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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현대사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Ⅰ
중국의 현대사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5년 안에 몰라볼 정도의 큰 변화를…”
조류독감 소동에서부터 베이징 올림픽, 경이적인 경제발전,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유인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는 등 최근 중국이 국제뉴스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중국의 경제, 산업, 정치외교 분야에 관한 뉴스가 보도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유엔의 무역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시장점유율 1위 수출품은 1980년의 12개 종목에서 2003년에는 9개로 줄어든 반면, 1980년에는 세계 1위 수출품을 단 하나도 갖고 있지 못했던 중국은 2003년에는 무려 116개를 기록, 한국의 12배를 넘었다. 세계 시장점유율 상위 5위 내 수출품도 한국은 1980년 68개에서 2003년에는 62개로 축소된 데 반해, 중국은 0에서 무려 305개나 그 숫자가 늘어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은 가파른 경제발전과 함께 모든 분야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 샹하이, 광조우 등 대도시에서는 매일처럼 초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는 등 전면적인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2008년까지는 수도 베이징 시 전체의 약 80%가 새롭게 개조된다고 한다.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에는 “1년에 하나의 변화, 3년에 커다란 변화, 그리고 5년 안에 몰라볼 정도의 큰 변화(One change a year, one big change in three years, and one unidentifiable transformation in five years.)” 라는 슬로건이 있다. 사회 경제적 분야와 문화 예술에서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이런 변화에서 그 슬로건이 현실로서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과 실제의 중국은 많이 다르다.
경제발전과 사회의 변화, 문화개방, 인터넷시대의 도래와 함께 현대미술 분야에서 사진을 활용하는 아티스트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국제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도 한두 사람이 아니다. 샹하이비엔날레, 광저우트리엔날레 등 국내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에서는 물론, 카셀도쿠멘타, 베니스비엔날레, 상파울로비엔날레, 시드니트리엔날레 같은 국제미술의 무대에서 중국작가들의 주가가 높아지고,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도 중국의 현대미술의 판매량과 가격은 급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큰 문화적 잠재력을 갖고 있었던가를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의 현대미술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먼 곳에 있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사진과 미술을 가르는 것은 적어도 지금의 중국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그곳 사진가들은 대부분 비디오, 페인팅, 조각, 설치, 행위예술, 영화, 디지털 이미징, 인터넷 등 복수의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국제적인 비엔날레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중국의 현대미술은 매체에 대한 자유롭고 유연한 태도와 실험정신으로 작업하고 있는 1960, 7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에 의해서 주도되어 나왔다. 그들은 도시화된 풍경과 도시인, 불안정하고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환경, 가치관과 삶의 스타일의 변화 등 중국이 경험하고 있는 동시대의 현실과 예술적인 실험정신을 신선하고 매력적인 작품 가운데 반영시키고 있다.
국제미술을 향한 1990년대
1900년대 중반 넘어서면서 회화와 조각, 설치, 비디오 등 중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사진가들에게 사진이 독립된 예술매체로서 인식되는 것은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대학에서의 사진교육은 우리보다 30여 년쯤 늦게 시작되었다. 현재 중국에는 400여 개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처럼 급격하게 늘어난 대학의 교육 인력의 수급해온 루슌예술학원 사진학과가 작년 7월에 개설 20주년을 맞았으니까, 20년 만에 백 배 이상의 수적 증가를 보인 셈이다.
2004년, 루슌대학사진학과 창립 20주년 기념행사가 끝나고.
1980년대 이후 대학을 나온 젊은 사진가들은 중국의 변화와 현실을 작품에 반영하는 일에 관심을 보였고, 풍부한 표현 가능성을 가진 매체로서 사진은 폭넓게 지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진가 가운데 많은 부분은 사진 비전공자들이다.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 디자인학과에는 매년 거의 5만 명 가까운 수험생이 원서를 낸다. 500명을 뽑으니까 입학정원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100배의 경쟁률을 뚫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중국의 전통미술에서부터 사진, 영화, 비디오,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전공학과에 관계 없이 학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매체를 이용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신세대 아티스트들의 행보를 넓히고 중국사진의 수준을 높여주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사진을 비롯한 중국의 미슬 전반이 이처럼 짧은 시간에 극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문화개방에 따른 외부로부터의 자극도 있었지만,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를 거치면서 중국의 모든 분야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당의 통제가 상당히 느슨해진 데에도 원인이 있다. 이것은 이전에 비해서 훨씬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금년 핑야오 사진축제에서는 성과 죽음에 대한 거친 표현들이 낡은 공장건물을 이용한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 공간으로 풀려난 그들이 머지 않아 현대미술의 중심점으로 진입하기 위한 본격적인 대오를 갖추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도록 만드는 장면이다.
