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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남우의 Art Report - 2007, Rewind Korea Contemporary Photography
글 / 배 남우(아이포스 웹진)
네이버 지식인들에게 2007년 예술계 최대 이슈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직접 물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추측컨대 ‘신정아 학력 위조’와 ‘아트 마켓의 급성장’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이들 두 사건이 사회 전반에 미친 파급력은 대단했다. 수많은 학력 위조인들이 신정아 사건으로 인해 눈물의 커밍아웃을 해야만 했다. 아트 마켓의 붐은 평소 예술에 큰 관심이 없었던 일반인들도 예술품 경매장을 찾게끔 만들었다. 여기에 ‘아트 테크’ 즉 예술 작품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한다는 의미의 신조어가 생겼고, 미디어에서는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아트 마켓의 붐 현상이 거품인지 아닌지를 조망해 볼 정도로, 아트 마켓에 대한 언론의 관심 또한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한 해였다. 그렇다면 2007년 사진계에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
(좌)Jerry Uelsmann, Self -Portrait, 1990 (우)Maggie Taylor, Cloud Sisters, 2001
2007년에는 윌리 호니스(조선일보 미술관), 바네사 비크로포트(가나아트센터), 제리 율스만 & 매기 테일러(한미사진미술관), 앤디 워홀(리움 미술관), 로버트 카파(예술의 전당), 윌리엄 웨그만(성곡 미술관), 마틴 파(예술의 전당) 등의 전시가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제리 율스만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처음으로 그의 아내인 매기 테일러와 함께 전시를 했다는 점에서 모두에게(두 부부와 애호가들) 의미 있었던 전시였다. 문제는 이들 전시에 대한 논의가 단순 리뷰 정도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의 경우에는 팝 아트의 기수로서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워홀은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었고 스스로의 삶을 모두 사진으로 기록해 다큐멘터리화 시킨 예술가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지 않았고 오리지널리티를 파괴하고 해체시켰던 워홀이지만, 정작 그가 남긴 66, 000 컷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모두 오리지널이자 동시에 빈티지 프린트라는 사실이다. 현대 예술에서 사진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최근 서양에서는 워홀의 사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워홀이 찍었다고 모두 예술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디 워홀의 전시가 열리는 동안 사진 쪽에서 워홀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개진한 사례가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배준성, 화가의 옷, Lenticular, 163x118cm, 2006
올 해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였던 ‘아트 마켓의 붐’은 그들만의 잔치였을 뿐, 사진 시장은 특별하게 나아진 점이 없다. 물론 몇몇 경매를 통해 배병우와 김아타, 그리고 배준성의 상업적 가치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특히 배준성은 시장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처해 기존의 비닐 작업을(화가의 옷 시리즈) ‘렌티큘러’로 대체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인간의 양안시차를 이용한 렌티큘러 작업은 과거처럼 비닐을 들춰보지 않아도 좌, 우의 시각차에 의해 인물이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낳아 좀 더 깔끔한 디스플레이를 가능하게 했다.
서울 옥션이나 K 옥션 주최로 열리는 메이저 경매에서 200개 가까이 되는 출품작들 중 사진은 고작해야 평균 3~5 작품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K옥션 측은, 사진이 경매에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로 ‘공급과 수요의 부족함’을 꼽았다. 사진을 구입하려는 컬렉터 층도 매우 얇고, 사진을 경매에 위탁하는 층도 소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은 사진 전시가 많이 열리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문제라고 K옥션의 관계자는 얘기하는데, 갤러리에서 기획하는 전시는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게끔 하는데 주안점을 두지만, 경매업체 측에서는 경매를 통해 작품이 많이 팔릴 수 있게끔 하는데 주안점을 두기에, 양자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사진을 경매에 위탁하는 사람들은 개인 컬렉터와 갤러리가 반반이라고 한다.)
이처럼 기대와는 달리 사진 시장이 좀처럼 열악함을 못 벗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청담동의 뤼미에르 갤러리와 경기도 양평의 갤러리 瓦는 각각 서울의 신문로와 청담동에 확장 개관하여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또한 가나아트 갤러리도 부산의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에 가나아트부산을 확장 개관하여, 개관 전시로 배병우 사진전을 개최했다. 특히 확장 개관 기념 전시로
Passion for Art, Mission for Money
를 개최한 뤼미에르 갤러리는, 현대 사진과 관련된 섹션을 좀 더 강화하고 확장하여, 아트 마켓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분위기를 발판 삼아 본격적으로 사진 컬렉션 시장에 뛰어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문제는 컨텐츠 개발과 컬렉터의 확보 여부다. 똑같은 사진 경매라도 다양한 컨텐츠를 보유한 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소수에 불과한 작가군, 협소한 컬렉터 층은 분명 넘기 힘든 장애물일 테니 말이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비평이지만, 2007년에는 2006년과는 다르게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다. 사진비평가 이경률이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로 임용된 것이 그 중 하나이다. 과거 활발하게 활동했었던 비평가들이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하나 둘 비평가가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요즈음, 이경률의 임용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뒤늦은 감이 들기도 한다.
