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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진
동굴의 시대
수많은 인쇄물, TV, 인터넷…. 지구 전체가 온통 영상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대인들은 하루에 보통 1,000장 정도의 이미지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한 평생 살아도 볼 수 없었던 양을 하루 동안에 보는 셈이다. 그래서 지구를 '이미지 혹성(image plane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혹성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이미지 인간'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 없다. 이런 사태를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진이다. 탄생한 지 불과 160년 남짓밖에 되지 지금은 사진이 없는 생활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인류의 시각표현의 역사가 3, 4만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사진은 짧은 시간에 턱도 없이 큰 역할과 지위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기만 우리는 여전히 사진의 미학이나 보도나 기록이나 광고 같은 사진의 기능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영상환경이 아무리 빠르고 광범위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진에 관한 한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알타미라 동굴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문화와 사진」이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는 환경으로서의 문화가 사진을 어떻게 바꿔 나왔는가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문화란 사전적으로는 어떤 지역에서 오랜 사간에 걸쳐 축적되어 계승되는 습관이나 지식, 정신적인 가치를 말한다. '문명'이나 '문화'는 '자연'과는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문명이 물질적인 면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문화는 정신적인 면이 강조된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우리는 서구의 문명과 문화를 모델로 근대화를 추진해 나왔다. 상상력이나 정신적인 가치보다 실질적인 기능이 중시되었고, 우리들의 의식 가운데 남아있는 모든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것'들을 몰아내는 대신, 그 자리에 인위적이고 합리적인 지식공간이 자리잡아나갔다. 서구적인 문화와 문명을 성취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개발도상 국가들이 지향하는 지상의 목표였다.
그러나 최근 20여 년, 전쟁과 공해, 질병 같은 서구문명이 빚어낸 부정적인 측면들이 드러나면서 실용과 기능 중심의 '문명'이 가진 네거티브한 면모가 드러나고, 그 대신 '문화'라는 용어가 우위의 개념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문화입국', '문화선진국', '문화상품' 같은 생소한 조어들이 빈번하게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문화는 이제 '음식문화', '음주문화', '교통문화'에 심지어는 '화장실문화'까지 일반적으로 쓰여지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문화가 온 천지에 만연해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화'는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바꿔 나왔는가.
사진술의 발명은 과학문명의 소산이지만, 그 사진술이 만들어내는 것은 문화적인 가치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진이 현대적인 개념의 문화의 범주에 속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계산에 넣는다고 할지라도, 도입 초기에 사진이 빚어낸 미신은 맹목적인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러닉하게도 우리는 사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정당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신앙은 사진이 진실을 뺏을 뿐 아니라 사람의 혼까지 뺏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사진’이라는 이름의 미신
「한국사진사」(최인진 지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처음 사진에 들어왔을 무렵에는 사람들이 몰려와 영업사진관에 불을 지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혼백을 뺏어 가는 카메라(사진)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혼을 뺏긴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진이 사람의 혼백을 뺏어간다는 얘기는 지금 같으면 초등학생들도 믿지 않을 것이지만, 실물과 똑 같은 모습이 옮겨진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의 완고한 노인들의 놀라움과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얘기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문호 오노레 발자끄 조차도 손에 사진을 들고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무한한 엷은 그림자들의 층이 한 장씩 벗겨져서 종이에 옮겨 씌워진 것" 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옛날에는 사진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 - 말하자면 살림이 넉넉했거나 일본에 건너가서 '신 문물'을 체험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적인 과학의 이기였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어오는 카메라와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별로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도 집안일 돌보지 않고 문자 그대로 사진에 '넋'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사진에 혼을 뺐긴 사진가가 세상을 뜨면, 그의 가족들이 맨 먼저 한 것은 사진(필름)을 불살라버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진사에서 중요한 사진가 가운데에서도 원본작품이나 원판 필름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어떤 사진가 한 분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가족을 찍어오고 있다. 지금은 그 딸이 결혼해서 손자(녀)를 낳았을 것이고, 아마 지금은 늘어난 새로운 가족들을 넣고 매년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다. 그의 그런 행위는 말하자면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과 시간을 사진이라고 하는 움직일 수 없는 네모난 공간 속에 담아두려는 것으로,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을 미개인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그들 자신이 '아이덴티티' 라고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원시의 미개인들에게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이다. 미개인의 경우는 단순히 "나는 ***('늑대와 함께 춤을')이다." 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단순한 가족체계나 사회구조 속에서 그들은 집단 가운데에서 누구나 개개인이 확고부동한 역할을 가진 유일한 존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이나 위치를 확인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서 "나는 ***('회사사장, 대학교수')이기 때문에 나다." 라는 데카르트적인 정의를 내림으로써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근대와 자아정체성
사진술이 공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80년대에는 파리에서만 수백 개가 넘는 초상사진관들이 개업해서 성황을 누렸다고 한다. 초상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은 앞다투어 카메라 앞의 의자에 앉았다. 그들은 왜 그처럼 초상사진에 혼을 빼앗기게 된 것일까? 그것은 누구나 자신의 초상화(기계로 만든)를 가진 수 있을 정도로 보급된 사진술의 급속한 확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 일부 특권계급에게만 허용되었던 초상화는 그들의 사회적인 계급과 재산과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기표였다. 사진술의 출현에 의해서 기계에 의한 초상화가 대중 레벨에게까지 확산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진이 대중화되기 이전까지는 서양에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사진은 여전히 유복한 계층의 고상한 취미를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서구의 사진사에서 읽을 수 있다.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사진은 부유한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나, 제2의 회화의 자리를 노리는 예술 지망자들을 위한 고가의 도구였거나 아니면 먼 이국의 신기한 풍광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사진의 역할이 경제나 시각정보의 유통의 도구로서, 그리고 인간의 시각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방법과 같은 다양한 갈래로 복잡하게 분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20세기 중반 무렵에 들어 서면서부터의 일이다.
