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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 `파리 포토`를 보고..
글/ Area.Park
(사진가)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 많은 수의 선후배와 동기들이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사진에 매료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의 기억으로는 셔먼의 사진이 왜 좋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 셔먼의 사진을 모르거나 이해 못하면 막연하게 뭔가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그때 사진을 배우던 학생들의 무의식 가운데 잠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진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수용이 활발했던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를 맞이했던 그때, 마침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몇몇 잡지(PHOTO 291, 사진예술 등)를 통해 서서히 미국의 현대작가들이 소개되기 시작하였고, 유학파 젊은 교수들의 수업을 들으며 얼마쯤 세계 사진의 동향에 접할 수 있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간혹 과사무실 앞에서 만나던 보따리 책 장수 아저씨에게서 어떤 학생들이 사진집을 고를 때, 만 레이(Man Ray)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책을 선택할 때보다 신디 셔먼이나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같은 현대작가의 사진집들을 구입할 때 주위의 시선이 다르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하루하루 작가의 홈페이지나 관련 사이트를 보며 새로운 작업을 볼 수 있는 요즘과 달리 당시의 열악한 정보채널과 외국의 정보는 학생들에게 거의 무조건적으로 다가가는 선임하사의 지시 사항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왠지 안셀 아담스(Ansel Adams)의 풍경보다는 존 색스턴(John Sexton)의 풍경이 더 낫다고 생각했었고,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의 노동자보다는 리처드 아베든(Richard Abedon)의 서부 미국인이 세련되어 보였고, 심지어는 전쟁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로버트 카파(Robert Capa)보다도 일상에 몸을 던져버린 낸 골딘(Nan Goldin)의 사진들이 더욱 마음에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사진의 역사와 흐름은 결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거의 모든 것들을 아우르고 있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관점과 상황에 맞게 기술되어 왔고, 이는 사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예술적 코드로 무의식적으로 주입되었다. 사실 더 솔직히 얘기한다면, 당시의 한국이라는 지형적인 울타리는 뭔가 의미심장할 것 같은 현대사진의 경향보다는 즉각적으로 와 닿는 외신 뉴스나 헐리웃의 영화를 통해 세계의 흐름을 더듬고 있었다. 사진사적 의미에서 미국적 관점의 주도에 반발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새로운 비판적 시각들이 제기되기 시작한 최근에 이르러 그러한 모색들이 활기를 띠고 있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듯 하다. 가까운 사진사를 반추해 보더라도 80년대 예술계 최고의 스타 신디 셔먼 이후로는 미국에서 그다지 중량감이 느껴지는 작가의 출현이 없었고, 그에 반해 캐나다 출신의 제프 월(Jeff Wall), 독일 출신의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영국 출신의 마틴 파(Martin Parr), 래리 술탄(Larry Sultan), 일본 출신의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그리고 한국의 김아타(Kim Atta) 등, 사진의 발명지인 유럽과 사진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아시아 작가들의 약진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일련의 작가 군만은 아니다.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을 위시해 네덜란드, 체코 같은 나라에서도 정기적으로 사진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아시아도 한국, 일본,중국, 대만 등 많은 나라들이 현대예술의 최전선의 위치한 사진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1990년대가 지나면서 생겨난 이러한 추세에 한쪽에선 흘러가는 유행처럼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도 폄하하는 경향도 있지만, 어찌되었건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사진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외젠 앗제나 까르띠에 브레송, 안셀 아담스, 로버트 프랭크 등의 작품들은 거저 보는 것 만으로도 아름답고 순수한 맛이 있어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사진이 오늘날에도 사랑 받고 있고, 많은 나라를 순회하며 전시되는 것을 볼 때 사진 본연의 태도에 근접한 그들의 작품은 그야말로 한편의 詩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를 주도해 온 사진들은 우선 보여지는 이미지와 코드들이 온갖 개념들과 담론, 이데올로기들이 화면 안에서 밖으로 지배 내지는 강요하는 듯한 형태로 흐르면서 현대사진은 일반적인 관람 대중들에게는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세리 래빈(Sherrie Levine)’의 사진을 이해 못하는 친구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 세리 래빈의 사진을 보며 '사기'라고 말하던 친구를 이해시키기 위해 지금도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1970-80년대 초반에 휘몰아친 작가들의 포스트 모더니즘 전략과 개념미술의 등장, 페스티쉬, 페미니즘을 설명했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건 한마디였다. “그래서?”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1970-1990년대 초반까지의 사진에서 볼 수 없었던 그 무엇을 조금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이전의 사진들과 조금 구분되는 비전(Vision)이 아닐까 생각된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나 마틴 파의 사진에서는 적어도 이해는 안 되더라도 보기는 좋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상황들은 여러 가지 줄기들을 통해 이미 예견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은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사진에 대한 본질적인 면들과 정신적인 면에서 200여 년 짧은 역사를 지닌 미국의 역사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예술의 개념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한계에 이르러 파생되는 결과일 것이다.
