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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의 사진이야기 - 도시의 변용
19C 중엽 이른바 근대 도시의 여명기에 사진이 발명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인가 특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진이 발명된 프랑스에서의 이 시기는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의 전환이 진행되어 마을에서 도시로, 의복에서 건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바뀌어갔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일찍이 근대 도시국가로의 기반을 굳건히 해왔던 프랑스와 영국에서 사진이 탄생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진은 새롭게 형성되어가는 19C 근대 도시의 정신적인 도구이며, 20C의 도시 형태에로의 이행과 그 본질을 찍어내는 것이 가능했던 새로운 미디어였다.
신흥 도시
이러한 도시와 사진의 관계에서 사진가들의 관심은 특히 19C 말에서 20C 초두에 걸쳐서의 변화에 따라 명료하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무렵부터 사진가들은 도시라는 개념과 대치하게 되고, 도시에 대해 새로운 종류의 감수성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도시와 사회라는 현실로서 사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용하는 도시에 대해 처음으로 의식적인 눈을 뜬 사람이 미국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 프랑스에서 유학하여 사진을 배우고 세기말에 막 귀국한 스티글리츠의 눈에 들어온 모습들은 변모해가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꿈틀거림이었다. 예를 들어 그의 사진 중 「터미널」(1892년)이란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을 스냅한 사진이 있다. 뉴욕 할렘가의 차가운 새벽 아침, 종점에 도착한 철도마차 말 등의 땀이 하얀 증기가 되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말에게 물을 주려는 긴 외투를 걸친 마부, 지면의 눈 위에는 무수한 발자국의 얼룩이 새겨져 있으며, 배경에는 변해가는 시내의 전경이 찍혀져 있다. 이 사진은 10년 가까이 유럽 체재를 마치고 귀국한 스티글리츠가 ‘도시의 동감’이란 표현으로 뉴욕을 촬영한 최초의 사진이며, 20C 사진계에 하나의 방향을 암시해주는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 사진을 찍었을 때 “그 광경을 보고 나의 마음에 긴밀하게 와 닿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 투영된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을 찍으려고 했다.”고 말하였다.
자연주의 회화적 사진과의 결별
스티글리츠는 귀국 후, 1897년에서 1902년까지 전위적인 사진잡지 「카메라 노트 Camera Notes」를 발간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잡지를 통해 펼친 그의 사진사상은 이제까지 생각해온 19C적 사진관과 결별하고, 사진이 회화와 다른 새로운 예술양식이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즉 사진의 개념적인 입장에서 자기의 내면에 비친 광경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파리와 런던을 중심으로 유럽의 사진계에 왕성하게 펼쳐졌던 『픽토리얼리즘』의 회화적인 사진보다는, 사진의 독자적인 특성을 가지게끔 표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는 유럽에서의 전통적인 사진사조는 회화를 모방한 살롱사진이었으며, 이는 사진이 가야할 진정한 방향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진은 사진만이 갈 길이 따로 있으며 사진만의 독자적인 시각이미지를 추구해야 하고, 회화성을 추구한 19C를 사진의 암흑기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그는 사진의 기능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고 사진기라는 기계로 표현이 가능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서, 당시에 판매되기 시작한 경량의 ‘핸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변모해가는 도시 주변의 매력적인 소재를 발견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스티글리츠의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포착한다고 하여 일명 스트레이트 혹은 순수사진이라고 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사진운동을 계속 펼쳐나갔다. 또한 그의 활동 배경에는 여러 가지 사회의 특수한 사정이 있었는데, 뉴욕의 ‘아마추어 사진협회’가 쇠퇴하기 시작하여 그는 우선 이 협회와 ‘뉴욕카메라클럽’을 합병시킨 것이었다. 또 새로운 사진표현을 위해 소형의 카메라로 손수 표본이 될 만한 사진작품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앞서 설명한「터미널」이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북으로 달리는 역마차를 찍은 「겨울의 5번가」, 선로의 분기점에서 증기를 뿜어내는 기관차를 촬영한 「인간의 손」 등 역동적인 그의 대표작들은 바로 이 시기의 산물이었다.
또한 1902년 에드워드 스타이켄, 앨빈 랭든 코번, 게르트루드 케세비어, 클라렌스 허드슨 화이트 등 젊은 동지들과 함께 기존의 사진사고로부터 탈피할 것을 목표로 사진가 집단 『사진분리파 Photo Secession』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회화적 사진의 형식에 빠져버린 전통적 사진 개념에의 이의 신청”이란 소제목으로 포토시세이션의 제1회전을 여는 등, 사진이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써 다른 예술 장르와 동등한 존재의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한 힘찬 선언을 시작하였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러한 운동의 물결은 사진을 조형예술로 간주하게 되고 종합예술지 「카메라 워크 Camera Work」(1903년)의 창간, 해외 사진가 협회와의 연대, 뉴욕 5번가 291번지에 「291 갤러리」의 개설(1905년)로 결실을 보게 하였다. 사진분리파가 최대의 공격 목표로 한 것은 로베르 드마시를 필두로 한 창조적 사진가 집단을 자칭하는 픽토리얼 사진가들이었다. 즉 스트레이트 사진 대 픽토리얼리즘과의 대립뿐만 아니라, 세기의 전환기에 직면한 파리와 뉴욕 사이의 문화적 긴장도 부각되고 있었던 것이다.
