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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곤 / 2006 한국사진을 돌아보며
전면으로 진출한 젊은 작가군
아트 페어나 비엔날레 같은 굵직한 미술행사들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회화나 조각 등전통적인 예술장르들을 앞지른 지오래다. 공립미술관이나 금호, 국제, 현대, 세줄, 아라리오, 가나아트 같은 대형 화랑들에서도 이제 사진은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부쩍 숫자가 늘어난 사진전문 갤러리에서 1년에 200번도 넘게 열리는 사진전이나,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사진 값도 높아진 사진의 위상을 반영한다. 11월 뉴욕 소더비에서 6000만원에 작품이 팔려 화제가 된 배병우는 [2006' 사진영상포토페스티벌](가나아트갤러리)과 아르코 아트페어(스페인 마드리드), CentrePasquArt Museum(Biel, Swizerland), GALERIA ALVARO ALCAZAR(스페인) 등 금년에도 명상적인 소나무 사진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전시를 이어갔다. 구본창도 지난 20여 년간의 작업을 정리한 150점의 작품으로 교토의 카히츠미술칸(6. 1~7. 17)에서 때 이른 회고전 성격의 전시를 가진데 이어, 이조 백자의 형태미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로 서울(국제화랑, 7. 7~30)과 뉴욕(헤이스테드앤헌트 갤러리, 10. 12~11. 18)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미묘하게 어긋난 두 개의 프레임을 병렬시키는 딥틱 기법으로 시간과 공간의 공명을 잡은 김장섭의 풍경사진전 [From Landscape](7. 5-18)이 갤러리 룩스에서 열렸다.
50대의 스타급 사진가들만이 아니다. 1970년을 전후해서 출생한 3, 40대 사진가들이 한창 성장하던 시기였던 1980년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사회적, 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경험한 시기다. 이들은 이상이나 감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일상과 현실에서 모티브를 찾는다. 그러나 금년에도 많은 전시들에서 자아정체성이나 도시, 타이폴로지, 토포그래픽스, 시뮤라크르 같은 개념들을 소재로 하거나, 외국 사진의 경향을 날것으로 받아들인 듯한 작품들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한국사진의 장면은 사진에 대한 태도나 표현방법에 있어서, 금욕적인 이전 세대의 사진가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자유분방하고 세련된 감각을 가진 이들에 의해서 주도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니키 리에 이어 무서운 기세를 몰아가고 있는 또한 사람의 사진가가 김아타다. ‘아파추어’에서 무상한 삶과 죽음 같은 불교적인 주제를 다룬 사진집을 낸 그는 뉴욕 ICP에서 개최된 [On Air](6.9~8.27)로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아티스트 자신의 문화나 역사적인 뿌리는 국제적인 예술무대에서 중요한 변별요소로 작용한다는 논리가 여기서도 입증된 셈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천경우는 금년에도 벨기에의 안트워프와 독일 만하임, 체코, 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에서 사진과 비디오, 퍼포먼스,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등 다양한 미디어를 구사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다. 조소와 순수미술을 전공한 정연두는 2001년 [보라매 댄스홀] 이래, 상하이, 광주, 후쿠오카, 베니스, 리버풀, 타이페이 등 국제적인 비엔날레에 연이어 참가하면서 사진을 표현매체로 하는 아티스트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다. [Are you lonesome tonight?](5.31-6.30, 국제갤러리)에서는 실제의 장소와 무대처럼 꾸민 인공적인 장면을 한 화면으로 구성해서, 보는 사람의 현실감각을 교란시키는 독특한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개인적인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현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올해의 ‘동강사진상’과 ‘한미사진상’은 1991년부터 15년간 유럽과 아프리카 등제3세계의 난민과 집시들의 삶을 기록한 사진작업을 정리해서, 사진전 [유민의 땅](3.4-3.29, 사진갤러리 와)과 사진집 [The Unrooted-1991~2005](눈빛)으로 펴낸 다큐멘터리사진가 성남훈이 휩쓸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엄상빈은 고교교사로 재직하는 20년 동안 제자들을 지근거리에서 기록한 사진으로 [학교이야기](11. 4~10, 속초문화회관)를 열었다. 또 오래 동안 중국에서 조선족에 관한 방대한 사진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는 류은규는 [청학동 이야기](4. 13~5. 4, 포스코미술관)에서 25년 동안 한 지역 주민의 삶을 기록한 작품을 발표했다. 어느 쪽이나 동일한 대상을 오랜 시차를 두고 기록하는 정점촬영이라고 하는 기록사진의 정공법을 보여준 작업이다.
