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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우의 Art Report - [미디어 미학4] 빌렘 플루서 - 코무니콜로기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
는 발터 벤야민(1세대), 귄터 안더스(2세대)에 이은 3세대 미디어 이론가이다.(세사람은 모두 유태인 출신이기도 하다.) 귄터 안더스는 발터 벤야민의 대척점에서 자신의 미디어 이론을 발전시켜나가지만, 한편으로는 그 형태는 벤야민의 그것을 그대로 따랐다. 빌렘 플루서 역시 벤야민의 매체미학의 패러다임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신의 미디어 이론을 완성시켜 나갔다. 귄터 안더스가 미디어에 대해 무척 적대적이었다면, 플루서는 벤야민과 비슷하게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인터넷의 출연을 지켜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플루서는 "망(網)" 커뮤니케이션이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낙관했다.
커뮤니케이션
빌렘 플루서는 커뮤니케이션에는 모두 6개의 유형이 존재한다고 했다.
1. 극장형
극장형 커뮤니케이션은 뒤가 막혀있고 앞이 개방되어 있는 형태를 말하며, 가장 흔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학교 수업과 같은 유형) 질의응답과 같은 약간의 대화가 가능하지만, 대부분 단방향 커뮤니케이션만 가능하다.
2. 피라미드형
"위계질서형" 이라고도 말한다. 조직체, 정당, 군대, 교회가 이에 해당되며 주로 파시즘과 같은 보수주의 성격을 띈다. 커뮤니케이션은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로 이루어지며, 정보를 원본 그대로 릴레이할 뿐이다. 피라미드형 커뮤니케이션에서 최고루 우선시 하는 것은 "통제"며,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은 무질서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3. 나무형
나무의 뿌리처럼 아래로 내려오지만, 동시에 수평적인 소통도 일어난다. 학적 담론의 공간(아카데미, 학회)이 여기에 속한다.
4. 원형극장형
방송, 미디어가 여기에 해당된다. 송신자는 영원히 송신만 하고, 수신자는 영원히 수신만 한다. 정보의 책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유형이다.
5. 원형대화
소수의 인원일 때만 가능하다.(대학원의 세미나같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엘리트 위주로 이끌릴 수 있다. 파급력이 제한된다.
6. 망형대화
인터넷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다. 송신자가 정보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특권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송신자인 동시에 수신자이기도 하다.(narrow casting)
빌렘 플루서는 앞서 소개한 커뮤니케이션 방법 중에서 "원형극장"과 "망형" 커뮤니케이션이
현대매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미래에는 "원형극장 + 망형" 커뮤니케이션의
등장을 예견했다. 하지만 원형극장의 경우 전체주의화의 위험이 있으며(프로파간다형의 위험), 망형의 경우 송신자가 정보의 책임을 지지 않는 느슨함 혹은 무책임을 경고했다. 그리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narrow가 갑자기 broad casting이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MBC 신강균 사건이 이에 해당됨.)
기술적 형상
1. 선사시대
선사시대에는 인간과 세계가 적대적인 관계였다. 인간은 언제 맹수의 먹이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며, 또한 자연 재해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이러한 적대적인 관계를 그림을 그림으로써 인간과 세계와의 간격을 매꾸려 했다. 그림은 곧 "주술" 이었으며, 이는 자연을 통제한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환상을 통해 인간은 심리적인 안정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즉, 그림이 세계와 화해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2. 역사시대, 문자시대
주술은 결국 가상이며 환상일 뿐이다. 자연을 극복하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철학이 등장하게 된다. 그림에는 순서가 없다. 하지만 그림을 문자로 풀어내게 됨으로써 선형성이 생기게 된다. 중세 철학자들에게는 "텍스트가 세계의 그림(거울)"이었다.
3. 17세기
자연의 수학화가 이루어짐. 세계는 '수(number)"로 씌어진 세계라고 생각함.
