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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의 사진이야기 - 시간의 모험
사진과 역사의 기록
맥심 듀 칸과 프란시스 프리스가 이집트를 방문하여 촬영하고 있을 무렵, 그들과 동시대 사람들인 규스타브 르 그레이와 에드워드 듀니 바르듀, 앙리 르 섹크 등은 위기에 놓인 프랑스 건축 유산을 기록하는 계획에 참가하였다. 그들은 1851년 6월 ‘역사기념물위원회’ 의 공식 사진가로 임명되어, 노후화된 건물의 정면과 각기 다른 위치의 세부를 촬영할 것을 의뢰받았다. 그 이후에도 같은 작업의 주문이 계속 이어졌으며, 1850년대는 건축사진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는 10년간이었다.
아라고에 의해 국가적 발명으로 명명된 사진술은 처음부터 정치적, 사회적인 사명을 담당하는 운명에 처해졌는데, 역사기념물위원회에 의한 사진가 집단의 조직도 그 결과의 하나였다. 7월 왕정시대에 수상이 된 역사가 프랑스와 기조는, 나폴레옹 전쟁과 계속되는 혁명으로 피폐해진 프랑스의 국민의식을 역사라고 하는 민족고유의 재인식을 통해 회복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1830년 작가인 메리메, 유고 등과 함께 문학, 미술, 고고학 등 광범위한 시야로 국가의 역사를 촬영하는 정책을 개시하였고, 1837년 역사기념물위원회라는 공적인 기관을 만들었다. 이것은 이른바 ‘문화재보존위원회’이며, 프랑스에 남아 있는 고대유적과 재건불능의 거대건축 그리고 붕괴할 듯한 시가경관 등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것으로, 최종 목표는 ‘민족역사박물관’의 건설을 지향한 것이었다.
한편 역사기념물위원회가 임명한 많은 사진가들은 화가 출신들이었다. 사진술의 발명이 공표되었을 때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이가 폴 드라로슈라는 신고전주의 화가였으며, 그의 제자인 앙리 르 섹크, 규스타브 르 그레이가 이 위원회에 종사하였다. 또 한 명의 제자인 샤르르 네그르도 사진가로 전향하여, 1852년부터 프랑스 남부의 고건축물과 풍경을 사진에 의한 기록조사를 하였고, 화가였던 아돌프 브라운도 제2제정기 최고의 사진가로서 많은 건축사진과 정물사진을 촬영하였다.
또 판화가였던 샤를르 마르빌도 역사기념물위원회의 움직임에 자극받아 사진을 찍기 시작하여 1851년부터 54년까지의 사진을 모아 「라인강변」 등의 사진집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르빌의 최대 공적은 제2제정기의 조르쥬 오스만에 의해 시행된 파리 대개조 계획의 기록사진을 남긴 것이었다.
변용하는 경관
1850년 전후의 파리는 병든 도시였으며, 급격히 확장되어가는 환경은 열악하였다. 배수구에까지 하수가 흐르는 등 전염병이 나돌았으며, 도폭도 좁아 교통도 혼잡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852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세느지사에 임명된 오스만은 대규모의 도시개조를 하여 근대도시로서의 파리의 기반을 정비하였다. 동시에 오스만은 도시개조를 사진으로 기록할 것을 명하였다.
이 임무를 맡은 이가 바로 마르빌이었다. 그는 20년에 걸쳐 도시개조의 경과를 일목요연하게 기록하였다. 즉 공사 전, 공사 중과 공사 후의 시간대에 그 변모하는 과정을 촬영하였다. 예를 들어, 계획에 의해 소실되는 대로를 양측에서 촬영하고, 교차점을 파노라마처럼 촬영하였다. 그리고 공사가 종료되면 새로운 대로의 광장과 공중화장실 등 부대시설의 세부까지도 기록하였다. 이 화상은 40×50Cm의 거대한 사이즈의 콜로디온 습판사진으로 제작한 것으로 일찍이 없었던 선명함을 지닌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자재로 최고의 기술을 구사하여 촬영한 파리의 변용하는 이미지는, 그 완벽한 구도와 더불어 그 시대의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의식을 정밀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마르빌은 1871년 파리커뮨의 사건으로 소실된 시청사의 사진을 그가 이전에 같은 앵글로 찍어놓은 붕괴 전의 건물사진과 나열하여 소개하였는데, 그 2장의 사진을 보면 1주일간의 피투성이 싸움으로 일거에 파국을 맞게 된 역사적 사건의 핵심을 떠올리게 하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는 분명 파리커뮨의 심볼과 같은 존재인 건물의 변모를 기록함에 따라 거대한 역사 속에서의 한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제껏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간의식의 개념과 관련된 것이었다.
시간 속으로의 접근
사진은 순간을 찍어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진사의 초기에 있어서는 수분간의 노광시간이 필요하였고, 사진의 시간은 순간적인 것보다 도해적인 것이었다. 피어오른 연기, 파도의 물결, 바람에 떠내려가는 구름과 같은 자연의 현상은 기록할 수 없었으며, 사람의 빠른 몸짓과 동물의 움직임 등도 정지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영국의 프레드릭 스코트 아쳐가 콜로디온을 이용한 습판사진법을 개발하여 널리 사용한 1851년 이후부터이다. 이 방법에 따라 사물의 순간적인 표현이나 효과를 잡아낼 수 있게 되었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형태를 주제로 한 ‘움직임’이라는 연작으로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데르윈 리웨린 등 그 이후 사진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진의 힘에 매료되어갔다.
