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누드사진의 종언(終焉)
왜 나체사진이 아닌 누드사진인가? 그것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은 동물적이고 열등한 것이어서, 그것에 관해 말하는 것도 남의 시선에 드러내서 보여주는 것도 금기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여성의 나체는 사진사의 초기에서부터 사진으로 찍혀졌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서양미술에서는 인체에 대한 이상화된 동기를 형태로 표현하는 전통이 회화나 조각이라는 장르로서 존재해왔지만, 그것은 있는 그대로를 생생하게 드러내버리는 사진과는 달리, 특별한 정신과 재능과 오랜 숙련을 필요로 하는 예술가의 작업이었다. 그런 숙련이나 예술적인 재능이 없이 예술가의 성역에 들어가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눈앞에 있는 것을 순식간에 그대로 그려낼 수 있는 사진술의 출현은 더 없는 구원이었다. 재빨리 카메라를 손에 넣은 그들은 자연풍경과 함께 인간도 촬영목록 가운데 재빨리 편입시켜나갔다. 말할 것도 없이 피사체는 대부분 젊은 여성들의 알몸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오스카 레일란더의 「인생 두 갈래의 길」(1857)이 발표되었을 때 주제나 표현방법에 대한 예술 쪽에서 보인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인 것이었지만, 그런 여성의 나체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달랐다. 그의 작품을 구입한 빅토리아 여왕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작품 왼쪽의 나태와 타락을 상징하는 여자들의 나신은 커다란 천으로 가려져서 전시장에 공개되어야 했다. 당시만 해도 아무런 의상도 걸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건 벗었다는 것 자체가 외설이었다. 분별 있는 영국 가정에서는 의자와 식탁의 다리에마저 속옷을 입혀야 했는데, 그것은 그것이 비록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라고 할지라도 다리(legs)를 맨 살로 드러내는 것은 외설스런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드러난 식탁 다리를 보고 수치심을 느끼거나 욕정을 일으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컨데 외설성이란 사회적인 통념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고, 시대와 함께 변화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외설성이나 여성의 나체가 갖고 있는 성적인 기호성 자체를 부인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시대와 사회통념, 개인의 성별과 나이, 상상력과 가치관 같은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수치심이나 외설성 자체는 분명 처음부터 존재한다. 또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건, 아니면 혐오스런 것이건 성적인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건 아니건, 지금까지의 여성의 나신을 찍은 거의 모든 사진들은, 링컨 식으로 말하자면 ‘남자에 의한, 남자들의, 남자를 위한’것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체 - 특히 젊은 여성의 알몸은 오랫동안 성적인 기호로서 남성들의 시선과 욕망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른바 예술가들은 남성들의 일방적인 시선을 특권화시키고 있다는 페미니스트들로부터의 거친 비판을 순화시킬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거기서 나온 것이 ‘누드’라고 하는 고상하게 들리는 이름의 예술전략이었다.
여성의 몸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몸에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은 나체(naked, bare)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누드라는 용어를 고안해냈고, 소재로서의 나체를 이상적인 미로서 재창조한 완성된 예술형식의 하나라고 그 누드를 정의하고 있다. 단순히 여성의 신체를 기계적으로 찍어낼 뿐인 ‘사진’은 그의 탁월한 누드에 대한 고찰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말하자면 누드는 물질(matter)을 형태(form)로 바꾸는(transform) 가장 완전한 예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있는 그대로의 ‘비천한 알몸’은 타자(남성, 예술가)의 눈길과 손길이 닿음으로써 비로소 ‘누드’라고 하는 성성(聖性)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클라크의 누드론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페미니스트 미술사가 린다 니드 조차도 '누드는 남성의 눈길에 있어서 이상화되었을 때에 한해서 여성의 나체상이 된다.'(누드의 반 미학, The Female Nude, Art, Obscenity and Sexuality, 1992)고 말할 정도다.
타린 사이먼 Taryn Simon _< Untitled >.
1975년 뉴욕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사진을 공부한 사이먼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전시가 되었고,《Vogue》,《New York Times》등의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뉴욕과 파리에서 활동을 하는 그는 작년에는 뉴욕 P.S.1갤러리에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죄수의 모습을 찍은 < The Innocents전 >을 열였다
아무튼 현실을 어떻게 이상화시킬 것인가가 초기 사진가들의 당면한 문제였다. 자동기계를 가지고 예술가의 지위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작품의 주제와 소재, 모델의 포즈에서부터 몽환적인 연초점 화면에까지 고전적인 회화와 조각의 방법들을 모방함으로써 지나치게 생생하고 천박한 현실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적어도 에드워드 웨스턴의 즉물적이고 조형적인 누드사진이 나오는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젊은 여성들의 육신을 소재로 꿈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려는 사진가들의 노력이 이어지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성의 육체는 신비화나 추상화(化)와 같은 미적 승화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오브제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목표를 어디에 두었건, 사진사를 되짚어볼 때 사진가들이 성적인 충동으로부터 자신들의 작업의 동기를 얻지 않았던 때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모델들은 사진가의 모델이었고 사랑하는 애인이었고 아내였다. 어느 경우에도 모델=여성은 사진가=남성의 눈길(욕망)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사태는 오래 동안 계속되었다. 긴 세월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에서는 더더욱 성은 일상으로부터 격리되거나 금기시되어 왔고, 그로 인해 성과 여체에 대한 표현을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사진가들이 출현할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누드를 찍는 사진가들의 작품은 회화적인 화면구성과 빛과 색채의 심리적인 효과, 때묻지 않은 자연과 인체와의 대비, 한국적인 정서,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젊은 여성들의 균형 잡힌 프로포션에 근거를 둔 것이 대부분이다. 비록 아무리 수상쩍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사진에서 외설성을 느끼는 것은 고상한 예술감상자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모델을 향한 시선의 안쪽에 은폐된 욕망은 우아한 예술로 승화된 사진작품에서는 철저하게 거세되어 있다.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은 인체의 표현에 대한 사회의 제도적인 강제와 사진가 자신의 예술의 상황에 대한 폐쇄적이고 자율적인 인식이었다.