4. 20세기 - 제2차 이미지의 시대
인식론적 회의 대두. 텍스트에 대한 불신이 확대됨. 때문에 텍스트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술적 형상"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제는 과거처럼 주어진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영화는 "시나리오"라는 텍스트를 "영상"으로 만들어낸다. TV방송은 "스크립트"라는 텍스트를 "TV영상"으로 만들어낸다. 이처럼 20세기에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날로그 카메라의 경우 "있는 것"을 찍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없는 것"도 찍는다. 쥬라기 공원을 보라. 카메라가 살아있는 공룡을 촬영한 것인가? 빌렘 플루서는 이를 새로운 "마술"이라 불렀다. 선사시대의 주술(마술)은 현실화 시킬 수 없었지만, 현대의 새로운 주술은 기술이 주술(마술)을 현실화 시킨다.
발터 벤야민은 "미래의 문맹자는 이미지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미지 시대에 이미지조차 읽지 못하면,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로의 급격한 퇴행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빌렘 플루서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미지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 이는 논리적 사고의 결핍을 야기 시키는데, 결국 이미지마저 해석하지 못한다면 과거로의 퇴행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형상은 문자시대를 포함하여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이미지 + 텍스트"가 바로 빌렘 플루서가 제시한 새로운 미디어 이론이다.
미래에는 글을 쓰는 사람은 중세 시대처럼 소수 엘리트일 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를 생각해보자. 윈도우라는 운영체제는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했던 도스와는 달리 마우스 클릭만으로 명령어를 대신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명렁어는 우리 대신 프로그래머가 미리 입력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갈수록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제는 프로그래머도 프로그램을 짤 때에 미리 입력된 언어를 마우스로 클릭함으로써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있다. 하지만 결국 시스템의 골격을 디자인하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필요하고, 이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텍스트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동시에 대중은 오히려 더욱 우매해 질수도 있다. 빌렘 플루서는 우리들 모두가 설계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디지털 가상
플라톤이 그랬던 것처럼, 중세에는 모든 사물들이 "이데아"의 "모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신발을 예로 들면, 신발의 이데아가 있다고 믿었고 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그러한 이데아를 그대로 모방한 신발을 만드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완성된 신발의 가치는 신의 언어를 공부하는 "신학자"의 판단에 달려있었다. 즉, 신학자가 완성된 신발을 보고, "음, 이 신발은 이데아의 신발하고 매우 흡사하군." 하면 가치가 높게 책정되었고, "음, 이 신발은 이데아를 닮지 않았어."라고 하면 가치가 낮게 책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르네상스에 이르게 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장(market)"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발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중세처럼, 신발을 만들 때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요구에 따라 신발을 제작해야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대중에게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 신발의 "모형"을 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모형"이라 함은 형태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가상의 것이며 항상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중세시대에 신발은 결국 이데아에 의해 주어진 것을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the given 이라하고, 이는 곳 datum 이며 datum의 복수형은 data가 된다. 즉 data라 함은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발은 대중의 요구에 따라 모형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를 the made라 하고 독일어로는 faktor, 영어로는 fact가 된다.
중세에는 the given이 실재라 믿었기 때문에 실재와 가상의 구분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은 신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에는 모든 것들이 the made이기 때문에 실재와 가상의 구분보다는, 가상의 해상도가 더욱 중요해졌다. 즉, "가상의 양적차이"(해상도가 낮으면 가상, 해상도가 높으면 실재)가 중요해 진 것이다. 빌렘 플루서는 이를 "디지털 가상"이라고 얘기했다. 결국, 디지털 가상의 시대에는
1. 기술적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
2. 디자인이 중요한 시대
3. 스크립트(기술적 형상을 만드는 힘)가 중요한 시대
가 되었으며, 미래에는 Virtual Reality(가상현실)보다 Real Virtuality(현실의 가상성)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빌렘 플루서는 주장한다.
- 이상의 글은 필자가 2004년 12월, 진중권의 미디어 미학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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