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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보존관리와 수복 - 한국사진의 보존현황과 전망
사진의 보존관리와 수복 - 한국사진의 보존현황과 전망
2003년 10월 24일(금) 13 : 00 - 14 : 00
국립현대미술관 소강당
시작하며
사진은 표현력과 동시에 기술이 갖춰지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진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표현인 동시에, 표현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균형이 잡힘으로써 비로소 사진 독자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이것은 촬영과 현상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작품으로서의 사진을 보여주는 방법과 보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기술, 즉, 과학적인 지식과 방법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기록으로서의 사진, 예술로서의 사진을 영구히 보존 관리하고 수복하는 일은 올바른 사진의 취급방법과 과학적 기술, 용품과 재료의 사용법을 숙지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미술관의 활동은 미술작품과 그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로 성립된다. 그리고 작품의 전시·조사·연구 등 미술관의 중심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자료의 적절한 보관이 전제가 된다. 모든 작품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열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작품이나 자료를 막고 좋은 상태로 후세에 전해주는 것도 미술관의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분야에 대한 짧은 지식과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보존과학의 전문가가 아닌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즉, 한국에는 예술적 가치를 가진 작품으로서의 사진의 보존에 관한 조사 대상이 될만한 수집기관이 거의 전무한 상태여서, 한국의 사진의 수집과 보존 현황에 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별로 얘기할 것이 없다'라는 난폭한 한마디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보존'이라고 하면 당연히 보존의 대상으로서의 작품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한국에는 지금까지 그 대상이 되는 작품 자체에 대한 체계적인 수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의 사진가와 평론가,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사진이 현대의 문화와 예술의 장면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맡고 있는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사진이 어떻게 보존되고 후세에 전해져야 하는가, 그리고 사진의 일실을 막고 그들을 수집·보존할 사진미술관의 건립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의 <사진미술관> 심포지엄 보고서)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한국에는 단 한 군데의 사진미술관이나 박물관도 없을 뿐 아니라, 기존의 어떤 국공립 미술관에도 사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진부문>도, 사진전문 학예연구원도, 수복 전문가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록적인 가치를 가진 역사적인 사진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는 기관은 있다. 먼저 이들 기관의 사진의 보존현황에 관해서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이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서울대박물관, 정부기록보관소, 독립기념관 등에 관한 자료는 「역사민속학회지 제 14호」(2002년)에 게재된 이경민의 발제문을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국립중앙박물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진부문>은 없지만,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한 사람의 사진의 보존과학 분야의 전문 학예원을 두고있다. 동 박물관에는 과거 식민지시대에 제작된 유리건판 3만 8천여 점이 보존되어 있는데, 내용은 유물과 유적뿐 아니라 당시의 풍속과 생활모습, 종교, 조선인의 체형을 유형적으로 분류한 사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1997년부터 이 유리건판의 목록집을 발간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모두 5권이 나왔고, 2001년부터는 디지털 아카이브화를 위해 유리건판의 스캐닝 작업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사진」은 현재도 동 박물관의 수집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으나, 내년 이후에는 사진도 박물관의 수집대상에 포함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늦기는 했지만 더 많은 자료들이 손망·일실되기 전에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사편찬위원회
이곳에는 조선사편수회가 1927년에서 35년 사이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과 만주 지역에 산재한 사료들을 수집해서 촬영한 5,580점의 사진과 4,802점의 유리건판, 그리고 미국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21점의 한국의 근대사 관련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진과 유리건판들은 주로 고문서와 유적, 유물, 서화 등 원본을 복사 촬영한 사진 복제본이다.
