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다게르에 의해서 사진술의 발명이 공표된 이후, '예술의 성역'에 진입하려는 사진의 일방적인 시도에 의해서 사진과 미술(회화)은 오랫동안 애증관계를 이어왔다. 최초의 갈등은 초상화의 분야에서 빚어졌다.
19세기말, 유럽과 미국 각 도시에는 수십 개의 초상사진관들이 성업 중이었다. 초상사진이 빠르고 정확하고 싼값으로 초상을 제작함으로써, 초상화가들은 더 이상 생계를 꾸려가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사진을 보고 경악한 P. 드라로쉬는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라고 소리쳤다. 회화가 죽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많은 초상화가나 풍경화가들이 붓을 꺾은 것은 사실이었다.
사진에 대해서 격렬한 반감을 갖고 있던 보드레르는 "천박한 기계의 서자인 사진이 신성한 정신의 영역에 들어오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진은 회화의 종복으로서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 사진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가장 빈번하게 카메라 앞에 서서 포즈를 잡은 모델의 한 사람이었다.
파리의 템플큰길, 1839, 다게로에타입, 다게르
당시 회화나 소설에서 인물의 용모에 대한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는 그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았다. 그러나 사진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생략'이나 회화적인 모방을 통해 예술적인 매력을 갖추려 했다.
앙그르나 마네, 쿠르베, 드가, 로트렉, 앙리 루소 등 많은 화가들은 적극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사진의 출현을 환영했고, 실제로 사진으로부터 많은 착상을 얻었다.
그러나 그림으로부터 착상을 얻은 사진가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쥬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초상사진이 라파엘 전파의 회화의 양식이나 '성 모자상'을 그린 종교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일이다.
회화에 대한 추종은 초상화에서뿐만 아니라 풍경과 종교화 등, 그때까지 회화의 독자적인 모든 영역에서 나타났다. 레일란더의 「인생 두 갈래의 길」(1857)은 우의적인 내용에 있어서나 인물의 배치, 화면구도, 광선의 사용법 등 당시의 회화의 주제와 기법을 답습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cf. 쿠르베의 「화가의 아트리에(1855)」) 소재나 방법에 있어서도 회화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갔다. '회화적인(픽토리얼) 사진' 피터 헨리 에머슨의 전원풍경을 찍은 사진들도 밀레의 전원풍경 등 명화의 정경들을 사진으로 재현한 것이다.
2. 사진의 자각과 자립
그러나 사진이 갖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말할 것도 없이 광학과 기계, 화학의 성질을 이용한 빠르고 정밀한 기록과 인간의 눈으로는 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고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ex. 달리는 말의 스톱모션 - 머이브릿지)
사진은 회화가 새롭게 방향을 잡는 촉매로서 직·간접적인 역할을 했다.(ex. 인상파의 대두) 1903년, 폴 고갱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는 지금 물리, 화학, 기계공학으로 야기된 불안정하고 방황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라는 말로 사진의 출현에 대한 화가들의 불안한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카메라 애호가의 한사람이기도 했던 그의 「부채를 든 여인」은 사진을 밑그림으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갱 자신의 개성적인 해석과 표현으로 창조된 것으로, 단순히 사진을 보고 배낀 것과는 다르다.)
에드워드 웨스턴, 조개껍질, 1927
한편, 발명되고 거의 한 세기 가까이 지나는 동안 회화의 꽁무니만을 좇아온 사진은 회화의 주제와 방법과 원리를 그대로 따름으로써 '제2의 예술의 자리'를 손에 넣으려 했다.
