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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곤 / 조작된 이미지들
지난 2월 22일, 중국 최대의 통신사인 신화사가 사진에 관한 사죄문을 발표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http://online.wsj.com/article/SB120363429707884255.html?mod=yhoofront)이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은색의 최신형 고속전철이 질주하고 있는 거대한 교각 아래로 일사불란하게 열을 지어 달려가는 영양들을 찍은 그 문제의 사진은 지난 2006년, 중국의 공영 TV인 CCTV에서 선정한 ‘올해의 10대 사진(Top 10 Photo of the Year)’에서 동상을 탄 사진으로, 다칭(大慶)에서 발간되는 석간지에서 근무하는 41세의 리우 웨이칭이 찍은 시리즈 가운데 한 장이다.
처음 발표된 것은 다칭신문, 그 이후로 치베트의 고원지대에서만 서식하는 영양들을 취재한 이 감동적인 사진은 신화사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수백 개의 신문에 소개되었다. 당국의 보호정책과 감시활동이 강화되면서 최근 그 숫자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영양의 털로 된 쇼울을 만들어 파는 밀렵꾼들에 의해서 남획되어 거의 전멸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들 가운데 한 마리인 ‘잉잉’이라는 이름의 영양은 금년 베이징 올림픽의 매스코트의 하나로 결정되기도 했다.
2006년 7월 1일, 후진타오 주석은 40억불을 들여서 칭하이(靑海)에서 ‘지구의 지붕’ 티베트의 시장(西藏)까지의 1930km를 잇는 고속열차를 개통된 것을 발표했다. 서울서 부산까지의 네 배나 되는 거리다. 돈이나 거리도 그렇지만, 가슴 윗 주머니에 꽂은 볼팬이 폭발할 수 있을 정도로 기압이 높은 표고 4877m의 티베트 고원에 철도를 건설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중국은 왜 이처럼 어려운 공사를 강행했을까? 철도가 개통된 7월 1일은 바로 중국공산당의 창립 85회째를 맞는 최대의 기념일이다. 그 밖에 다른 이유도 있다.
티베트는 1949년 이래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지배되어오고 있다. 그 동안 이에 항거하는 120만 명 이상의 티베트인들이 사망했으며 지금도 수 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투옥되어 있고, 6000개 이상의 사원들이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티베트를 탈출해서 인도의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웠고,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13만 명에 이르는 티베트 난민들이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불씨를 안고 있는 타이완과 비슷한 경우다. 중국 정부는 독립을 원하는 이런 티베트인들의 움직임을 싹수부터 꺾어놓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중국은 티베트의 상징인 포탈라궁의 도안을 50위안 짜리 인민화폐 뒷면에 그려 넣은 화폐를 발행해서 통용시키고 있다. 티베트가 중국의 소수민족의 하나임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정치나 군사, 경제적인 문제는 다루지 여기서 다루지 않겠지만, 철도도 이런 중국화 맥락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철도를 건설하는 동안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환경 보호론자들의 거센 반대가 일어났다. 표면적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한 중국 고유의 영양(antelope)의 생존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철도가 개통된 후, 수많은 관광객과 불교신자들이 티베트불교의 발상지인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반대 여론을 잠재운 것은 류의 이 사진 한 장이었다. 첨단의 과학문명과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진 그 아름다운 사진은 중국인의 가심에 자부심을 심었고, 환경문제에 관한 반대여론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평화로운 풍경 속을 번쩍이는 은색 열차와 야생의 영양들이 달려가고 있는, 이 사진에는 칭하이(靑海)-티베트 철도가 “야생동물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초원의 통로를 열어두었다.”는 캡션이 붙어있다. 중국 정부는 ‘안전한’ 환경개발의 웅변으로 보여주는 이 사진을 베이징 지하철 5호선 역 구내에 대형사진으로 만들어 디스플레이했다. 완벽한 프로퍼갠더 사진이었다.
2006년의 시상식에서 대형 스크린에 영사된 자신의 사진 앞에 선 류가 말했다. “나는 혼자서 자동차 한 대로 티베트의 야생영양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나는 기차, 영양, 사람,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는 해발 4000m의 고원에서 땅을 파서 위장 텐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물과 칼로리 밸런스만으로 8일 동안 지탱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해피 앤딩으로 쉽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익명의 한 네티즌이 인테넷에 그 사진이 합성된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했고, 수많은 댓글이 올라오는 등 온라인에서 태풍을 일으켰다. 소음에 민감한 영양들이 굉음을 내며 고속으로 달리는 전철 밑은 이처럼 평화롭게 달려갈 수 없고, 부자연스런 화질, 영양의 임신 시기 등 본격적인 분석을 거친 끝에 결국 포토샵으로 두 장의 사진을 합성해서 만든 가짜라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다. 한 네티즌이 발견해서 분석한 것이 거대한 매스컴과 국가를 무릎 꿇게 만든 것이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죄를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성화에 CCTV는 결국 그의 수상을 취소했다. 신화사와 신문사 그밖에 이 사진을 유포시킨 기관들에서 잇달아 사죄했고, 데이터 베이스에서 이 사진을 삭제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데 있다. 그것은 아마추어가 보아도 합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사진을 ‘올해의 10대 사진’으로 선정했고, 신문과 지하철 등 대중에게 조직적이고 대대적으로 유포시킨 중국 당국의 저의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조작된 사진은 정치와 사회, 윤리와 도덕의 문제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인 복잡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독자들의 얘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한다. 중국에서의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진을 조작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진 몇 장을 보자.
