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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바라 시세이 :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촌에서 대통령 선거유세를 촬영중인 구와바라시세이(사진예술지 게재,촬영 양종훈)
'신오쿠보 스피리트' 행사 2주년 기념으로 프레스센터에 초대전을 가진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을 만나보게 되었다. 1960년대 부터 격변의 한국역사현장에 몸을 담아 찍어온 사진들에는 한국에 대한 비판보다는 편견없는 따듯한 애정이 깊게 베어 있었다. 이제는 한국의 근대역사흐름과 함께 그 자신도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긴박한 사건의 현장보다는 문화적인 내용의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의 얼굴에 새겨진 잔주름들 속에서 왠지 우리나라의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의 고난과 역경이 느껴진다.
"사진, 특히 보도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찍히는 쪽에 상처를 입히는 냉혹한 행위인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찍히는 사람이 언제나 즐거워하는 것만은 아니다.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 화내는 사람, 얼굴을 돌려버리는 사람....나는 어쩌면 많은 한국인에게 상처를 입혀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적이 행위는 아니었다. 다만 사라져 없어져 가는 역사의 연장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려고 했을 뿐이다."
'촬영금지' 사진집에서
■ 인 터 뷰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한국을 가장 많이 촬영하신 외국인 사진가 가운데 한 분이신데, 이렇게 한국을 촬영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1964년 7월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저에겐 최초의 외국방문이었죠. 방문 목적은 일본의 그래픽저널 월간지인 「타이요(太陽)」의 '분단 한국'이란 특집 기획기사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한,일간에 외교관계가 열리지 않았던 때로, 일본인들이 방문하기가 무척 어려워쓴데 저는 특파원자격으로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한국을 몇 번 정도 방문하셨는지요?
한 50번 정도는 방문한 것 같습니다. 처음 방문해서 약 5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삼팔선서부터 시작해서 거제도에 이르기까지 농어촌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 막 복구가 시작된 청계천 모습까지 굉장히 많이 촬영했습니다. 그 청계천의 고가도로가 헐린다는 얘기를 듣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이후 한국에서 어떤 사진들을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말씀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예, 1965년에「타이요」지의 한국 특집을 끝내고 난 뒤에 다시 한 번 서울에 올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그 해 4월에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시작된 것이었죠. 그래서 두 번째 방문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물론 특파원 자격이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방문했습니다. 두 번째 방문 때는 비록 특파원은 아니었지만 「태양」지에 나온 기사로 인해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이름을 대면 대체로 별 문제없이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신원보증을 한국사람이 해 주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당시 「아리랑」이라고 하는 잡지사를 운영하시던 이월춘 사장님이 저를 위해 무척 애를 써주셨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정부쪽에서 보기에는 사회의 암울한 면을 많이 찍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공보부에 자주 려갔습니다.
그때마다 이월춘 사장님이 나서서 변명을 해주시고 용서해달라고 빌기도 하는 등 그 분이 아니었으면 아마 촬영을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해에는 사진을 찍을 기회가 참 많았습니다. 9월에는 학생 데모도 심하게 일어났었고, 10월 말부터는 월남으로 군대를 보내는 등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거죠.
신문사나 통신사 사진기자들은 뉴스사진 한 장 찍고 나면 그 자리를 떠나버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저의 경우는 피쳐(feature) 사진이기 때문에 한 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찍는 양도 많을 뿐 아니라 촬영도 장기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렇게 촬영을 하다가 그 해 12월에 국외로 추방을 당했습니다. 내가 찍는 사진이 바로 한국 국익에 반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후 3년 간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3년 있다가 1968년에서야 3번째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월남에 취재 갔다가 그곳 한국대사관에 부탁해서 겨우 입국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거죠.
한국에서 오랜 기간 촬영해오시면서 느낀 점도 많으실 것 같은데,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있습니까?
저는 1960년대 중반부터, '바쁘다 바뻐'의 70년대를 거쳐 서울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까지 쭉 한국을 촬영하고 난 다음 일단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지금까지 20여권 책을 냈는데 한국에 관한 사진집만 6권입니다. 그 중 2권은 한국어로 나왔는데 한 권은 바로 여기 타임스페이스에서 나왔지요.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한국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제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서 냉전시대의 데올로기 대립과 한국의 철두철미한 반공체제의 긴장감 속에서의 한국은, 보도사진가인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사명감과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딱 알맞았던 곳이었습니다. 64년부터 88년까지 4반세기에 걸친 저의 작업은 1989년 타임스페이스가 주관하고 조선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에서 370점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마무리를 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이 가장 격렬히 변화하는 시기에 잠깐씩이나마 변화한 모습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죠. 아마도 같은 시기의 한국의 사진가는 저보다는 제한이 많아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국역사의 일부를 자신이 찍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혹시 그때 사진이 필요하시면 저에게 부탁하세요.
