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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의 사진이야기 - 이국으로의 시선
여행사진가의 출현
19C에는 산업혁명에 이어 자연과학의 발달에 의한 인간의 가능성이 크게 열리게 되었다. 사람들의 탐구 에너지는 신천지에로 향하게 되고, 이 시기는 이른바 제2의 대항해시대였다. 암흑대륙 아프리카를 처음 횡단하고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리빙스톤을 필두로, 스탠리, 에딘, 난센, 스코트 등의 탐험대가 속속 극지와 극점을 정복해나간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의 여행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메카니즘의 발달이었다. 즉 와트와 불턴이 발명한 증기선이 19C초부터 바다를 항해하게 하였고, 증기기관차도 1830년대부터 실용화되어 사람들의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모스와 마르코니의 노력에 의한 새로운 통신수단의 개발과 무기의 개발 및 의학의 진보 등 모든 사항이 인간의 행동 그 자체를 크게 확장시켜나가게 하였다.
이미 바스코다가마, 콜럼브스, 마젤란이 나침반의 힘에 의해 바다를 인류의 것으로 만들었듯이, 19C의 사람들은 이른바 이 문명의 테크놀로지에 의해 원대한 세계 속의 여행을 꿈꾸게 된 것이다.
사진표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19C 초두의 세계는 아직 인간이 발을 디디지 않은 땅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사진이 발명되어 넓게 퍼져감에 따라 미개척의 대지를 처음으로 촬영하여 기록하고 전달하려는 사진가들의 눈의 행적에 의해 개척되어 갔다. 이러한 사진가들의 모험심 넘치는 욕망은 이곳이 아닌 머나먼 이국을 보고 싶어하는 당시 사람들의 욕구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교통기관의 발달과 사진의 광범위함은 보통 사람들이 접하지 못한 자연의 광경, 동식물이나 건축물을 보게 해주고 또 이방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중국과 일본을 촬영하고 전쟁사진의 장르를 개척한 영국의 페릭스 베아토, 알프스의 산중을 헤치고 들어간 빅슨형제, 아마존의 오지에 들어간 마르크 페레의 사진 이미지는 경이로움과 수많은 아름다움을 재생시켜 사람들에게 미지에의 몽상을 품게 했다.
초기의 여행사진가들은 그야말로 탐험가이며 모험가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미적감각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사진기, 유리감광판, 렌즈와 삼각대, 암실을 만드는 텐트와 약품과 기구 등 당시에는 100Kg에 육박하는 대형 기자재를 현장으로 가지고 가 초점과 화면구성은 물론 노출 그리고 현상처리까지 모두 자신이 해결해야만 하였다.
듀칸과 오리엔트
여행의 기록을 전하고 미지의 땅의 풍광을 도시로 가져와 여행의 대리체험을 맛보게 하는 사진술이 활용되는 데에는, 편리한 감광재료와 복수의 인화가 얻어지고 취급하기 쉬운 종이네가의 카로타이프가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바야르의 종이네가법 이후 프랑스에서 이 기법을 실험한 인물 중에서도 주목받는 이는 규스타브 르 그레이이다. 그레이는 탈보트와 바야르의 기법을 개량하여, 종이에 기름을 스며들게 하는 반투명 로우종이네가법을 고안, 여행에 휴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진방식을 개발하였다. 이 그레이에게 사진술을 배운 이가 문학자이며 저널리스트인 맥심 듀칸이다. 듀칸은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여 문학 친구인 규스타브 프로베르와 함께 1849년 중동으로 모험 여행에 나선다. 2년 후 듀칸은 220장의 아름다운 카로타이프를 가지고 무사히 파리에 도착하였는데, 그 사진을 이집트, 리비아, 팔레스티나, 시리아의 4종류의 사진을 앨범으로 나누어, 매주 5매씩 25주간 분할하여 발표하고 1852년 책으로 모아 사진집 「사진 스케치」를 출판하였다. 그는 문학적 회상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장비 일체를 어떻게 낙타의 등에 실어 사람이 운반하느냐가 큰 문제였다. 또한 구조물이나 풍경에 대해 적어 놓은 메모의 종류도 방대하여, 반복해 읽어보면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 시대의 사진 기록은 고뇌에 찬 힘든 작업이며, 이후에 재구성을 위한 정확한 이미지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밀한 기구가 필요함을 통감하고 있다고 회상하였다. 이는 그 시대에 있어서 사진의 기록에 대한 문제와 표면적인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가 찍어 놓은 사진의 군상들은 자그마한 부분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피사체로서의 오리엔트’라는 강렬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신선하고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국의 공간 속에서
5년 후 영국의 프란시스 프리스도 이집트를 여행하였다. 프리스는 사진가라기보다 사업가라고 하는 쪽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그는 식료품가게의 점원에서 인쇄회사를 경영하게 되었는데, 취미로 하던 사진에 매료되어 스테레오 사진과 사진앨범의 형태로 팔릴 수 있는 사진을 찍는 목적으로 이집트행을 결행하였다.