모델들은 옷을 입지 않은 알몸을 드러내어도 결코 부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을 깊은 숲이나 인적이 없는 해변의 바위틈, 광활한 사막이나 설원, 쓸어져 가는 초가집이나 고목을 배경으로 로맨틱한 광선 속에서 고전회화에 나오는 여신들과 같은 포즈를 취하도록 요구된다. 사진가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하는 감상자들의 기대와 동시에, 그들의 성에 대한 은밀한 욕구도 함께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반쯤 벌린 젖은 입술, 꿈꾸는 듯한 시선, 사지를 내던진 무방비한 포즈…. 직접적으로 성을 환기시키지 않는 은유적인 방법으로 여체를 표현했다. 그렇게 해서 살아있는 나체는 누드로 바뀌어갔고, 사진가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클라크의 「누드(The Nude)」가 발표된 1957년으로부터 이미 반세기 가까이 지났다는 사실을 아예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모든 사진가들이 언제까지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성적 문화의 자유의 세례를 받은 표현자들에 의해서 인간의 신체와 성의 문제는 이상적인 미를 실현하기 위한 소재로서가 아니라 그것 자신이 직접적인 탐구의 대상으로서 사진의 장면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른바 품성 나쁜 사진들이 현대예술의 정당한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90년대 초, 성기와 성기 주변의 체모와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얼굴이 노출된 사진들이 미술관이나 화랑의 흰 벽에 당당히 걸렸을 때만 해도 놀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엄격하기는 하지만 허술한 관헌들의 눈도 예술의 신성한 장소에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앙드레 세라노 때도 로버트 메이플소프 때도 아리키 노부요시 때도 헬무트 뉴턴 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1세기는 나체 표현의 다양한 주제나 방법론이 시도되었고, 있는 그대로의 피사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꾸밈없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커다란 매력으로 느끼는 사진가들이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놀라운 일로 나체를 다룬 사진의 절반은 여성사진가들이 찍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찍힌 대부분의 나체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기준으로는 거짓으로라도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알몸을 찍은 사진이 더 이상 남성들에게 눈의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리처드 컨 Richard Kern _
1997
1954년 북캐롤라이나에서 출생하고 미술과 철학을 전공한 컨은 1980년대에 < Cinema of Transgression >이라고 불리는 단편 영화로 유명해졌고, 휘트니미술관에서 그의 영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진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다.
한국의 사진에서 오래 동안 암흑 속에서 영위되던 성과 신체에 대한 표현이 대낮의 시각문화 속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어쩌면 죽을 때까지 배우자 몸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옷을 벗은 알몸을 배우자에게 노출시키는 것도 불과 얼마 전부터의 얘기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마치 그 억압에 대한 반작용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체 표현에 대한 사진가들의 도전적인 작업들이 시도되고 있다. 미로의 비너스 상으로 상징되는 신체미학의 탈 신화화가 진행되면서 인체의 표현에 대한 터부도 성역도 사라지고 있다. 이제 나체는 단순히 옷을 걸치지 않은 알몸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의 아이덴티티의 근거로서의 나체에는 현대의 사회 문화적인 상황과 시대의 의식이 깊숙하게 각인되어 있다. 성적 도착, 관음증, 물신성, 노출증, 동성애, 죽음, 자폐증, 욕망, 에로티시즘…. 염색체의 해독에 관한 괄목할만한 과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와 충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신체의 안쪽에 있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사진가들의 도전에 의해서 인간의 몸은 점점 더 큰 자유와 의미의 영역으로 스팩트럼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최근 10년 간 여성 사진가들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보는 한, 그들은 남성들에 대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이상 아무런 환상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인간의 몸은 더 이상 누드도 나상도 아닌, 신체 그 자체로서 표현공간에 내던져져 있다고 하는 상황을 알 수 있다. 오브제로서의 누드의 미학은 부정되고, 현실의 안쪽에 있는 욕망의 실체와 사회적인 풍경으로서의 나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도됨으로써 나체 표현의 영역과 수준이 확장되고 인간 자체에 대한 시선의 질도 바뀌어가고 있다. 참혹한 주검도 폭력도 공포도 적나라한 성의 영위도 현대의 시각예술의 금기의 목록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탐욕스럽게 보는 일에 탐닉해온 남성들에게 남은 것은 어쩌면 여성의 내시경사진 정도뿐일지도 모른다.
글 /
김승곤
(사진평론가)
(본 내용은 '월간 미술'지에 실렸던 글을 가필한 것입니다.)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 해외 ]
크리스티 경매 시장 - 마돈나 누드사진 낙찰
2009.06.20
[ 특집 ]
New Nude - 누드사진의 새로운 경향 - New Nude - 누드사진의 새로운 경향
2004.03.24
[ 연재 ]
원포인트 시리즈 - 2. 원포인트 누드사진
2000.01.01
[ 연재 ]
원포인트 시리즈 - 1. 원포인트 누드사진
2000.01.01
등록된 관련갤러리가 없습니다.
국내 최대의 사진전문 포털사이트인 아이포스 웹진에서는 각 미디어와 화랑의 전시담당자, 프로사진가, 전국의 각 대학 사진학과 교수 및 전공자, 미술계와 광고 디자인계, 출판 편집인,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인사, 국내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임원, 사진동호인 등
27만6,830명
에게 사진문화에 관한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