그때까지 사진이 갖고 태어난 역할과 기능에 관해서 정확하게 지적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진은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스스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넓혀 나왔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한 사진의 본성은 예술과 경제, 또는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하는 한정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인류학이나 사회학, 철학, 심리학, 경제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보면 알 수 있는 것' 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을 보장받을 만큼 사진은 단순한 매체가 아니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도 사진관이 처음 생겼을 무렵에는 사진을 찾으러 온 사람들 중에는 여러 장의 사진 가운데 자신의 얼굴이 어느 것인지 몰라서 잘생기게 나온 남의 사진을 들고 좋아하거나, 심지어는 사진에 찍힌 모습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건네 받은 사진에 대한 그들의 최초의 반응은 '이것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라는 것과 '이건 내가 생각(기대)하고 있던 내가 아니다.'로 갈라졌던 것 같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원망(환상)과 눈앞에 보여지는 사진 상(현실)과의 충돌에서 빚어진 최초의 혼란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사진에 찍혀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만큼 시각적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드디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사진)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하나의 신앙을 만들어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 혼란(착각)은 사진 특유의 기록성과, 기록된 것으로서의 사진의 사실성이 결합됨으로써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심어주게 되고, 사진이 또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자동적인 메커니즘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근대 특유의 자아 의식의 혼란도 그와 때를 맞추어 야기되기 시작한다. 사진은 말하자면 확고한 것으로서의 '근대'가 무너지기 시작되는 시점에서 쏘아 올려진 하나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사진을 통한 자아확인
마치 강박관념에 쫓기기라도 하듯 수십 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안정되게 이어지고 있는 가족이라고 하는 관계(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이라고 하는 구도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하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매년 찍어나가는 한 장 한 장의 사진 가운데에는 그런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신념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정착된다. 종이 위에 나타난 화학상은 그 자신의 가족 가운데에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존재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의 사진행위는 앞서의 발자끄 식으로 말하자면, (가족이라고 하는) 현실의 외피를 한 꺼풀씩 벗겨내서, 종이(사진) 위에 다시 겹겹으로 씌워나가는 행위다. 한 장 한 장 혼을 담아 쌓아 가는 가족의 역사, '과거에 그 곳에 있었다.' 라고 하는 움직일 수 없는 존재증명, - 그것은 '기록'이라고 하는 '과거'의 한 장면을 위해서 '현재'를 화석화시키는 신앙적인 의식인 것이다.
비단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전신주에 매놓은 한쪽 끈이 풀려서 길바닥에 늘어진 플래카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어느 나라에서 온 응원단원들의 모습, 무더운 여름날 위대한 지도자의 초상사진에 선풍기 바람을 보내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마 '집단적 강박관념'이라는 말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지도자의 얼굴이 그려진 뱃지를 가슴에 달고 있거나, 연인과 가족의 사진을 소중하게 지갑 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진(아이콘)은 단순한 종이나 금속에 새겨진 상이 아니라 실물보다 더욱 확고한 현실로서 인식되는 것이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신의 반영을 보고 호수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만일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그 아름다운 자태가 단순한 광학적인 반영(일루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수선화에 관한 슬픈 전설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TV 연속 드라마에서 변심한 애인의 사진을 눈물을 흘리며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히로인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그녀가 사진에 얽힌 달콤한 기억과 사연들을 지워버리기 위한 것이고, 애인이라고 하는 존재를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영원히 지워버리려는 심리적인 말살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웃는 모습이 찍혀진 사진을 찢는 그녀의 절박한 행위를 누가 미신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사진이 사람의 혼을 뺏는 것이라고 믿고 사진관에 불을 질러야 했던 옛날 할아버지들의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사진은 그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 이렇게 현실로서 그 가공할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인가?