그러나, 순간적인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찍어내기 시작한 것은 1870년대부터이고, 그 선구자가 에드워드 마이브릿지와 에디엔느 쥬르 마레였다. 영국인으로 미국에 거주한 마이브릿지는 70년대 초부터 움직임에 대한 연속촬영의 실험을 계속하다 이윽고 1878년 촬영에 성공하였다. 경마장 코스의 일부에 12대의 카메라를 2피트 간격으로 설치하여, 각각의 셔터를 선으로 연결해놓아 말이 달려 선을 끊으면 동시에 셔터가 작동되어 촬영이 되었다. 이렇게 찍은 연속사진은 달리는 말의 4다리가 완전히 지면에서 떨어지는 것은 앞다리와 뒷다리가 가운데 몸통의 아래에서 모아질 때뿐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몇 세기에 걸쳐서 전후의 다리를 앞뒤로 뻗은 채 지면에서 떨어져 달리는 말의 그림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마이브릿지는 「운동하는 동물」(1899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우리들은 달리는 말의 모습이 그림으로 너무 익숙해져 그려져 있는 그림이 진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들이 선입감을 버리고 자연 그 자체를 의문시하여 사물을 관찰한다면, 그 모습들을 의심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실험의 성공은 마이브릿지를 일약 유명 인사로 만들었으며, 1879년 말에는 그의 사진이
「Nature」지에 게재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1883년부터 85년에 걸쳐 동태사진의 촬영을 대규모로 열어, 동물과 조류뿐만 아니라 성인 남녀와 어린이를 모델로 인간의 모든 종류의 상태와 운동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여 촬영하고 기록하였다. 많을 때에는 36대의 사진기를 사용하였고 시계장치의 셔터를 작동시켜 샤프한 분해영상을 찍어 내었다. 이렇게 기록해낸 동태사진은 10만 장이 넘었으며 그중 2만장을 골라 1887년 「동물의 운동」이라는 11권의 서적을 간행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에의 개입
마이브릿지의 연속사진을 본 프랑스의 생리학자 마레는 날아가는 새를 촬영하기 위해 자신이 고안한 사진총을 응용하기로 하고, 마이브릿지에게 연락을 취해 1881년 파리를 방문한 그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이듬해 자신의 사진총에 의한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를 완성시킨다. 이는 ‘시간경과 연속사진’으로 1장의 감광판에 서로 다른 움직임의 동작을 연속적으로 찍어서 기록하는 것으로, 500분의 1초의 셔터 속도로 연속동작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이브릿지와 마레 사진의 결정적인 차이는, 마이브릿지의 경우 1장의 필름에 1커트씩 연속하는 장면을 담아 시간 간격이 애매하였으나, 시간과 공간의 동시표현이 운동의 원리를 분석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 마레의 경우, 1매의 필름 속에 연속하는 여러 장의 장면을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담았다. 또 육안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운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단일 방향에서의 연속사진만으로는 불충분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동시에 사진을 찍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정면, 측면, 윗방향에서 촬영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여 갈매기가 비상하는 3종류의 연속사진을 촬영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의 사진은 3차원 공간에 있어서 날개와 몸체의 자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갈매기가 비상하는 연속적인 자세를 나타내는 일련의 입체상을 제작하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마레는 이들의 장치를 구사하여 펜싱을 하는 사람이나 노를 젓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의 몸짓뿐만 아니라, 수중에 서식하는 문어나 해파리의 움직임 게다가 꿀벌과 잠자리 등 곤충의 움직임 등도 담아내었다. 또 크로노포토그래피를 실험 생리학에도 응용하여 거북이의 심장을 이용한 심실과 심방의 운동 메커니즘을 촬영하기도 하고, 현미경을 사용한 미생물 세계에 대한 움직임의 촬영에도 성공하였다.
마이브릿지와 마레의 활동에서 한 가지 더 놓쳐서는 안될 것은, 이들의 영상이 영화라고 하는 새로운 시간예술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이브릿지는 1879년 주프락시스코프(zoopraxiscope)라는 ‘회전식 동화상장치’를 발명하여 순간순간의 사진들을 빠르게 연결하여 물체가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스크린에 영사하여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이는 사진을 이용해 영화의 효과를 만들어낸 최초의 발명이었다. 또 1888년에는 동화상과 음성을 동시에 재현하기 위해 축음기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에게 상담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19세기 후반의 극히 짧은 시간의 경과 속에 사진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사진 속에서의 시간적인 표현과 인식은 크게 흔들리고 동요되었다. 그것은 정지된 영구적인 시간에서 운동하는 순간적인 시간에의 이행과 포착이기도 하며, 그 세분화된 시간의 단편은 재차 집적되어 영화라고 하는 새로운 미디어를 탄생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여기서 꼭 말해두고 싶은 것은 이러한 시간 표현과 관련하여 육안으로 자세하게 감지하고 느낄 수 없었던 현상들을 사진이 개입함으로써 한순간에 그 진실들이 파헤쳐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사진은 인간의 눈의 연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한 방법과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사진가들에게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암시해주었고 다음 세대에로 직접 이어져간 사진의 메커니즘적 진보였다.
글 / 강현덕(한국사진 학술교육분과위원)
- 이 글은 '한국사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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