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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아타 `영은미술관`
영은미술관 전경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영은미술관. 오랜만에 서울서 좀 먼 곳에서 인터뷰가 잡혔다. 이번 인터뷰 상대는 영국 ‘페이돈 프레스’가 세계 100대 사진가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한 김아타. 봄비가 내리는 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연초록 빛 세상을 가르며 그를 만나러 갔다. 비에 젖어 한 층 풋풋한 색채를 드러낸 수채화, 넓은 잔디를 지나 푸르고 무성한 잎을 단 수목 사이로 영은미술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원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나뭇잎에 쏟아진다. 사시사철 화려한 조명과 한껏 치장한 사람들로 들썩이는 대도시를 벗어나 모처럼 맛보는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미술관 안으로 들어간다.
바로 이곳 집단창작 스튜디오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만한 한국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11명이 예술 혼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김아타는 이곳에 입주한 유일한 사진가다.
"반갑습니다. 먼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네요." 환한 웃음과 걸걸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주는 김아타. 강한 카리스마 뒤쪽에 감춰진 섬세한 부드러움이 매력적이다. 손수 넣은 커피를 마시며 나눈 그와의 대화는 시종 유쾌한 그러나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지금 사진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사진으로 나갈 사람들을 위해서
현실적인 말씀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라며 말문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 예, 저도 이전부터 시간을 좀 내서 포테이토닷컴 인터뷰에 응하고 싶었는데, 계속시간이 나지 않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약간 감기 기운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나오게 되었구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매체에서 들어온 인터뷰 요청이라서 무척 반갑게 생각합니다. 오늘 즐거운 만남이 되길 바랍니다.
*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부터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타' 라는 이름을 쓰고 계시는데, 어떻게 해서 쓰게 되셨나요? 어떤 뜻입니까?
-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이름은 부모나 작명소 같은, 말하자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지지 않습니까? 저는 오래 전부터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스스로 확신이 선다면, 내 이름을 자신이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 와 동시에 '다른 사람'을 뜻하는 아타(我他)라는 지금의 이름을 쓰게 된 것입니다.
"제도와 규율을 가장 싫어해"
* 제 주변에도 최근 그런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띕니다. 호적상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지어 쓰는 친구들을 보면 다소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도 무정부주의자세요? (웃음)
- 무정부주의자라고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제도와 규율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하나의 관계 속에 설정하는 것, 하나의 틀 속에 가두는 것도 싫어합니다. 저는 욕망보다 더 욕망스럽게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자유는 엄격한 제어나 억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저는 강의를 할 때도 학생들에게 철저한 자율에 의한 자기 탐구, 자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저 분위기를 조성해줄 뿐이지요. 저의 생각이나 알고있는 것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행위는 한 인간의 개성이나 창조적인 가능성을 말살시킬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내부에는, 어떤 이름이 지어지고 어쩔 수 없이 그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정부주의라고 하면 어떤 비판적 개념이 들어갈 수 있겠는데, 저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 무정부주의자 보다도 더 하시네요?
- 그렇죠. 무정부주의자들보다도 더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죠.
* 헤어스타일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요? 왜 깎으셨습니까?
- 사람들은 머리를 삭발한 것과 불교와의 관계를 묻기도 하지만, 사실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저는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이데올로기 모두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손으로 직접 만져 보고 맛을 본 후에 스스로 느끼는 사람이지, 누가 "가라사대" 한다고 해서 그 말에 따라가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머리를 삭발한 것은 지난 97년, 「니르바나(涅槃)」 작업을 했을 때, 모델들이 머리를 깎기 전에 먼저 자신이 머리를 깎아본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다시 머리를 길러보기도 했지만 답답해서 계속 밀어버리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하나의 캐릭터처럼 되었구요. (웃음) 언젠가는 다시
기르게 될 지도 모르죠.
* 원래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진은 어떻게 해서 시작하시게 되었는가요?
- 너무나 자연발생적으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만일 내가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글을 썼을 겁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주로 글을 썼지요. 91년도에는 시집도 한 권 낸 적이 있죠.
돌아가신 아버님으로부터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또 제 자신 표현에 대한 욕구도 많았었구요. 대학에 가서도 전공 공부보다는 철학공부를 더 많이 했고, 동아리를 만들어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습니다.
