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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정창기 `삐아노 삐아노`
"집이 사람을 만듭니다."
요즘 어떤 건설 회사의 아파트에 대한 광고 카피다. 밀레가 바르비종에서 살아서 그런 그림이 나올 수 있었다고(정확히는 그런 전원주택에서 살아서…) 광고를 하는데… 말이야 맞는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주거공간과 주변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는 건 모르긴 몰라도 프랑스인 보다는 우리의 선조가 더욱 철저했을 터이다.(죽은 후에 까지 환경을 따질 정도이니….) 그 광고의 백인에 대한 경외심에 가까운 문화적 사대주의가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하게 만든다. 뭐 씁쓸한건 씁쓸한거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은 좀 더 좋은 작업 환경을 위해 도시에서 벗어나거나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으로 몰리는 것이 인지상정인가보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르비종과 같이 서울의 비싼 임대료와 도심의 빠듯함을 피해 예술가들이 안착한 곳이 있으니 아마도 서종면과 덕소가 그쯤 될 것이다. 물론 사진가는 거의 없고 주로 큰 작업실을 필요로 하는 미술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진가도 있으니 오늘 소개할 정창기 선생님이 유일하신 분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꼭 시외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7년전 잘 나가는 상업사진가로서 작업실을 덕소까지 옮긴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 일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옮기시고 아직까지 덕소에서 본인의 작업에 몰두하시며 사시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오래전부터 정창기 선생님의 작업실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어서 가보고 싶었으나 필자도 일상의 많은 핑계로나마 한번도 방문하지 못하고 있던 중 이번 '사진가의 작업실'에 정창기 선생님의 작업실을 찾아 가기로 마음 먹고, 평소 알고 지내던 사진계의 마당발 박모님께 '정창기 선생님 작업실 어때요?' 물어 봤더니, "정 선생님 작업실 카페와 갤러리 공간으로 개조한거 모르세요? 아마 이름이 <삐아노 삐아노>지…"라고 하신다.
오호라! 더 좋은 소재가 되겠군. '이건 내가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이 날 덕소까지 부르는거야!'라고 계속 자기합리화의 최면을 걸던 필자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룰루랄라~ 이틀 연속으로 가을답지 않은 장대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운전기사 할 친구 한명을 꾀어내어 덕소로 향한다.
"시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쭉 오다 송촌리 방향으로 우회전 해. 그 쪽으로 오다 보면 보신탕집 간판이 보이는데 왼쪽 샛길로 올라오면 보일꺼야."
덕소 시내를 지나 송촌리 방향으로 우회전을 한 다음 왼쪽 샛길로 빠져서 약 30~40미터를 올라 가니 작은 간판이 있는 하얀색 아담하고 이쁜 건물이 보인다. 바로 '삐아노 삐아노'에 도착했다.
운전기사의 밝은 길눈 덕분에 한번에 찾아간 그곳에는 정창기 선생님이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빨랑 들어와. 점심 먹어야지."
정오가 지난 시간에 도착한 그곳은 비가 뿌리는 흐린 하늘과 이젠 어두워 보이는 숲의 초록 속에서 혼자 떨어져 하얗게 빛나고 있는 쉼터와도 같았다.
"비도 오는데 국수 삶아 먹자. 괜찮지?"라고 하시며 파란색 앞치마를 두르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요리 자주하세요?"
"아니 꼭 그런건 아니고 이렇게 누가 날 찾아 오거나 하면 가끔 직접해"
가끔이라고 말씀 했지만 부엌에서 움직이는 모습이나 조리대 앞에 서 계신 모습이 정말 가끔 하시는 솜씨는 아닌듯하다. 이내 치지직 소리를 내며 달그락 거리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싶더니 금새 요리가 끝나고 하얀 쟁반에 스파게티가 담겨 나오고 가운데는 커다란 셀러드 그릇이 놓인다.
"자! 먹자"
"와인도 한잔해야지"
평소에 허우적거리며 짧은 점심시간에 쫓겨 먹는 점심과는 다르게 정말 오랜만에 멋지고 우아한 점심식사였다.
"이 건물은 언제 만드셨나요?"
