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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한 교수
개인전 오프닝으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에 몰렸다. 이주한 교수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싸늘한 바깥 날씨와는 달리 뜨거운 열기로 달구어진 갤러리 룩스에서 전시작가 이주한 교수를 만나보았다.
정말 많이들 오셨습니다. 서있을 자리가 없고 너무 더워서 계단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오사카예술대학의 모로오카 교수께서는 이 전시 때문에 일부러 나오셨다고요? TV에서 자주 보는 연예인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평소 선생님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보는 것 같아서 부럽습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웃음)
이주한 (국립순천대학교 교수)
- 저도 그렇게 많은 분들이 와서 축하해 주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몇 년간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살고 있었던 탓으로 여기 계신 분들과는 그다지 빈번하게 교류를 갖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특별한 비법이나 요령 같은 것은 모르는 사람이고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신 것은 저보다는 오히려 그분들의 고마운 마음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로오카 교수님은 저의 일본 유학시절 은사님이셨습니다. 박미경, 표인봉, 배동성 씨 같은 연예인들은 서울예대 국악과 출신인제 처와 친한 친구들이고, 또 저의 든든한 후원자들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 고마움을 다 갚아 나가려면 한국과 일본, 순천과 서울 왕복 비행기표 값을 얼마나 들여야 할까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웃음) 오프닝 날에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린 분들도 많은데,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서나마 참석해주신 모든 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고요, 특히 저를 초대해주신 갤러리 룩스의 주경하 관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지형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풍경사진 작업
지난번 ‘남도’와 ‘다도해’展에 이어 이번에도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을 작업하셨는데, 주로 남부지방을 필드로 하시는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습니까?
- 대부분의 작가들은 각자 자신의 메인 프로젝트와 서브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 ‘남도’작업은 제가 가장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메인 프로젝트이고요, ‘다도해’는 서브 프로젝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도해’는 제가 순천에서 교편을 잡고있어서 비교적 작업하기가 용이하다는 환경적인 이유가 큽니다. 지금까지 다도해 일대의 풍경이 관공서의 홍보용 사진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을 보고, 3년 정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려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서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이미지를 새로이 찾아내고 해석하고 그것을 널리 알림으로써, 제가 구사하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효과를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환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겁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저의 서브 작업으로써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접근했고, 3년 정도면 웬만큼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작업을 해나가면서 3년이라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숫자로만 해도 다도해는 공식적으로는 1780개의 섬이 널려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2,200개가 넘는다고 하니까요.
메인 프로젝트인 남도시리즈는 제가 남도에 살고 있어서 하고 있는 작업은 아닙니다. 저는 지형학적인 관점에서 풍경사진에 접근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아마 제가 고등학교 때는 사범대학의 지리교육과를 지망했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를 꿈꿀 정도로 그쪽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사진으로 이어지면서, 풍경사진을 하면서 지형학적인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셨군요. 지리교사가 되려고 했다는 말씀은 의외입니다. 그런데 남도작업은 어디서부터 시작하시게 되었습니까?
- 예, 1996년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처음에는 호주나 미국 중서부의 사막사진으로 귀국 전시를 열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때는 사막이 갖고 있는 색감과 택스쳐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자칫하면 외국의 신기한 풍경을 찍은 소재주의로 비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소재로 찾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다른 것이 우사였는데, 이것이 가축의 우리 바깥으로 둘러쳐진 극채색의 천이나 비닐을 찍은 풍경사진 작업입니다.
이 우사작업을 위해 경남 거제도와 남해 일대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그 곳 유자농원에서 제 눈길을 사로잡은 어떤 창고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이 남도시리즈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이 작업에 대한 컨셉을 구축하면서 1년 동안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의 특성상 이 촬영은 겨울에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대기 중에 습기가 많아서 제가 원하는 색을 얻을 수가 없었는데, 참고문헌들을 뒤지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우리나라의 겨울 기후에서 제가 원하는 색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겨울의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건조하고 찬 바람이 우리나라 남도 창고의 빛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남부지방 기후의 특성이 저를 남도 작업으로 이끈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의 다도해展 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들에서도 광선과 색감이 독특한데요, 필터 같은 특별한 기법이라도 사용하시는가요?
- 촬영과정에서 특수기법을 사용하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전통적인 방법으로 작업하는 것이 그런 색감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저는 편광필터나 UV필터는 사용하지만, 색감에 영향을 주는 어떤 필터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원색을 정확하게 담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필름현상은 현상소에 맡기지만, 인화는 제가 직접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필름현상도 직접 한 적이 있지만, 원하는 색을 얻는데 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확한 데이터에 의한 현상을 하는 전문현상소에 맡겨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인화과정에서는 제가 원하는 색감을 얻어내기 위해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인화를 할 때는 이미 잘 알려진 전통적인 기법만을 사용합니다. 제가 원하는 색깔을 얻어내기 위해서 수 없이 많은 테스트와 닷징과 버닝을 거듭하고, 한 화면 안에서도 각 부분에 따라 색감을 달리 해서 표현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조금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주관적인 컬러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지금까지 인화를 해오면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작가의 눈에 의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눈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눈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눈도 포함된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프린트 후반작업
Light조명하에서 Vewing테스트
‘아날로그’ 컬러작업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
그렇게 어렵게 작업하시다 보면, 보다 쉽게 색을 컨트롤할 수 있는 디지털 인화에 대한 유혹도 느꼈으리라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
- 비슷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서 사진의 여러 영역들에서 보다 쉽게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광고사진이나 보도사진 같은 분야에서도 더 빠르고 저렴하게 이미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요.