* 평론가들이나 주위에서는 선생님을 '독특하다‘거나 '개성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선생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사실 저는 그런 얘기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은데요. 스스로를 독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독특하다면 어차피 하나일 수밖에 없는 나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독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사고가 서구적인 것에 많이 동화되어 있고, 그래서 동양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저를 독특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과자체 보다는 결과를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
* 작업실에는 혼자 계십니까? 작업실 환경은 어떤가요?
- 저의 최근 작업은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업실에는 자료를 챙기거나 할 때 오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들립니다. 연구동 (영은미술관)을 숙소로 쓰기도 하지만, 서울로 이사를 나왔기 때문에 그리 자주 이용하진 않습니다. 영은미술관 집단창작 스튜디오에는 작년 7월에 입주했습니다. 이곳 시설이나 입지가 좋은 곳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가들 작업에 필수적인 암실이 없습니다. 지금 바닥공사와 암실공사를 신청해 둔 상태인데요. 만들어진다고 해도 제가 여기 언제까지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혜택을 누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누군가 사진하는 후배가 이곳에 오게 되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나가려고 미술관측에 여러 가지 주문을 해놓고 있습니다.
*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8×10 대형 카메라로 작업을 하고 계시지요?
- 네. 저는 자동차에 항상 8×10 카메라 두 대를 싣고 다니는데,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그런 어려운 작업을 한다는 건 어쩌면 아이러닉한 일로 생각될 수 있겠지요. 화질의 문제만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더 단순하고 편한 방법으로도 그 정도의 기술적 성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8×10으로 하는 작업의 접근방식은 다른 카메라를 사용할 때와는 경우가 다릅니다. 저에게는 8×10이 더 신체화 되었다고 할까요, 정서적으로도 일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좀 불편해도 8×10을 사용하는 겁니다. 8×10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우수성도 높게 생각합니다. 결과 자체보다도 그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더 중시하고, 또 엄밀한 작업을 좋아하는 성격도 작용했을 거구요.
* 혹 디지털 카메라나 디지털 프린트도 사용하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은염사진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물론 디지털을 이용합니다. 메인 작업은 지금도 8×10 카메라를 고집하지만, 부수적인 작업이나, 작업을 보여주기 위한 스틸사진 같은 것은 디지털카메라로 찍기도 합니다. 제가 디지털을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시대는 이미 와 있다고 봐야합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상의 개념으로서의 디지털이 현실화되었다 뿐이지, 인간적인 개념에서의 디지털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글로벌 마인드나 쌍 방향성 자체 같은 것도 디지털적인 개념이고, 이러한 개념들이 물리적으로 실현된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오늘날의 은염사진은 고전적인 비은염사진 기법이나 빈티지 프린트와 마찬가지로 수공예적인 예술이 갖는 희소성 쪽으로 나갈 것이고, 어떤 거대한 흐름이랄까 주류로서의 역할에 관한 문제는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초기에는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하셨습니다만, 지금은 스트레이트 사진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요. 사진과 미술의 경계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사진과 미술은 그 경계 자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사진은 하나의 표현매체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방법론적으로의 사진이라는 얘기죠. 예술 장르간의 경계구분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사진이거나 다른 예술매체거나 간에 표현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도구로서의 매체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 이전에는 흑백으로 작업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뮤지엄 프로젝트」에서부터 컬러로 바뀌었지요?
- 네. 95년 전반까지 「해체」작업을 하면서 흑백으로 작업했습니다. 작년까지도 메인 작업이 아닌 때는 흑백으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만,「뮤지엄」이라는 프로젝트자체가 현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흑백보다는 컬러매체 쪽이 현실 존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흑백이라는 것은 색이 배제된 주관적인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컬러 역시 사실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흑백보다는 더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옷이 아닌 관념을 벗긴 것"
* 인물을 찍을 때는 모델의 내면이나 개성이나 용모를 그려내려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뮤지엄 프로젝트」같은 작업에서는 모델을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보다 하나의 오브제로써 표현에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데요. 이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 아니 퍼포먼스라기보다는 확대된 개념으로서의 거대한 이벤트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크게 나누면 예술행위가 있고, 그 예술행위 안에 행위예술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행위 예술은 이벤트나 퍼포먼스, 해프닝 등으로 세분화 될 수 있는데, 그중 퍼포먼스는 행위를 하나로 집약해서 고도의 예술적 언어로 나타낸 것입니다. 촬영하는 자체도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제 작업에 있어서도 퍼포먼스 행위 자체를 모델들에게 맡겨버리고 저는 촬영만 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들을 제가 통제하기도 하지만, 제가 느끼지 못한 부분을 모델들이 느끼고 가져가는 경우도 많구요.
