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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황규태
사진가 황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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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일시 : 2004년 3월 30일 오후 3시
장소 : 갤러리 인, 오후 3시
발의 : 이영준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
수많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요즘의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보고 그것을 만들어낸 작가는 아마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추측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전시를 통해서 감상자에게 보여주는 작품이 그 작가의 단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황규태가 참가한 어느 전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좁은 공간의 특성상 여러 명이 작품을 감상보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엿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의 사진을 관람하던 몇몇의 젊은이들이 작품 가까이 다가가서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멀찍이 떨어져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나눈 대화가 지금도 생생하다.
'젊은 친구가 저런 큰 작업을 어떻게 감당하지…'
황규태의 작업은 에너지가 넘쳐흐르지만 결코 ‘젊은 친구’는 아니다. 쉬지 않고 내놓는 작업, 새로운 시도, 의외로운 전시형태 등, 이력을 살펴보기 전에는 도저히 나이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작가인 것은 틀림없다. 리뷰에 앞서, 그에 대한 간략한 이력을 적어둠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1938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 중학교 때 선물로 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했다. 고교시절에는 자기 방에서 암실작업을 할 정도로 일찍부터 본격적인 사진의 길로 들어섰다. 동국대 학보사 사진기자 시절
라는 잡지에 보낸 사진이 입상한 적이 있고, 당시 국내에선 가장 진보적인 ‘현대사진연구회’에 멤버로 참가하기도 했다.
1960년대, 고 임응식(1912-2001) 선생이 제시한 이른바 생활주의 리얼리즘사진에 대해서 ‘심정적으로는’ 공감하고 있었으나, 그 자신은 회화주의나 현대사진의 새로운 경향 쪽에 더욱 경도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대학 졸업 후, 신문사에 들어가 3년 동안 사진기자(경향신문 1963-65년)를 했다. 그러나 기자생활에 행복을 느끼지 못한 그는 결국 직장을 털고, 작가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슴에 안고 미국에 가기로 작정한다. 그곳에서 그는 헐리웃 스튜디오 안에 컬러사진현상소를 차려 생업을 꾸리는 한편, 자신을 위한 컬러사진 작업에 몰두한다. 이 무렵, 세계적인 풍경사진가인 앤셀 애덤즈와 가까이 지내는 에드먼 테스키의 권유에 따라 UCLA의 사진 특별과정(Extension Course)에 들어가 정식으로 사진을 배웠다. 생소한 생활환경과 그곳에서 경험하는 이질적인 사진 개념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트레이트한 사진의 방법론을 버리고, 자신의 독창적인 사진 스타일을 형성시켜나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미국에서도 사진가로서의 역량을 평가 받는데 성공하게 된다.
1973년에 열린 국내에서의 그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는 미국생활 이후의 그의 사진적 변모를 감지할 수 있는데, 특히 60년대 이후 미국사진의 주류 경향으로 대두된 문명 비판적인 시각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일련의 작품 군을 선보였다. 이들 작품은 당시 미국의 사진풍토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젊은 이방인에게 강렬한 지적 정서적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는 지금까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방식을 지양하고 개인의 내면을 조명한 초현실주의적 경향의 작품세계를 추구해 나오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몇 차례의 큰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과 작품활동을 병행해왔지만, 한국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올림픽이 열린 이듬해인 1989년 이후부터이다. 1991년도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이래 여섯 번의 개인전과 ‘관점과 중재’, ‘사진, 오늘의 위상’, 광주 베엔날레- 삶의 경계’, ‘미명의 새벽’ 등 굵직한 전시들을 통해서 미래적인 가공의 세계과 현실을 넘나드는 듯한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전시장 스케치
배울 것 많은 전시
새침때기 아가씨처럼 앙탈을 부리던 날씨가 풀리고, 전시장을 찾아가는 경복궁 길의 햇살과 바람에서는 이미 완연한 봄의 냄새가 난다. 오랜만에 촬영을 접고,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황규태 사진전 <떠도는 것들에 대하여>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 인(IHN)을 찾았다. 청와대 입구의 사간동에 위치한 갤러리 인은 1층 전시장이 높낮이가 다른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고, 각 공간의 넓이와 높이도 달라서, 다른 크기와 다른 형태의 작품을 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출입구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왼쪽 편에 있는 전시장은 비교적 작은 크기(그래도 50∼90cm 정도 되는)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천장이 높은 오른쪽 공간에는 3∼5m 크기의 초대형 작품들로 흰 벽면이 가득 채워져 있다. 좋은 작품은 좋은 공간과 잘 어우러질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 작품 자체도 그렇지만 이번 황규태의 전시는 전시 형태에서부터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은 물론 전시를 앞둔 젊은 작가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대 작가인 황규태 선생님을 인터뷰한다는 것이 작가 초년병인 나로서는 내심 버겁게 생각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포테이토웹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궁금한 점을 여쭤보기로 했다.
