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광고사진가협회의 회장이며, 일본사진전문학교의 교장이기도한 후지이 히데키(藤井秀樹)씨가 한국광고사진가협회가 주최하는 전시회에 참여할 일본광고사진가협회 회원들의 작품을 출품하기위해 내한하였다. 후지이 히데키씨는 ‘F-그래피’라는 독특한 사진의 방법의 창안자이기도 하며, 최근까지도 일본광고사진계와 사진교육계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가 중의 한명이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을 내어 포테이토를 방문하였으며, 포테이토는 최근의 일본광고사진계의 동향과 사진교육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먼저 일본광고사진가협회(APA) 회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회원은 모두 몇 명입니까?
- 감사합니다. 정회원은 현재 926명입니다만, 찬조회원과 회우회원, 특별회원까지 합하면 1050명입니다.
협회의 주력사업은 무엇입니까?
- 회원전이나 공모전, 사진집 발간 등 많습니다만,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은 작고 사진가들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일입니다. 회원들의 작품을 보존하는 일도 시급합니다. 지난 1964년 도쿄올림픽 때 포스터로 쓰였던 하야사키(早崎治)의 사진(1961년 제작)은 원본 필름은 말할 것도 없고 포스터도 지금 단 두 장만이 남아있는 형편입니다.
후지이 히데키 氏
광고사진도 시대와 사회의 훌륭한 기록
예, 그 사진이라면 저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막 사용되기 시작한 플래시를 써서 육상경기의 스타트 라인을 차고 출발하는 순간을 찍은 사진 아닙니까? 그라뷔어 인쇄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으로 알고 있는데 그 사진의 원본 필름이 없다는 말입니까? 믿을 수 없는 얘기이군요.
-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입니다. 다른 다큐멘터리나 예술사진이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광고사진도 시대와 사회의 훌륭한 기록이고, 그런 소중한 이미지들을 남겨놓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월드컵 공동개최를 정점으로 해서 최근 한국과 일본 양국은 무척이나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입니다.일본의 사진계 인사들이 한국을 찾는 일이 늘어났고요. 후지이 선생님께서도 그 동안 한국을 몇 차례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목적으로 방문하셨나요?
- 한국방문은 대여섯 번쯤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광고사진가협회로부터 우리 회원들의 작품을 출품해주도록 의뢰를 받았는데, 내일 열리는 전시에 참가할 25명의 일본측 APA회원들의 작품을 갖고 온 것입니다.
- 시간이 좀 빠듯하긴 했습니다만, 중국사진가도 참가한다고 하고 기왕이면 아시아지역의 광고사진을 어우르는 자리에 협조하는 것이 좋겠다는 회장 특명으로 이번 출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터뷰에 동석한 APA 간사 네모토 타케시의 보충 설명)
APA 간사 네모토 타케시 ▶
피카소 작품의 영향으로 F-그래피를 창안
그러셨군요. 선생님의 패션사진이나 화장품 광고를 위한 초기 사진들은 저희들에게도 아주 익숙합니다. 얼마 전에는 라고 하는 독특한 사진의 방법을 창안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시게 되셨는가요? 란 이름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겁니까?
- 20여 년 전쯤 일로 파리에 갔을 때 피카소 작품전을 보았는데, 전시작 가운데 골판지 위에 그린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골판지 위에 사진을 프린트하는 것은 안 될까, 그런 생각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듬해에 뉴욕에 갔을 때 유제를 구입해와서 실험을 거듭했지요. 결국 한지나 나무판자, 골판지, 대리석 같은 베이스에 사진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했지요. 이름 말입니까? 유럽에서는 사진은 F로 시작됩니다. 제 이름 첫 자도 F로 시작되고요. 그래서 란 이름을 붙였는데, 요지음에는 대신 <후지이그래피>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술의 방법에서 착상을 얻으신 것이군요. <후지이그래피> 작업은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가요?
- 그럼요. 지금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이미징 기법도 도입하고, 또 베이스가 되는 매체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지요. 얼마 전에는 이태리의 화가와 함께 공동작업을 해서 전시를 열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제가 누드사진을 찍고 그녀가 그 사진 위에 페인팅을 하는 것이지요. 전에는 사진 위에 색깔을 입히는 단순한 채색작업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사진과 회화의 본격적인 칼리브레이션 작업이 되는 겁니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공동작업의 경우, 저작권 같은 문제도 발생할 건데요.
- 그런 복잡한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아티스트가 법률적인 일에까지 매달릴 수는 없지요. 그럴 시간에 창조적인 일에 골몰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습니까?
아날로그는 디지털이 뛰어넘지 못하는 여러 장점 가져
선생님께서는 재작년 타임스페이스 주최로 열린 '은염사진의 시대는 끝났는가?' 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언제까지나 은염사진을 고집하시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경우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다고 대답하셨는데요. 지금은 어떤 생각이신가요?
- 저는 양자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은 편리한 도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에도 아날로그가 없어지고 그 자리를 디지털이 전부 대신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디지털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암실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작업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제가 낡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날로그는 디지털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날로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디지털로 들어가는 사람의 작업은 어디가 달라도 다릅니다. 기록되는 정보량이 다를 뿐 아니라 사물을 보고 표현하는 깊이에도 한계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지요. 저는 디지털을 실제로 사용해보고, 오히려 아날로그의 좋은 점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8×10 카메라로 찍고 있습니다.
일본 광고사진계에서 디지털사진과 은염사진의 사용하는 비율은 어떻습니까? 광고계도 역시 포토저널리즘 분야와 마찬가지로 디지털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보시는 지요?
- 정확한 통계는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 스튜디오의 30% 정도가 디지털로 찍고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튜디오에서는 아날로그로 찍고 처리를 디지털로 하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들도 디지털의 편리성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사진가의 정신과 솜씨가 들어간 아날로그를 선호합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제대로 된 레스토랑의 음식과 편의점에서 사는 인스턴트 식품으로 비유한다면 지나친 일이 될까요?
디지털을 사용했을 때의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선 정보의 양, 깊이, 보존과 재현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신이 숫자로 표현되고 숫자로 읽혀진다는 것이 너무 건조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일본사진전문학교 교장을 맡고 계시는데요. 사진교육에서 디지털과 전통적인 사진의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시는지요?
-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새롭고 편리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길러주기 위한 것입니다.
전문적인 기술이 아닌 사진가의 철학이 중요
최근 한국에서는 포토저널리즘 분야는 인문사회학 계열 전공자들에게, 광고사진은 디자인 전공자들에게, 그리고 순수사진 분야는 미술 전공자들에게 침식당하는 등 사진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의 진로에 문제가 많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요?
- 일본도 마찬가집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진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출이나 초점을 정확하게 맞추는 등 제대로 찍는 일이 전부였던 때는 전문적인 기술이 중요했지만, 지금처럼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을 대학 4년 동안 가르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대여섯 달만 배워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미술이나 디자인이나 매스컴 관계 전공자들이 사진 찍는 것을 조금만 배운다면 경쟁력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사진의 전문적인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사진가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바츠찬 살가도 있지 않습니까? 내년부터 우리 학교에 출강하기로 되어 있는데요. 그의 지론은 ‘아프리카를 찍으려면 아프리카를 공부해라.’ 입니다. 그냥 지나가면서 아무렇게나 찍어도 한두 장쯤은 건질 수 있겠지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찍는 기술을 배울 필요는 없는 겁니다. 그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노동의 문제를 그처럼 깊이 있게 다룰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막 도착하셔서 고단하실 텐데,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들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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