위 사진은 1919년, 러시아 10월 혁명2주년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하는 지도자들을 찍은 사진. 1967년에 발표된 같은 사진에서는 특유의 모자를 쓴 중앙의 레닌을 제외한 몇 사람의 실각한 지도자들의 모습이 지워졌다. 레닌 바로 오른쪽에서 안경을 끼고 있는 트로츠키는 남미로 추방되기 전까지는 러시아군사평의회 의장직을 가진 막강한 권력자였다.
수많은 정적들을 피로 숙청한 스탈린은 눈에 거슬리는 것은 모엇이건 간단히 지워버린다. 위의 오른쪽 사진에서 스탈린 왼쪽에서 걸어가는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예조코프는 스탈린의 총애를 잃자마자 사진에서 모습이 지워졌다.
위 사진은 우리 눈에 익은 링컨의 모습으로 1927년, 이스트만 코닥이 만들어낸 아이콘적인 사진이다. 위풍당당한 링컨의 이 사진은 실은 남미의 정치가인 존 칼룬(오른쪽)의 몸 위에 얼굴만 링컨의 얼굴만 올려서 합성된 것이다.
데모 중 진압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동료 학생 제프리 밀러의 시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여학생이 울부짖고 있다. 19771년, 퓨리처상을 받은 존 필로(당시 켄트 주립대학생 학생)의 사진에서 어디가 달라졌는지 한눈에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눈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신문에 발표될 때는 여학생(메어리 앤 베치오)의 머리 위에 꽂히듯 솟아 있는 기둥이 깨끗이 제거되어 있었다.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 60섹션 일각의 묘비 앞에 엎드려서 이라크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희생된 약혼자 레간 하사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매어리 맥휴. 이 묘지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수백 명의 미군 병사들의 영혼이 잠들고 있다. 전몰자 기념일에는 추모와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유족들이 국립묘지로 모여든다.
게티 이미지의 존 무어가 촬영한 이 사진은 작년 3월 ‘2007년 2월, 이라크의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레건 하사“ 라는 캡션과 함께 작년 7월 뉴욕 타임즈에 게재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무어는 ‘포악 무도한’ 자살폭탄 테러로 약혼자를 잃은 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앵글을 바꿔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화면에서 정리했다.
뉴욕 타임즈의 편집자는 여성이 느끼고 있을 감정을 더욱 인상 깊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위 사진의 화면을 더욱 단순하게 크로핑했다. 슬픔에 젖어있는 이 여성에 대한 보는 사람들의 연민과 공감이 커질수록 태러 분자들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커진다.
매스컴에 게재되는 수많은 사진들이 어떻게 촬영되고 편집되어서 우리 눈앞에 제시되는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촬영각도나 타이밍, 프레이밍 등 촬영에서의 보도사진가들의 선택 행위는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아서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변형이 포토샵으로 이루어졌을 때는 문제가 다르다. 우리는 신문이니 잡지에 실린 어떤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은 진실을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에게 있어서의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대부분 그 진실은 그 사진을 찍은 사진가 자신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 장의 사진은 그곳에 찍혀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2월 23일, 일본 오키나와의 이오지마에서 치열한 전투와 막대한 희생을 치루고 스리바치 산정을 점령한 여섯 명의 미해병대원들이 성조기를 세우는 이 사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이 사진을 바탕으로 무게 100톤에 한 사람 당 평균 신장이 10m가 넘는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다.
스리바치를 점령한 직후인 2월 23일 오전 10시 20분, 미 해병대 사진병인 루이스 로우워리 하사가 촬영한 첫 번째 실제 장면은 위 사진이었다. 첫 번째 사진이다. 그러나 이 사진에는 혈전 끝에 고지를 점령한 해병들의 감동도 ‘영웅적인’ 모습도 전해지지 않는다. 지휘관은 약 두 시간 늦게 고지에 도착한 조 로젠탈에게 현장을 만들어 다시 찍도록 명령했다. 근처에 있던 6명의 해병들(Ira Hayes, Franklin Sousley, John Bradley, Harlon Block, Michael Strank, Rene Gagnon)이 배우로 등장했다. 그렇게 해서 ‘이오지마의 영웅들’이 만들어졌고, 이 사진은 그 해의 유일한 푸리처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알링턴 국립묘지에 세워진 동상의 기념비에는 이들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다.
상륙정에서 내려서 참모들과 함께 필리핀의 얕은 바닷물을 가르며 필리핀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의 ‘위풍 당당한’ 모습(왼쪽)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사진은 1945년 2월 19에 다시 연출해서 촬영된 것이다. 아래 사진은 1944년 10월, 처음 상륙 당시에 실제로 찍은 사진들이다.
글 / 김승곤(순천대 교수, 아이포스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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