초기의 초상사진들은 화면의 주위를 흐리게 함으로써 사진의 시각과 세계를 일체화시키려 했다. 이들은 사진이 현실의 시공간의 일부를 기계적으로 잘라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동안 독자적인 성격을 자각하고 몇 차례의 계기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진이 불완전하게나마 독자적인 영역에서 자립하기 시작하는 것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근대적인 개념의 최초의 사진(모더니즘)은 A. 스티글리츠의 스냅샷에서 비롯되었고(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 P. 스트랜드가 출현(즉물주의)하는 1940년대에 본격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된다.(cf. E. 스타이켄, E. 위스턴, 1940년 MOMA의 사진부문 신설. 그룹 'f64', A. 아담스 … )
또한 공정하고 자동적인 기록성과 현실대상과의 형태의 유사성이라는 특성에 의해서 사진은 세계를 바라보고, 아름다움이나 휴머니즘, 진실에 대한 욕구를 실현시키는 가장 믿을만한 도구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ex. MOMA 기획의 「인간가족전」, 라이프지의 창설과 매그넘 결성)
회화와 사진을 구별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화가 앞에 놓여있는 것이 흰 캔버스인데 반해, 사진가는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진의 결점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인간의 시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빠른 움직임, 먼 거리, 미세한 세계, 시간과 공간력을 초월하는 재현력, 정확무비한 외관의 기록 능력을 자각하기 시작한 사진은 회화의 추종에서 벗어나, 보는 것과 기록하는 것으로 사진의 중심적인 역할을 바꿔나갔다.
사진은 공정하고 진실된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을 불변하는 모습으로 보존하는 뛰어난 매체로 인식되는 동시에, 시각적 조형예술의 분야에서도 사진 독자의 영예로운 영역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사진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마이너한 예술로 평가되고 있었고, 전통적인 예술의 편에서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에드워드 웨스턴 : 피사체가 만들어내는 선, 구도, 빛의 그라데이션, 조각적인 형태미를 찾아 추상적으로 형태화시켰다.
"브랑쿠시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추상적인 형태는 이미 자연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나 조각가가 생각하는 추상 이념은 카메라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 E. 웨스턴
추상·상징 A. 스티글릿츠의 이퀴벌런트 시리즈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삼등선실, 1907
사진의 두 가지 성격
1. 예술 : 사진에 찍혀있는 것, 그 자체로 성립되는 사진(암실이나 사진가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다)
2. 기록(보도) : 대부분 해설(설명)이 필요한 사진(길거리의 현장이나 전장터에서 찍혀진다). 설명의 과정(편집)에 따리 사진의 의미가 방향지워진다.
3. 현대미술의 전개와 한계
시기적으로 19세기말에서 20세기말까지를 지칭하는 '모던modern'이란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근대를, 동시대성을 생각할 때는 현대(컨템포러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모던이란 기준과 방법model을 의미하는 말로, 어원인 모드mode는 시대의 양식style 또는 유행fashion을 나타낸다.(대립되는 용어인 클래식classic은 귀족, 부호 지적 앨리트 등 선택된 특별한 계급을 지칭한다.)
클래식에서 모던으로, 즉 귀족사회 계급사회에서 대중사회로 이행하면서 미술은 활기를 띄게 된다. 또한 고급과 소수를 지키기 위해서 차별화를 위한 운동과 성명과 선언이 전략으로 채택되었고 다양한 '이즘'이 탄생했다.
미술은 국제성과 방향성을 가진 운동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보였는데, 이 운동의 중핵은 관(개)념이넜다. 작품 속에 들어있는 이 관념(ism)을 찾아내어, 그것을 해석하고 규정하고 정의 내리는 것이 평론가의 역할이었다. 개념과 사상이 선행하고, 이런 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또는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아르누보와 신인상파이래, 포비즘, 큐비즘, 표현주의, 미래파, 구성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신 즉물주의, 추상표현주의 … 등 수많은 언어들이 미술사 위에 쌓여나갔다.
모던아트는 점점 난해해지기 시작했고,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론가의 역할이 필요했다. 모더니즘의 예술은 개념화와 추상화, 순수화를 향해서 치달렸다.
모더니즘은 왜 새로운 것, 순수화를 추구했는가?