"어, 만8년 이쪽으로 들어 온지는 7년되었고…"
"원래 이 건물이 축사였어, 축사를 개조해서 만든거야. 그래서 천장도 높고, 작업하기는 좋지"
빨간 마루바닥과 하얀 벽 높은 천장위에 있는 두개의 커다란 채광창이 인상적인 '삐아노 삐아노'의 실내는 커다란 주물 난로와 탁자들 주로 앤틱한 소품들이 주변과 잘 어울린다.
"선생님 가구가 멋지내요. 이번 까페 오픈을 위해 직접 사신건가요?"
"아니야 원래 있던 것들이야. 여기 모든 소품이나 가구들이 내가 작업실로 쓸 떄와 달라진게 없어 전엔 저기 보이는 탁자를 치우고 천장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이용해 여기서 촬영했어"
가만히 보니깐 탁자와 소품들이 정창기 선생님 작품에 출연한 듯 낯이 익다.
"삐아노 삐아노(Piano Piano)가 무슨 뜻인가요?"
"삐아노는 이태리 말로 느리게란 뜻이야 그러니까. <느리게 느리게> 다들 너무 조급하게 살잖아?"
"선생님 왜 오픈을 소리소문 없이 하셨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또 주변분들에게 괜히 부담 주는거 같아서… 사실 여기까지 온다는게 얼마나 부담되는 일이야? "
"시작하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처음 생각엔 기존에 있는 것들로 꾸민다 했는데 그래도 손이 엄청 가더라구 정신이 없었어 한동안…"
"선생님께서는 왜 덕소로 오시게 되었나요?"
"뭐 간단하게 도시가 싫어서지. 난 도시생활 부적합자인가봐. 못 견디겠더라구. 여기서는 생활과 마음이 넉넉해져서 좋아. 예전엔 나도 마찬가지로 주변을 의식하고 어필하려는 생각들도 많았는데 이 곳에 와서는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
"예전에 상업사진가로서도 많은 일을 하시다 이리로 오시니 지장이 없으세요?
"왜 지장이 없겠어? 경제적으로는 꽝이지. 동선이 길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있는 덩치가 큰 프로젝트들은 빼고 나머지 많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다가더라구"
"사진으로 돈을 번다는건 정말 괴로운 일이야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할 때 기쁘지 각양각색의 클라이언트들에 맞추어 사진을 찍는다는건 정말 힘들어."
"그럼 <삐아노 삐아노>가 장사가 잘되는 카페가 되면 더욱 좋겠네요? 직접 경영하시지 마시고 판다든지… "
"사실 이곳을 팔고 옆에 작업실에서 작업에만 몰두할까하는 생각을 생각을 안한건 아닌데, 내가 애써서 만든 이곳을 팔지 못하겠더라구. 문고리 하나도 내가 다 직접 고르고 사서 만든거야. 내가 정을 많이 쏟았어. "
"정만큼 손도 많이 가지요?"
"그럼, 별거 없을 줄 알았더니 엄청나. 또 한번 시작하니깐 계속 해야 되더라구"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면 좋겠죠?"
"아냐, 그냥 돈만 벌려고 마음 먹으면 다른 카페들처럼 늦게까지 영업하면서 술도 팔고 하지…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찾기보단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해 할 수 있는 분들이 올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벌써 와인 한병을 다 비우고 배불리 식사도 끝냈다.
"커피 한잔 해야지. 에스프레소 좋아해? 내가 좋은 원두를 가지고 있는데 한잔 만들어 줄게…"
커피를 뽑으시면서 원두의 굽기와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맛에 대해 설명하신다.
그 사이 나랑 동행한 친구는 재빨리 포트폴리오를 꺼낸다.
"선생님 요즘 제가하는 작업인데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그럼 한번 볼까?"하며 안경을 꺼내시는 정창기 선생님께서는 이것저것 충고를 해 주신다.
"작업을 할 때 너무 기술적인 면에 매달리지는 마. 그리고 항상 꾸준하게 자기작업을 해 나가는 게 중요해. 음… 나보러 고르라면 난 이 작품하고 저 작품이 마음에 든다."
덥썩 포트폴리오를 보여준 학생에게 작품마다 충고를 아끼시지 않는다.
"그럼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지만 작업실로 가 볼까?"
<삐아노 삐아노>가 문을 열면서 뒤쪽에 새로운 작업실을 꾸미셨다. 촬영을 제외한 암실과 프린트 관리를 위한 작업실이다.
