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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디지털이 대세다
지금, 디지털이 대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다. 누구나 한 대쯤은 갖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는 휴대전화에 내장된 것까지 합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이다. 카시오가 25만~38만 화소 급의 보급용 저가격 QV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시판되기 시작한 1995년 무렵만 해도 아날로그 카메라의 미래에 대한 사진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비교적 낙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반도체의 메모리 용량이 커지고, 메가 픽셀 급의 디지털 카메라가 성능과 가격 면에서 아날로그 카메라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시작하는 2002~2003년을 이후 카메라 보급 대수에서 디지털이 아날로그 카메라를 완전히 앞질렀다. 불확실한 사진의 미래에 대한 사진가들의 두려움과 망설임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금년(2006년) 1월 9일, 후지사진필름이 “사진의 원점인 은염사진은 디지털보다 우위에 있다. 우리는 은염사진을 중심으로 한 감광재료 사진사업을 계속할 것이며 앞으로의 사진문화의 발전을 목표로 사진 애호가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 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코닥도 웹 사이트를 통해서 “시장 수요가 있는 한, 계속해서 은염 필름과 인화지를 생산 공급하겠다.” 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던 금년 3월, Kodak과 Fuji에서 잇달아 인화지 생산 중지를 발표했고, 세계 최대의 카메라 메이커인Nikon과 Canon에서도 아날로그 방식의 카메라 생산중지를 발표했다. 후지필름은 은염사진 부문의 축소로 2006년 전반기에 무려 5,000여명에 이르는 인원을 삭감했다. 소비와 판매량의 급감으로 주요 메이커들의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 인화지, 약품 등의 생산이 줄거나 중단되면서, 16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은염사진은 존립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 코닥, 니콘, 캐논 등 주요 메이커들이 아날로그 방식의 관련제품들의 생산을 중지하는 대신 본격적으로 디지털 생산체제로 전환했으며 Sony, Panasonic, Rico 같은 전자 메이커들이 디지털 카메라 업계에 진출한 것도 최근 수년간의 사진업계의 큰 변화다.
Ted Gelb, "TUG", 1995
600만 화소급 일안레프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
통계로 보면 미국에서는 디지털 카메라 판매 대수가 2000년 4백만 대에서 2005년에는 2000만 대로 5년 사이에 5배 증가한 반면, 아날로그 카메라는 2000년 1900만 대에서 2005년에는 400만 대로 5년 사이에 1/5로 감소되었다. (필름 판매량은 1999년에 약 8억 롤에서 2005년에는 3억 롤로 감소) 사진술의 발상지인 프랑스에서의 디지털 카메라 판매 대수는 1998년 10만대에서 2004년에는 430만대로 4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잡혔다. 카메라 대국인 일본에서는 1998년 디지털 카메라 판매 대수가 138만 대였던 것이 2005년에는 5천 500만 대로 증가. 매년 40%대의 성장률을 꾸준하게 기록했다. 1998년부터의 일본 국내에서의 누적 판매 대수만도 무려 1억 5천만 대에 이른다.
디지털 카메라는 화소 수에서뿐만 아니라 메커니즘, 건전지 지속시간 등 모든 면에서 프로들의 사용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저가격 고성능화 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이런 발전 속도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시간은 ‘Dog Year’로, 변화의 규모는 ‘황의 법칙’에 따라 진행된다.) 앞으로 수년 이내에 억 단위 화소 급의 카메라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카메라와 함께 프린터, 페이퍼, 안료 등 재료와 주변기기가 발달하면서 지금까지 광학과 감광재료, 프린트를 만들기 위한 화학적 기계적 과정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던 사진은 전자공학에 의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인화지에 프린트되거나, 신문이나 잡지 등 종이에 인쇄되어 유포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아무래도 급격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물결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시각문화의 지각변동
그렇다면 디지털 이미지가 전통적인 사진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를 보자. 아날로그 사진은 빛→화학변화→은염재료(필름, 인화지)에 정착하는 물리적 변화로 가시화되는데 반해 디지털 이미지는 빛→0과 1의 전기신호로 변환된 데이터→이미지로 출력되며, 시간의 경과에 의한 화상의 열화가 없고 오리지널과 동일한 이미지의 재현이 가능하다. 이밖에 디지털 이미지의 주된 특성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1. 즉시성과 소거성: 감광→잠상→현상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기록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실패했을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이미지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워 없애거나 재 촬영할 수 있다.