리차드 아베돈, 셀프포트레이트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 공업제품은 경제적인 효용성과 가치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으나, 처음 만들어지는 독창적인 제품은 그 가치를 단번에 결정할 수 없다. 즉, 일반적인 경제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다른 것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모든 것을 상품화시켜버리는 시대에 경제원리로부터 예술이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이브 알랭 봐 The Task of Mourning, 1986
그러나 1970년대 이후의 미술은 어느 특정한 개념이나 이즘, 또는 운동으로 재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모던아트는 새로움과 신기함, 독창성, 차별성, 추상성, 기호화를 특징으로 한다. 그 가운데서도 모든 장식적이고, 불순한 것들이 제거된 순수성이야말로 가장 큰 가치로 인식되었다. 회화에서 자연의 외관이나 단순한 현실의 물리적 재현은 배재되고, 그 대신 순수한 형태와 색으로 추상화되어 나가게 된다. 주관과 해석의 배재, 화가의 개성과 인격을 배재한 차가운 표현은 이미 인간 중심의 시각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미술이 순수한 관념의 원형(미니멀 아트, 컨셉추얼 아트)에 가장 가까워진 순간, 현대 미술이 한계에 봉착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4. 포스프 모더니즘과 새로운 예술로서의 아트 포토그래피
"모더니즘은 학교와 시장과 미디어 그 밖의 모든 사상과 의견의 중심부에서 승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승리는 허무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패배에 가까운 것이다." - 그룬드 버그
1980년대의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추구해야할 새로운 것은 더 이상 없었다. 상실감과 무력감에 빠진 이들은 과거로의 회기(레트로스팩티브)를 시도했고, 이미 잘 알려진 이미지들을 인용하면서 작품에 새로운 의미와 내용을 짜넣는 지적인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전략에 있어서 객관, 중립, 진실, 리얼리티, 설득력, 의식에 미치는 영향력, 전파 속도, 확장성을 가진 사진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끌어쓸 수 있는 도구였다.
"저 사람은 예술가 타입이야."라고 말할 때, '자신을 세속적인 가치나 사회로부터 분리시켜 고뇌하면서 혼의 밑바닥에 있는 고고한 정신세계를 영원하고 순수한 형태로 만들어 가는 사람' 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개성과 창조성이 존중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눈을 뜨기 시작한다. 기존의 목록 가운데에서 소재와 아이디어를 끌어내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60년대 미술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반복과 선택이었다. 팝아트, 미니멀 아트
앤디 워홀 : 마릴린 먼로, 자클린 케네디, 엘리자베스 테일러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사상적 전환은 사진매체의 순수성이 극한에까지 추구되고, 중립과 자동성이라고 하는 카메라의 차가운 메커니즘에 의해서 이상과 지고의 미학과 휴머니즘이 실현될 것으로 믿었던 모더니즘 시대의 가치가 붕괴되는 시점과 동조되어 출현했다.
지금까지 예술을 성립시켜온 질서나 체계를 스스로 파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모든 가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기조로 하고 있다. 여러 영역에서 경계가 와해되고 불순성과 절충성이 특징으로 나타났으며, 순수성과 차별성은 과감하게 버려졌다. 래트로스팩티브retrospective, 키치kitschen 등 회고적이고 저급한 풍조가 세기말의 예술전반에 팽배했고, 사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월남전이 한창인 1960년대부터 포토 저널리즘이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소박한 신앙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실은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훨씬 복잡한 것이라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이 그려내는 '커다란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어갔고, <라이프>지의 패간(1976)으로 포토저널리즘이 쇠퇴하는 것과 때를 맞추어 사진은 미술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은 '큰 세계'에서 나와 좁은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은 그때까지 쌓아올렸던 사진 독자의 순수성을 버림으로써 감상과 수집과 투자 가치가 있는 미술품으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진에 있어서 '모더니즘'의 시대가 끝나고, 그 자리에 노도처럼 밀려온 '근대 이후'(포스트모더니즘)가 자리잡아 나갔다.