앞서 상이 나타나 있는 한 장의 종이에서 현실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이 시각적인 '진화'에서 온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것을 입증하는 사례가 있다. 1950년대, 아프리카의 오지의 이른바 문명화되지 않은 원주민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반응을 조사하던 어느 프랑스 인류문화학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눈앞에 있는 사진 위의 얼굴 윤곽을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던 원주민이 드디어 그 종이 속에 앉아있는 것이 다름 아닌 '영국의 신사'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사진에 찍혀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면 금새 알아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진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에 찍혀있는 대상의 정체를 읽어내는 능력은 오랜 경험과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습득되는 후천적인 능력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적으로 배양된 인지능력인 것이다.
이러한 사진의 신앙을 만들어낸 요인은 사진의 극명한 '기록 능력'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사진은 언어나 그 밖의 어떤 매체보다도 빠르고 세밀하게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 내용을 전달하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진의 힘을 통해서 뇌의 기억용량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과거의 시간과 공간, 체험들을 생생하게 다시 재현해낼 수 있다. 과거를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 - 사진은 그 능력만으로도 '신앙'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무상한 것들에 영원한 생명을 부여한다. 모든 '현재'는 '과거'가 되기 위한 시간으로, 사진으로 기록되는 순간 현실의 시공간은 과거의 세계로 편입되어버리고 만다. 지금까지 자신의 일생이 어떤 기념할만한 사건들을 엮어 나왔는가, 사진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무한의 시공간 가운데 어떤 한정된 지점을 질러나가는 순간들을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사(진)실로서 붙잡아두는 것이다.
또 하나의 시각장치
195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피사체로서 카메라 앞쪽에 서있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찍는 쪽으로 돌아섰다. 노을 진 하늘과 운해가 깔린 아련한 골짜기를, 귀여운 애완견을, 운동회에서 달리는 아이들을, 바닷가나 공원이나 관광지에서,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아무래도 사진은 또 하나의 진화의 단계에 와있는 것 같다.
하수도 공사를 마친 작업원이 작업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바로 옆 모퉁이에 있는 편의점에서 단돈 7천 원을 내고 카메라 한 대를 사오던 것이 몇 년 전 일이다. 얼마 전 강화도에 갔을 때,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여럿이 디지털 카메라로 전등사 대웅전 처마의 단청이며 문살 같은 것을 찍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진이 단순한 기념이나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도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장치 그 자체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한여름 바다나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 집을 나선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유럽의 고풍스런 도시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풍광이 있고 유구한 역사가 새겨진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있다. 시간이 아까운 여행자들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 앞에 늘어서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념사진 촬영이 끝나면 다음 관광명소로 이동한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오직 그들의 유럽여행을 증명하는 배경으로 사진화(化) 되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아무도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삶의 광경 속의 시간을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이 과거의 세계로 편입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깝거나 멀거나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그 과거의 광경을 '현재'로서 되살리기 위한 기억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오직 셔터를 눌러 대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여, 멈춰라!"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카메라에 채집하고 있는 지금 눈앞에 전개된 '현재'는, 얼마쯤 시간이 지난 다음의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과거의 현재(실)'로서만 존재가 가능한 현재다. 이 도착(倒錯)된 세계!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살아있는 현실로부터 '현재' 라고 하는 시제를 제거해 나가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이처럼 '현재'로부터 소외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토록 기념사진을 찍는 일에 열중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느 CF에 나오는 대사처럼 '시간이여, 멈춰라.' 라고 하는 오직 한가지 바람 때문이다. 모든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켜서 순식간에 그것을 화석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죽은 자까지도 언제까지나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존하는 사진이야말로 '영원한 삶(不死)'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완성시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대 이집트 왕족의 미이라, 스탈린, 호치밍, 김일성의 시신들은 그들의 숭배자들에 의해서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모습으로 방부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절대 권력자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영원히 살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대대손손 남겨놓을 수 있다. 그리고 앨범을 펴는 순간, 그들은 손끝에서 발끝까지 어느 구석 하나 변질되지 않은 모습으로 언제라도 다시 가족들 눈앞에 되살아나는 것이다.
