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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의 사진이야기 - 초상의 세계
다게레오타이프의 공표 이후 사진을 처음 본 사람들은 사진의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떤 화가의 그림도 이보다 더 정교할 수 없으며, 광택이 나는 금속판에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사람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한 사진을 누구나가 다 찍고 싶어 하고 액자에 넣어 장식해두고자 하는 바람은 실로 대단했던 것이다.
사진 속에서의 인간의 모습 즉 초상사진과 초상사진을 찍는 행위는 사진술 발명 이후 기록으로서 혹은 작품으로서도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는 사진에 있어서의 영구불멸한 주제는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초상화에서 초상사진으로
프랑스에 있어서 신흥 중산계급의 발생은 18C 중엽으로, 그들은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18C 말에서 19C 초두에 걸쳐 부르조아층의 자본축적에 따라 증기기관, 철, 목선, 석탄 등에 의한 산업혁명이 일어나, 19C 전반에는 계속 철도가 놓이고 증기선이 대양을 항해하고, 섬유를 필두로 하는 대량생산품의 공급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1830년대부터 40년대에 걸쳐 도로와 수로의 개선과 정비가 이루어져, 농업국에서 공업국가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도시인구가 급속히 증가해 사회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사진의 발명은 실로 이러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사진술은 기계문명의 화려한 개막의 역할에도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느 의미에서 사진의 사실정신은 이 부르조아층을 제일 순위로 도약하게 하였으며, 그들이 만족할 수 없는 소유의식, 합리성, 객관성에의 강한 요구가 사진과 함께 시대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830년대에 부르조아 계급의 요망에 따라 초상화를 그리는 살롱이 급증하였으나, 사진 발명 후 초상사진이 보급되면서 순식간에 그 기능은 사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초상화에서 초상사진으로의 이행은 사회의 중추가 손에서 기계로 변하여 간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중심이 왕후귀족에서 신흥 중산계급으로 이동하여 갔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1824년의 살롱 평을 쓴 스탕달은 당시 파리의 아파트에 사는 부르조아 계급이 회화의 주된 구매자가 되었기 때문에, 천장도 높고 방도 넓은 관이나 성에 사는 귀족들의 시대에 비해 구매하는 회화의 사이즈가 작아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1860년대에 와서 ‘100만 인을 위한 초상화’ 즉 손바닥에 놓고 볼 수 있는 명함사진의 붐으로 귀착을 보게 된다.
1852년부터 1870년대까지의 나폴레옹 3세에 의한 제2제정은 프랑스의 진정한 지배자로서 부르조아의 승리를 선언하는 시대였다. 이 시기에 ‘돌과 마차와 가스등’의 파리는 ‘철과 파노라마와 박람회’의 파리에로 변화하였다.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은 조르쥬 오스만의 대규모 도시개조 계획에 따라 돌로 만든 고풍스러운 건물과 허물어져가는 성벽, 다리, 성당 등 근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파리는 점차 개조되어 신건축, 하수도, 정비된 교통망에 의한 새로운 파리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상황의 과정 속에서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는 옛것과 새것과의 상호침투를 나타내는 복잡한 이미지를 빌어서 ‘파리는 변한다’고 하는 우수를 노래하였고, 이집트에서 귀향한 맥심 듀칸은 그의 저서 「파리」에 대도시의 비인간적인 성격이 시민들을 죄어 매고 있으며, 그들은 어느새 파리를 고향이라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한탄스럽게 시대의 상황을 나타내었다.
이 제2제정 시대에 사진관은 파리의 새로운 풍속이 되었고, 부르조아지의 초상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게 된다. 사진술 공표 후 20여 년 후인 1861년에는 파리에서만 수천 명의 직업사진가가 있었고, 수정과 착색으로 초상사진에 위엄과 신용을 부여하여 판매하는 사진을 양산했다는 기록도 있다. 높은 교양과 세련된 감각을 지니지 못한 신흥시민 세력들은, 보고 곧바로 알 수 있고 받아들이기 쉽고 통속성을 지닌 사진의 마력에 매료되어, 그 영상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기 확인과 자기 표출을 지향하기도 하였다.
나다르의 어프로치
인상파의 제1회 전시를 그의 아틀리에에서 개최하여 유명하게 된 페릭스 나다르는 많은 직업사진가들 중에서 특히 의욕적으로 활동한 인물로서, 제2제정기의 부르조아지의 특별한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지금도 “아틀리에 나다르”의 사인이 들어가 있는 사진은 4만여 점이 넘게 남아있고, 사진의 인물들은 대부분 저명한 사진가를 선망하여 모여든 파리의 부르조아이며 인텔리들이었다.
“사진의 이론은 1시간으로도 배울 수 있다. 즉 한눈으로도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능적인 면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쉽게 터득할 수 없는 것이 빛에 대한 감각이다. 서로 다른 혹은 복합적인 광원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예술적으로 파악하기는 힘들다. 이것은 인물이 묘사해내는 미묘한 음영을 이해하는 것이며, 예술적 직관력을 필요로 한다. 주제를 본능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그들의 인격에 편승하여 인물의 태도와 사고를 잡아내어 사진을 찍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다르는 스스로 초상사진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하고, 피사체에 따라 촬영기법과 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배경과 소도구를 최소한으로 줄여 그 모델의 인간적인 관습과 사상에 접근하려고 하였다.