지금까지도 권력과 제도가 빚어내는 부조리한 상황, 환경과 개발, 분단, 민중의 삶과 같은 시사적인 문제는 현실을 다뤄야 하는 다큐멘터리사진에 있어서 중심적인 주제였다. 그러나 최근의 다큐멘터리사진은 같은 현실을 다뤄도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어법이 다르다. 강홍구의 [풍경과 놀다](로댕갤러리, 6.9-8.6)는 단기간에 농경사회에서 산업 정보화 사회로 진입해버린 한국의 현실을 풍경사진을 통해서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 전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2006 올해의 예술상’ 사진부문에서 수상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발언은, 군사지역 대추리에 세워진 원형 구조물을 통해서 농민들이 처한 심리적인 상황을 그려낸 노순택의 <얄읏한 공>(5.12-23, 신한갤러리)에서도 이어졌다. 또 고현주는 [기관의 경관](4.5-11, 갤러리 라메르)에서 국회와 국방부, 중앙선관위 같은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 권력 중추의 내부공간을, 마치 은밀한 모의가 연출되는 세트장처럼 그려냈다. 금년 대중문화를 읽어내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짝퉁, 된장녀 등 고급 취향의 '가짜'에 관한 조어였다. 김동욱의 [Postcard]와 박홍순의 [Dream Palace](7.19-8.7, 갤러리 쌈지)는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유럽의 건축물과 명승지, 정체불명의 이국적인 양식의 모텔건물 등을 찍은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난감카메라와 핀홀카메라로 찍은 이들의 사진은 고급취향과 소비문화, 신분상승에 대한 대중들의 환상과 욕망을 드러내 보여준다. 윤진영은 [Metamorphosis](11.27~12.8, 문신미술관빛갤러리)에서 날 오징어 같은 촉감적인 피사체를 근접 촬영해서, 현실대상의 단순한 시각적 재현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물질적인 수준의 리얼리티를 끌어내고자 했다. 단체전으로는 구성수, 김세진, 최승훈+박선민의 [다음작가상 수상작전](5.11-21, 금호미술관)과 배병우, 김장섭, 오종은, 김남수, 김영길, 이주한, 이주형, 현관욱 등 14명이 참가한 [대동산수](2.22-28, 공평아트센터), 방병상, 김윤호, 김정현이 참가한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4.14-5.10, 스페이스바바), 그리고 에어리어 박과 오형근이 사진으로 참가한 [사춘기 징후](9.1-11.5, 로댕갤러리)가 있었다.