오래 동안 폐쇄적인 문화정책 아래 놓여 있던 중국의 현대사진은 어떤 특정한 부분 -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사진의 분야에서 남다른 성격을 만들어냈다. 80년대 이후의 사회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인구의 대도시 집중화 현상을 초래했고, 거기서 파생되는 사회적 심리적 공황을 다루는 사진가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진에서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나 비판적인 시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해마다 두 자리 수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조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나 찬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중국의 사진을 1980년대까지의 리얼리즘에 대한 반동에서 나타난 냉소적인 태도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도시화가 빚어내는 부조리한 현실과 사회적인 억압 상태를 소재로 다룬 표현이 사회적인 기록물로서가 아니라 국제적인 미술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세대의 사진가들이 자각하고 있다는 징표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채워가는 대도시들에서 전통적인 문화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서구화되어가고 있고, 뒤섞이고 이질적인 문화구조로 교체되어가고 있다. 빠른 변화가 초래하는 이런 다문화적 현상은 도시의 환경뿐만 아니라 거주자들의 생활습관과 일상생활의 스타일까지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사진가들은 이런 도시화의 폭발적인 변화과정 속에서 체험하는 문화적인 전후 관계의 단락이라는 상황을 작품 가운데 반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정부의 의도적인 문화 지원정책
지난 2001년 암스테르담에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라덴에서 개최된 사진페스티벌에는 인구통제 문제를 다룬 작품과,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도시의 부자에게 팔려왔다가 2년 후 그의 젊은 조카에게 넘겨지는 시골 소녀에 관한 중국사진가의 다큐멘터리사진이 출품되었다. 중국에서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이런 현실들은 중국정부가 발표하는 공식적인 문서에는 물론 포함되지 않는 것들이다. 내 눈에는 중국세관의 엄격한 검열을 통과해서 국제적인 미술이벤트에 그런 작품들을 내어 놓으려고 생각하는 사진가의 행위는 거의 목숨을 건 모험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어쩌면 다른 목적을 가진 당국의 의도적인 '묵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 당국이 예술과 문화에 대해서 관대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서구 세계에 보여주는 일이다.
1989년부터 2년에 한번씩 사진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나덴의 야외 전시장. 레스토랑, 공장, 성곽의 외벽, 성당 등 작은 성곽도시 전체가 전시장으로 쓰인다.
불과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대사진의 경향을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국의 잡지나 전시 도록에 실린 우편엽서 크기만 한 인쇄물이 전부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개방된 지금은 인터넷과 잡지, 그 밖의 정보매체들과 국제적인 미술이벤트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최신의 미술의 동향을 리얼타임으로 접하게 되었다. 13억이 넘는 인구와 수많은 사진 전공자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새로운 세대의 미술계 전공자들이 중국의 현대사진에 상상을 초월하는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진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징조는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가령 중국에서 누드사진을 찍어서 발표하는 사진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형사처벌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누드사진을 전시한 사진가가 체포되어 형무소로 들어간 예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 여성들을 정면에서 찍은 누드사진이 공개된 장소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년 핑야오에서도 과격한 젊은 사진가그룹인 ‘블랙 아이스’의 전시 구역에서 서구적인 체구의 젊은 여성들의 누드사진들이 실물보다 몇 배 큰 대형 사이즈로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당혹감을 느낀 것은 오히려 한국인인 나였다. 누드 때문이 아니라 그 변화의 속도 때문이었다. 해변의 절벽과 바위 위에 정면을 보이며 늘어선 나체의 여성들은 심미적이고 고전적인 누드가 아니라 불길한 예감과 폭력적인 성적 상징물로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티브는 내면적인 충동
일반적으로 발전도상국의 예술은 전통문화가 대부분이다. 오래되고 신기한 것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토산품 수준인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주로 일본이나 한국 등 아시아와 구미 국가들로부터 의뢰 받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제조공장으로 기능해온 중국의 산업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미술에 관한 한 중국은 제일급의 수출국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제4세대 아티스트들은 자국의 역사와 정신문화, 풍부한 인적자원과 소재, ‘키지사진’의 기술적 전통과 현대미술의 개념을 배경으로 작업하는 동시에 중국적인 것으로부터 한 발 물러선 위치에서 사진미디어가 가진 세련된 표현의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개척해나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들의 작품은 현실의 충실한 기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세계와 자신과의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발화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들의 