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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우의 이론 / 평론가와의 대화 2편 - 최봉림
배
남우의 이론
/
평론가와의 대화
2
편
–
최봉림
- Intro
모든 학문의 기본은, 학문적인 용어의 정확한 이해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그 학문에서 통용되는 용어들의 정의만 제대로 파악해도, 이미 그 학문의 절반은 이해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론과 비평에 대한 정의도 그러하지만, 이론과 비평을 통해 언급되는 여러 학문적인 용어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사진 이론/비평가와의 대화, 그 두 번째는 최봉림과의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이론과 개념의 엄정한 의미 파악, 그리고 이론의 실천적 응용으로써 비평을 할 때에도, 지식의 남용이 아닌 절제된 글쓰기를 강조해왔던 최봉림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론과 비평의 정확한 역할을 되 집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배 남 우
- Interview 2, 최 봉 림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파리 제10대학 현대 프랑스 사학과에서 박사 준비 과정 D.E.A.을 마쳤고, 파리 제1대학 미술사학과에서 『손의 초상과 사진 Portraits de mains dans la photographie』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여러 대학의 사진학과, 미술사학과에서 사진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사진 평론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궁리, 2003)이 있으며, 저서로는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 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디자인하우스, 2000),『세계사진사 32장면, 1826 ~ 1955』(디자인하우스, 2003)가 있다.
序
이론은 객관화의 노력이 필요하고, 비평은 글쓴이의 주관을 뚜렷이 밝혀야.
비평가들의 미학적 이념, 정치적 이념을 드러낼 수 있는 에꼴(ecole) 형성이 필요.
배 :
이론과 비평에 대하여 생각할 때, 사람들이 이들 둘을 동일시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분명 이론과 비평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론과 비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이들 둘을 구분하여 각각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 :
이론과 비평의 영역은 서로 다른 것이므로, 서로 구분하여 그 영역을 설정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론은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비평은 글쓴이의 주관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의 영역을 생각할 때에는 두 가지로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미학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의 영역이죠. 이와 같은 이론의 영역을 말할 때에 “객관적 이어야 한다.” 라는 것은, 이론가의 주장이나 논지, 미학적 관념을 강요하고 주장하기보다, 객관적인 자료와 사실에 의거하여 이론가의 편견이나 이데올로기를 가능한 중화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즉, 엄밀한 의미로서의 “객관적” 이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엄격한 자료 검토 및 사료를 통하여 객관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비평의 경우에는, 그 정의를 비평가 자신이 현재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평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는 객관적인 사료도 계속 진행 중인 상황이고, 비평가와 작가 사이에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말하기 위해서는 비평의 진행 속도도 빨라야 하기 때문에, 역사나 미학의 영역처럼 객관화의 노력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만약 비평이 역사나 미학과 같은 방법으로 나아간다면, 이론, 역사, 미학 그리고 비평 사이에 구분이 없을 것이고, 이럴 경우 비평이 따로 독립해서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비평은 비평가의 미학적 이데올로기, 비평가의 편견 및 미학적 취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작가의 작품을 편파적으로 옹호 혹은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19세기 보들레르가 얘기했었던 “비평은 편파적이어야 한다.” 라는 말을, 저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고 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비평가가 자신의 주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비평가들이 당파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배 :
당파성 이라는 단어가 무척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협소한 국내 사진계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선생님께서 방금 언급하신 부분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최 :
먼저 학계가 당파성을 갖는 다는 것은 절대로 나쁜 의미가 아님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당파성을 갖는 다는 것은, 비평가들이 에꼴(ecole) 즉, 스쿨(school, 학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당파라는 것은 학맥으로 얽혀진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 미학적 이념 혹은 자신의 사진에 대한 가치관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자신과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의한 당파성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사진계의 발전, 더 나아가 사회의 발전에 있어서도 좋지 않은 것이니까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사진가와 비평가의 그룹이 형성된다고 한다면, 비평가들의 미학적 이념, 정치적 이념을 드러낼 수 있는 에꼴(ecole)이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당파성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사>로 대표되었었던 한국 문예비평의 상황을 가장 이상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원 학생 시절이었고, 아무래도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이셨기 때문에 옆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점도 있겠지만, 그 때 상황이 비평계로서는 어느 시기보다 자율성을 확보했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당시에는 비평가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두 주요 대학에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의 눈치를 안보고 자신의 분명한 논지를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당시 문학적 상황이 순수하게 잡지 판매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점입니다. 비평가들이 주간지, 월간지를 만들었을 때, 순수하게 판매 수익만으로도 잡지를 유지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당시에는 문학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비평가들의 독립된 마우스피스(mouthpiece)가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보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 유지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대학 교수라는 자율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미학적 관념, 이데올로기를 어느 시기보다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상황과 당시의 상황을 비교해 볼 때, 비평가가 자신의 발언을 소신껏 이야기 하는 데에 있어서, 70년대 문예비평의 상황이 이상적이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배 :