서울대학교박물관
이곳에는 1930년부터 1940년에 걸쳐 한국의 민속을 조사 기록한 유리건판 1,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유리건판이 들어 있는 상자는 1990년대 초까지 발견될 때까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아 유물대장에 등재조차 안 된 상태였다고 한다. 건판이 발견된 후에도 예산 등의 이유로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발견되고 6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1차적인 정리가 끝났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귀중한 사료로서의 사진기록물의 기치에 대한 인식과 전문인력, 예산 등에서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기록보존소
이곳은 원본필름과 인화된 사진, 슬라이드 필름 등 134만여 점의 사진자료를 소장하고 있는데, 정부기록보존소라는 기관의 성격상 정부수립 이후의 역대 3부 요인과 국무위원 등의 인물사진과 대통령들에 관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독립기념관
10,589점의 사진과 1만여 점의 필름, 독립운동사적지 조사 사진 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과 강제동원에 관한 50여 만점의 사진이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처럼 몇 군데 되지 않는 공적인 기관들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은 전량 역사적인 자료로서의 사진이고, 거의 유일하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품사진을 500여 점 소장하고 있는데, 그것도 소장 숫자의 절반은 한 사람의 사진가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수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의 작품 구입예산 가운데 잔여 예산 2,500여 만원으로 무엇을 구입할 것인가를 논의한 적이 있었다. 자문위원회에서 작고한 7명의 사진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미술관 쪽이 제시한 턱없이 싼 구입가격 때문에 한국 사진사의 대표적인 사진가들의 공식적인 수집이 될 뻔한 이 계획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 예산은 단 한 점의 그림을 구입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는 모두 35점의 사진작품이 수장되어 있다. 사진전문의 학예원이 없는 것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다르지 않고, 사진작품의 수집예산도 별도로 책정된 것이 없다.
대학 부설 박물관
이 밖에 몇 개의 대학박물관이 자료사진을 소장하고 있으나 정확한 숫자 등 소장 내용에 관해서는 파악된 것이 없다. 전남 동신대학은 유일하게 부설 영상박물관을 두고 개인 사진가의 작품 100여 점과 카메라 1,800점 등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사설연구소, 기타
20여 년 전에 설립된 사설 연구기관 <한국사진사연구소>가 상당량의 사진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나, 대부분 인쇄물이나 인쇄물로부터 복사한 자료로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없다. 재원이 없어 그동안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던 이 연구소의 자료들은 최근 대학(명지학원) 부설 <사진사연구소>(가칭)에서 흡수 관리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밖에 삼성미술관, 가나아트센터 등 기업에서 운영하는 미술관과 상업미술관 등이 상당량의 사진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나, 대부분 외국 작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전반적인 현실 개황
1994년, 해방 이후 50년 사이에 작품활동을 한 50명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진가들의 작품전시 기획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들 사진가 가운데 작품을 전혀 남겨 놓지 않고 작고한 사진가가 몇 명 있었고, 작품이 남아있는 경우에도 극히 소량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전쟁과 사회적, 경제적 혼란을 겪으면서 많은 사진들이 일실되고 말았던 것이다. 또 작고한 사진가의 가족들 가운데에는 남겨진 네거티브 필름과 프린트 등을 모두 불살라버리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진가의 경우에는 당시 만들어졌던 조악한 인쇄물을 복사한 사진을 전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진술이 우리나라에 도래된 것이 1880년대로, 1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전국 30여 개의 대학에 사진과가 생기고 그곳에서 매년 전문 교육을 받은 많은 학생들이 배출되고 있다. 자동차와 함께 카메라의 보급률도 선진국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나 그런 현상을 고급 문화로 증폭시킬 수 있는 미술관 등 하드웨어는 물론 문화적 행정적인 시스템, 작품의 소장과 연구 등 필수적인 인프라는 여전히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사진의 기록적인 가치와 예술적인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경제적인 높은 가치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1998년 뉴욕타임즈가 게재한 과거 25년 간의 주식과 사진의 가격의 변동에 관한 기사에 의하면, 주식가가 1,900배 증가한 데 반해 사진의 가격은 무려 2,800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이 주식보다 훨씬 높은 투자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소더비즈나 크리스티즈 등 대형 옥션에서 드 그레이나 만 레이, 스타이켄 등 사진작품이 6∼8억 원에 낙찰되는 등 국제적인 미술시장에서 사진의 값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선진국의 많은 미술관들이 아직은 다른 미술품에 비해 가격이 낮고 입수가 용이한 젊은 사진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작품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일본의 사정은 어떤가?
