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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 도시와 욕망의 카타스트로피
김우영 – 도시와 욕망의 카타스트로피
김승곤
내가 그의 첫 번 째 개인전 「New Works」의 도록에 서문을 쓴 것은 그가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 무렵의 그는 도시나 문명의 미래에 대한 어떤 종류의 비감(悲感) 같은 것을 갖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내 눈에는 그것은 세기말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예민한 감성을 가진 도시공학 전공의 사진가가 가질 수 있는 현실에 대한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비쳐졌다. 도시풍경을 찍은 그의 사진에서 뉴 토포그래픽스라는 용어를 머리에 떠올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뒤로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귀국 후에 가진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그 동안 패션사진 분야에서 보여준 남다른 끼와 재능으로 확고한 평가와 지위를 성취했다. 나는 그의 이런 상업사진가로서의 성공이 도시에 대한 관심 같은 것으로부터 그를 멀리 띠어놓았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십 수년이 지나서 놀랍게도 도시를 주제로 찍은 사진들을 들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이번에는 도시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서 찍은 사진들이다. 색채와 조형, 그들이 미치는 시각적 심리적 효과에 대한 그의 감각은 미술 쪽에서 이미 검증이 끝났다. 하지만 이번 작품들에는 그런 조형적인 요소들 이외에 도시의 소음이나 뒷골목에서 풍겨 나오는 음산하고 메케한 냄새까지 담겨 있다. 이런 생리적인 감각자료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도시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메말라 있다. 절망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풍경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사진가가 사진을 찍는 것일까, 아니면 사진가의 눈길이 풍경을 찾아내어 그것을 찍는 것일까. 풍경은 그냥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의식(눈길)에 의해서 발명(견)되는 것일까. 오래된 질문이다. 우리는 풍경이라고 하면 인공적인 불순물이 배제된, 이상으로서의 자연의 외관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스산하게 펄럭이는 비닐이나 어지러운 전선이 가로지르지 않는 때묻지 않은 자연, 장엄하고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광경….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순결한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의 모습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장치라면 카메라를 뛰어넘을 도구가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많은 사진가들이 그런 욕망을 위해서 봉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우영은 왜 하얀 눈으로 덮인 설악산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신록의 계곡이 아니라, 헐려나가는 교량이나 지저분한 여관의 내부를 보여주려 하는가. 그의 관심이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국립공원이나 상처받지 않는 무구(無垢)한 자연이 아니라, 우리들이 숨쉬고 있는 현실로서의 도시의 실체와 의미를 제시하고자 하는 일에 쏠려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가령 그는 여관이라고 하는 다소 특별한, 그러나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소비되는 잡다한 물건들의 사진을 도감적으로 나열해놓고 있다. 그 이미지들과 함께, 때에 절은 이불이나 머리카락이 낀 빗, 쓰고 버린 칫솔, 독기를 뿜는 듯한 천박한 형광 색의 비닐 슬립퍼 같은, 여관에서 주어온 무수한 잡동사니들, 그리고 재개발 공사현장에서 부대에 담아온 콘크리트 건축 폐자재들과 함께 그들을 섞어서 마치 모뉴멘트라도 되는 것처럼 전시장 바닥에 쌓아놓고 있다. 그것은 직시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정경이지만, 우리들이 지금까지 성취해 나온 것들의 실체는 사실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현실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비평의 소재로서 표현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려 한다. 청계천이나 성수대교들은 어떤 의미로나 서울의 상징적인 랜드 마크다. 그들 고유명사가 지시하는 대상은 지도적인 명쾌함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언어와 사유를 촉발시키는 자극소로 쓰이고 있다. 재개발 현장이나 싸구려 여인숙에서 채집해온 물건들을 일목요연하게 분류하지 않고, 뒤섞어 쌓아놓은 것도 그가 명료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상상의 장을 연출하려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현대문명과 도시의 욕망이 만들어낸 부산물(by products)들이다. 인화지와 투명한 필름이라고 하는 이질적인 재질, 흑백과 컬러의 오버랩에 의한 이미지의 디스플레이도 그런 의미의 중층화 전략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선명한 색채와 흑백의 대비로 이루어진 그의 도시풍경은 마치 어떤 불가능한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불어오는 스산하고 메마른 바람 같은 것을 보는 사람의 가슴에 일으킨다. 그것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무구한 '황야'로서의 풍경은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슬픈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실제의 풍경(situation)인 것이다.
