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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원 교수의 조선족의 생활양식의 지속과 변동 - Ⅲ.오늘의 조선족 - 2.주거 생활 3. 생활문화 4. 교육
Ⅰ. 요녕성의 개황
Ⅲ. 오늘의 조선족
2.주거 생활
3. 생활문화
4. 교육
① 해방이전의 교육
이주 초기의 주요 교육형식은 서당이었으며 요녕 지구 조선족이 집거한 촌락에는 모두 서당이 있었는데 촌민과 촌에서 연합하여 만들거나 개인이나 선생이 자체로 설립하기도 하였다. 서당의 학생수와 연령층은 다양하였고 일반적으로 몇 명에서 십여 명 학생과 한명의 교사가 대부분이었으며 고정한 학제가 없으며 학생들에게 조선문 고한문과 사서와 5경 등 유학교육을 하였다.
근데 문화의 시작으로 20세기 초 청조는 서당교육에 개혁하여 반드시 국문(한문), 수신(修身), 독경, 수학 등 4개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렇게 조선족의 서당교육은 서서히 근대교육으로 전환되었고 어떤 지방에서는 서당을 개량하여 한어(중국어), 조선문, 작문, 습자, 산술, 체조 등 과목을 설치했다. 1910년 한일합방이후 이 서당들은 항일과 조선 구국 독립의 거점으로 변했다.
1920년, 봉천(지금 심양)지구에 있는 조선족 서당으로는 “동선서당(东鲜书堂)”, “상류가와붕학당(上刘家窝棚学堂)”, “하류가와붕학당(下刘家窝棚学堂)”, “북산창흥서당(北山书堂)”, “대동촌서당(大东村书堂)”, “오가황서당(吴家荒书堂)”, “동가와붕학당(佟家窝棚学堂)”, “정안보서당(静安堡书堂)”, “공태보서당(公太堡书堂)” 등 9개 서당이 있었다. “심양조선족지” p84
항일애국지사도 각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요녕성 경내의 조선족사립학교는 모두 반일지사들이 세운 것이다. 1911년 조선반일애국지사 윤세이, 윤세복형제는 환인에 와서 “동창학교”를 세우고 이동하, 김영보, 이광로 등 애국지사를 초청하여 교사로 임명하였으며 학생은 40명이었고 1919년에는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하였다. 1918년 흥경현 (지금 신빈) 홍묘자 15간방에서도 당시조선족애국지사들이 “흥동학교”라는 학교를 설립했다. 1921년부터 1930년 사이, 흥경, 환인, 관전 각 현의 반일 민족단체 정의부와 참의부, 조선독립군에서도 많은 반일민족학교를 세웠다. 그 반일학교로는 관전에 2개소, 흥경에는 12개소, 환인에는 5개소가 있었다. 이 학교들에서는 반일민족교육을 진행하고 군사인재와 군사골간 역량을 배양하였다.
요녕 각지에서 반일학교들이 설립하는 동시에 군대 사립학교도 부단히 증가되었다. 1916년에는 철령육영학교, 1912년에는 심양 오가황신흥학교, 1919년에는 무순현 동사호 동촌조선학교, 1920년에는 신민현 홍가군 홍가군학교, 1920년 11월에는 심양현 동가 와붕명신학교, 1921년에는 무순 전진 소류하조선학교, 1921년에는 본계 동선학교, 1924년에는 개원 의숙과 동성학교, 1925년에는 봉선현 동두곡과 석성대 서구조선족학교 등이 있었다.
1928년 일본 남만철도주식회사 “재만조선인학교” 조사기록에 의하면, 정의부 관할지역 이외 지구의 조선족 사립학교가 23개소가 있었는데 안동현에 3개소, 본계현에 1개소 무순현에 3개소, 심양현에 7개소, 개원현에 5개소, 신민현에 2개소, 철령현에 1개소가 있었다.
동시에 기독교회도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1921년 4월, 흥경현성 조선인기독교회에서 “흥명여자학교”, 1925년 9월에 안동시 조선인 기독교회에서도 “고려유치원”, 1926년 3월 봉천 조선인기독교회에서도 서탑에 “봉천유치원” 이 있었다.
각 지역 조선족 사립학교는 모두 서당을 합병하여 건립한 것이다. 때문에 많은 학교에서는 농후한 서당의 성질을 띠고 있다. 천자문 등 한문을 가르쳤고 다른 점이라면 조선어문과 산수를 첨가한 것이다. 이런 학교 대부분은 반일 민족사상교육을 중시하였고 모두가 반일 민족교육성질을 띠었다.
일본의 요녕성 조선인 노예화교육은 조선 총독부 관할 하에 동북에 이주해 온 조선인에 한했고 일본 남만철도주식회사와 각 지역 일본 영사관을 통해 진행하였다. 조선총독부는 남만철로부속 구역 내의 조선인 학교교육은 완전히 조선반도에서 식민지 노예화교육과 똑같이 실시한다고 규정하였다. 조선인 교육방침과 유관 교육규정도 조선총독부의 규정과 방침으로 시행하였다. 교과서도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것만 사용하였다. 남만철로부속 지역 이외 지구의 조선인 사립학교도 일본의 제한을 받았고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인 사립학교에 경비를 주는 방법을 채용하여 점차적으로 노예화 교육의 궤도에 오르게 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 요녕성 조선인학교는 성질이 다른 세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첫째 부류는 일본 남만철로주식회사에서 경영하는 학교이며 완전히 조선총독부의 지시방침과 규정이었으며 교과목도 조선총독부 지시를 받았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급한 교재를 사용하였으며 일제의 식민지노예화교육이었다. 둘째 부류는 조선총독부와 동아권업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학교이다. 이런 학교에서는 첫 번째 부류의 학교와 비슷하지만 일본의 관할이 좀 약한 편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설치한 과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육의 성질은 노예화성질을 띤 교육이다, 세 번째 부류는 조선족들이 직접 경영 관리하는 학교이다. 그들은 자주성이 비교적 많았지만 요녕에서 좀 떨어진 지역에 있었고 그 수량도 적었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요녕성의 조선인 학교교육은 전면적으로 일제 통제아래 실시되었다. 조선인 사립학교를 강제로 폐쇄하였으며 조선총독부가 전면 관리하는 보통학교로 전환하였다. 1937년 12월 이전에는 과목과 시간표는 조선총독부에서 발표 한 법령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교재도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교재를 사용하였고 일본어를 국어로 정했고 일본역사를 국사로 하였다. 지리도 일본지리를 배웠다. 일제가 동북의 식민지통치를 부단히 강화하고 조선인들을 사살하고 박해를 하여 요녕성 각 지역의 조선인학교 대부분 문을 닫았고 조선인학교가 급감하여 많은 조선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1928년의 56개의 학교는 1931년에는 24개가 겨우 남았다.
9,18사변 이후 위만시기 요녕 지구에 이사해온 조선족들이 점차 늘어났고 조선인학교도 상응한 발전을 가져왔다.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노예화교육을 진행하고 침략통치를 공고하기 위하여 점차적으로 매년 여러 가지 학교를 증설하였으며 조선인 학교도 상대적으로 많이 증가하였다. 위만시기 후기에는 소학교 외 몇 개소의 중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34년 위만주국 문교부 학무사에서 편찬한 “만주국소수민족교육사정”에는 1933년 말을 기준으로 요녕지구 조선인학교는 58개소, 서당은 27개소, 야학교는 3개소였으며 나머지는 일본이 경영하거나 보조금 경비로 꾸려가는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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