선생님께서는 사진비평, 미술비평을 문예비평의 범위 안에 포함해서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비평행위를 크게 구분 짓지 않고, 하나의 포괄적인 범위 안에서 고려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최 :
20세기 비평의 방법론은 한정이 돼있습니다. 문예비평에 대한 방법론은 기본적인 하부구조로써 그것이 문학이 됐든, 미술이 됐든, 사진이 됐든 모두 공유할 수고 나눠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발터 벤야민이나, 라캉, 맑스의 이론은 사진, 미술, 문학의 구분 없이 모두 “문예”라는 공통된 틀 속에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론가, 비평가 모두에게 있어서 문예비평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숙지해두어야 할 기초 학문 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 비평가가 사진을 비평할 때에는, 사진만의 고유한 이론적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함.
사진 이론의 후학 양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
배 :
최근에는 특별한 역할 구분 없이 사진비평이 미술 비평가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대 예술에서 굳이 미술과 사진을 따로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미술과 사진을 해석하고 비평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술 비평과 사진 비평의 구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 :
저는 미술 비평가가 사진 비평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의 경우, 화학과 광학 같은 사진만의 고유한 메커니즘과 미술사의 편입될 수 없는 사진만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사진의 내재적 비평 요소를 적용하는데 있어서 미술 비평가가 한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미술 비평가가 사진 비평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진을 비평할 때에는 사진만의 고유한 비평적 틀과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진의 역사, 작가론, 작품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비평한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만약 사진 비평가가 미술 비평을 하려고 하는데, 미술사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이라면 곤란한 것과 똑같겠지요. 따라서 미술 비평가가 사진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사진의 역사, 사진에 관한 기본적인 메커니즘, 테크닉과 같은 사진의 전문영역을 습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비평이 온전해 질 수 있다고 봅니다. 혹, 로잘린 클라우스같은 사람도 사진 비평을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로잘린 클라우스는 누구보다도 사진의 역사, 사진의 프로세스에 대해 잘 아는 이론가이며 비평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이 미술관에서 전시가 되고, 미술 기획 전시에 포함되는 것은, 생산 차원에서 경계가 허물어짐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그것을 그대로 비평의 영역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의 경계가 허물어 졌다기 보다는, 서로 간에 상호 교류의 상태에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배 :
사진 이론의 척박한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 이론의 수용에 있어서, 수도권과 지방사이의 격차가 현격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수도권의 경우, 많은 수의 이론가/비평가는 아니더라도 학교마다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와 같은 순환이 지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최 :
사진 이론의 후학 양성이 불가능한 현실, 후학의 부재가 현실에서 어떠한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사진 이론을 전공하는 후학, 젊은 인재들이 있다고 한다면, 강의의 여건이 수도권만큼 좋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지방 대학으로 내려가 강의 경험을 쌓고, 꾸준히 이론을 연구하고 비평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야 순리에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후학들이 양성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방 대학에서도 이론 강사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야말로 양적으로 부족하고, 능력 있는 후학들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제가 7년 전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만 해도,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활동했었던 후학들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실리와 미래에 대한 어떠한 현실적인 보장도 얻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자신의 자유로운 발언권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진계에 30대 비평가가 없고, 40대 비평가만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서일 것입니다. 이론이 한국 사진계에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다는 패배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못하고 영향력도 미칠 수 없다는 무력감, 이론이 주체성을 갖지 못하는 데에서 느끼는 실망감 등이 젊은 인재들로 하여금 이론을 도외시하는 주요 원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
후학의 부재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론가의 입에서 이론을 공부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이론과 비평이 처해있는 상황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후학을 양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시는지요.