현대의 사진가들은 자신의 내면 의식까지를 포함한 모든 대상을 풍경화하고 있다. 풍경에 대한 어휘가 늘어나면서 지저분하고 보잘 것 없고, 잡다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정경들이 풍경이라는 틀 안으로 끌어들여짐으로써 풍경을 서술하는 어법도 확대되어가고 있다. 김우영의 작품에도 엄격한 사진의 진영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울 정도의 이단적인 시각적 어휘나 조형어법들이 구사되고 있다. 첫 번 째 전시 때와는 달리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손에 의해서 오염되고 변형된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나 언급은 억제되어 있다. 그것은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하는 가치평가와 해석을 거부하며 '배경'처럼 자연을 감싼 채 그냥 그곳에 놓여있을 뿐이고, 설치라는 형태는 그런 배경으로서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의 물신(物神) 숭배자의 의식공간과도 같은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이른바 평형이 잡힌 고상한 예술취미가 얼마나 연약하고 거짓에 찬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도시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의 상징적인 건축물들은 언젠가는 한 무더기의 콘크리트 더미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굳이 청계천 고가도로나 올림픽 대교가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소멸되어버리고 말 장소들에 직접 개입해서, 그 동안 그곳에서 영위되었을 시간의 흔적들을 채집한다. 그리고 그렇게 찍은 사진과 잡다한 부산물들로 마치 디오라마와도 같은 도시경관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누가 가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10여 년 전의 첫 번 째 전시에서 보여준 도시경관들이 풍경에 대한 일종의 상실감 같은 것이 담겨있었다고 한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서울이라고 하는 도시공간을 역사적 사회학적인 태도로 분석해서 재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풍경에 대한 시선의 긍정적인 변화다. 그의 눈길은 변형되고 확산되는 인공적인 공간의 외관으로부터 도시의 내부로, 그리고 세부로 옮겨지고 있다. 소비와 욕망의 장(場)으로서의 여관이나 여인숙, 거기서 배설되는 잔류물들에서 우리는 도시의 암부(暗部)를 읽는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엄청난 탕진(蕩盡)과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를 방관자의 감상적인 눈길로 바라보는 대신, 그들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전 감각으로 체험으로써 쇠진과 새로운 탄생의 의미를 읽어내려 한다. 즉, 중립이 아니라 직접적인 개입과 관계를 통해서 '인간의 풍경'을 생성시키는 시스템 가운데 내재된 기본적인 법칙을 찾아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보다도 더욱 리얼한 전시장의 거대한 컬러사진과 오랜 시간의 경과에 의해서 표백이 진행된 듯한 흑백사진 앞에는 낡은 건물에서 헐려 나온 콘크리트 파편 부스러기가 가득 쌓여 있다. 도시문명의 진행을 암시하는 충격적인 광경이다. 롤랑 바르트는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되고, 그래서 모든 포트레이트는 죽은 자의 초상이라고 단언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도시는 폐허다' 라는 서양의 경구(aphorism)처럼, 폐허는 도시의 흔적이거나 과거의 존재증명이다. 우리는 어쩌면 도시라고 하는 폐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폐허는 욕망의 메타포로서 모든 도시에 범람하고 있다. 도시는 픽션의 공간이다. 그러나 전시장에 부유하는 그 건조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는 이미지와 욕망만이 비대해진 유토피아의 공허한 그러나 감미로운 반향이 울린다. 건축물의 시간은 세워지는 순간부터 폐허로 향한 시간 축을 따라 진행된다. 김우영은 그런 폐허화된 도시풍경을 영웅적인 설치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그의 관심의 실체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폐허 또는 욕망이라는 키워드와 디오라마적인 경관을 결합시켜 일상적인 도시를 지적인 코드로 전환시킬 뿐 아니라, 사진이라고 하는 환영(phantom) 장치와 베게나 색동이불, 무기질의 폐기물 같은, 구체적인 사물 그 자체를 병치시킴으로서 실체가 없는 도시라고 하는 대상을 구체적인 리얼리티를 가진 세계로 재구축하고 있다. 도시는 기억이고, '물건'들은 잊혀진 기억을 재생시킨다. 다시 말하지만 김우영의 경우, 자연과 인공적인 도시의 대립도 문명에 대한 비관이나 절망도 아니다. 의사적인 공간으로 도시 이미지를 압축시키고 다른 차원의 의미와 존재감을 부여함으로써 문명 이전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역설적으로 재현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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