* 벌거벗은 모델들을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넣고 찍은 작품들을 보고 사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모델들 스스로가 벗었다고 하기보다는 선생님의 어떤 카리스마적인 힘이 그렇게 하도록 작용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모델들에게 저항감 같은 것은 없었을까요?
- 아무런 동기도 없이 모델들이 옷을 벗는다면 그건 미친 짓 아닐까요? '예술 작업'이라고 하는 동기가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옷을 벗지 않았겠죠. 저는 제 자신의 역할을 사진가 이전에 전체를 총괄하고 연출하는 디렉터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그런 식으로 제가 동기를 부여했을 수 있겠죠. 그게 카리스마일 수도 있구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일탈의 욕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김아타' 라고 하는 동기를 만나서 옷을 벗었다고 볼 수 있지만, 옷을 벗는 것이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옷을 벗는 것과 옷을 입는 것은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저는 옷을 하나의 관념으로 보기 때문에 관념을 벗긴 것이라 생각하지, 모델들의 옷을 벗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항감이라고까지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옷을 벗는다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일상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폐쇄된 사적 공간이 아닌 장소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옷을 벗어버리면 편해지는 수도 있어요. 옷을 벗었다는 쑥스러움은 10초 정도 지나면 없어지는 거구요. 그때까지 체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들을 체험한다는 그런 점도 있지요. 91년부터 95년까지 「해체」작업을 했을 때는 모델들과 작업이 끝난 후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했어요. 그런 가혹한 체험을 통해서 자신도 상상치 못했던 에너지를 받았다고 토로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마 그런 남다른 체험과 감동은 그들이 살아가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번 「뮤지엄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한 스님은 그 작업을 함께 하면서 큰 공부를 했다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답니다.
뮤지엄 프로젝트 작업
* 알몸의 모델들을 투명한 상자 안에 넣는 행위는 필연적인 이유 같은 것이 있으리라 여겨지는데, 선생님의 작업 철학이랄까 컨셉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뮤지엄 프로젝트」에서는 각 시리즈 별로, 그때 그때의 주제에 맞게 알몸이 필요한 것은 알몸인 채로, 옷을 입는 것은 옷을 입는 형태로 다양하게 작업했습니다. 저의 작업에서의 알몸의 개념은, 'nude'라기 보다는 'naked'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사진에서 '알몸'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하는데, 그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기존의 '관념'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의 작업은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관념'을 벗기는 작업입니다. 「뮤지엄 프로젝트」라는 개념 자체가 사전적인 의미로서의 박물관을 해체하고, 사적인 '나'의 박물관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들 고유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박스'라는 것은 책에서의 밑줄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친 곳에 눈이 가게 마련인데, 길가의 조그만 돌멩이 하나에 박스를 씌워놓는다면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가게 되지요. 유리로 된 '박스'라는 것은 하나의 지시, 의미부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박스를 씌움으로써 그때까지 무의미했던 것들이 하나의 의미 있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가치가 있고, 또 가치가 있도록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저의 「뮤지엄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굉장히 실존주의적으로 들리는 걸요?
-네. 저는 철저하게 실존주의자입니다. 제가 부딪히고 해석한 것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사진으로 남겨 나가려고 합니다. 표현방법에서는 어떤 것에도 구애 받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구요. 비디오작업이라든지 어떤 다른 형태의 작업일지라도 그것이 제 표현에 적합하다면 이용할 생각입니다. 저는 자유로움을 추구합니다. 어쩌면 모순된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저에게 그 자유로움이라는 것은 신체나 정신적인 것, 이데올로기 등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욕망과도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제가 예술가로서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제가 남다르게 강한 그런 욕망을 갖고 있고, 또 그것을 표현해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사상가들이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자신들의 위대한 생각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뮤지엄 프로젝트 001, Series of field, 1995
뮤지엄 프로젝트 085, Sex, 2000
뮤지엄 프로젝트 149, Series of Nirvana, 2000
"내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밀고나가"
* 선생님은 한국에서 성공해서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기보다는, 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고 난 다음 국내에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진 경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글쎄 그건 보기 나름이겠는데요. (웃음) 아마 외국에서 인정하면 덩달아 같이 인정하려는 한국적 특성이 조금은 개입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에서 인정하기 전에도 나는 이미 '존재'했었다는 사실이죠.