2. 조작성: 아날로그는 상 자체가 고정되어 있어서 조작(암실)이 어렵지만 디지털은 숫자에 의한 전기신호이기 때문에 컴퓨터상에서 이미지를 간단히 조작할 수 있다.
3. 축적성: 저장 공간, 시간경과에 의한 열화, 정리 등 은염 필름과 인화지는 저장과 보존이 어려운데 반해 디지털은 경이적인 허용량을 갖고 있다. 또 하드디스크, CD, DVD 등 기록 매체도 다양하고 저장 용량도 메가를 넘어 테라 수준까지 가능하다.
4. 유통성: 인터넷, 휴대전화를 통해서 그 자리에서 대량의 이미지를 송수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동시에 디지털 이미지는 몇 가지 존재론적 윤리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먼저 이미지 조작에 따르는 현실의 증언 능력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이는 창조적인 분야에서는 이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 다큐멘터리와 포토저널리즘에서는 기록된 상의 신뢰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인쇄 미디어와 같은 이미지의 유통에 관한 통제는 가능한가? 또한 아카이브 용의 이미지, 화상 라이브러리, 데이터 뱅크에 저장된 이미지, ‘사진’처럼 보이지만 비물질적인 디지털 형식으로 보존되는 이미지의 접근과 사용방법, 소유 등에 관한 문제도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시각문화 전반에서 지각변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예술과 취미, 과학과 실용 등 넓은 영역에서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미지의 진실성을 판단할 때, 그것이 물리적인 현실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칭하고 있는가, 즉 이미지가 그 대상을 표상=재현하고 있는가가 관건이 되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진이 현실대상의 물리적인 외관과 불가분의 관계를 바탕으로 성립되는 아날로그적인 이미지로서의 특징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데이터로 전환된 이미지는 직접적인 지각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이미지가 지시하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있어서 시 지각이 수행하는 근본적인 역할에 대한 문제와도 이어진다. ’보는 것‘을 둘러싼 권력구조는 새로운 전자적인 생산과 전달수단에 의해서 무한한 일루전의 공간으로 확산되어 나갈 것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시대의 영상에 대해서는 기계적인 복제 시대의 예술의 제도와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게 된다.
Andy Argyropoulos. "PLUM #2”, 1995
Diane Fenste, "CANTO TWO/DO MOTHS PREFER ARTIFICAL LIGHT?", 1995
표현으로서의 사진
디지털 기술은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보는 방식’으로서의 사진에 대한 구조와 개념 자체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새로운 전자기술이 새로운 시각문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어떤 기술적인 변화도 문화적인 연속성을 쉽게 깨뜨릴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정당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디지털 기술이 다큐멘터리나 포토저널리즘이 누려온 특별한 진리 가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전통적인 사진은 카메라 렌즈와 필름 필터, 광선, 타이밍, 프레임, 조리개. 셔터속도, 현상 컨트롤, 인화지, 톤의 조절 등 모든 과정에서 대상과 상황을 선택적으로 구사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포토그램, 솔라리제이션, 몽타쥬, 콜라쥬, 멀티 프린팅 기법 등 모더니즘 시대의 사진가들이 원래는 그곳에 없었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이른바 ‘만드는’ 사진들도 기본적으로는 아날로그 사진의 범주에 드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사진이 이렇게 대상을 물리적으로 기록하고 재현하는 것임에 반해 회화는 화가의 상상력과 주관적인 해석과 가공의 세계를 자유롭게 구축해왔다. 무한한 조작이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는 그런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사진보다 회화 쪽에 더욱 가까운 매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당연한 일로 사진에 있어서의 전자기술의 영향을 고찰하기 위한 주목할 만한 전시가 1990년대 이후 영국과 일본 등에서 몇 차례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성과를 작품제작에 활용하기도 했지만 진부하고 식상한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표현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현대미술 쪽이다. 그것은 그들이 단순한 기술의 신기함이 아니라 정보화 사회와 미디어 환경, 이미지의 무한 증식, 인간의 신체의 퇴행성, 아이덴티티, 일상성, 원근법의 해체, 진실성과 허구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데 있어서의 디지털 기술의 유용성을 작품에서 어떻게 개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를 사진가들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Wang Qing-Song, "Requesting Buddha No 2", 1999
600만 화소급 컴팩트 카메라로 찍은 디지털 이미지
회화는 죽었는가
