면이 전부입니다. 사실 사진만 그런 건 아니지요. 이번 여고생 사진에서도, 여고생이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연기를 하면 보는 사람은 ‘저 아이들의 영혼에 뭐가 들어 있을까?’ 라고 심오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냥 보이는 그게 전부일 수 있는 거예요. 전 표면만 잘 찍어도 내면을 건드리는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 사실 내면과 표면이 나눠져 있는 건 아니지요. ‘내면’, ‘표면’ 이렇게 단어가 나뉘어져 있으니까 내면이 따로 있고 표면이 따로 있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좀 전에 이야기했듯이, 진짜와 가짜가 서로 구분되지 않고 묘하게 엉켜있는 것처럼 내면과 표면도 그렇게 엉켜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 : 예전에 저는 트위스트 김과 아는 사이였고 또 그 분 사진도 찍고 그랬습니다. 그 분을 보면 쇼맨십도 강하고, 사람을 재밌게 대하려 하고, 또 스스로 대 배우인척 행동하려 한다는 것이 느껴졌지요. 그 분을 보면서 문득 문득, 저분의 파사드가 저렇다면 저분의 내면에는 얼마만큼의 슬픔이 있고 드러나지 않은 뒤안길이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만 나중엔 ‘아! 저분은 저게 다구나.’ 하고 생각되더라구요. 전 인물 사진을 찍을 때도 내면의 뭔가를 드러낸다는 느낌을 갖고 작업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 사진이 좀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사진에서 보이는 거리 두기도 그러한 태도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김 : 겉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사진이라는 느낌이에요.
오 : 그래서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사진이라는 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사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찍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죠. 가령 풍경사진을 찍는다 할 때, 풍경이 주는 느낌을 풍경에 드러나게 하느라 작가들은 대상을 어둡게, 혹은 아스라하게 표현하지만 사실은 그대로 찍어서 그런 느낌이 나와야죠. 그게 안 되니까 어둡게, 혹은 아스라하게 표현하는 것 아닌가요?
김 : 당연한 사진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그 사실 때문에 뉘앙스가 더 풍부해 질 수 있지요.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데로 당연한 것이 주는 초현실감이라던가, 당연한 것이 사진으로 보여질 때 느껴지는 ‘어떤 낯설음’이 존재하긴 하지만 잘못하면 아무 느낌이 없는 자료사진이 되어버릴 수가 있지요. 사실적인 것에서 느껴지는 낯설음은 오형근 사진에서 아주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선생님의 사진의 인물들을 보면 저는 영화 「바톤 핑크」의 인물들이 연상됩니다. 「바톤 핑크」는 묘한 낯설음이 계속 흐르는 영화이지요.
오 : 코엔 형제의 영화 중에 「바톤 핑크」와 「파고」를 저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분위기는 제 사진들의 인물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톤 핑크」는 마지막 부분만 빼놓고 본다면 정말 잘 만든 영화예요.
김 : 최근 사진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작년에 「동강사진전」만 보더라도 젊은 친구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선배 입장에서 이제 출발하는 젊은 사진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 : 소모되지 말고 스스로 소모하는 작가가 되라고 하고 싶네요. 사진도 어느 정도 유행이 있는 것 같아요. 한 작가가 주목받게 되면 우르르 그 쪽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말하자면 띄워주는 양상이 보여지죠. 작가도 그러다 보면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고, 보여지는 것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서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될 수가 있지요. 자기 자신이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외부가 동기가 되어서 작업을 하게 될 수가 있는 거지요. 자기 자신이 동기가 되어 스스로를 소모하는 작가가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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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및 정리 /
김응수
(사진비평 객원편집위원)글쓴이 김응수는 제5회 사진비평상 평론부분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사진비평, fotato.com 객원편집위원 및 사진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잘 읽었습니다.
Oh!
2007.06.27
오형근 작가님을 좋아하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인터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쓰인글인데 이제야 보게됐네요. 오형근 작가님의 사진세계를 명쾌하게 정리한 이 인터뷰를 보고 많은 공부를 하고갑니다.
[ 출판 ]
[출간]오형근 <중간인Middlemen>
2012.05.16
[ 특집 ]
2011 동강국제사진제 - 2011동강국제사진제스케치,`오형근`편
2011.08.12
[ 동영상 ]
오형근 개인전 `소녀들의 화장법 Cosmetic Girls
2009.01.08
[ 행사&세미나 ]
<불안, 불-안> 작가와의 대화 - 정주하, 강홍구, 오형근
2008.05.20
[ 행사&세미나 ]
오형근, 김용호 세미나 스케치
2007.07.11
[ 해외 ]
배병우 작품 판매가격 경신 - 뉴욕 소더비 경매 속보
2006.09.28
[ 뉴스 ]
오형근 교수의 포트폴리오 리뷰
2003.08.05
[ 사진관련협회지(AURA) ]
AURA 2002 No.9 - 여고생 - High School Girls (오형근 / 계원조형예술대학)
2000.01.01
오형근
소녀연기
오형근
Uncertain Presence
오형근
이태원이야기
오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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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근
아줌마
국내 최대의 사진전문 포털사이트인 아이포스 웹진에서는 각 미디어와 화랑의 전시담당자, 프로사진가, 전국의 각 대학 사진학과 교수 및 전공자, 미술계와 광고 디자인계, 출판 편집인,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인사, 국내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임원, 사진동호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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