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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오형근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릴적 기억 속에는 남들이 보면 우스워 넘어갈지 몰라도 자신에겐 죽도록 창피하고 평생 잊지 못할 기억들이 한두가지는 있다. 이런 기억들은 그 추억이 있던 장소나 비슷한 환경으로 가면 다시 떠올라 주변을 맴도는데 이런걸 이용해서 특정한 사건이나 현장을 통해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가둬 두는 기억법도 있다.
이태원
, 아직도 필자는 이태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뭔가 야릇함이 느껴져 온다. 고등학교 때 이태원에서 누드쇼를 보고 온 반 친구의 허무맹랑함이 반쯤 섞인 입담, 나이가 좀 들어서는 오늘은 뭔가 건수를 건질 수 있을 거라는 신념으로 나이트클럽으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 GI, 외국인, 유흥, 향락… 이제는 더 이상 일상 속에서 잘 느낄 수 없는 내 의식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야릇함을 이끌 낸다.
아마 이 글은 읽는 여러분들도 아마도 이런 약간의 혐오스러움이 담긴 야릇한 뉘앙스를 떠 올리는 이가 많을 걸로 생각된다. 어쩌면 나이대에 다르게 이태원을 받아 들일지도 모르지만…아무튼 이태원은 재미있는 곳이긴 하다. 이제는 미군보다는 관광객이, 많았던 나이트 클럽 대신 모조품 유명 가방을 파는 가게가 들어 섰지만 여전히 하층 외래문화의 유입과 혼혈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태원이라는 지명에는 유래가 많지만 그 중에 하나는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그곳에 있던 여승과 부녀자들을 겁탈하여 많은 사생아들이 생겼는데 그들을 그곳에서 정착하고 살게 해서 異胎圓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현재는 梨泰院이라고 표시한다.)
이제 이태원은 지하철도 생겼다.
작업실? 에이 설마...
아마도 풍수지리적으로도 이태원은 군인과 혼혈의 역사로 우리에겐 치욕적인 운명에 각인이 되어 있나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태원을 살짝 들어내 대한민국 밖으로 치워 버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이태원에서 방위(方位)의 기준점은 언제나 이태원 소방서였다. 이태원의 어느 한점을 말할 때는 언제나 소방서를 기준으로 해서 말하기 쉽상이었다. 물론 그렇게 소방서를 기준으로 찾는 곳들은 대부분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이런게 대부분이었는데 정말로 오랜만에 온 이태원에서 오늘은 좀 달랐다. 난 지금 이태원 소방서를 기준으로 작가의 작업실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작업실을 찾는 것에는 그리 어려운 점이 없었다. 역시 소방서를 기준으로 해서는 이태원의 어느곳이던지 찾기가 쉽다. 아직은 오전 시간이라 가계문들도 닫혀 있고 조용한 그곳에서 나는 사진가 오형근의 작업실에 첫 방문의 걸음을 하고 있다.
첫번째 철문
범상치 않은 간판과 꼭 나치의 선동 조각과 같은 독수리상이 있는 건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느 이태원 건물과 다를바 없는 너저분한 계단을 올라가니 '동아 중앙 절대 사절, 이사갔음'이라고 써 붙여 있는 커다란 철문이 하나 나온다.
"예, 며칠전에 약속한…"라는 대답과 함께 찡~ 철커덕~ 철문이 열린다. 또 한층을 올라가니 다시 다시 철문이 하나 기다린다.
'동네 때문인가?'
"어서 오세요. 날씨 춥죠?"
두번째
드디어 철문이 열어 주는 사진작가 오형근의 얼굴이 보인다. 문이 열린 작업실은 높은 천장의 긴 직사각형 공간으로 마루가 깔린 바닥에는 여러가지 집기가 있었다. 천장에는 자연광을 채광할 수 있는 창이 있었고 그 창 바로 아래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위로 떨어지는 햇빛은 이런 추운 겨울엔 무척 기분이 좋다.
작업실 전경
채광창
작업실에서 바라본 이태원 전경
"커피 한잔 할래요?"
내 앞에 따뜻한 커피가 한잔 놓인다.
"공간이 참 넓네요. 촬영공간으로도 사용하나요?"