표현주의 사진의 선구자
우선 현재의 황규태라는 작가를 읽기 위해서 그의 초기의 작업경향을 살펴본다. 보통 황규태, 라고 하면 ‘부엉이 사진’(「Untitle 1969」)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주황색 딱정벌레 비틀 운전석에 커다란 부엉이가 앉아서 앞쪽을 노려보는 그 작품은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사진가로서의 황규태라는 이름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1960년대의 폐쇄적인 사회와 문화적 상황과, 리얼리즘과 아마추어리즘이 판을 치던 당시의 한국 사진 현실에서 그런 초현실적이고 심리적인 황규태의 작품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2차 대전 후, 일본에서는 도몽 켄을 중심으로 사진의 기록성과 리얼리즘이 사진계를 주도하고 있었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한국전쟁을 치른 한국에서도 같은 경향의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다. 황규태는 당시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전시들을 보면서, 왜 사진이 한결같이 외부 세계에 드러나는 현실만을 보여주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느끼게 된다.
1973년, 그가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몽타주, 이중노출, 콜라주 등 추상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작품들은 미술 쪽에서의 우호적인 반응과는 달리 사진계로부터는 “그건 사진도 아니다.”라는 거센 비난까지 받게 된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육명심은 “치밀하게 계산된 특수기법을 구사한 주관적인 사진으로, 리얼리즘의 타성에 젖은 사람들의 편협성을 일깨워 줬다.” 라고 황규태의 작품을 평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편 「한국현대미술사 - 사진, 1978」) 육명심의 앞을 내다보는 눈이 돋보인다.
그는 이렇게 초기에서부터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찍은 사진들을 다양한 암실기법 등을 구사해서 재구성함으로써,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작가 내면의 초현실적인 세계를 다루는 독창적인 표현 스타일을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황규태의 작가적 성향은 미국의 현대사진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 한층 폭과 깊이를 획득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작가로 사진 쪽에서는 제리 율스만(1934∼ ), 그리고 미술 쪽에서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를 꼽는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을 여쭤보았다.
전시장도 빌리고, 작품을 이렇게 큰 사이즈로 만들려면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크지 않습니까.
- 전시공간은 화랑에서 제공해주었고요. 집사람이 L.A.에서 지금도 컬러현상소(KT Color Lab)를 하고 있어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 말고는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시는지요?
-가까운 사람들과 가끔 오프로드 자동차 여행을 즐깁니다.
사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웃으신다. 그는 평소 많은 양의 사진을 찍는다. ‘같은 것을 많이 찍어 놓으면 작업의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를 줄 수 있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기도 하지요.’ 라고 한다. 그는 실제로 필름 자체를 태워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황규태 (사진가)
마술적인 세계
그는 최근에는 사물에 대한 이미지의 증폭을 시도하고 있다. 1998년 금호미술관에서 개최된 「원(原) 풍경 - 도큐먼트」에서는 그 특유의 ‘낯설게 하기’로그의 사진세계의 면모를 더욱 선명하게 떠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알약과 곡식 같은 작은 물체를 터무니없이 거대한 이미지로 확대해서 생명과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거나, 유리판에 흩뿌려진 미세한 물방울들을 우주적인 스케일로 확대시킨 작품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전처럼 스트레이트하게 찍은 사진을 소재로 해서 2차적인 이미지들을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표현의도를 정하고 그에 적합한 소재를 찾아서 촬영하고,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으로 작업의 경향이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젠가 김승곤은 그의 작품세계에 관해서 “사물의 불합리한 질서에 의해 창출된 그의 세계는 시적인 쾌감을 유발하지만, 그것은 도착된 미에 대한 쾌감이며 불가능한 마술적인 공간이다.’ 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지만, 황규태는 미시적인 세계를 들여다보거나 낯설게 하기의 효과 등을 통해서 비일상적이고 마술적인 세계를 출현시킴으로써 일상적이고 관념화된 현실을 뒤집고 그 안쪽에 있는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를 일관되게 보여주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동안 그가 발표한 많은 작품들로 볼 때 그가 사진을 찍는 일보다, 찍은 다음의 후반 작업을 즐길 것이다 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기자에게 대뜸 책자를 보여주며, “이런 사진들을 찍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라고 한다. 그 사진집에는 아무 곳에나 피어있는 평범한 꽃, 나무 같은 평범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 줄기차게 환경문제, 현대문명, 도시의 미래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을 통해 염세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준 황규태가 이런 평범한 사진을 찍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니... 그가 내민 사진집을 닫고 고개를 드는 순간, 그의 눈가의 잔주름에서 피어나는 미소와 30분 전에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폴로 모자에 남방 위로 아무렇게나 스웨터를 걸친 그는 때묻지 않은 60대의 소년이었다. 피터팬 같은...
사진가 황규태씨와 전시장
참고문헌
<한국사진가론> 조우석, 눈빛
<사진예술개론> 한정식,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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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박진영
Area.Park (사진가, 포테이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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