작품이 국적이나 문화적 고유성을 떠나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컴퓨터와 인터넷, 첨단 테크널러지, 대도시의 고층건물, 자동차, 지하철, 매스미디어, 도시개발, 경제발전 등, 중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현대화 과정은 필연적으로 도시의 경관과 생활양식, 전통적인 가치관의 수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진에서 중국이 성취한 경이로운 변화와 발전에 대한 찬양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의 사진에 찍혀있는 현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현실을 바라보는 사진가들의 태도를 통해서 중국에서 지금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한 단서를 읽어내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안문 사태와 민주화 운동의 좌절을 경험한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중국의 사진가들은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공적인 태도로 현실을 그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 개방이 진행된 90년대, 특히 1992년 이후 경제성장에 따라 중국의 사회 시스템의 기반이 변화되면서 현실에 대한 개인적인 자각과 내면의 충동을 예술적인 동기로 하는 젊은 사진가들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문화는 새로운 표현매체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관대한 융통성과 포용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1990년대 중반 들어서부터 중국의 사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고, 아방가르드한 예술운동과의 연동, 영상 테트널러지, 다른 표현장르와의 크로스오버 현상이 확산되면서 국내외의 현대미술의 장면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향해 달려나가게 된다. 1990년대 초, 일군의 한국 젊은 작가들에 의한 ‘수평전’의 예술운동에 대해서 기성세대 진영에서 보여주었던 경직된 반응과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이곳에 소개하는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다양성은 중국이 놓여있는 현실과 예술적인 상황 자체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그들의 작품에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의 개인의 아이덴티티와 세계와의 관계, 사회적 정치적 현상들에 대한 의견, 전향적이고 도전적인 태도, 역사에 대한 탐구, 자유와 예술적 실험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 대중문화의 확산, 테크놀로지, 역사적 정체성의 혼란,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과 빠른 근대화의 효과를 예술행위 가운데 수용하려는 아티스트들의 욕망과 도전이 짧은 현대사진사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다양한 작가군의 출현
1980년대 들어서면서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던 이른바 ‘살롱’ 풍의 사진은 사회적 현실에 눈을 돌린 다큐멘터리사진(記實寫眞)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13억 인구와 다양한 민족 문제, 통제된 체제로부터 개방과 산업사회로의 전환은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사회적 환경은 사진가들에게 더없이 좋은 소재들을 제공해 주었다. 도시와 인구, 사회제도, 소외, 도시개발, 빈곤 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은 금세기 초까지 20여 년 동안 전성기를 누린다.
내가 베이징을 처음 방문한 것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인 1987년이었다. 그 이후 20년 동안 중국의 도시들은 완전하게 모습을 바꿨고,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지금 그 변화의 속도에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대규모의 도시계획으로 잠깐 사이에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초고층 빌딩들을 보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정부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농촌으로부터 수십 수백만의 농민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고 있으며, 도시에서 살던 하층민들은 그 숫자만큼 근교로 밀려난다. 마치 실험실의 패트리 디쉬 속에서 배양된 세포조직과도 같은 이런 혼란은 베이징에서만이 아니라 중국 전역의 크고 작은 도시들에서 지금도 동시에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의 삶의 스타일도 확실하게 바뀌었다. TV 등 영상매체는 일상생활에서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았고, 패스트푸드와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미국의 대중문화가 깊숙하게 침투되었다. 현대사진의 전면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대부분은 1960년대와 70년대 사이에 태어났다. 이들이 10대와 20대를 보낸 7, 80년대는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정책에 의해서 중국의 현대사 가운데 가장 과격한 혼란과 변혁이 일어난 시기로, 그들은 개인과 가족과 사회가 빈틈 없이 일체화 되어 있던 부모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문화적 환경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중국사진의 변화를 주도한 제3세대 사진가들의 내면에는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가 각인되어 있다. 그들은 근대화 과정이 야기시키는 문제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문제, 역사와 전통과 새로운 질서의 충돌이 빚어내는 갈등,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 같은 문제에 대한 개념과 인식을 다양한 매체와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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