"좀 어수선하지? 요즘은 많이 쓰지는 않지만 예전에 8*10 필름 확대에 쓰던 확대기야, 오래되긴 했지만 지주도 튼튼하고 좋아."
"요즘 흑백인화지도 많은 종류가 단종되었는데 작업하시기엔 어떠세요?"
"난 프린트 재료를 가리지 않아. 저번 작품은 꾸준히 플래티늄 프린트도 했었고, 참 내년에 공개할 작품인데 디지털 프린트로 작업을 했어 한번 볼래?"
작업실 한켠에서 프린트를 꺼내 보여 주신다.
"이번에는 컬러야. 내가 이젠 컬러도 하네…"
판화지에 프린트 된 칼라 작품들을 보여 주시며 멋적은 미소를 지으신다.
정창기 선생님처럼 흑백프린트에 관한 독보적인 테크닉과 많은 노하우를 가지신 분이 디지털 프린트를 하신다는게 한편으론 새롭기 까지 하다.
"사진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요즘은 암실작업에 대해 비중을 적게 두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디지털 프린트 기술이 좋아지고 사진 전분야가 많이 자리를 이동하지만 학생들이 아날로그적인 맛을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야"
"선생님꼐서는 학생들에게 암실작업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신걸로 아는데..."
"맞아, 사진은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중요시 되는 예술이야. 내가 공부할때 그런 기술적인 면에 대해 자세히 배우지 못해 많이 고생했었거든, 그래서 학생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말도록 강조한거지."
작업실에서 대화가 끝날 무렵 새로운 손님들이 정창기 선생님을 찾아 왔고 아쉽지만 필자는 인사를 드렸다.
"그래 언제든지 놀러와. 많은 사람들에게 <삐아노 삐아노> 소개 좀 해주고…"
정창기 선생님 특유의 미소를 뒤로하고 아직 비가 내리는 한가한 교외 오후의 길을 지나며 찬찬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매일 치이는 생활 속에 남들과 다르면 도태된다는 막연한 위기감을 가지고 소비만이 유일한 위안인듯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신과 타인에게 직업과 삶에 대해 당당 할 수 있고 사소한 물질적 미련을 쉽사리 떨쳐 버릴 수 있을까?'
이런 엉뚱하게 튀어나온 잡념들 떄문에 운전을 하는 필자의 친구는 뭐라고 내게 떠들어 대지만 무슨 소리인지 통 귀에 안들린다. 아마 창밖 빗물이 내 방금전 기억까지 희뿌옇게 만들어 버리는듯 싶다. 친구의 주절거림이 한 없이 멀리 밀려감을 느끼며 난 곧 내 마음 속 나만의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며 그 친구의 말을 무시해 버리고만다.
'왜 난 차만 타면 졸릴까…'
물질적으로 힘들어도 언제나 사진가로서의 자부심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정창기 선생님, 훤칠한 키에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계시는 얼굴로 항상 친절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답해 주시는 정창기 선생님은 물질적인 부유 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찾아 삶을 즐기며 사진에 전념하는 멋진 사진가임에 틀림없다. 또 <삐아노 삐아노>는 도시의 바쁘고 힘든 생활에서 살짝 벗어나 사진과 자연을 동시에 감상하며 차 한잔의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공간이다.
시월 중순이면 온통 산이 단풍으로 물든다고 한다. 한번쯤 여유를 만들어 서울서 멀지 않은 그 곳으로 가 보면 어떨까? 자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좋은 카페에서 사진도 감상하며 좋은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 한잔과 또 운 좋으면 정창기 선생님과 사진에 대해 많은 대화와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곳, 물론 데이트에도 그만이다. ^^;;
'삐아노 삐아노' 031-576-3421
(현재 김수강씨의 작품이 전시중에 있다. 2001.9.15~10.31)
취재 및 정리/ 김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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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내방 ]
[2005.03.23] 정창기(사진가)
2005.03.24
[ 본사내방 ]
[2004.10.04] 정창기(사진가)
2004.10.04
[ 출판 ]
정창기 사진집 `On The Table`
2002.09.23
정창기 Jung, Chang Ki
정물1
정창기 Jung, Chang Ki
On the table
정창기 Jung, Chang Ki
인물1
정창기 Jung, Chang Ki
인물2
정창기 Jung, Chang Ki
정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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