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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mementomori」
mementomori
2002년 1월 9일 - 1월 22일
하우아트 갤러리
이번 전시의 작품이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시간적으로 광범위하게 걸쳐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 제가 이때까지 해 온 작업은 거의가 긴 시간을 가지고 진행된 작업들 입니다. '망월동'작업만 해도 약 20년이고 이번 작업은 약 10년이죠. 언제나 시간을 넉넉히 잡고 작업을 하는 편이죠.
작업의 공간적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이곳은 울산의 한 지역인데 근대화로 인해 공단이 조성되었는데 주로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는 꺼리는 공해가 심각한 중화학 공업이 입주했지요. 80년대 후반이 되면서 공기는 물론 바다와 토양의 오염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비만 오면 온 마을이 물에 잠길 정도로 지형자체의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숨조차 쉬기 힘든 이곳을 많은 사람들이 떠났지만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잡고 살아가던 다수의 사람들은 가난해서 다른곳에서 정착해 살 수가 없었어요.
저는 이 지역에서 생활고에 찌든 사람들의 정상적이지 못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 그 공간이 가지는 아이러니함에 묘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 이 공간에 금새 반하게 되었고 그런 공간 속으로 내가 가는 것, 또 사진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결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사실 처음엔 이 작업을 전시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염두 해 두지 않았어요
요즘 아주 많이 회자되는 메멘토모리(mementomori -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라는 말을 제목으로 하셨는데 어떤 이유였을까요?
- 제 작업은 유난히 죽음과 연결되는 작업이 많습니다. '어머니'나 '망월동' 작업도 직간접적으로 죽음과 연결이 되지요.
90년대 초의 사진계는 지금의 상황과 많이 달랐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 사진을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봐 주셨고 저 역시 그런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안았던 것 같습니다. 매체에 대한 담론이 풍부해진 지금, 전 제 자신의 사진에 대해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내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일까?',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사진은 여론을 환기 시키거나 대중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속에 제 사진엔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시간의 경계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는 제 자신을 본거죠. '망월동' 작업은 목격자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찾았고, 이번 작업도 꼭 공해라는 현실적 문제를 대중에게 알린다는 목적을 배제한채 삶과 죽음의 경계속에 있는 공간, 그 공간 속에서 살며 그들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밟고 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게 된거죠.
작가 본인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나요?
- 저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며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죠. 두려움은 삶과 죽음의 공존의 이유이기도 하죠.
그럼 이런 일련의 작업들도 결국 본인 과거의 상처 치유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 어떠한 예술 작업이라도 그 모든 것은 작가 본인의 자신을 바탕으로 작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꼭 내 자신의 상처 치유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결국 내 자신 속의 것들이 작업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꼭 상처의 치유라는 범위에서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요.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니 이제는 본인의 작업에서 다큐멘터리적인 방법의 한계를 말하시는 거 같은데요?
- 나이가 들면서 사진을 사진에 대한 흥미로만 아니라 그 깊숙한 내면을 보게 됩니다. 처음 사진을 접할 때와는 많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제 삶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이 많아 졌어요. 그 반성을 통해 제 자신과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들이 확연히 들어 나기 시작했어요. '아, 내가 어떻게 이런 모순들을 남들에게 전달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런 회의가 들지요. 결국 제 사진은 역사적, 사회적 인식을 위한 매체라기 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담아 두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번 작업도 그런 삶과 죽음의 경계의 시간과 공간을 사진 속에 담아 두는 과정이죠.
그런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회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면 한번쯤 느껴 봤을 벽이 아닌가요?
- 이제는 사진보다 더 정보 전달력이 강한 매체는 많이 있어요. 이제 사진은 정보 전달력이 가장 강하다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변화해야 해요. 그리고 다큐멘터리 사진의 개념은 가장 사진적인 방법으로 사진가의 시선이 사진 속,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변화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왜 중앙무대로 나오시지 않고 대구에서 작업을 고집하시는지요?
- 저는 본질과 현실 두가지 측면 중 본질을 중요시해요. 제가 사진가로서 좀 더 왕성한 활동을 하려면 중앙에 있는게 훨씬 현실적으로 유리하죠.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는 저를 매우 힘들게 해요. 현실적인 중요함이 상처를 받더라도 제 본질이 상처를 받기를 원치 않아요. 그리고 서울 보다는 대구라는 공간이 제겐 본능적으로 편해요. 제가 살아 온 곳이기 때문이겠죠.
학생을 엄하게 대하거나 항상 작업실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등 소문은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왜 많은 학생들과 사진인들이 작가를 따를까요?
- 하핫… 제가 인상이 무섭게 생겼습니까? 저는 그런건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항상 타인에게 제 자신이 최선을 다할 때 타인도 그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학생들에게 호되게 야단을 칠 때도 있지만 결국 학생들은 그 질책이 제가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항상 제 작업실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제 작업실의 이름이 오픈윈도우라 아닐까요?
작가의 작품을 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다큐멘터리 성격을 띄었지만 매우 부드럽고 감성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그런 작품이 만들어 지나요?
- 대상을 벗어나 공간을 생각하며 그 공간과 교감하면 그 대상이 사람 혹은 사물이건 상관없이 대상에 대한 응집력이 생기고 그 응집력은 시선을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만들줘요.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로우키의 톤에 약간은 갑갑해 보이는 정방형 포맷을 애용하시는데요??
- 그건 제 자신이 낮보다는 밤을, 밝은 곳 보다는 어두운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 자신은 이 톤이 정상톤을 보여요.(웃음) 또 사람의 시동선(視動線) 자연스러운 눈의 위치처럼 옆으로 길게 되어 있지요. 정방형 프레임은 이런 흩어진 시동선을 한대 묶고 저는 이 묶여진 속에서 다시 흐트러짐을 찾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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