2006 동강사진상 국내 작가상부문 수상자 성남훈 작품
전환기의 사진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어두운 암실, 화학약품과 같은 까다로운 기술적 제약으로부터, 사진을 밝고 자유로운 이미지의 세계로 풀어놓았다. 발명되고 170여 년이 지난 지금, 사진술은 화가의 붓이나 물감과 마찬가지로 사진가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실현시키는 도구로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이것은 사진이 숙명적으로 이어져 있던 물리적인 현실세계의 고리를 풀고, 상상과 허구의 세계로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상빈의 [NEWSCAPE](8.24-27, 갤러리 마루), 권순학의 [Hyper-Space "The Road"](1.6-25, 문신)와 전민수의 [다 같이 놀자](12.16-06.1.4, 문신), 구성연, 김화용, 조성연의 [3인의 디지털 미장센](10.11-24, 학고재), 양재헌, 이종호, 전민수, 전흥수, 최원진, 황선구 등이 [디지털 마인드](6.15-28, 갤러리 아트앤드림) 전에서 디지털 프로세스를 이용한 작품들을 내걸었다. 그 가운데서도 잭슨 홍, 사타 등을 비롯한 한국의 작가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그리고 유럽 10개국에서 참가한 27명의 디지털 아티스트들의 작업으로 구성된 [bitmap](2.17-3.14, 대안공간 루프)전이 화제를 불렀다. 이들 가운데에는 폐쇄적인 전시장이 아닌 인터넷 공간을 발표매체로 삼는 새로운 타입의 아티스트들도 눈에 띈다. 비은염사진을 전문으로 해온 임양환은 [빛과 물감이 빚어낸 풍경사진](11.8-12.15, 갤러리 온)에서 필름으로부터 스캔 받은 이미지 데이터를 출력해서 고전적인 검 프린트 기법으로 인화한 작품을 내놓았다. 아날로그사진의 종언이 예고된 시점에서 나온 이종교배적인 제작방법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진사 초기의 회화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의 과정을 거쳐 사진은 오래 동안 회화의 주제와 방법을 공유해왔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사진 이미지의 미끌미끌한 표면성과 차가운 재현성이 주목 받게 되면서, 현대미술에서의 양자의 크로스오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도 오래다. 두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의미도 없다. 고명근, 이강우, 홍성도 등이 참가한 [사진 속의 미술, 미술 속의 사진](대구사진비엔날레)이나, 강홍구, 권정준, 문형민, 배준성, 양재광, 이중근 등이 참가한 [사진의 꿈](동강사진축제)에서도, 미술의 표현미디어로 사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또 배준성의 [화가의 옷](10.14-12.3, 갤러리 터치아트)과 안창홍의 [얼굴](4.19-6.7, 사비나미술관), [사진의 껍질, 회화의 피부](4.26-5.16, 갤러리 나우), [P&P-사진 같은 회화, 회화 같은 사진](4.20-5.31, 갤러리 잔다리), [사진과 회화 사이](1.18-2.11, 갤러리 컨템포러리) 등은 더욱 밀접해진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보여준 전시들이다. 지난 해 제4회 [다음작가상]을 수상한 구성수, 김세진(비디오), 최승훈+박선민(설치작업)의 작품들이 금호미술관과 대안공간건희(5. 11~21)에서 전시되었다. 제8회 [사진비평상]에는 최영희, 이명호, 김호겸, 류수진, 장미라, 김영수, 김현서, 심은주(이상 작품부문)와 문혜진(평론부문)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아홉 명의 수상자 가운데 여섯 명이 여성이었다.
예년에 없이 많은 외국사진가들의 전시가 국내에 들어와 전시되었다. [만레이 특별전](11.4-12. 16,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중국 대만 현대사진가 초대전](10.13-11.12, 동강사진박물관), [에드워드 웨스턴 & 티나 모도티전](3. 10~5. 7, 갤러리 뤼미에르, [허허실실](7. 29~8. 27, 헤이리 예술마을), [세계보도사진전](8.2-9.5, 세종문화회관), [프랑스 패션사진전](8.19-9.30, 대림미술관), 공근혜갤러리의 조엘 메이어로위츠(4.8-5.7), 베르나르 포콩(6.2-7.2)과 빅터 슈레거(11.3-12.3)전, 더글러스 커클랜드의 [Legend](6.14-20, 인사아트센터), 요셉 슐츠의 [현실, 그리고 가상](12,20-2.5, 갤러리 뤼미에르), 스잔 앤드류스, 믹 윌리엄스 등5명의 영국사진가전(6.26-7.25, 금호미술관), 그 밖에 빌브란트, 요셉 슐츠, 루시앙 끌레그, 소피아 페트라디스, 루 하오 등 외국 사진가들의 크고 작은 전시들이 줄지어 열렸다. 환경재단이 주최한 [물오르다](4. 20~5. 21, 세종문화회관 인도)는 매그넘 등 에이전시에 소속된 사진저널리스트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환경캠페인 사진전으로, 한국에서는 김수남, 박하선 등 15명의 사진가가 참가했다.