"그럼요. 하지만 평소에는 최대한 촬영하는 곳으로 보이지 않게 해 놓고 있어요. 보통 촬영을 많이 해 보지 못한 사람은 보통의 스튜디오 같은 촬영기기를 보면 촬영 공간이라는 데서 겁을 내고, 전문 모델들은 반대로 일하러 왔다는 생각에 이내 경직되고 말죠."
촬영을 하기에 충분히 넓은 공간이지만 촬영에 필요한 소품은 거의 눈에 띠지 않았다.
"작업실이 정말 넓고 훌륭하게 꾸며진 거 같네요. 그런데 이런 사진 작업실이 이태원에 있다는건… 좀 뭔가 안 어울리는 듯 한데요? 어떠세요?"
언제나 사람은 환경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굳이 맹모가 맹자(孟子)를 대리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닌 얘기를 안꺼내도 사람은 누구나가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이 살고 있는 주변 환경에 동화되어 가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이태원, 그것도 한복판에 사진가의 작업실이 있다는건 조금은 넌센스인것도 같다.
"이젠 물론 옮기고 싶어요. 이태원을 떠나서…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 작업실에 투입된 것들이 너무 많아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
넓은 공간에 높은 천장, 좋은 나무가 깔린 바닥, 커다란 암실 등 개인 작업실로는 수준급의 공간이다. 정말로 사진가 오형근이 공을 들인 이 공간을 쉽게 포기하기엔 너무 힘들듯하다.
"어릴적 제게 이태원에서 산다는 것은 감추고 싶은 치부 중 하나였어요. 지금이야 이태원이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되고 치안도 좋지만 예전에는 정말 무서운 동네 였거든요. 제게는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환경이었거든요."
옆에서는 GI와 택시기사가 싸우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양공주들이 있고, 저쪽편에선 닭을 잡고 그 반대편에서는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이 있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오늘 사진가 오형근도 존재할 수 없었죠. 제 작업 중 배우 시리즈도 원래의 계획은 '신카나리아', '트위스트김'같이 이름에서 부터 문화의 혼혈 흔적이 있는 세대의 배우들을 촬영하는 것이었죠. 한동안 우리나라의 많은 수의 배우와 가수가 그런 예명을 사용해서 활동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제는 계시지 않고 또 꺼리셔서 힘들었어요. 사실 그때의 모습들은 이젠 거의 사라졌어요. 그때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기록 했을 수 있었다면하는 생각을 가끔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강용석씨의 동두천 시리즈를 좋아해요. 그때의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때 강용석씨가 제가 다니던 학교에 왔어요. 그때 제가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저랑 같이 공부한다는걸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혼혈문화 속에서 자란 저 자신도 정신적인 혼혈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문화가 저는 오히려 가장 한국적인 문화라고 생각해요. 흔히 이런 모습들이 당연히 미국 모습의 일부라고 생각들 하지만 결코 미국에는 이런 문화는 없어요. 우리의 땅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졌다면 당연히 그것은 우리의 문화이지요."
귤이 회수를 넘어 탱자가 되건 오랜지가 되건 회수를 건너서 뿌리를 내렸다는 게 중요하다. 과연 우리의 고유의 것은 얼마나 있을까? 도대체 고유문화가 무엇인가? 과연 우리 모두가 순수혈통이라 할 수 있을까? 맨날 신토불이를 외쳐도 과연 정말 어떤 정의로 한국의 것과 남의 것을 쉽게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문화에서도 설사 그 모양새가 약간은 우습게 되었고 그 탄생 배경이 슬픈 현실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우리 것이 아니라 감출 수 있을까?
"모두들 이태원의 문화는 우리에게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되었다고 배척하지만 오히려 그 때의 문화는 더욱 한국적인 색채를 보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사람들 모습이 더욱 한국적이지 않고 미국 문화에 가깝게 변해 있는 건 아닐까요? 지금의 일반인의 모습은 더욱 미국적인 문화로 변해 있어요."
"그럼 미국에서 공부할 시절에는 적응은 어땠나요? 힘들진 않았나요?"
"아마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국문화는 대도시 뉴욕, LA, 시카고 같은 도시에서나 적용이 되는 거 같아요. 제가 'Uncertain Presence'의 작업으로 미국을 종단 하면서 제가 생각한 미국이 아닌 전혀 다른 미국이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죠.