최봉림은 비평가가 후학을 양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생의 지도 교수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 있는 후학을 발굴해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비평가가 제자를 받아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 비평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설 학원을 통해 비평가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후학을 양성시킨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공부라는 것은 훈육(訓育)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훈련시키고 육성시키는 것이다. 훈련에는 강제적인 요소도 포함된다. 맛은 없지만 건강을 위해 억지로 먹어야 하는 약과 마찬가지로, 이론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난해하고 힘들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일반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교수 임용 후 모 잡지에서 이경률을 인터뷰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경률은 교수 임용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학문에 대한 열정은 달라진 점이 없지만 ‘제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이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물론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형식’은 작가가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이자 함정이다. 그러다보니 30대라는 젊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형식과 트렌드에 매몰되어, 젊은 작가다운 참신하고 실험적인 노력과 창작에는 소홀한 문제점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현대미술관장인 판디안은 지난 8월 16일 '부유-중국미술의 새로운 흐름' 전시와 함께 열린
중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세대
세미나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중국의 현대미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세미나를 통해 중국에도 서양에서 유행하는 형식을 수용한 작가들이 많이 존재했었고 한때는 그것이 붐을 이룬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작가의 개성과 독창성이 형식에 묻혀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작가의 뚜렷한 개성과 치열한 문제의식 없이 형식만 수용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기계비평가 이영준의 경우, 2005년 12월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제는 국내에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사진적 경향을 성찰적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개념적 전략을 갖춘 작가가 나올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무작정 어떠한 형식과 경향을 밀어붙이는 것이 기존의 한국 사진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속한 사진적인 경향에 대해 성찰해 낼 수 있는 작가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월간사진』에서는 박평종과 이영준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은 박평종이 『월간사진』 8월호에 개재한 ‘수용의 규범-2000년대 한국사진의 문제성(2)’을 읽고 이영준이 같은 책 9월호에 ‘평론가에게 필요한 개념적 장치란’ 이라는 제목으로 박평종의 글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박평종이 이영준이 제기한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펼치며 일단락되리라 생각했던 논쟁은, 이영준이 또 다른 반론을 제시해 11월 현재까지 계속 진행 중이다. 특히 논쟁의 중심에는 최근 잘 나가는 30대 작가들이 주로 다루고 있는 ‘공간’에 대한 미학이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좌)정연두, 로케이션 19, 2006 (우)정연두,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 촬영 중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정연두를 선정한 것도 2007년 사진계의 주요 뉴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연두의 선정은 그 동안 사진에 대해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던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정연두는 '내 사랑 지니', '원더랜드'와 근작인 '로케이션',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까지 꿈과 현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몇 년 전부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양의 유명 석학과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2004년에는 자크 데리다가, 2005년에는 수잔 손탁이 세상을 떠났다.) 2007년에는 프랑스의 유명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 오늘날 사진이 현대예술의 중추적 매체로 자리매김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의 베른트 베허,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사진 큐레이터로 활동했었던 미국의 존 자코우스키가 한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되돌아보면 2007년 사진계는 전반적으로 평범한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된다. 2006년 사진계의 가장 큰 화두로 언급되었던 국제사진페스티벌과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올해 열리지 않았다. 동강사진축제 외에는 규모 있는 사진 행사는 없었던 셈이다. 글의 앞부분에서 언급했었던 학력 위조가 사진계에서는 특별히 공론화 된 적도 없었고, 아트 마켓에 자본이 몰리긴 했어도 다양한 작가들의 사진 작품들이 많이 팔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몇 년째 연말이 되면 단골 멘트로 사용되는 ‘사진 전시의 붐’을 특별한 이슈로 부각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인사동(혹은 그 외의 지역)에서 열리는 사진 전시의 다수는 하이 아마추어들의 대관 전시가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 혹은 연초에 사진잡지를 통해 1년간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하다보면, 개별적인 문제를 일시적으로 나열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제시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꾸준히 이어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지속적인 논의도 불가능하고 문제점도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으므로, 관계자들을 비롯한 대중들이 그러한 문제점들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2008년 사진계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상기 원고는 2007년 12월호 '사진예술'에 실린 기사를 잡지사 동의 하에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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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계동정 ]
2007, Rewind Korea Contemporary Photography
20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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