프리스는 암실이 되는 마차를 타고 나일강 연안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온과 감광판에 묻어나는 모래먼지에 고생하면서, 듀칸과는 또 다른 앵글로 고대 이집트의 장대한 모뉴멘트를 촬영하였다. 그가 찍어온 사진은 입체 스테레오 사진세트로 간행되어, 빅토리아 시대의 대중을 흥분시켰으며, 기대대로의 수익을 올려 기업가로서도 유명해졌다. 물론 그가 성공한 것은 사진에 담겨있는 다이나믹한 구성력과 서정적인 시정에 의한 이미지를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듀칸과 프리스의 사진은 당시의 이집트학과 동방 연구의 뿌리부터 뒤흔들었고, 서구사회의 ‘동방에의 꿈’을 더욱 부추기게 하였다. 그들은 여행자 이상으로 주목받게 되는데, 듀칸의 동방사진집을 본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는 여행이라는 시를 헌정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언어로 그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초기의 여행사진가들이 본 것은 지금도 사진으로 많이 남겨져 있으나, 그가 실제 파인더의 저편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그 광경에서 무엇을 느꼈느냐 하는 것은 보들레르와 같이 우리들도 그 사진 자체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들은 저 이국의 공간에서 무엇을 본 것인가?
아이덴티티와 여행
한편 신천지 미대륙에서도 이방이나 주변을 답사하는 사진가들의 활동이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예를 들어 1859년 위드는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를 스테레오 카메라로 찍었으며, 1861년 칼튼 와트킨스도 요세미티를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또 남북전쟁 후 사람들의 관심이 미답의 서부에로 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티몬 오셜리반은 서부지리학 원정대와 동행하여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파나마 지역의 운하용지를 조사하는 미 탐험대에 동행하는 등 탐사여행을 반복하여 투병과 급류, 눈사태로 고생하면서도 서부와 중남미의 웅대한 풍경을 계속 촬영하였다. 서부탐험과 조사라고 하는 명목이야 어쨌든 열대림의 사진이나 야생조류를 쫒는 사냥군을 드라마틱하게 찍은 그의 사진들을 보면 오셜리반이 예리한 통찰력에 의한 자연과 미지의 세계를 추구해온 사진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사람, 개척사진의 거장 윌리암 헨리 잭슨이다. 그가 미국인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은, 1872년 옐로스톤 지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할 때 그의 사진집 「영광의 서부」가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부의 자연에 철도를 놓아 산업을 일으켜 도시를 건설하게 하는 등 신문명을 구축한 프론티어의 기록도 잭슨을 유명하게 하였다. 그러한 의미로 그는 문명과 자연의 기묘한 중간지대를 유지해나가면서 촬영을 한 특별한 시대의 사진가였다.
위험과 모험을 찾아 잭슨이 서부로 여행을 한 것은 오셜리반과 같이 남북전쟁 이후로써 변방으로의 적극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 그는 인디안의 사진을 찍어 그 실생활을 처음으로 소개한 사진가이기도 하며, 유니온퍼시픽 철도의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많은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당시 아메리칸 정신의 대리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잭슨의 활동 영역은 서부로 확장되어 갔고 결국 지도제작과 천연자원 조사를 목적으로 하는 지리학 조사대의 일원이 되어 초대형 사진기를 휴대하여, 미처 인간이 밟아보지 못한 경이적인 자연을 선명한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19C의 여행사진가들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미지의 땅으로 향한 학자, 작가, 모험가였으며 오늘날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의식을 가지고 이방과 변방에 눈뜬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직접 체험한 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록 수단을 이용하여 하나의 정보가치로 축적하여 귀향하였다.
듀칸과 오셜리반 그리고 잭슨의 궤적을 더듬어보면 그들의 여행에 중대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장소와 아이덴티티를 묻는 행위로써 여행의 역할이었다.
미답의 대지에로 들어가 미지의 것과 만난다는 것 그 자체는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장소는 어떤 곳인가, 그리고 자신들은 대체 어떠한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에 도달하게 된다. 보들레르가 듀칸에게 남긴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라는 말에는, 아마도 그러한 자신의 존재성과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장소와 관련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파인더의 저편에 펼쳐져 있는 이국과 파인더 쪽에 있는 사진가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지금도 생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글 / 강현덕(한국사진 학술교육분과위원)
- 이 글은 '한국사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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