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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순 - 필드워크에 강한 실전형 사진가
지금도 세상에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많다. 결혼이나 생활풍습이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결혼을 해도 남자는 아내와 함께 지내지 못하고, 어둠이 내린 다음에야 살그머니 들어가서 아내를 만나고 다음날 새벽 동트기 전에 그 집을 빠져 나와야 한다. 그뿐인가, 심지어는 집도 재산도 어머니가 물려받고 자식에 대한 부양의무나 권리도 모두 어머니 쪽이 갖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모계사회라는 것인데, 흔들림 없는 부계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가족제도가 아직도 동남아의 여러 지역에 남아있다.
이 모계사회는 남성의 권위나 지배권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남성우위의 부계사회에 비해 사회의 안정도가 낮고 근대적인 산업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확립되면서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부계사회적인 가족제도가 일반화되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는 해마다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어 부계사회적인 가족제도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있다. 독신족이나 만혼, 요즘에는 성인 아이(Adult Children)이라고 불리는 신종 어른까지 생겨나고 있고, 그래서인지 부계사회의 이런 붕괴 조짐에 대한 대안으로서 현대적인 모계사회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원래 모든 생명의 기본은 여성이라고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척추동물의 배아는 태아의 초기 단계에서는 모두 여성이지만, XY염색체가 만들어내는 남성 호르몬이 XX염색체인 여성을 제2의 성인 남성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얘기인데,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이것은 여성이 남성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 무렵의 얘기와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인다. 나도 남자여서 무턱대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X염색체가 튼튼하고 강한데 반해서 Y염색체는 남자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뿐 거의 쓸모가 없는 열등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자는 존재이지만, 남자는 현상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생명의 원리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체계가 모계사회가 아닐까? 우리 어머니들을 보아도 그렇다. 논밭 일이며 가사 같은 생산적인 일은 여자들이 하고, 남자들은 예술이다. 정치다, 스포츠다, 전쟁이다 하며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일에만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납득이 간다. 어쩌다 남자들이 생산이라도 하게 되면 기껏 농약이나 고엽제, 핵무기 같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나 만들어내는 것이 십상이다.
수렵으로 단백질을 구하던 원시시대의 부족들은 거의 모두 모계사회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스스로 전분을 만들어내는 정착농경으로 바뀌고, 인구가 늘어나고 규모가 큰 전쟁들이 일어나면서 남성우위의 사회형태가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부계제가 사회 체계의 주류로서 자리잡아가게 되는 것이 산업화와 도시문화가 시작되는 16, 7세기 이후부터라고 하니까, 인류의 탄생을 대략 20만 년 전쯤으로 보았을 때, 우리 남성들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부계사회가 나타나게 되는 것은 놀랍게도 극히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근대 서양문명이 확산되면서 모계사회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전 세계의 563개 민족 가운데 모계에 기초를 두고 있는 사회는 전체의 15%인 84개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이 비교적 서양의 근대사상, 특히 기독교의 영향을 적게 받은 동남아의 오지들이다. 이들 지역의 문화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나 지식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왜곡된 경우도 많다. 백지순은 중국의 소수민족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같은 지역에 남아있는 모계사회의 민속, 사회구조에 관해서 조사하고 이문화 속에서 찾아낸 소중한 자료들을 사진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그는 필드워크에 강한 실전형 사진가다. 원래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그가 본격적인 사진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사진가 김수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부터다. 김수남이라고 하면 일년의 절반을 주로 동남아 지역, 그것도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서 비교적 고유한 민속적 원형들이 남아있는 오지만을 찾아 다니며 민속신앙과 통과의례를 취재해온 아시아의 대표적인 ‘문화사진가’다. 그런 만큼 아무리 단단한 의지와 체력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자가 함께 따라다니며 해내기에는 벅찬 일이어서, 주위에서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8년 동안이나 현장을 쫓아다니며 작업의 동반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가 그런 오랜 취재 경험들을 통해서 그 지역의 음식문화를 비롯해서 신앙의식, 친족관계 등에 대한 인류 문화학적인 관심과 소양을 배양시켰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작년부터 스승의 뒤를 이어 소수민족의 삶과 정신문화라고 하는 뚜렷한 전문분야를 가진 독립사진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최근 이런저런 인쇄매체를 통해서 그가 취재한 기사와 사진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 모계사회는 중국과 인도, 나아가 서양의 주류 문화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존재했던 동남 아시아 지역의 기층문화 제도다. 이런 폐쇄적인 장소에서는 정령숭배와 같은 샤머니즘의 종교적 전통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도 특징이다. 사진가로서의 그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진정 유용하고 가치 있는 주제를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 백지순이 이문화에 대한 꾸준한 탐색과 기록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어떤 중요한 단초를 잡아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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