* 외국에서 인정받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아무래도 2000년 「휴스턴 포토페스티벌」 참가일텐데요. 「휴스턴 페스티벌」 이후 작품세계도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느낌인데, 한국 사진과 세계의 예술시장의 차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세계시장과 한국시장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동아시아의 철학과 정서에는 분명히 서양의 그것에 비해서 우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밀고 나간 것입니다. 제가 아시아인으로서 가지는 정체성, 충만함을 작업을 통해서 표현했고, 세계시장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정당하게 평가해준 것 같습니다.
「휴스턴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중요한 평론가와 큐레이터들이 모일 정도로 큰 규모의 사진축제입니다. 그들은 한국의 이런저런 상황을 보지 않습니다. 오직 작품만을 볼뿐이죠. <아파추어>지에 실리게 되는 과정도, 편집장이 저를 뉴욕으로 불러서 제 작품을 싣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1년 3개월 정도 기간을 더 심의했습니다. 그 긴 심의를 받으면서,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이래서 이들이 프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것을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프로페셔널 시장에서 나를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시장도 제대로 몰랐던 제가 세계시장을 어떻게 알고서 그것에 맞추어 작업을 했겠습니까? 무엇을 예측하고 그들 기준에 맞추어 작업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작업을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사진이 가진 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
* 재작년인가요. 어느 인터넷 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뮤지엄 프로젝트」를 선생님의 ‘생명 그 자체'라고까지 표현하신 걸 읽었는데요. 아마 그 작업에 전 혼령을 쏟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제 1995년부터 시작된 뮤지엄 프로젝트」를 완결하고, 새롭게 「마네킹」 작업을 시작하신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어떤 작업입니까?
-「차이나 프로젝트」의 1차 작업은 끝났는데, 2차 작업은 중국의 서안(西安)에 있는 진시황의 '병마용'을 패러디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네킹 작업은 그런 작업의 일부이고요. 「차이나 프로젝트」는 「뮤지엄 프로젝트」와 「브로드캐스팅 프로젝트」의 중간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프로젝트인 「브로드캐스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꽤 많이 진척되고 있습니다.
* 「뮤지엄 프로젝트」는 만 6년이 넘는 대 작업이었는데, 이번 「브로드캐스팅 프로젝트」는 기간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죠. 지금 제가 세계를 해석하는 것과 다른, 새로운 세계가 올 때까지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저도 예상할 수는 없습니다.
*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장면에서 사진이 주류 매체로 떠오른 것도 오랜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진이 전례 없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사실 거품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세이기도 합니다. 모범답안이라 할 수는 없지만 세계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비엔날레'입니다.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작품 가운데 사진과 비디오를 포함한 영상매체의 비율은 50% 가까이나 됩니다. 사진이 오랜 시간 동안 대세를 얻어가고 있었고, 여전히 강력한 표현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회화는 죽었다' 라고 반응이 있었습니다만, 실은 사진은 오래 동안 '회화의 시녀'나 '제2의 회화' 쯤으로 여겨져 왔던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80년대 이후로는 오히려 사진이 미술을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돕니다. 기록이나 표현에서 사진을 능가하는 매체가 나올 때까지 사진은 주도적인 힘을 유지하리라고 봅니다. 사진 자체가 가진 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소 거품적인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그런 세계적 추세에 맞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 사진을 능가하는 매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 당장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데 지금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진의 주도적 힘이 적어도 15년이나 20년쯤은 갈 것이라고 보자는 겁니다. 지금의 20년은 아마 이전 세기의 80년의 세월과 맞먹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사진은 원래 갖고있는 힘의 몇 분의 1 정도도 아직 발휘되지 못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사진을 능가하는 매체의 출현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사진을 이용해서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전개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새로운 작업들도 아직까지 발현되지 않은 그런 사진의 힘을 끌어내는 작업들이 될 것입니다.
