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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우의 Art Report - [미디어 미학1] 귄터 안더스 - 팬텀과 매트릭스
- 바야흐로 미디어의 과잉 시대가 도래했다. 인터넷에서는 너도나도 "UCC STAR"라 하고, 미디어를 삼킨 이동통신은 연일 "show"를 하라 외쳐댄다. 자동차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은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가 되어 운전자의 눈을 유혹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골똘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이어질 몇 개의 글들은 필자가 2004년 겨울, 진중권의 "미디어 미학" 세미나를 듣고 정리한 글들이다. 보드리야르나 맥루한과 같은 이론가의 이름은 귀에 익숙하지만, 귄터 안더스나 폴 비릴리오 같은 이름은 생소한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모쪼록 미디어와 관련 예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귄터 안더스(Gunther Anders)
의 "팬텀과 매트릭스" 는 그의 저서 "인간의 골동성에 관하여"의 첫 번째 챕터에 소개된 논문이다. 그의 Matrix 이론은 얼마 전 개봉되었던 영화 "Matrix"의 영화적 맥락과 동일한 것으로써 Matrix를 미디어와 연결 지어 개념화한 최초의 사용자라고 할 수 있다. 귄터 안더스는 하이데거와 벤야민의 영향을 받은 2세대 미디어 이론가이다. (1세대는 발터 벤야민)
하이데거로부터는 "기술"에 대한 사상을 물려받았다. 하이데거는 고대 그리스어에 담겨있는 존재 참여적인 의미가 고대 로마를 거치면서 서구 사회의 형이상학속에 갖혀 버렸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 혹은 도구를 인간 스스로의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그것을 폐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이데거는 그것은 기술에 대하여 인간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술이란 콘트롤이 불가능 한 것이며, 아무 때나 쓰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도구)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 속에 참여하게끔 하는 하나의 거대한 존재사건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조선일보가 "신문" 이라는 거대한 도구라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funtion화 되어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 그리고 부품은 언제든지 다른 부품으로 교체되어 질 수 있다. 하지만 기자 혹은 편집자들은 본인이 신문을 ‘콘트롤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데, 하이데거의 기술 이론에 따르면 절대로 콘트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러한 기술에 대해서 확실하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는데,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부분은 기술 혹은 도구에 대해서 인간이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귄터 안더스는 기계와 인간 사이에는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핵"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인간이 핵을 개발했어도 그것이 인간에 의해 통제가 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게 되면, 그와 관련하여 주변 기술들이 자동 발생적으로 발생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기계도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는 것이다.(핸드폰이 개발된 이후에, 디지털 카메라, PDA, 게임, 멀티미디어 기술이 잇따라 개발 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무조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얘기한다. 기계의 발전성은 무한한 반면, 인간의 발전성은 유한하다. 이 사이에서 틈이 벌어지고, 격차가 벌어지게 되며, 귄터 안더스는 이러한 틈과 격차가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경고했다.
귄터 안더스는 거의 모든 태제에서 발터 벤야민의 대척점에 위치 한다. 전체적인 맥락은 벤야민의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서는 항상 벤야민의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다. 귄터 안더스의 논문 "팬텀과 매트릭스"에서 팬텀과 매트릭스는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시뮬라시옹"에 각각 대응될 수 있다. 여기서 팬텀은 재료를 의미하고, 매트릭스는 짜임을 만드는 활판, 설계도를 의미하며, 이는 곧 세상은 팬텀을 재료로 짜여진 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귄터 안더스 시기까지만 해도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걱정을 하는 정도 였다면, 보들리야르에 이르면 모든 것이 "가상"이라는 극한에 다다르게 된다.
팬텀은 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도 아닌 제3의 존재층이다. 귄터 안더스에 따르면 TV영상이 바로 팬텀에 속한다. 가장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TV속에서 재현되는 9.11 테러 사건이다. 물론 그 장소에서 직접 경험함으로써 알게되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9.11 테러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것은 TV속에서 CNN이 중개했던 9.11 테러에 대해서만 아는것 뿐이다.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다. 우리들 대부분은 TV에서 보여지는 이라크를 경험하고 파병 반대를 외치는 것과 다름 아닌 것이다. 9.11 테러나, 이라크 전쟁이나 분명한 사실이긴 하나, TV로 경험하는 그것은 그렇다고 현실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처럼 우리가 쌓는 지식의 대부분은 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도 아닌 미디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세계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세계와 나 사이에 media가 존재하고, 미디어를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는 참, 거짓의 모호성을 띄고 있다.(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들)
매트릭스는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서 살게되는 세계를 의미한다. 매트릭스 속은 현실도, 가상도 아닌 팬텀으로 짜여진 일종의 판이다. 신문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사실의 날조, 해석의 왜곡으로 매트릭스가 짜여졌다면, 현재에는 "무엇을 비추고, 무엇을 비추지 않느냐"를 가지고 왜곡이 시작된다. 때문에 실제 사실이 일어나는 것 만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들이 미디어에 의해 복제되어 사실이 이슈화 되고 확대될 때, 무엇을 찍고 무엇을 보여줄지의 여부에 따라 가상과 현실이 뒤바뀌게 된다. 과거에는 카메라가 진실을 포착하여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를 향해갔다면, 현재는 카메라 앞에 현실이 다가와 자기 연출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국회위원들의 몸싸움이 왜 격렬하게 일어나고, 반창고로 해결될것을 왜 병원에 입원하여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카메라가 그들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다시 벤야민의 대척점에 위치한 귄터 안더스로 돌아가 사진, 영화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벤야민은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비평적 사고를 가능케 한다고 생각한 반면에, 귄터 안더스는 사진 혹은 영화 속에 이미 비평적 사고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또한 벤야민은 사진, 영화가 지각의 확장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지만, 귄터 안더스는 사진, 영화가 지각의 퇴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풀어서 얘기하면 이런 것이다. 모든 문장이 주어(S)와 서술어(P)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을 때, 벤야민은 사진, 영화가 주어 (S)라면, 사람들이 사진과 영화를 보고 서술어 (P)를 완성한다고 생각했지만, 귄터 안더스는 이미 사진과 영화속에 S와 P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광고 사진 혹은 백화점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상품이 주어 (S)라고 했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쁘다, 멋있다"라는 판단을 내림으로써 서술어 (P)를 넣어 문장을 완성한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귄터 안더스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광고 사진에는 이미 그 속에 "나는 멋있고 끝내준다."라는 비평 혹은 판단을 내재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멋있다"라는 판단을 스스로 내렸다고 생각(착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 영화에는 이미 판단이 들어가 있으며, 그것을 보고 내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소외"에 대해서, 벤야민은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예로 들면서, 소격을 통해 인간은 매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귄터 안더스는 단어 그대로 미디어는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얘기한다. 연예인을 예로 들면(일본의 욘사마 열풍), TV는 멀리 있는 자를 가까이 끌어와 "오빠", 혹은 "욘사마"라고 부르게 만든다.(Aura의 파괴) 그러나 실제로 연예인은 일반 대중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이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의 개념이라면, TV영상은 먼 곳에 있는 연예인을 가까운 TV속으로 끌어와 "소외"를 친숙하게 만드는,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어떤 가까운 것의 반복적인 나타남"이다.
- 이상의 글은 필자가 2004년 12월, 진중권의 미디어 미학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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