최 :
이론가/비평가가 자신의 제자를 받을 수 없는 어려움이, 후학 양성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학을 양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생의 지도 교수가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 있는 후학을 발굴해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즉, 꾸준히 자기 공부를 하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주고 비평적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것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물리적 토대도 보장해 줄 수 없고, 그렇다고 소신 있는 비평의 장을 펼칠 수 있는 매체도 갖고 있기 않기 때문에, 한국 사진계에서 이론가/비평가가 후학을 양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사진 이론과 비평의 상황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부터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배 :
사진 이론이 사회생활 속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인쇄 매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쇄 매체에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 중, 정작 이론 전공자는 없다는 것이 문제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론 전공자들이 전문적인 필진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다양한 채널을 통한 기회가 제공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 :
예술 관련 인쇄 매체를 크게 미술과 사진으로 구분했을 때, 한번 각각의 매체를 구성하는 필진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미술 쪽 인쇄 매체에서는 사진과는 달리, 주요 필진들이 미술 이론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자들이 주로 하는 일은 필진을 섭외하고, 편집권을 행사하는 일들이지요. 이런 방법으로 매체가 생산될 때에는 전문성은 높일 수 있지만, 원고료 지출로 인해 생산 단가가 높게 형성됩니다. 반면 사진 관련 인쇄 매체와 같이 상대적으로 영세한 매체에서는, 이와 같은 생산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글보다는 이미지 위주로, 제품 소개와 작가들의 테크닉 소개 중심으로, 그리고 간단한 기사들만을 제공하는 매체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진 이론 전공자들이 인쇄 매체 속에서 전문적인 필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해 말하라 한다면, 먼저 영세성을 타파하고 원고료 지출에 투자할 수 있는 마인드가 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점을 타파하기 위해, 한 때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사진비평” 역시 제한적인 필진의 한계성과 원고료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던 점은 상기해볼 만한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문예비평 방법론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필요.
이론의 틀에 작가와 작품을 재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됨.
배 :
현실 상황과 같은 외적인 문제에서 사진 이론/비평의 내적인 문제로 주제를 옮겨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사진 이론의 분과 학문으로는 “사진사”, “작가론”, “작품론”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물론 이외에 ‘미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여러 수업들도 있기는 하지만), 실천적 응용으로서 비평에 적용하기에는 기초 분과 학문의 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비평을 가능케 하는 기초 이론으로써, 어떤 것이 선행 학습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최 :
사진 비평이라는 것이 물론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도 필요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보다 문예비평에 대한 전반적인 방법론을 기본 밑바탕으로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진계에서 심도 있고 깊이 있는 비평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비평가들의 현실적인 물적 토대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드렸었지만, 학문적으로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을 때에는, 문예비평에 대한 기본적인 베이스가 깔려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따라서 문예비평 방법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통해서 사진의 전문성을 가질 때, 좋은 비평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미술 비평을 한다고 했을 때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과, 현대 미술에 대한 동향도 알아야 하겠지만, 현대 문예비평의 방법론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비평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죠. 문학이 됐던, 미술이 됐던, 사진이 됐던 전반적인 문예비평 방법론에 대한 기초 지식의 습득과 이해는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사진학과 에서는 이론 전공을 위한 학생들을 받지 않기 때문에 체계적인 수업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제대로 된 사진 비평의 틀과 문예비평의 틀을 형성할 수 있는 훈련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사진 이론과 비평의 전문성을 위해, 최소한 대학원 정도의 수업을 통해서는 전반적인 문예비평 방법론의 틀 속에서, 현대 문예 비평에 대한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이론들을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학습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봅니다.