*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사진이라고 하는 제한된 영역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어떤 근본적이고 커다란 세계를 잠시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겐 아주 충실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인터뷰 내용을 읽는 네티즌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포테이토닷컴은 성공한 사진가로서 앞으로 세계 무대를 지향하는 젊은 사진가들에게 어떤 철학과 전략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질문했고, 김아타 선생님은 이메일로 그 답을 보내왔다.
▣ 김아타가 젊은 사진가들에게 보내는 메세지
"우리는 신화의 주인공"
나는 인간이 만든 모든 역사는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화의 주인공들이며, 오늘도 그 신화를 부수면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관조하며 슬퍼하고 몰입하며 자신을 잊고 해체(deconstruction)하며 역사를 생산합니다. 과거는 흘러갔으며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고 현재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어려운 말인가요? 신화의 주인공인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요? 하지만 언제나 주인공은 죽지 않고 스팟라이트를 받습니다.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글로벌시대의 예술은 복제인간 홍길동 같은 60억의 주인공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주인공이 단선적이며 획일적이었다면 디지털시대의 주인공은 다층적이며 다의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인공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인공이라는 절대의 축복을 자신들에게 보내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철학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일을 대신 해 주지 않습니다.
성공의 조건이 무엇인지 모호하지만, 세계의 현대미술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우리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즐겁고 축복 받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머니 자궁을 빠져 나오는 순간부터 자기만의 고유한 목소리와 이미지와 정체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들어내는가 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자신이 해석한 세계를 드러내주는 매체로 사진은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기를 사용해서 어떻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것인가, 전략의 문제일 것입니다. 세상을 크게, 그리고 멀리 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서양 철학과 서양미학은 이미 소진되었고 그 대안으로 동양사상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나는 자주 '아용아법(我用我法)'을 말합니다. 자신의 법을 사용하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이야기일까요? 건방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연스런 행위입니다.
김수근은 "새로움은 상식 밖에서 일어나 상식으로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결국은 감성만을 자극하는 작업들을 하게 됩니다. 흔히 코드를 맞추려 합니다. 나는 다른 생각입니다. 작업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지혜롭게 하는 축복을 나는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글로벌리즘은 빠르게 달리는 인터넷 속도처럼 인간 나이테 간격을 동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함정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남과 같아선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염랑거미가 새끼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면서 다가올 본능적인 두려움을 예견하고 벼 잎을 꺾어 동여매듯이, 배수의 진을 치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가지 체험을 하고, 만 번을 사유하라'고 말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의 맥을 잡고 끝없는 투쟁을 하면 담론은 생산되고 새로운 개념은 물 흐르듯 넘쳐납니다. 그것은 무엇이든 아우를 수 있으며 끝없이 전이됩니다. 이것은 훈련으로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진은 현전(現前)하는 매체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매체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상파울로 비엔날레 포스터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16대 대통령 취임식 작업현장
2000 휴스턴 포토 페스티발
영은미술관 전시
영은미술관 전시
영은미술관 내부
연구동
작업실
작업실 내부
김아타와 사진기
취재/ 전경헌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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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김아타 특별전
2009.03.11
[ 출판 ]
김아타, 뉴욕 스케치 & 인디아 스케치 동시 출간
2008.05.23
[ 행사&세미나 ]
김아타 강연회 <아용아법_공기놀이> 스케치
2008.05.06
[ 사진계동정 ]
‘제6회 동강사진상 국내부문 수상자’로 김아타(51)를 선정
2007.06.03
[ 행사&세미나 ]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 김아타 세미나
2007.05.22
[ 해외 ]
배병우 작품 판매가격 경신 - 뉴욕 소더비 경매 속보
2006.09.28
[ 해외 ]
ATTA KIM 뉴욕에서 대형전시
2006.05.19
[ 행사&세미나 ]
아타 워크샵(ATTA WORKSHOP) 개최
2005.11.26
[ 행사&세미나 ]
출판 기념회/ 김아타 아파추어 사진집
2005.04.25
[ 출판 ]
김아타 /「THE MUSEUM PROJECT」
2005.02.17
김아타 Atta Kim
프로젝트 차이나
김아타 Atta Kim
김아타 사진전/On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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