그런데 88년까지 사진을 찍으시고 그 이후에는 한국에서 별로 작업을 안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예, 한국에도 이젠 젊고 유능한 사진가들이 많이 등장해서 외국인인 제가 기록할 필요가 없어진 것도 이유입니다. 그리고 좀 모순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에는 별 매력을 못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허지만 저의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제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촬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같은 것도 많으시리라고 생각하는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1965년에 제가 남대문에 있는 시경 외사과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 두렵고 괴로웠던 때였습니다. 제 생각엔 중앙정보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죠. 그때 25살이었던 저는 그저 의욕만이 앞섰던 시기였지요. 한 번은 또 덕수궁 옆에 있는 서울지검에 불려가 심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게, 제 비자를 법무부 출입국관리소가 아니라 당시 절 심문하던 검사가 내주었던 일이었습니다. 지금 같아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그때는 다반사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붙잡힌 죄목은 관세법 위반이었습니다. 당시는 잡지사 특파원 신분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촬영하고 있었고, 또 체재 기간도 길었기 때문에 나중에 체제비가 떨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남아서 사진을 더 찍고는 싶었고,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갖고 온 필름 일부를 팔아 체재비로 쓰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을 빌미로 잡혀 들어갈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거죠. 아무튼 그 뒤로 전쟁이 한창인 월남에도 갔고 러시아 같은 데에 가서도 취재했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처럼 정신적으로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공포 그 자체였죠.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 사진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요즘 한국의 사진은 ‘만드는 사진’ 같은 이른바 예술사진이 유행하고 있고 젊은 사진가들도 그런 사진의 경향을 많이 쫓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현상에 대해서 어쩌면 한국이 너무 평화롭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풍경이나 여자, 꽃 같은 것을 찍은 사진 같은 것은 찍기도 재미있고, ‘예술’은 사람들도 높이 평가하지요. 누구나 ‘사진가’ 보다는 ‘예술가’라는 말을 듣고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아마 한국에서도 커머셜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생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생활을 위해서는 결혼식 사진 같은 것을 찍는 것도 좋지만, 한 사람의 사진가로서 역사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꼭 찍어두어야 할 대상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사진이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서슴치 않고 바로 ‘기록’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광고사진은 그런 사진의 기록적인 기능을 비즈니스에 유효하게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은 역시 기록사진인 것입니다. 기록에 남을 진정한 기록사진을 찍는 것은 당장 돈은 안 될지 모르지만, 기록은 결코 풍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una@fotato.com 표정현
■ 기자 간담회
신문사, 잡지사에서 온 기자들이 질문을 하고 있는 모습
◇ 기자간담회 인터뷰 질문
이번 한국에서의 전시는 처음이십니까?
아니요 4번째 전시 입니다.
젊은 시절,우리도 찍기 힘든 사진들을 촬영하고 기록하셨는데요.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해 느끼신 것이 많으실 텐데...
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전 이래 가장 격변의 시대를 기록으로 남긴것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고 그 이전의 사진기록의 공백기에 제가 기록을 남기게 되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60년대 한국 취재기자단의 취재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편집방향에 대한 제약이 있었지만은 저보다는 어떤 면에서 상대적으로 보면 자유롭게 취재했다고 생각합니다. 신문기자들은 당시의 취재밸루(value)가 있는 한장의 사진을 찍게 됩니다. 그에 반해 그 당시 한국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취재기자들은 찍은 다음 바로 올려야 될 사진을 촬영하게 되지만 저는 많은 양의 사진을 찍어 나중에 선택해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는 제가 더 자유스러웠다고 볼 수가 있죠.
월남에는 언제 가시게 됐고 몇번이나 가셨죠?
67년~76년 전쟁이 끝날때까지 5섯차례 갔다 왔습니다.
부인이 한국사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취재 중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요.
지금 기자간담회 하는 것을 본인 스스로 찍고 계신데 어디에 사용하실려구요(웃음)
지금까지 20권의 사진집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쓸 에세이집에 쓸려고 합니다.
일본에서 고향마을에 선생님을 기념하는 사진전시관이 생겼다고 들었는데요.
4년전 '쓰와노'라는 벽촌이지만 관광지로서 그곳에 관광을 온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졌어요. 3개월에 한번씩 사진을 바꿔 전시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조금으로 지어졌고 마을의 성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찍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 활동적이지 못하고 이제 한국도 격변의 시대를 지나 평화의 시대로 전화했다고 생각하기에 한국의 문화재를 중심으로 촬영할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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