배 :
일반적으로 사진 이론 혹은 비평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서양의 철학 이론과 미학 이론을 끌어와 사진에 적용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 선생님께서는 이와 같은 이론들을 사용했을 때, 작품을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러 글들을 통해 밝히신 바 있습니다. 저도 한때 선생님께 그런 이유로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최 :
제가 문예비평 방법론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린 이유가 바로 질문하신 내용 때문입니다. 사전에 충분한 독서를 통해 관련 이론을 이해하고 난 이 후, 그것이 철학 이론, 미학 이론, 맑스주의 이론, 기호학 이론 혹은 정신분석학 이론 중 어떤 것이 되었던지, 작가를 설명하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이론을 취사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작가와 작품에 맞지도 않는 이론을 억지로 적용시킨다면, 이론의 틀에 작가와 작품을 재단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적용하려면 적절하고 타당하게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해야지, 엉뚱하게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루프, 캔디다 훼퍼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 라캉의 이론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이론에 작품을 끼워 맞추는 것이지, 작품에 이론이 적용되어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라캉의 이론이 현대 예술에 유용한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고 하여, 모든 사진을 설명할 수 있는 만능 처방식의 이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맑스주의 이론, 기호학 이론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을 마구 끌어들이는 풍토는,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배 :
한 작가의 태생적인 근거, 살아온 과정들과 같은 배경적 지식을 통해, 당위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 역시 주의할 점이라고 강조하신 걸로 압니다.
최 :
그 부분은 현대 문예비평에서 이미 극복된 문제들입니다. 작가의 전기적 요소에 작품을 대응시키는 것은 구 비평의 방법론으로써, 오늘날 신비평 방법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것입니다. 특히 문학 쪽에서는 이미 극복되어 사용하지 않는 낡은 방법론을, 사진계가 가져다 사용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하지만 방금 말씀드린 라캉의 이론, 바르트의 이론 등과 같은 후기 구조조의 이론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이론들을 작품을 잘 설명하는데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취사선택할 줄 아는 선별력과 예리함입니다.
배 :
언젠가 선생님께서 쓰신 논문 심사평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글의 내용 중 특히 와 닿았던 부분이 있었는데, “~ 했어야 했다.” 혹은 “~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와 같은 짧은 정언적 문장의 위험성을 지적하신 부분이었습니다. 비평의 여러 기능 중, 비판 기능에 대한 오해로 인해 자주 접할 수 있는 문제점인 듯합니다.
최 :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비평이라면,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 생각들만을 나열해 놓은 글 이상은 되지 못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이념적 근거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념적 근거를 밝히지 않고 상투적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됐던, 사진적 입장이 됐던 혹은 철학적 입장이 됐던 그것을 먼저 명확히 드러낸 상태에서 비평적 평가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죠.
비평가가 자신의 비평적 관점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것이 현실.
지식의 재충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비평가의 현실 여건이 개선되어야 함.
배 :
최근 국내 예술계에서는 큐레이터와 전시기획자가 비평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비평가의 역할이라는 것이 짤막한 전시 리뷰를 작성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비평가의 위치가 굉장히 애매모호 해졌다는 것이죠. 미술 비평 쪽에서는 이와 관련한 세미나도 있었습니다만, 아쉽게도 뚜렷하고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최 :
물적 토대의 불합리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앞으로도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힘들다고 봅니다. 미술이건 사진이건, 비평가의 힘은 약합니다. 따라서 권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큐레이터는 비평가와는 달리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그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컬렉션의 형태로 작가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작가들에게 있어서도 속된 말로 “뜨기” 위해서는, 좋은 전시기획과 좋은 미술관을 만나야 작가 이력의 대외 홍보적인 측면에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큐레이터와 전시기획자들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비평가들에게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전시 리뷰의 경우, 그 속에는 이미 “비판은 적당히”라는 암묵적인 약속이 돼있기 때문에, 비평가는 자유롭게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합니다. 또한 비평가가 큐레이터와의 관계를 원만히 하지 못할 때에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초청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큐레이터가 더 중요하게 보이지, 비평가가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비평가가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비평적 관점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배 :
비평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많이 제시되는 대안이 바로 무크지의 발행입니다만, 한편으로는 무크지 외에는 정말로 다른 대안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크지가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도 불투명 하고요.