나다르는 1870년에 사진집「현대인의 화랑」을 출판하였는데 드라크로아, 와그너, 샤를르 보들레르, 죠르쥬 상드, 빅토르 유고 등 유명인의 초상사진을 집대성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당시 인기를 모으고 있던 전형적인 비즈니스로써의 초상사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 무렵의 사진은 무대배경이나 실내장식과 의상 등으로 인물의 지위나 신분을 결정하고, 연출에 의한 포즈와 표정으로 인물을 인위적인 타입으로 찍어내는 초상사진으로, 대리석의 모조품과 장식난로나 호화스러운 꽃병이 놓여있는 실내를 배경으로 고위직이나 변호사 모습의 복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은 1870년대의 대유행이었다. 이러한 연출은 초상사진의 인기에 큰 역할을 하였고 사진의 인기가 단지 잘 팔린다고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무대장치나 서적의 앞에 놓여진 인간의 표정과 포즈를 규정하고 역할을 의미하는 연출로 초상사진의 정형의 기반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나다르는 이러한 조류에 개의치 않고 개인의 표출을 제1의 기준으로 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사진은 개인의 특수한 내면성보다, 개인의 심중에 담겨있는 시대의 보편적 구조에 중점을 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의미로서 보들레르를 찍은 것으로 유명한 칼져 등의 초상사진과 마찬가지로 제2제정기 특유의 인간정신을 파악한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개인의 내면세계
그러나 같은 시대에 개인의 특수한 내면성을 추구해온 사진가들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빅토리아 왕조시대에 영국에서 활동한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 로버트 아담슨, 쥬리아 마가렛 카메론 등이다. 사진을 시작하기 전 힐은 풍경화와 책갈피의 그림을 그렸으며, 아담슨은 형에게 사진을 배우면서 사진가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힐과 아담슨은 짧은 기간 동안 카로타이프의 기법으로 협동작업에 의해 1,500매 이상의 초상사진을 남겼다. 힐이 완벽한 구도와 빛의 효과를 정하면, 아담슨은 훌륭한 기술로 촬영을 담당하였다. 그들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은 그 명암의 강렬한 콘트라스트 때문에 자주 렘브란트의 이름을 떠올리곤 하였다. 목사, 의사, 기사, 학자, 예술가 등의 모델들은 저명한 사람들로서 사회의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이었다. 그러한 모범적 시민들의 독특한 포트레이트를 힐과 아담슨은 우수한 통찰력으로 빛의 창조물과 같이 촬영을 하였던 것이다.
또 쥬리아 마가렛 카메론은 딸에게서 선물받은 사진기로 그녀가 48세가 되는 1863년 계관시인인 알프레드 테니슨을 통해 챨스 다윈을 처음으로 촬영하였고, 저명한 인물을 모델로 소개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당시의 사진계로부터 비웃음을 받아왔으나 독자적인 테크닉을 구사하며 촬영을 계속해나갔다. 즉 이미 이 시대에는 5~10초라는 짧은 시간에 촬영을 할 수 있었음에도 그녀는 7~8분이라는 장시간 동안 노광을 주어 조명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얼굴만의 클로즈업이라는 참신한 기법을 이용하였다. 카메론은 그 인물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의 가치를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기 위해 당시 다른 사진관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배경장치와 의상 그리고 포즈 등은 배제하고 클로즈업과 장시간의 노출 기법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초상과 시대정신
카메론은 순간성과 임장감을 거부하고 대중적인 감정이나 세속적인 관습에서도 확실하게 벗어났다. 그녀의 사진은 리얼하지도 않고 관념적이며, 사진의 자연주의에서 벗어나 이상주의의 수준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철저한 물질주의가 태두하는 시대 속에서 무엇인가 무미건조한 생활에 부드러움과 윤택함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현실세계를 지향하며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이상의 왕국을 사진 속에 표현하고 나타내려 하였다. 그러한 그녀의 주제가 되었던 사람들도 세속적인 현실성과 물질적인 생활의 제조건에서 탈피하여 그녀가 만들어 놓은 정신세계와 이상세계에 몰입하였던 것이다. 카메론은 어떤 강렬한 개인적인 비젼을 근거로 해서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영원의 세계로 혹은 고상하면서도 서정적인 기풍으로 인물을 표현해내었다.
장식을 수단으로 피사체를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함께 인간 내면을 묘사해내는 초상화와, 인물의 사회적 양상을 묘사 목적으로 하는 ‘~스러움’을 강조하는 초상사진은 확연히 구별된다. 그러나, 제2제정기와 빅토리아 왕조의 초상사진에 있어서는 이 개인과 사회적 가면이라는 초상개념이 서로 대립하면서 공존하고, 기묘한 융합과 분산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나다르의 사진은 그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상황을 나타낸 것이며, 카메론은 초상사진이라고 하는 형식을 통하여 시대의 특유한 이상과 욕망의 존재를 나타내려는 접근과 시도를 하였던 것이리라. 어쨌든 사진이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 지금까지는 없었던 다채로운 실험과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여 온 배경에는, 이 시대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커다란 흐름의 전환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글 / 강현덕(한국사진 학술교육분과위원)
- 이 글은 '한국사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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