직관상(直觀像)으로서의 사진
「홀론 혁명」(1967)에서 아더 캐슬러(Arther Kestler)는 기억 내용을 일반화하거나 조직화시키는 '추상적(Abstract) 기억', 그리고 기억을 순간적으로 응고시키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기억'의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추상적 기억'이란 마시고 난 다음 글라스 바닥에 남아있는, 맛도 향기도 거의 날아가 버린 와인 찌꺼기 같은 기억이다. 말하자면 건질만한 구체적인 기억 자료가 거의 없이 단지 약간의 냄새만으로 기억을 다시 재구축 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스포트라이트형 기억'은 마치 각성제에 의해서 떠오르는 환각적인 정경처럼 선명하게 어떤 사상(事象)의 세부를 상기시키는 기억을 말한다. (일러두지만 나는 지금까지 어떤 종류의 각성제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상기되는 정경은 마치 구석구석 클로즈업으로 선명하게 찍힌 사진과 같다. 즉, 우리의 기억은 그런 '스포트라이트형 기억'과,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풍경과도 같은 '추상적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포트라이트형 기억'은 직관상(直觀像)의 형태를 갖고 있으며, 자연의 상태에서 살았던 미개인과 대부분의 어린이가 이 직관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득적인 그런 일반적인 직관 능력은 성장과 교육과정을 거치는 동안 소멸되고 그 대신 점차 추상화 능력이 강화되어 나간다. - 다시 말해서 인간은 원래 원시인이나 문명을 모르는 미개인과 마찬가지로 직관적인 시각체계를 갖고 태어나기는 하지만,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그 직관의 능력이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진의 힘을 빌어 연속된 시공간 가운데에서 어떤 특정한 장면을 잘라내어 기록하려는 것은 어쩌면 추상화(抽象化)와 같은 개념적 사고능력의 발달에 의해서 잃어버린 직관적 기억능력을 복원하려는 본능적인 행위로 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카메라는 바로 이런 직관적인 기억으로 기능하는 가장 뛰어난 또 하나의 인공적인 뇌(腦)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외부의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인식할 때는 일반적으로 그 인식 대상의 외관을 분석적으로 파악하려는 태도와, 그 대상의 내면의 탐색을 통해서 파악하려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케슬러가 말한 기억의 두 가지 유형과 일치한다. 따라서 '스포트라이트'에 비유될 수 있는 '직관(Intuition)'은 대상을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요소를 통해서 인식하고, 눈앞에 나타나는 외면적인 부분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어떤 불변의 구조를 찾아내려는 태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은 우리가 다른 어떤 매체를 사용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비록 사실의 입증능력을 의심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눈앞에 드러난 사태를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다. 사진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처럼 불확실한 기억을 명료하고 직관적으로 살려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문화적인 행위다.
그러나 사진의 직관적 능력에는 때로는 세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함정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역설(paradox)'를 말하고, 사진을 '코드가 없는 메시지' 라고 지적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퇴행하는 기억
카메라는 '직관적인 기억을 남기는 의사(擬似)적인 뇌'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뇌의 대용품일 뿐 '뇌'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이 의사적인 뇌로서의 카메라라고 하는 기록장치에 의해서 '문화적인 제도'가 퇴화시켜 나온 '직관적 기억' 능력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의존적인 태도는 오히려 인간의 생득적인 추상화나 개념화의 능력을 더욱 퇴행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공하는 지식과 경험내용은 직관적인 체험을 통해서 파악된 대상을 언어화(추상 또는 개념화)시킨 결과로서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신체적 전 감각과 정신활동을 통한 직접적인 경험 대신, 사진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영상의 직관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그 사진을 보며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 사진(에 찍혀있는 대상들)이 갖고 있는 한껏 미화된 가공의 현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설명일 뿐, 자신이 그 자리에서 체험한 생생한 '현실'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자동차의 형광 색 계기판, 손목시계, 체온계, 저울, 그리고 인터넷…. 우리들의 일상생활 주변이 온통 숫자로 뒤덮여가는 동안. 속도나 온도나 무게가 바늘로 표시되는 아날로그의 세계는 급격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정보화 시대로 일컬어지는 지금, 모든 채널을 통해서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영상의 생산과 소비를 거듭하고 있으며, 우리의 현실은 디지털 정보만으로 구성된 비현실적인 세계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권력과 결탁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우리 앞에 제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디지털 카메라의 모니터에 떠오르는 화상은 모두 1과 0이라는 숫자를 변환시켜서 만들어낸 욕망과 환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세계의 비 현실화는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고, 우리가 신념을 가지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문화'와 '정보화'가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영상은 모든 채널을 통한 반복적이고 무제한한 송출과 소비에 의해서 우리의 현실세계에 대한 행복한 경험들이 차단되어가고 있다. 은밀하게 무의식의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실용이나 미학이라고 하는 카테고리를 벗어나서 보다 확대된 영역에서 사진(영상)의 본성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 /
김승곤
(사진평론가)
※ 이 글은 2000년 9월, 여성사진가협회에서 행한 초청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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