최 :
무크지가 꾸준히 발행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관심이 있어야하고, 발행되는 부수가 팔릴만한 시장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무크지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사진 비평계의 비평가들에게는 자신들의 당파성을 드러낼만한 자본력이 없습니다. 담론을 생산하고 비평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무크지가 좋은 방안이긴 하지만, 경제적, 사회적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초반에 언급했듯이 1970년대 문예비평의 상황과 같이, 경제적 문제, 후학 양성의 문제, 사회적 지위의 문제에 있어서 비평가들이 자율권을 갖지 못하는 한, 비평은 앞으로도 계속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배 :
모든 학문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이론가와 비평가에게 있어서 지식의 재충전만큼 중요한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저서 “세계 사진사”의 서문을 통해, 비평가로써 지식이 재충전이 필요함을 언급하셨는데, 실질적으로 그 동안 새로운 학습을 실행에 옮길 수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최 :
저는 강의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강의 외에 잡문도 계속 써야하고, 외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외부 강의도 나가야 합니다. 확실한 경제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채, 이런 생활이 계속해서 매년 반복되는데 지식의 재충전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봅니다. 충전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머릿속 지식은 언젠가는 방전되어 버리겠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이와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밀도 있는 이론과 비평이 응축되지 못하는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지식의 재충전이 이루어질 수 없는 비평가들의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
지식의 재충전과 관련하여,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 그리고 이론과 비평에 무관심한 대중들이 이론가/비평가를 긴장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새로운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작 이론과 비평 수용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과 대중들의 무관심 역시 이론과 비평의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죠.
최 :
일정 부분 그와 같은 지적에 동의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개인적으로는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의 충전이 거의 불가능 하다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경쟁자 혹은 동료라고 할 수 있는 다른 비평가들 역시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도 새로운 학습에 대한 자극을 받지 않습니다.이론가/비평가의 새로운 학습을 어렵게 만든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요소들과 원인들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우선적으로 비평가에게 새로운 이론의 학습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비평가들을 탓하기 보다는, 그 이전에 사진 이론과 비평이 처해있는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結
배 :
이론과 비평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서, 사진 이론의 후학 양성 문제 그리고 비평의 폭넓은 의미로서의 문예비평에 대한 이야기까지, 냉정하게 현재 사진 이론과 비평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정리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 드리겠습니다.
최 :
제가 프랑스로 막 유학을 떠났을 때만해도, 원래에는 작가의 과정을 밟고자 하는 생각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론을 공부하면서 카메라를 놓게 되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카메라를 잡고 사진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학생들에게 강의를 통해 이론을 가르치고, 전시 기획과 비평 활동을 해오면서 나름대로 보람도 많이 느꼈지만, 앞으로 2 ~ 3년 후에도 제가 지금처럼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식의 한계 그리고 물리적인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론가/비평가로써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론과 비평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배 :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 중이신 사진 작업도 좋은 결실을 맺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기획 및 진행 : 배남우
본 인터뷰의 저작권은 배남우씨와 fotato.com에 있습니다. 따라서 인터뷰의 무단 배포와 전제를 금하며, 관련 사항은 배남우씨와 fotato.com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배남우씨는 현재 상명대학교 예술, 디자인 대학원 순수사진학과 휴학 중이며, 제 7회 사진비평상 평론부문 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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