제가 한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한 전시 'Uncertain Presence'는 제가 이제까지의 전시중 가장 심혈을 드린 전시회였는데 정말 반응이 난감했어요. 다 때려 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깐 말이죠. 그것도 물론 충격적이었죠."
"많은 분들이 다이언 아버스의 사진과 연관을 시키시죠? 제 개인적으로는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그렇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만, 요즘 젊은 작가들 중엔 외국유명 작가의 형식에 대한 차용으로 표절의 의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작품에 대한 정형화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다이언 아버스 얘기를 듣네요. 제 자신 역시 다이언 아버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입니다만 형식이 같다고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애연가 오형근. 항상 담배가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그런 질문에 많이 시달림을 받았고 또 다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해선지 약간은 시니컬한 반응에 이야기가 길어진다.(이후 필자가 작업실을 둘러 보던 중 엉뚱한 사진을 보고 '토마스 루프의 작품인가보죠?' 했다가 오형근 선생님에게 '거봐요. 김기자도 그렇게 정형화 해서 생각하려고 해요?'라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
문제(?)의 사진
"그런데 1997년 아줌마 시리즈 이후 이렇다한 작업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데 너무 오랜 공백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계속 작업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사실 그 동안 제 개인적인 가족에 대한 일들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아줌마시리즈의 대단한 반응 때문이지요.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당시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정말 대단한 반응이 왔어요. 하도 많이 오는 전화 때문에 제 업무가 마비가 될 정도였어요. 그 이후 '오형근=아줌마 사진가'라는 공식이 만들어 지더군요. 솔직히 그 딱지를 때고 싶어요. 그래서 작품의 발표를 좀 끌게 된 것이지만 작업은 꾸준히 해 왔어요. 그리고 내년 정도에 전시회를 계획중이고요."
필자도 기억이 난다. 사진가의 작품이 티비 토론에 회자된다는 거 자체가 놀라왔다. 물론 지금도 그런 일은 거의 없고 있기도 힘들 것이다. 그런 유별나지 않은 보통의 우리 주변의 인물들은 정면에서 찍은 인물들의 사진이 그렇게나 주목 받는 일은…
"저 역시 처음에는 인물을 설명하고자 배경이나 환경에서 많이 설명하려 애를 썼지요. 하지만 인물에 대한 정확한 캐스팅이 있다면 배경으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 할 수 있어요. 사진의 힘이라는 건 정확한 캐스팅만으로도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정면에서 정확하게 찍다 보면 곤란한 점도 많을 것이다.
"아줌마 사진을 전시회 할 때 대부분의 모델이 되어 주신 분들이 난처해 하더라구요. 어떤분은 자기 사진을 전시회가 열리기 전에 사서 전시회에 빠지게 만들려고도 하고 어떤 분은 왜 난 아줌마가 아닌데 전시회에 왜 넣냐고 항의도 받았어요. 저 역시 정확한 캐스팅을 한다는게 여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반면에 미국 사람들은 좀 더 사진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서 찍는데 훨씬 수월했어요. 뭐 가끔 얻어 맞기도 했지만…"
그가 말하는 말 속에도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베여 나오는 듯하다.
'캐스팅!'
사실 사진가 오형근은 많은 자리나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밝혔었고 아마도 그의 궁극적 목적도 영화로 작업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사진계에서 충분히 인정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화에 도전해 볼만도 한데 특별히 영화에 대한 시도는 지금까지 없는 듯하다.
"지금도 간혹 영화에 대한 제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하지만 전 서두르지 않아요. 언제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건 매우 중요해요. 제가 사진을 시작할 때도 시작을 하는 시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봐요. 아직은 영화에 뛰어들 시기는 아닌거 같아요. 또 영화를 하면 중간에 오랜 기간을 쉬어야 한다는 것도 싫고… 하지만 앞으로 꼭 영화 작업을 해 볼 겁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영화에 대한 일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영화 포스터도 그 중에 하나이지요. 항상 대본을 보고 영화에 대해 파악한 후 촬영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요즘은 되도록이면 안하려고 하고 있어요. 여간 힘들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 그런데 이렇게 포스터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니깐 제 개인작업과도 많이 유사함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런걸 보니 기분이 좋네요."
작업실 바닥에는 전시회를 기다리는 포스터 몇점의 프린트가 있는데 흥미있는 건 유일하게 벽에 붙어 있는 두 영화는 모두 흥행에 실패한 것들이다.