외국에 문호를 비교적 빠른 시기에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 다게레오 타입이 들어오고, 일본인 사진가의 손으로 사진이 제작된 것은 유럽에서 사진술이 발명되고 몇 년도 지나지 않은 1840년대였다. 전쟁을 치르기는 했지만 기록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민족성과 문화적 풍토 때문에 과거의 소중한 사진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일본의 각급 미술관과 박물관, 대학, 기업, 사진관련 단체들과 신문사 등에서는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 전국의 일반 가정에서 산재된 사진을 발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샐 틈 없는 그물 망으로 단 한 장의 사진도 사장되거나 일실되지 않도록 철저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도쿄도사진미술관을 비롯하여, 가와사키시민뮤지엄, 요코하마현립미술관, 도쿄근대미술관, 교토근대미술관, 나라시사진미술관, 나미카와사진재단, 그 밖에 전국의 수많은 미술관들이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 문화적 가치는 물론 자산적 가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일본의 막대한 수집예산
일본에는 전국에 40군데가 넘는 각급 공·사립 사진미술관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인 동경도 사진미술관은 현재 공표된 숫자만으로 18,000점이 넘는 국내외의 대표적인 사진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일본 국내 사진가들의 작품의 경우, 초기 수집 당시 1점에 7만엔(약 70만 원)이라는 일률적인 가격으로 한 작가 당 20점씩을 구입했다고 한다. 전체의 절반인 9,000점을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고 했을 때 단순계산으로 우리 돈으로 약 1,260억 원을 들여서 사진작품을 구입했다는 계산이다. 외국 작가들의 작품 가격을 생각할 때, 실제로 작품을 수집하는데 들어간 예산은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지사(이시하라 신타로우)가 취임했을 당시, 지금의 사진미술관을 만드는데 도쿄시민 1인 당 3만엔(30만원)의 세금을 낸 셈이 된다고 말한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일본의 보존 관리와 수복 현황
일본의 미술관들은 대부분 자체적으로 사진분야의 학예연구원을 두고 있으나, 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복원작업은 외부의 전문적인 회사에 의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쿄도사진미술관의 소장작품들은 모두 북 매트에 납입되어 수장창고에 정리되어 있는데, 매년 정비에 필요한 예산을 세우고, 그 예산 범위 안에서 매팅 작업을 진행시키는 방법으로, 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54년에 도쿄의 국립근대미술관에 기증된 알프렛 스티글릿츠의 작품의 공개를 앞두고 1980년대 46점에 대한 본격적인 수복작업이 이루어졌다. 전부의 작업에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스티글릿츠의 경우 1점에 20∼40만 불(평균 3억 원)로 계산해도 46점이면 230억 원이 된다. 그 작업이 얼마나 세밀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사진술의 발상지인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도 1930년대부터 미술관에서 파인 아트로서의 회화와 판화에 이어 사진을 본격적으로 수집해 왔다. 뉴욕근대미술관(MOMA)에 사진부문이 설치된 것은 1940년. 당시 사진부장이던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한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전이 전 세계를 순회해서 미증유의 관객을 동원했던 것도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한국 전시는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957년에 개최되었다.) 구미의 미술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헝가리나 체코, 오스트리아, 리투아니아 같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않은 동구의 미술관들도 놀라울 정도로 모두 훌륭한 컬랙션을 갖추고 있다. 이들 문화 선진국은 사진을 다른 미술작품과 동일한 예술적 가치를 가진 수집대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하는 공통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수집 대상은?