에펠탑에서 자유의 여신상으로, 파리에서 뉴욕으로의 사진의 흐름은 실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1888년 미국의 죠지 이스트만이 발명한 소형의 코닥 카메라에 의해, 아직은 다분히 특권적이며 전문적이었던 사진 촬영의 행위가 널리 대중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진제판술은 인화지에만 화상을 만들었던 사진이 「카메라 노트」, 「카메라 워크」와 같이 인쇄물로서도 광범위하게 유통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이전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였던 사진의 독자적인 표현이나 내용이, 그 무렵부터는 사진의 주제로도 부각되고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두 대륙에 걸친 사진의 흐름은 유럽에서 분리해 가고자 하는 미국의 독자적인 미술로서 사진의 독립선언이기도 하였다. 미국에 있어서의 사진은 유럽에서의 분신적인 위치와 회화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표현의 위상을 획득하여 갔다. 스티글리츠는 그가 유럽의 분신이라는 것을 인식해가면서도 그 자신이 자립하여 가는 과정과 미국 특유의 시공간을 찍어내려고 결심하였다. 이 시기가 정확히 아메리칸 아트의 독립 시기와 겹쳐 있었고, 뉴욕이 ‘20C의 수도’가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과도 그 시기가 같았던 것이다.
사라져가는 도시
한편 스티글리츠와 같은 시대를 산 유젠느 앗제(Jean Eugene August Atget 1857~1927)는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앗제는 원래 선박업에 종사하다 그 후 15년은 연극배우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와 재능의 문제로 그만 두게 되고, 생계 수단을 위해 거의 만년이 되어서야 사진을 시작하였다. 정확히 그가 사진가로서 활동한 것은 1890년대 초부터 제1차 세계대전 후까지의 20여 년 정도였고, 이 시기는 스티글리츠와의 활동 시기와 거의 같은 기간이었다.
앗제의 눈은 ‘19C의 수도’인 파리라고 하는 시공간에만 주력하였다. 그는 건축물이나 소재 즉 그 대상물이 만들어진 옛 파리의 모습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변모해 가는 시대환경 속에서 그는 역으로 낡은 건축물과 도로가 만들어진 과거의 시점으로 담아내었다. 그의 파리는 철과 유리와 플라스틱이 아니라 돌과 나무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그는 지하철이나 자동차, 공장과 빌딩, 에펠탑과 오페라 극장 등 19C 후반에 만들어진 건축물조차 찍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시대의 변용이 급격히 가속화되어 감에도 과거에만 집착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거리와 텅 비어 있는 풍경 등 ‘잃어버린 도시’의 공허한 이미지뿐이다.
그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이것들은 다만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는 예술가를 위한 자료로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고 이를 편집자나 인쇄업자에게 판매하였다. 이러한 앗제의 사진에 대해 그는 생계를 위해 사진을 찍었던 사진사일 뿐 사진가가 아니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앗제가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파리 교외의 베르사이유 궁전 등 프랑스 절대왕정의 유산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옛날 왕실의 성, 정원, 석상을 정성 들여 촬영하는 등 거기에 남겨져 있는 역사성에 흥미를 가지고 과거의 궤적에 심취한 그의 사진에서 앗제의 본질이 담겨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미 파리라는 공간 속에서 도시의 개념을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사진에 의해 파리의 존재를 복귀시키려 하였는지도 모른다. 즉 파리라는 도시를 만들어 낸 옛 문화에 흥미를 가지고, 변모하며 사라져가는 도시와 문명의 구조 및 특성을 송두리째 남기고자 하는 강한 의욕이 있었던 것이다.
스티글리츠와 앗제는 거의 같은 시대에 뉴욕과 파리라는 장소에서 사진 활동을 하였다. 그들이 추구하는 사진의 내용은 달랐으나, 그들은 19C 말부터 20C 초두에 걸쳐 도시라는 개념이 놀라운 속도로 변모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자기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들을 도시로 향하게 한 계기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였다. 도시가 변용하고 활발히 움직여나갈 때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손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가들은 사진기의 파인더 속에서 도시를 발견하고, 그 파인더 속의 도시에서 메시지를 발견하였다. 사진 발명 이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공간에 대해서 눈을 돌려 볼 겨를이 없었으며, 그들에겐 도시라는 개념조차 불분명하였다. 사람들이 도시의 이미지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전혀 새로운 사건이었으며, 이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처음으로 가능하게 된 일이었다.
스티글리츠와 앗제로 대표되는 20C 초의 사진들은 이러한 도시와 인간을 통한 새로운 관계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진은 사진이 갖는 기록의 개념과 시공간의 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잠재되어 오던 이들 사진가와 그 이미지가 의식적으로 형상화되었고 구체화되었다는 것이다. 세기의 변환 속에서 사진가들은 이러한 의미와 특성에 점차 눈뜨게 되었으며, 이것은 20C 전반에 걸쳐 사진표현의 근간을 이루는 새로운 ‘사진의 사상’이 되었다.
글 / 강현덕(한국사진 학술교육분과위원)
- 이 글은 '한국사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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