1960년대부터 광고사진이 대중문화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현대사진의 배경을 이룬다. 미국과 유럽과 일본에서조차 광고사진가는 대중문화의 스타였고, 잡지나 TV화면에서 광고사진가가 등장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들이 만들어 쏟아내는 것은 현실세계의 충실한 기록이 아니라, 만들고 꾸며진 이미지의 세계였다. 더 이상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그런 인식은 소비대중뿐만 아니라 예술가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의 사진의 장면은 이벤티드evented, 매니퓰레이티드mainipulated, 스테이지드staged, 콘스트럭티드constructed 등 연출되고 만들어진 사진(메이크make 사진)들로 뒤덮여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뉴 웨이브'로 불리는 이러한 사진들의 출현으로 발명 이후 15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진은 '사진적 폭발photographic explosion'의 시대를 맞게 된다.
새로운 경향의 이들 사진은 어느 구석에서도 전쟁이나 빈곤, 인권운동 같은 무거운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 대신 전통과 역사, 풍경에 대한 재해석, 훼미니즘, 상업주의, 가족, 성, 죽음과 같은 표면에 들어 나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나 개인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지금 사회(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우리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중요한)가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미 이전부터 존재해 온 것, 다른 장르의 것, 과거의 기억의 목록, 체험으로부터 끌어들인 소재들을 모자이크해서 작품으로 보여준다. 매체의 순수성이나 작가의 오리지널리티, 창조성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경계의 와해, 무절제한 혼합이 이 시대의 사진에 나타난 특징적인 현상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사진가로 불리는가, 또는 아티스트로 불리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 "나는 사진가가 아니고, 사진가가 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사진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진은 그들이 사용하는 다른 매체와 구별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신디 셔먼 : "그녀는 예술가로서는 흥미로운 존재이지만, 사진가로서는 전혀 흥미가 없다." - 아비게일 솔로몬 고도 흔한 소재, 형편없는 프린트
1970년대 초, 미니멀리즘, 개념예술, 퍼포먼스 등을 경험해 나온 현대미술의 일각에서 '회화가 죽었다'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티스트들은 회화나 조각에 의하지 않는 실험적인 제작방법을 실현시킬 새로운 미디어를 찾고 있었다. 자동화된 카메라를 구사하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은 가장 손쉬운 미디어였고, 폴라로이드의 보급과 확산은 이런 현상을 부채질했다.
"사진은 게임의 법칙이 바뀌는 것과 동시에 승리를 손에 넣었다."
"사진이 예술로서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그 영광스러운 자리가 무너졌다."
사진이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을 차지하게 된 순간, 회화와 사진 양쪽으로부터의 접근이 시도되었다. 아니 사진과 미술의 구별 자체가 무효화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조각, 회화, 퍼포먼스, 언어, 연극 등 다른 예술영역의 언어들이 사진에서 구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사진의 특성은 사진 자체의 완성도나 예술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나 질문에 무게가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민족, 소수, 젠더, 가족제도, 계급과 같은 사회·정치적인 문제에서부터 미술의 제도와 같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작품과 외부세계와의 구조와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지금까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도 다루어져 나온 문제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실을 날카롭고 명확하게 잘라내어서 보여주는 것도, 그렇다고 해서 사진가의 주관이나 미의식을 작품에 작용시키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의 사진과는 어딘가 다르게 애매하고 불투명하지만,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에 관계되는 어떤 차가운 생각, 이미지들을 우리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지금, 사진을 다른 시각 조형미술과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로 인식되고 있다. 또 사진 안쪽에서도 사진을 심미적인 가치와 세계의 진실을 기록하고 전하는 두 가지 기능으로 가르는 일은 유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사진의 가장 큰 덕목이 기록성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TV나 비디오 같은 다른 기록매체가 확산된 지금, 기록성은 사진이 지켜야할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사진은 이 기록 기능 가운데 많은 부분을 보다 뛰어난 다른 매체에 넘겨주거나 공유하는 대신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와 가능성을 손에 넣게된 것이다.
이것은 자주 160여 년에 걸쳐 치러진 하나의 게임이 끝나고, 트럼프가 뒤섞여진 상태(Shuffle)로 비유된다.
세계의 도시와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대규모의 미술 이벤트나 사진시장에서 사진은 다른 조형예술과 동일한 대접을 받고 있다. 현대미술의 장면에서 사진을 다른 시각적 조형미술과 구분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본 내용은 지난 2001년 9월 8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토요미술강좌에서 강의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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