사진발명이 공표되었을 때,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고 드롸크롸는 절망적으로 외쳤지만 회화는 결코 죽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격한 예술형태로서 암실에서 사진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컬러 감광재료가 대량으로 시판되기 시작했을 때 흑백사진의 종말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TV가 나왔을 때도 라디오나 신문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비관적인 예상들이 현실화 된 적은 없었다. 과학과 기록 같은 실용적인 분야에서는 지금까지의 아날로그 사진은 압도적으로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표현으로서의 사진은 얘기가 다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이나 이미지 창조에 있어서 인간의 뛰어난 정신과 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위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문제는 시대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표상을 위해서 디지털이라고 하는 전혀 새로운 전자적 이미지의 생산방식을 사진가들이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기록과 재현방식에서뿐만 아니라 표현의 내용이나 유통방식에 있어서 디지털 이미지는 전통적인 사진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카메라건 빛을 이용해서 대상을 기록하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디지털에서도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기록할 수 없다. 비록 ‘은염사진’이 없어진다고 해도 ‘사진(Photo+graphy)’ 자체의 태생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빛을 구사하는 기술이야말로 사진에서 성패를 가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빛의 성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진가라면 아날로그 카메라 대신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손에 든 도구가 어떤 것이든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겨서 오래 기억에 남기는 힘을 가진 사진이면 되는 것이다.
디지털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많은 사진가들 사이에 은염사진의 죽음, 말하자면 아날로그 카메라와 은염 필름을 기반으로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도구와 기술(컴퓨터)를 익혀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감도 있을 것이다. 모처럼 장비를 구입한다 할지라도 아침에 눈을 뜨고 나면 더 싸고 성능이 더 우수한 기종이 나와 있다. 안 바꿀 도리가 없다. 기록한 데이터를 수정하고 정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어서 제대로 하려면 잠잘 시간도 없다. 하지만 디지털은 이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만한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
1000만 화소급 컴팩트 카메라로 찍은 디지털 이미지
1000만 화소급 컴팩트 카메라로 찍은 디지털 이미지
왜 모차르트인가
신문이나 잡지, 광고 같은 실용적인 사진의 분야에서는 거의 모두가 디지털로 바뀌었는데, 창조적인 사진의 분야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아날로그 카메라와 은염필름을 고집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디지털 방식이 수많은 이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음악과 영화, 현대미술,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등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디지털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장비가 보다 간편해지고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왜 낡은 방식을 계속해서 고집하려고 하는가?
사진의 기본은 어느 경우에나 변하지 않는다. 좋은 사진기술은 어느 시대에도 버려지지 않는다. 그 기술을 오늘날 현저하게 발달한 사진 환경에 맞출 생각만 갖고 있다면 할로겐화 은이건 염료건 픽셀이건, 또는 도구나 매체가 어느 것이건 상관없다. 보는 사람으로부터 공감과 감동과 미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가, 그것은 사진가가 얼마나 뛰어난 눈과 정신과 기술적인 완벽함을 갖고 있으며 시각적인 매력과 미학적인 완성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로 상징되는 과학기술의 수준이나 성과가 아니다.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는 사람이 펜으로 쓰는 사람보다 더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 반대도 아니다.
사진의 죽음에 관한 논의도 디지털 기술의 유용성에 관한 논의도 머지않아 끝날 것이다. 사진은 빛으로 읽고 쓰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말하고 쓰는 스타일이나 능력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도 그렇다. 아무리 낡은 도구나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표현에서 필요한 사람은 그것을 쓰게 될 것이다. 또한 보는 사람도 그것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한 완전히 사라지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래는 결코 단독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과거의 가장 훌륭한 것과 결합된 형태로 진전한다. 사진은 과거 160여 년에 걸쳐 노하우를 쌓아왔고, 시각예술은 그 수백 배의 시간에 걸쳐 표현의 영역을 넓혀 나왔다. 테크놀로지나 도구가 어떤 식으로 진화하건, 중요한 것은 그것을 구사하는 인간의 재능과 그가 만들어내는 가치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현재와 같은 디지털 시대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인류와 이미지에 관해서는 우리는 사진발명 이래 가장 과격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는지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도구와 그것을 다루는 기술에 관해서 어쩔 수 없이 대응해나가야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과 섹스피어의 문학이 시대를 초월해서 영원한 가치를 갖는 이유에 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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