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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원 교수의 조선족의 생활양식의 지속과 변동 - Ⅰ.요녕성의 개황 - 1.역사와 지리적 환경
Ⅰ. 요녕성의 개황
1.역사와 지리적 환경
요녕성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친숙한 곳이다. 한(漢)나라시대에는 한사군 중 요동(遼東), 요서(遼西),현둔(玄屯)있던 지역이며 한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선비계가 지배하다가 그 후 고구려와 발해를 거쳐 여진족의 금(金)에 속하였다가 원, 명의 시대에는 중국의 한 성이었고 청태조 누루하치는 심양을 공략하여 수도로 삼았다.
성도인 심양의 역사는 7,200년 전의 신석기시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도시의 역사는 2,300년에 이른다. 춘추전국 시기 이곳은 연나라의 중요한 도시였고,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천하를 36개 군(郡)으로 나누었을 때 심양은 요동군에 편입되었다. 서한시기 심양은 이미 도시규모를 갖추어 “제후성”으로 불리웠고 당나라 때에 “심주(沈洲)로 개칭되었다. 기원 921년 요나라의 태조가 이곳에 이주해서 토성(土城)을 축조하였고 금나라 때에는 금태조가 심주를 점령하고 그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고 한다. 1296년 원나라 때 토성을 수건하고 심주를 “심양로(沈陽路)”라고 개명하고 요양의 관할구로 하였다. 심양이 심수(遼河)의 북쪽에 위치했던 관계로 중국 전통 방위론의 “산 북은 음이요, 물 북은 양”이라는 설에 의해 심주는 심양으로 개칭되었다. 그때로부터 심양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오늘까지 700여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요녕성 지도 붉은 표시는 조선족 민족촌이 있는 지역이다.
환인현의 입구에 있는 다섯 민족을 뜻하는 오녀의 비석. 2005.2. 5. 환인
고인돌 2005. 2. 해성
1386년 명나라가 “심양로”를 “심양중위”로 고쳤고 1625년 청태조 누르하치는 후금을 세운 후 도읍을 요양에서 심양으로 옮기고 심양성 내에 황궁을 수건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심양고궁이다. 1636년, 황태극은 이곳에서 국호를 “청”이라 명명하고 청 왕조를 건립한 곳으로 심양고궁이 바로 청조 초기의 황궁이며 중국에서 단 두 곳의 완전한 황궁 건축군 중의 하나이다. 1643년 청태조 황태극은 심양을 “성경(盛京)”으로 고치었고 1644년 청조가 북경으로 천도한 후에는 제2의 수도가 되었다. 1657년 청조는 “봉천승운(奉天承雲)”의 뜻에서 심양에 봉천부를 설치하고 심양을 봉천(奉天)으로 고치었다.
1911년 신해혁명 후 심양은 봉계군벌의 수부(首府)로 되었다. 1923년 정식으로 봉천시정공소가 성립되면서 심양은 처음으로 도시편제에 들어갔다. 1929년 봉천군벌 장학량은 봉천시를 심양시로 고치었다. 1931년 일제가 “9.18”사변을 일으키고 심양을 강점한 후 또다시 심양을 봉천으로 개명했다가 1945년 일본이 항복한 후 봉천시는 심양시라는 이름을 회복했다.
중국 遼東반도 및 동북3성 남부지역에 위치하는 요녕성은 남쪽은 발해, 황해와 동남쪽은 압록강을 끼고 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압록강과 접경을 이루는 국경선의 길이는 200여km이다. 동으로 길림(吉林)과 북으로 내몽고(內蒙古), 서로 하북(河北)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주요 도시로는 심양(沈陽), 대련(大連), 안산(鞍山), 무순(撫順), 본계(本溪), 단동(丹東), 금주(錦州), 영구(營口), 부신(阜新), 요양(遼陽), 반금(盤錦), 철령(鐵嶺), 조양(朝陽), 호로도(葫蘆島) 14개 지구 급 시와 28개의 현, 6개의 현 급 시가 있다. 성도인 심양은 과거 봉천으로 만주국이 수도로 정한 곳이기도 하다. 면적은 145,900㎢(한국의 1.5배, 한반도의 2/3)이고 인구는 4,135.3만 명으로 민족구성은 한족(84.3%), 만족(12.6%), 몽고족, 회족, 시버족, 조선족 등 44개 민족이다. 민족별로 천주교, 기독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가 있으나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신도의 수는 50여만 명에 불과하다. 이 중 조선족은 전체 인구의 0.6%에 달하는 약 23만 명이 혼합 향을 포함한 13개의 민족 향(진)에 살고 있으며 6개의 만족 자치현과 2개의 몽고족 자치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풍경이 특이하고 아름다우며 명승고적이 많아서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하여 최근 들어 관광산업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
1)
특히 중국 청조이전의 역사유적과 문물이 남아있는 성으로서 고구려와 청나라의 발상지이다, 현재 남아있는 2대 고궁건축의 하나인 심양고궁(沈陽故宮)은 청대 개국 시기의 고궁건축이이며 청영릉(淸永陵), 청복릉(淸福陵), 청소릉(淸昭陵), 요양벽화묘군(遼陽壁畵墓群) 등은 고대 역사의 산물이며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인 오녀산성(五女山城)이 복원되었으며 오골산성도 복원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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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녕 안산의 천산(千山), 의악려산(懿巫閭山), 봉황산(鳳凰山), 약산(藥山)은 요녕의 4대명산으로 불리우며, 그 중 천산, 의악려산은 이미 중국여행 명산으로 분류되어있다. 또한 동북도교(道敎)의 발원지인 구정철사산(九頂鐵刹山), 5미(五美)로 유명한 관문산(關門山), "북방계림"으로 불리우는 빙곡골짜기, 청산골짜기 등은 명산이다. 본계수동(本溪水洞)은 "화하의보배"로 불리우고 대련의 뱀섬(蛇島), 조섬(鳥島), 천년고련(千年古蓮), 여순의 기이한 언덕(旅順怪坡) 등이 유명하다.