"박기형 감독의 재능을 전 믿었고 이재용 감독도 친한 후배이자 마찬가지로 재능 있는 감독이었죠. 운이 닿지 않아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제가 영화를 만든다면 작가주의적 영화나 반대로 대중 오락적 영화가 아닌 중간 형태를 만들고 싶어요. 마틴 스콜세지 같은… 개인적으로도 택시드라이버 같은 영화를 좋아해요."
그가 말했듯이 정신적 혼혈아라는 그는 영화적 취향에서도 예술과 상업의 중간적인 입장을 취한다. 물론 그의 사진작업에서도 그런 점은 나타난다. 그는 상당히 많은 양의 상업적 사진작업을 했다. 그것도 우리가 시쳇말로 말하는 때깔나는 일들만… 그의 그런 경력은 사진을 공부하는 사진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겐 우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상업적 작업은 제게 활력이 되어 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요. 사진작업의 중압감에서 벗어 날 수 있게 해 주거든요. 또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건 어떤 면에서 내 작업시간을 빼앗기고 안정된 직장이기 때문에 나태 해 질 수도 있겠지만 제 경우에는 저 자신을 더욱 독려해 열심히 움직이게 만들어 해줘요."
"얼마전 학생에게 우연히 들었는데 오형근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 중 떠드는 학생에게 주의를 줬는데도 계속 떠드니깐 엄청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당황했다고 하던데요?"
"하하하… 저번 이학년 학생의 수업인가 보군요. 저는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교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교수님과 작업자로서 학생들에게 트레이닝 시킬 수 있는 교수님 두 가지 타입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는 후자의 경우이죠.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은 거친 방법으로 학생을 다그치고 혼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때도 제가 좀 많이 흥분하긴 했지만 후회하거나 사과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아요. 그것도 교육의 일부이니깐요."
이태원 이야기, 사진과 영화의 이야기, 학교 학생들 이야기… 잠깐의 대화에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아직은 대가라는 나이를 듣기엔 쑥스러운 젊은 나이, 하지만 사진가 오형근은 이미 사진계에서는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의 지금 위치에서 그가 원하고 조금만 신경 쓴다면 많은 부와 명성이 쉽게 따를 수도 있고 쉽게 자만에 빠질 수도 있지만 그는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소모 당하지 않게 언제나 조심하며 일 욕심을 자제해 가면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로버트 애덤스를 존경하며 꼭 사진이라는 명제에 매달려 작업하기 보다는 로버트 애덤스가 했던것 처럼 자유로운 작업 활동을 하고 싶다는 그는 지금은 본인이 평생 할 일을 찾아야 할 때라면서 겸손해 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훗날 로버트 애덤스를 닮아 있는 그의 모습을 엷게나마 투영해 볼 수 있었다.
출입구에 있는
"Everyting is sweetened by risk"
라는 격언과 사진 - 진짜 트위스트김이 곤란에 빠진거 같다. ^^
사실은 서재 앞에 붙어 있는
이 격언을 좋아 한다고 했다.
"누구의 말이죠?"
"몰라요!"
-_-;;;
(아무튼 여러분의 영어 실력을 믿습니다.)
서재 내부와 선반 위의 비디오 테입, 대부분은 집에 있다고 한다.
암실은 넓고 괘적하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음 전시에서 쓰일 비은염 인화를 위해
노광기를 만들었어요."
"혹시 직접 만드셨나요?
손재주가 좋으신가봐요?"
"네, 손재주가 좋은 목수를 좀 알죠."
전시회를 위해 프린트된 영화 포스터 사진
놀고(?)있는 라이카 확대기
연필과 오래된 연필깎이- 예전엔 미제 물건이면 다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연필깎이는 비교자체가 불가였다.
특별히 앤티크한 소품을 모으진 않는데 이 소품들은 미국에서 'Uncertain Presence' 작업을 하러 다니던중 시골 벼룩시장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경매에 참여 했다가 낙찰 받은 것들이라고 했다. 불과 몇불이면 한보따리의 옛사진을 줬다고 했다.
"그림도 그리시나요?"
"아뇨, 저 그림은 선물 받은 겁니다. 대각선 아래부분은 게이인 작가가 그 윗부분은 레즈비언인 작가가 그린 공동작업 작품인데 분위기가 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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