세계보도사진전 스포츠 스토리사진부문 1등 Donald Miralle 작품
사진의 경제 시스템
최근 수년간 대형 화랑들이 빈번하게 사진전을 열고 사진가들과 전속계약을 맺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런 수혜를 입는 것은 안정된 평가를 받은 소수의 작가 군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의 영향력 있는 화랑들의 이런 태도가 결국은 사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1998년 국내 유일한 경매회사로 설립된 서울옥션에서는 김도균, 주상연, 권두현 등의 작품이 괜찮은 값에 낙찰되어 사진시장 형성과 사진작품 상품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유명작가로서의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는 젊은 사진가들의 자생적인 움직임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4월에 문을 연 [쌈지 아트마트] 상설전시장에서는 염중호, 구성연, 방명주, 변순철, 에어리어 박, 데비 한 등 100여 명의 젊은 사진가들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고, [코리아 포토페어-생활 속의 문화 제안](7.5-8.27, 아트 앤드림)에서도 임양환, 이주용, 정창기, 최광호, 김수강, 전흥수, 김대수, 이경민 등 40여 명의 사진가가 출품한 120점을 사진애호가들이 비교적 구입하기 쉬운 가격에 내놓았다. 앞으로도 예술상품으로서 사진의 투자 가치는 더욱 높아지겠지만, 문제는 사진 값이다. 음성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작품들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판매하는 일이 있다는 풍문도 들린다. 또 사진은 한 시대와 개인의 평가를 떠나 공공의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되고 계승되어야 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밀실에서 값이 결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공적인 성격을 가진 미술관에서는 수집(구입) 대상 작품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심의기준이 마련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한국 미술시장의 실정과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가격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심의하기 위한 전문적인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바쁘게 가야 할 공립미술관들의 행보는 여전히 느리기만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으로 옮겨가면서7개 전문 분야를 만들었고, 1997년에는 사진과 영상 등 새로운 매체를 다루는 부서를 신설해서 지금은 10개 부문으로 늘어났지만, 사진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학예원은 단 한 사람도 두고 있지 않다. 646점(그나마 절반 가까이는 기증된 것)이라는 소장 작품 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숫자다. 2006년도에는 전체 예산 45억여원 가운데 8% 남짓한 예산으로 사진 작품 31점을 구입했다. 비교대상이 될지는 모르지만, 동경도립사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수는 국내외 작품 13,000여 점, 그 동안 쓴 구입비는 계산이 안 될 정도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금년도 전체 구입예산 약 24억원 가운데 겨우 6% 남짓한 1억 5천여만원으로 17점의 사진작품을 구입하는데 그쳤다. 도쿄와 비슷한 인구를 가진 서울의 시립미술관에는 현재 겨우 273점의 사진작품이 소장되어 있을 뿐이다. 한편 정부 예산으로 미술품을 구입해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신진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미술 대중화와 미술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지난해에 가동된 미술은행(아트뱅크)은 2006년도 전체예산 27억원의 3%에 지나지 않는 8000여만원을 들여 사진작품 14점을 구입했다. 이에 비해서 문화예술위원회는 나은 편이다. 2006년도 지원현황을 살펴보면 시각예술분야에서는 1,013건의 전체 신청 건수 가운데,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전체 163건에 대해서 11억6800만원의 지원금이 집행되었다. 이 중 사진에서는 창작 분야와 신진예술가 분야 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약 11.6%인 25건(신청 건수는 118건). 이들에게 지원된 지원금은 1억8천여만원으로, 전체 지원금 중 약 15.4%를 차지했다. 선정 비율도 사진부문은 전체 평균 16.1%에 비해 21.2%로 가장 높았다. 물론 이런 숫자도 의미가 크지만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대상을 선정하는가, 전문성과 함께 업무의 투명성이나 공정성이 얼마만큼 담보되는가는 더욱 중요한 문제다.