청태조의 4대조가 모셔져있는 영릉. 1997. 12. 신빈
청나라 발상지의 사찰에 모셔져 있던 김교각 스님의 불상과 고구려의 까치호랑이 석상,
청나라 발상지와 심양의 고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면서 교체되고 사라졌다. 1997. 12. 신빈
심양고궁의 솟대형태의 신간(神竿). 2005. 2. 심양
심양고궁의 잡상. 2005. 2. 심양
심양고궁의 구둘. 2005. 2. 심양
청나라의 발상지에서 만주족의 축제의 개회식, 신빈지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한복도 보인다. 2005. 8. 신빈
예로부터 요령성의 모습은 “육산일수삼분전(六山一水三分田)이라고 묘사되고 있으며 남동부의 산지와 북서부의 구릉고원과 평원이 교차되어 있다. 기후는 일반적으로 대륙성기후에 속하며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아주 추우며 4계절이 뚜렷하다. 해안지대는 비교적 온난다우하다. 평균 강수량은 보통 1,000mm정도이고 3-5월에는 몽골 풍으로 불리는 서풍이 불어 심한 풍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녕성 내에는 자연환경에 따라 농업구역과 목축구역, 반농반목 구역 등으로 나누어지며 특히 북쪽의 고산지역에는 목축생활을 하는 소수민족들이 많이 거주한다. 또한 광물자원도 풍부하여 중국 내에서 값진 광물들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요녕성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철, 석회석, 대리석등과 같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중국 최대의 중화학, 중공업 기지이다. 산업구조를 보면 80년대 중반부터 일본, 한국, 홍콩, 싱가포르 등지로의 본격적인 임가공 수출 및 외자유치로 식품, 의류가공, 신발, 가전 등 경공업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성도인 심양은 중국 동북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고 교통중추로 동북지구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이 자리하고 있으며 항공기가 국내 70개, 국제 11개이며 홍콩과도 통항한다. 심양시를 중심으로 6갈래의 철로간선이 사통팔달로 연결되어 있고 도로는 전국 최고 등급의 망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대련(大連)항구, 영구(營口)항구, 금주(錦州)항구, 단동(丹東) 등 4개의 대외항구가 있다.
요녕성은 중국 동북3성에서 면적이 가장 작지만 인구는 4천만 명을 훨씬 초과하고 있으며 동북지방의 흑룡강성, 길림성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요녕성은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심양과 대련 단동 등 임해지구와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으며, 이러한 사정은 조선족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농업을 위주로 하는 조양(朝陽), 철령(鐵嶺), 부신(阜新), 호로도(葫蘆島)市 등 소도시들은 미미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농촌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요녕성은 외국인이 투자할 기본적인 조건이 동북3성중 가장 완비된 지역이다. 심양은 동북지대의 기계공업기지이자 중화학 공업기지로서 배후시장으로 큰 이점이 있으며, 대련은 일본의 집중투자로 크게 부흥하고 있으며 요녕성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홍콩과 일본의 대규모적인 투자는 전체적으로 요녕성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것이 요녕성 정부의 저변 인프라를 위한 대한 대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내어 동북 3성 중에서 가장 좋은 투자환경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심양은 가장 많은 기업이 투자했으며, 대련은 가장 대규모적인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안산은 중국 최대의 철강콤비나이트가 있는 곳이다. 한편 포화상태에 빠진 대련 항을 대신할 목적으로 영구 항은 개발이 진행 중이며, 단동은 대북교역이 가장 활발하다. 한국 기업들의 투자는 가공 수출 위주의 투자가 가장 많고 화공, 기계, 전자, 방직, 경공 그리고 식당, 노래방, 사우나 등 서비스 업종에 대한 투자도 있다.
무순은 도심에서도 공장의 굴뚝을 흔히 볼 수 있다.
고구려의 신성에서 바라본 무순 시가지의 일출 무렵,
도시 전체가 매연으로 뒤덮여 있다. 2005. 2. 무순
단동에서 동북방면으로 15㎞정도 가면 최근 복원한 명조의 호산(虎山)장성이있다.
2005. 8. 단동
호산장성에서 바라본 위화도. 2005. 8. 단동
호산장성 부근의 일보만, 한발자국만 건너면 북한 땅이다. 2005. 8. 단동
6. 25 사변에 파괴된 압록강 철교와 그 후 새로 건설된 철교.
끊어진 압록강 철교는 단동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다. 2005. 8. 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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