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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배병우
"늦지 말고 와! 나갈지도 모르니…"
어제부터 확실히 '이젠 가을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날씨에 긴 소매도 싸늘하다.
맑은 하늘에 싸늘한 공기가 찬 오후에 배병우 선생님의 작업실로 걸음을 했다. 혹시나 늦어서 만나지 못할까 급한 마음에 광화문 앞에서 택시를 타고 사직, 금화 터널을 지나 도착, 저 길 반대쪽 건물 꼭대기 층에 배병우 선생님의 작업실이 보인다. 터널앞 길게 내다른 자동차 행렬, 시끄러운 소음이 뾰족 지붕을 타고 파란 하늘로 녹아 내리는 듯 하다.
좁은 골목의 가파른 언덕, 다닥다닥 붙은 연립들이 있는 신촌 일대에서 여느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속에 하임(heim-독일어로 집)이라는 좀 별난 이름의 연립 맨 위층에 배병우 선생님의 작업실이 위치해 있다.(사실 하임 정도는 별난 이름도 아니다. 10평 안팎의 연립주택을 '빌라'니 '맨션'이니하는 정말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게 현실인데… 거창한 이름으로나마 마음의 풍요를 얻고 살 수 있다면 문제가 될 건 없을 듯…)
계단을 따라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면 휑하던 복도가 갑자기 각종 포스터와 전시에 관련된 액자들로 꽉 찬다. 우선 벽을 채운 소나무 사진과 거기에 있는 각종 전시회 포스터 전시가 끝난 후 돌아 온 포장 되어진 작품들이 꽉 메우고 있다.
'딩동'
문이 열린 작업실에는 배병우 선생님 혼자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모난 탁자에 사방에 가득 쌓인 인화지 박스와 각종 책들… 낯선 컴퓨터가 티비자리에 들어 왔을 뿐 정말 오랜만에 와 보는 배병우 선생님-필자의 은사임-의 작업실은 거의 변한게 없다.
처음 오는 곳도 아니고 처음하는 인터뷰도 아닌데 이날은 여느때와 달리 약간의 긴장을 하게된다. 학생적 보다는 나이가 들수록 반대로 은사에 대한 어려움이 커진다. 아마도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사진에 대한 눈을 뜨면서 느끼는 대가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뭘 취재한다는 거니?"
"아, 예… 작가들의 작업실을 소개하는 거죠…."
"그럼 빨리해!"
배병우 선생님 특유의 약간 심드렁한 말투가 이어진다.
30평 정도의 작업실은 일반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공간과 다를 바는 없다. 단지 어떤방은 암실로 다른방은 서재로 거실은 작업공간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선생님, 점점 이것저것 많이 쌓여가는데 좁으시지 않으세요?"
"이젠 공간이 너무 협소해. 넓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여기는 교통이 너무 좋단 말이야. 또 전망도 좋고…"
풍경을 주로 작업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작업실에 촬영 공간 같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시진 않지만 자꾸 좁아지는 작업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가 보다.
"요즘은 어떤 작업하세요?"
"나? 산도 찍고, 바다도 찍고, 하늘도 찍지…"라며 테스트 프린트들을 보여 주신다.
"요즘 인화지도 많이 생산중지 되었던데요.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코닥 엑타루어도 단종되지 않았나요?"
"어떻게 하겠어? 안만드는데… 시대에 변하는데 따라 가야지 요즘은 컴퓨터 프린트도 정말 좋던데?"
"디지털 프린팅도 하세요?"
"한지나 판화지 같은 곳에도 프린트 할 수 있어. 특유의 질감이 느껴져 느낌이 좋더라구 하지만 인화지랑은 감이 달라 어색해"
"그럼 어떤 인화지 쓰세요?"
"일포드도 쓰고, 루미노스는 약간 내 사진엔 안맞는 거 같고… 지금 누가 보내 준 헝가리 인화지를 테스트 해보는 중이야"
배병우 선생님 암실에는 더스트 4*5 칼라 확대기가 주로 쓰인다. 암실에는 정수필터, 수온조절기, 현상기 등도 보인다. 또 큰 작품의 프린트를 위해서 인화지를 벽에 붙이고 작업을 하기 위해 한쪽 벽면에 철판이 붙어 있다. 보통은 학생들이 암실작업을 돕고 있는데 이날은 별다른 작업이 없어 학생들은 없었다.