2007 서울옥션경매 김아타 작품
늘어난 사진축제
서울에서 처음으로 7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한 큰 규모의 사진축제가 인사동 일대의 몇 군데 갤러리들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2006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9. 13-26)의 표현매체로서의 현대사진의 확장된 형태와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주 전시 [Ultra Sense]에는 강홍구, 고명근, 구성연, 이윤진, 조습, 황규태 등 19명의 국내 작가와 캐더린 야스(영국), 미오 샤오춘(중국) 등 9명의 외국 작가들이 참가했다. 참가작가의 면면이나 스케일이 큰 원색의 대형 출품작들은 '확장된 감각'이라고 하는 주제에 걸 맞는 효과적인 디스플레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장소나 준비기간, 예산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욕을 부린 프로그램들을 소화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포토 루덴스], [포토 인터페이스], [영 포트폴리오], [하이브리디즘] 같은 자칫 혀를 깨물 것 같은 전시 제목들이었지만 전시내용이 흥미롭게 꾸며진 것은 성완경, 박영택, 이원일 같은 넓은 미술판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전시기획과 작가선정에 참여한 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축제를 통해서 ‘사진에 대한 비평과 담론을 활성화시키고 사진에 대한 정책적,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의도나, 전시된 작품을 판매해서 젊은 작가들에 대한 지원금으로 활용하겠다던 주최 측의 계획이 결실을 보는 것은 한참 뒤에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국제적인 규모의 미술축제 행사는 준비에만도 2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치러지는 행사는 대게 개최 수개월 전이라는 짧은 기간에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분야에서는 국제적인 경험과 비전을 갖춘 전문인력이 거의 없다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다. 지금까지 이런 행사들을 치르면서 지적되어온 과도한 의욕과 미숙한 기획력, 과대 포장된 흥행 위주의 프로그램, 비효율적인 운영 시스템과 예산부족은 금년에 개최된 사진축제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치러지는 국제적인 행사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최신의 정보와 경향들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는데 있다. 그러나 극히 한정된 숫자의 해외 사진가들만이 참가한 사진축제에서 그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금년 처음으로 대구에서 열린 「2006대구사진비엔날레」(10. 17-29)의 주전시인 [다큐멘터리 사진 속의 아시아] 전에는 박하선, 이갑철, 조성수, 박진영, 권태균 등의 한국 사진가와 류우 구앙, 브라이언 스콜, 줄리아 크놉, 마이클 울프, 루하니 카우르, 알레산드로 벨지오조소 등 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 아시아인의 생활과 문화, 산업, 노동을 기록한 10개국 32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500여점의 사진이 걸렸고, 초대작가 코너에는 매그넘 스티브 맥커리의 100여점의 대표작들이 전시되는 등 일단은 국제전의 면모를 갖추었다. [사진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사진]이라는 두 개의 틀로 나뉜 특별전에는 강용석, 구본창, 김옥선, 김중만, 도형근, 박형근, 오형근, 이상일, 이재갑, 정주하, 천경우와 고명근, 김장섭, 박선민, 박찬경, 윤영화, 이강우, 정연두, 정혜진, 주상현, 최승훈, 홍성도 등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짧은 준비기간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무리한 작가군의 분류 방식이나, 대부분 과거에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모아놓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모처럼 현대미술과 사진의 관계를 조망한다고 하는 기획의도에 흠이나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평소 유통인구가 많고 화랑가가 밀집한 서울의 중심지에서 14일 동안 치러진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의유료 관람객 수가 5,000명 안팎인 것으로 집계되었던 것에 비해, 11일 동안 개최된 이 행사에는 6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줄잡아도 서울의 10배가 훨씬 넘는 관람객을 모은 셈이 된다. 또 금년 여섯 번째로 열린 「가나사진영상페스티벌」(6. 16-7. 9)의 주전시에는 배병우와 엘거 엣서 두 사람의 풍경사진이 걸렸다. 동시에 배준성, 모리무라 야스마사, 발레리 벨린, 안나 가스켈, 어윈 올라프, 유르겐 클라우케, 멜라니 풀렌 등 국내외 작가들의 사진 및 영상작품 60여점이 함께 전시되었다. 