수집대상을 재료와 형태별로 본다면 먼저 재료에서는 필름 원판(포지티브 필름, 네거티브 필름, 마이크로 필름, 유리 건판, 다게레오타입 등)과 인화지(은염, RC 페이퍼, 디지털 프린트 등), 그리고 비은염 사진(사이아노타입, 난백지 등 올터네이티브 프린트) 등으로 나누어진다. 또 작품의 형태로는 평면, 입체, 설치 등으로 나눌 수 있고, 자료의 규격(크기)과 액장의 재질과 형태에 따라서 다양한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 이밖에 인쇄물(잡지, 사진집, 포스터, 전시도록, 그림엽서 등)과 사진에 관한 동화상 자료(비디오테입, 영화필름, 디지털 기록, CD, DVD 등)도 수지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모든 소장품은 화학적인 영향, 방화, 방재, 온·습도 등 각 재료에 맞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수장고에 보관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디지털 아카이브의 필요성
사진의 방식이 은염사진 쪽에서 디지털 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으며 은염사진과 함께 디지털 이미징 기술과 그 화상의 보존성을 높이는 문제가 앞으로 중요한 테마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사진이 국가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고, 그 보존과 수복기술의 확립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최근 여러 박물관에서 사진자료의 아카이브 구축과 인터넷을 통한 활용방안이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현재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기록적인 가치를 가진 사료로서의 사진에 작업이 집중되어 있다.
박물관, 미술관이 대량의 수장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실제로 전시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수장품의 화상을 디지털 이미지로 보존하고 관내 모니터나 인터넷 등 시청각 단말기를 통해서 어느 곳에서나 검색과 디스플레이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작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작품을 접하고자 하는 관심과 욕구를 유발해서 감상자들을 미술관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맺으며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한국사진의 보존현황과 전망」이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현재 여러 공적인 기관들에서 보존과 정리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것은 앞에서 잠깐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러나 문화유산으로서 귀중한 가치를 가진 예술사진의 수집과 보존은 현재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모처럼 얻은 기회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공립의 미술관은 한국의 역사는 물론 한국인의 생활과 정신사를 읽을 수 있는 시각적 자료로서의 사진의 탁월한 가치를 인식하고, 더 많은 사진들이 소멸되기 전에 그 수집과 보존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먼저 미술관 내에 사진부문을 신설하고 학예연구원과 보존과학의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 작품의 수집예산을 확보하고 시기가 더 늦어지기 전에 체계적인 수집활동을 개시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사진에 대한 감상대중의 관심을 일으키기 위한 전시활동과,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해서 그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활동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은 사진산업과 사진인구에 있어서 세계 선두 그룹에 서있다. 200여 개가 넘는 전국의 사진갤러리와 미술관, 백화점, 공공 전시장에서는 매월 300여 회의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사진문화의 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최초로 사진미술관인 「도몽켄 기념관」이 건립된 것은 불과 20년 전 일이다. 「가와사키시민뮤지엄」이 개관된 것이 서울올림픽이 치러지던 1988년, 그 뒤를 이어 「요코하마미술관」(1989)과 일본의 사진문화를 상징하는 「도쿄도사진미술관」이 본격적으로 개관되는 것은 지금부터 8년 전인 1995년의 일이 지나지 않는다.
사진은 한 나라의 문화적인 척도를 나타낸다. 만일 우리나라에 사진을 다루는 공적인 기관이 있었다면 그 동안 귀중한 사진들이 일실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2년 후인 2005년에 강원도 영월에 건립이 예정되어 있는 「동강사진미술관」이 21세가 시작되는 2001년부터 한국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사진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곳에는 현재 1960년 대 이후부터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진가 110여 명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모두 500여 점이 수집되어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사진미술관의 건립과 작품의 수집활동 자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사진가들로부터도 이처럼 전폭적으로 호응을 받은 예가 지금까지 없었다. 이 일이 상징하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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