Dust CLS 501 확대기
대형프린트 노광용 철판
암실 싱크대
자동 현상기
20*24 이젤
20*24 드라이 마운트기
다른 쪽 방 그곳은 서재로 꾸며져 있고 주로 각종 사진집이 가득 차 있다.
"책 많이 잃어 버리지 않으셨어요?"
"전에 작업실 있을 때는 많이 잃어 버렸는데 이리 이사 와서는 거의 잃어 버리지 않았어"
"이 책 모으시느라 돈 많이 쓰셨겠지요?"
"이 집보다 비싸"
아마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어떤 작가보다 더 많은 각종 작품집을 가지고 계신다. '선생님 책 좀 빌려 갈 수 있을까요?'하면 '안에서만 봐'하시던게 생각난다.
"참 컴퓨터 좀 켠볼래? 포테이토닷컴에 교수연구실을 만들어 놨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몰라서 아직 제대로 들어가보지 못했어 회원이 몇 명이나 있니?"
컴퓨터를 켜서 포테이토에 접속한 후 배병우 교수연구실(http://lab.fotato.com/bbu)를 즐겨 찾기에 등록해 놓는다. (배병우 선생님은 거의 컴맹이다.)
회원명단을 쭉 살피던 선생님은,
"가만있자. 모르는 이름이 많네? 이런 내게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 있는데 내가 너무 소홀했네… 회원들에게 메일 보내자. '모여서 맥주 한잔하고 싶은 사람은 연락할 것!'"
"따르릉"
전화가 온 사이를 이용해서 작업실 구석구석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주방앞에 쌓인 인화지 박스
즐겨 쓰시는 모자
희한하게 생긴 하이네켄 병
창밖 전경(야경이 더욱 멋있다.)
작업실 안 전지역 금연구역
생선처럼 망에서 말려지는 인화지
티비 뒤에 숨어 있는 새
암실 구호
암실 안에 있는 기념사진도 파노라마
식탁 앞에 나란히 걸려있는 작품 둘
내 다리 (참 길다!)
"배 먹을래?"
"올해는 배가 정말 풍년인가봐요. 가격도 비싸지 않고 맛있어요"
"올해는 과일이 다 좋아, 이번주에 태풍 안오면 올해 태풍도 없으니 과일농사는 정말 잘됐을 거야"
"고등어도 풍년이래요. 살지고 맛있데요"
"고등어야 언제 먹어도 맛있는 생선이지. 몇 년전만해도 한마리에 천원도 안했는데 요즘은 얼마나 하지?"
"꽃게도 풍년이래요. 올핸 대하보다 꽃게가 더 좋데요"
"대하보다 꽃게가 훨씬 맛있지"
이 가을 식도락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선생님은 찾아온 제자를 위해 식탁위에 있던 배 반쪽을 깎아 내 앞에 내온다.
"나이가 들수록 먹는거에만 관심이 가요"
"그게 사는 재미지 뭐"
…
"니 동기 000은 요즘 뭐하냐?"
"작업한다고 특별히 하는거 없어요"
"그래도 취업해서 돈 벌어야지"
…
사진에 관한 대화보다는 식도락과 주변에 대한 얘기만이 길어진다. 어째 오늘 이 방문이 취재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사제의 신변에 대한 대화로 흐른다. 그런 신변잡기와 사진에 관한 짤막한 대화들 사이로 시간은 훌쩍 지나고 오늘도 한건의 취재가 끝 맞춰진다.
배병우 선생님의 작업실을 뭐라고 한마디로 정리 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를 위해 배 반쪽을 손수 깎아 주시는 작업실, 차곡히 쌓인 인화지 박스만큼이나 내겐 익숙한 장소, 탁 트인 서울 서부의 전망을 앞으로도 이곳에 가끔와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별로 물어 본
것이 없네… 오늘 기사는 어떻게 쓰려나…'
취재 및 정리/ 김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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