다른 사진축제와는 달리 이 페스티벌은 작품의 경제적인 가치에 주안점을 두는 아트페어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2001년 ‘사진의 마을’이 선포되고, 지난 해 국내 최초로 사진박물관을 건립한 강원도 영월에서는 제5회 「동강사진축제」(7. 22-31)가 열렸다. 주 전시에는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성남훈의 [유민(流民)]과 대만의 쉔 챠오량(沈昭良)의 [타이완 캬바레] 등의 수상작들이, 기획전에는 강홍구, 권정준, 문형민, 배준성, 양재광, 이중근 등 현대미술의 표현매체로 사진을 이용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이 밖에 외국의 사진축제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어 있는 오디오비주얼 쇼에서는, 박물관 외벽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에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문화적인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 국제적인 블록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 28개국의 사진축제 연합체인 [Photo Festival Union]이나 미국, 캐나다, 중남미 지역을 주축으로 한 [Festival of Light], 최근의 [Paris Foto]에서도 같은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서울이나 대구 같은 대도시와는 달리, 인구 4만 남짓한 지방에서 시작된 [동강사진축제]는 처음부터 사진예술과 감상대중, 지방과 중앙의 문화적 격차와 간극을 줄이고, 많은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사진의 결속을 다지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축제를 치러오는 동안 해외 12개 대학의 120여 명의 학생과 교수들이 참가한 지난해의 [국제대학생사진캠프]가, 이 사진축제에서 외국 사진가들이 참가한 유일한 행사였다. 운영 주체의 비전문적이고 경직된 시스템과 현행 프로그램에 대한 과감한 수정 없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지자체의 예산 낭비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2006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역사에 대한 관심
어떤 경우에도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이다. 금년에는 사진 아카이브와 관련된 전시나 출판이 부쩍 늘었다. [헤르만 잔더의 여행](6.14-8.29, 국립민속박물관),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5.31-8.19, 서울대박물관), [우리사진의 역사를 열다](9.23-12.22, 한미사진미술관), [문화적 기억](11.10-2007.1.28, 일민미술관), [새마을-근대생활 이미지](3.3-4.16, 일민미술관), [아, 태극기-태극기로 읽는 한국현대사](10.17-25, 신한갤러리) 등은 ‘기억의 창고’로서의 사진의 기록적 가치를 보여준 전시였다. 국정홍보처에서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부터 1972년까지 정부의 주요 행사들을 기록한 사진자료 28만여점을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 ‘국가기록사진관’에 올려놓았다. 금년에는 특히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들이 단연 돋보인다. 2006년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한국사진에 리얼리즘의 바람을 일으킨 ‘신선회’의 중심적인 사진가 이형록으로, 90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열린 개인전이었다. 이른바 한국의 사진계라는 것이 지금까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이밖에 작고 사진가인 현일영(4. 26~5. 31)과 서순삼, 임석재(6. 7~7. 12) 전에 이어, 7, 80년대의 한국의 사진현실을 반영하는 [세 사람의 교수 - 홍순태, 한정식, 육명심](8. 7~12. 13) 전이라고 하는 상징적인 타이틀의 전시회가 열렸다. [남상준의 전후](5. 1-7. 8, 갤러리카페 포스)는 생애에 한 차례의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한 채 평생 무명으로 살다 간 남상준의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까지의 전 작업을 다섯 차례에 걸쳐서 두 달 넘게 조명한 전시였다. 이밖에 [이해선 1950-60년대 이야기](12.28-3.4, 동강사진박물관), 정범태의 [사진인생 50년](4.1-27, 김영섭화랑), [인간/ 최민식 사진 50년전](12.7-17, 금호미술관), [주명덕 회고전](6.17-10.31, 경주 아트선재미술관) 등 원로사진가들의 전시가 이어졌다.
1980년 이래 사찰과 자연 속에 깃든 불교적인 세계를 찍어온 관조가 11월20일 64세로 입적했다. 한국과 아시아의 샤머니즘을 기록해온 김수남은 25년간의 사진작업을 정리한 [한국의 굿-만신들 1978-1997](12.3-2.12, 갤러리 와) 전이 한창 개최되고 있던 12월 4일, 타이 치앙마이의 신년축제를 취재하던 중 현지에서 타계했다. 57세였다.
김수남의 '한국의 굿-만신들'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한 2007년도 문예연감에 실린 글입니다.
글 / 김승곤(순천대 교수, 아이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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