하지만 작가적인 입장에서는 지금이 바로 아날로그 작업을 하기에 알맞은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아날로그로 작업하는 작가의 수가 줄어들다 보니 그 희소가치가 높아지고 있고, 작가의 개성이나 역량의 차이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6년 컬러작업으로 전시했을 때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않았지만,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제 컬러작업들이 시선을 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디지털사진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디지털 카메라로 기념사진 같은 것을 찍고 있지만, 작품의 세계는 아날로그를 고수하고 싶습니다.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은 디지털 분야에 굳이 뛰어들고싶은 마음도 없고요. 어떤 작가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자신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저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쪽에 더 큰 장점을 갖고 있고, 아날로그 컬러작업이 저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암실작업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도 디지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요. 고통도 물론 크지만요. (웃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 뿐 아니라,발견하는 것도 예술가의 역할”
이번 작업에서는 농가나 어촌의 창고를 통해서 한국적인 미를 표현한다고 하셨는데, 창고에서 한국적인 미를 찾아내겠다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컬러사진의 표현영역은 넓습니다. 대상이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담벼락이나 문이나 건물도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건축물을 작업의 소재로 삼을 때는 두 가지 접근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건축미학적 접근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입니다.
저는 일본 오사카에서는 광고사진을 전공했고, 뉴욕에서는 비디오 아트를 전공했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 어느 방송국의 촬영감독으로 일하면서 ‘마천루’라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눈으로만 보던 뉴욕의 건축물들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건축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지요.
제가 한국에 귀국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국토에서 도시부는 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95%가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건축미학적인 외형적인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갖는 접근보다도 기능성 위주로 세워진 창고 건물들에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직선위주의 단순한 형태인 시골 창고 건물들은 우리나라 지형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원색적인 컬러 패턴에서 언발란스한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골의 창고들에서는 색채학적인 요소가 아주 뛰어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창고들은 몬드리안의 작품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색이라기보다는 대체로 시간의 경과와 자연의 풍화작용에 의해서 아름다운 컬러 톤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창고 주인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왜 창고를 그런 색으로 칠했는지를 물어보면, 가령 창고 지붕을 파란색으로 칠한 것은 파란색 페인트가 가장 쌌기 때문이고, 문의 빨간색은 철문을 녹슬지 않게 하거나 녹이 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벽의 누르스름한 색깔은 그 색이 가장 칠하기 쉽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합니다. 말하자면 그 색깔들은 생활에서 오는 단순한 이유로 만들어진 가장 자연스럽고 한국적인 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별 것 아니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저는 그것을 찾아내어 새로운 해석을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창고들은 그런 색깔로 이전부터 그곳에 있었고, 저는 사진가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에서 새로운 아름다움들을 발견하는 그런 발견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굳이 단청이나 자연풍경 같은 것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든 아니든 새롭게 들여다보고 애정을 느낄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통은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시간의 경과를 거치는 동안 걸러져서 토속화되고 고유한 전통으로 굳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인다면 창고라는 것은 한해동안 경작한 결실물들이 저장되는 공간이라는 점이 아주 인간미 넘치게 느껴졌다는 것도 소재로 삼은 한 이유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전시장에서 보면 프린트들의 사이즈가 대형화되고 있는데, 선생님은 20×24라고 하는 비교적 작은 사이즈로 프린트하셨더군요. 좀 더 사이즈가 컸더라면 박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현상은 전문현상소에서 정확한 데이터에 맞추어 하지만, 인화만큼은 제가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프로 현상소에서 대형 기계로 인화한다면 큰 사이즈가 가능하겠지만, 저의 주관적인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제가 직접 콘트롤해야 하기 때문에 전지 이상의 큰 사이즈는 인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작품을 단순한 예술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또 하나 중요한 이유입니다. 일반 감상자나 수집가들에게 작품을 판매하려면 오히려 작품의 사이즈가 더 작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작게 하면 작품의 시각적인 효과가 많이 줄어든다고 생각해서 절충점을 찾은 겁니다. 20×24 사이즈가 저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당한 크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진가를 지망하는 학생이나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사진가를 지망하거나 사진학과에 진학했다면 사진에 대해서 얼마쯤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다시 한 번 자신이 진정으로 사진가가 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 권합니다.
전에는 사진학과를 나온 것만으로 졸업생들이 많은 기득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 최근 사진시장은 많은 비전공자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면서 그런 기득권이 사라졌고, 그만큼 더 경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진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은 사진 전공자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신념을 가지고 선택한 진로이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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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및 정리 / 전경헌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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