범 세계적인 영역을 100년도 넘게 철옹성처럼 지켜오던 미국이 EU(유럽연합)라는 새로운 상대를 만나게 된 건 어쩌면 필연적인 현상일 지도 모른다. 유럽연합은 유럽에서 선진국에 속하는 여러 나라들의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 파급 효과는 문화예술 쪽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MOIS DE LA PHOTO'인데, 2004년 11월에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로 확대되어 개최되었다. 지난 몇 년간 파리에서만 개최되어 ‘PARIS PHOTO'라고 불려지던 'MOIS DE LA PHOTO'는 2004년부터 ’유럽 사진의 달‘로 확대되어 독일의 베를린, 프랑스의 파리,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치러진 일종의 사진전시행사이다. 1997년에 시작된 ‘파리포토’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나 내용에 있어 기존에 있던 독일의 ’포토키나’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의 ’아를 사진페스티벌’을 뛰어넘는 메이져 급 행사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작년 11월11일에서 14일까지 루브르 박물관의 지하에 위치한 「카뤼젤 뒤 루브르」관에서 열린 제8회 ‘파리포토’로, 전세계 17개국에서 참가한 화랑들과 미술전문 잡지 등 100여 개가 넘는 부스로 구성되어 사흘 동안에 사진가, 컬렉터, 기획자, 화랑 관계자 등 4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올해 전시된 작가로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워커 에반스, 로버트 카파, 베른트& 힐라베허 같은 거장들부터 비교적 덜 알려진 30-40대의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개인전, 그리고 흥행을 배려한 듯한 매그넘 멤버의 사진전과 월드프레스 포토 류의 전시회가 조화롭게 나누어져 각 미술관 또는 갤러리 별로 전시되었다.
마침 이 기간 중 한국의 사진가 구본창도 파리의 Gallerie Cameraobscura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Modern)에서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전시가 개최되었고, 체코의 프라하에선 ‘체코프레스2004’란 이름으로 두 달간 신구세대가 어우러진 사진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워낙 많이 알려진 거장들의 사진에는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젊은 작가들의 전시 위주로 관람을 하였는데, 사진 재료와 매체와 방법들이 현대사진의 과도기적인 상황을 실감나게 만드는 다양한 내용들이었다. 젊은 작가들의 사진들은 대부분 컬러작업들이었는데, 각 전시장마다 프린트의 종류가 시바크롬, 크리스탈, 레이저 젯, 잉크 젯 등 10여 가지나 되는 것 같고, 프레임도 최근 우리나라에도 유행하는 디아섹(Diasec)을 비롯해 디아섹과 비슷한 압착된 슬라이드 글라스액자, 톱밥으로 가공한 액자, 처음 보는 재질의 나무액자 등 볼거리가 다양했지만, 공통적인 흐름은 역시 컬러프린트의 대형화와 다큐멘터리와 유형학적 경계에 위치한 사진들의 강세였던 것 같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체코와 헝가리의 사진 수준은 깜짝 놀랄 만큼 높았으며, 특히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독일, 프랑스의 젊은 사진가들에 비해 영국의 젊은 작가들은 작업도 단순 명료하고 마무리도 심플한 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런던의 가장 번화가에 위치해 있으며 참신한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Photographers‘Gallery의 선임 큐레이터 샬롯 코튼(Charlotte Cotten)은 한 젊은 사진가의 오픈을 겸한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사진의 흐름은 독일, 프랑스와는 조금 다른 인류학, 사회학적인 관점의 사진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하며 그 내용도 단순한 표현의 생산에서 상황의 서사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특정 행사의 성공 여부는 상업성, 즉 흥행성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술분야도 마찬가지여서 10년도 안 된 ‘PARIS PHOTO'가 이만큼 성공을 거두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파리가 너무나 유명한 관광도시란 점일 것이다. 축제기간 중 무료로 입장하는 곳도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갤러리들은 4∼8유로(6000원∼12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는데, 이미 사진이나 미술의 유료 관람문화가 몸에 밴 유럽에서는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관람문화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실제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거리의 화장실도 유료인 곳이 많다.
미국 중심의 현대사진의 흐름에 반발한 유럽의 예술에 대한 자존심은 사진술 발명의 종주국으로서의 권위와 예술에 죽고 사는 프랑스의 기질을 발동시켰고, 토마스 루프나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마틴 파 같은 유럽작가들의 약진이 지속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사진의 경향을 소개하는 사진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나라에도 2002년부터 강원도 영월에서 「동강사진축제」가 열리고 있다. 전시 규모나 참여작가로 볼 때 한국 최고의 사진축제로 여겨지고는 있으나, 강원도라는 취약한 접근성과 관련 기자재 브랜드의 저조한 참여는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같은 해 경기도 하남에서 열렸던 「하남국제사진페스티벌」첫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사진이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현대미술의 한 축으로 떠오른 이유 중 하나는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점이란 걸 요즘 느낀다. 예전에 나와 다퉜던 그 친구는 바네사 비크로포트전시를 보기위해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여 지방까지 내려가는 걸 감내하는 세상이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전성기를 구가하는 사진의 시대.
“당신은 사진의 힘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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