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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곤 / 숭례문이 붕괴되면 나라가 망한다?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방영된 다우너 소 동영상이 온 나라를 진감震感 시켰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소를 포클레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영상은 누구 눈에도 잔인하고 혐오스럽다. 사람들은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강한 분노와 공포심을 느꼈다. 그런 감정은 TV와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반정부 시위로까지 확산되었다. 매체를 타고 유통되는 영상의 힘은 정말 엄청나다.
집단 망상, 또는 집단적 히스테리라고 하는 현상이 있다. 사람들이 강한 스트레스나 불안 요인에 계속해서 노출되면서 착각을 일으키거나, 동시에 공황적인 심리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대개는 전쟁, 자연 재해, 경제 불황, 전염병, 적대 세력의 물리적 심리적인 압박 같은 것이 요인이 된다. 그 발단 원인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단순한 루머나 소수의 사람들의 억측에 의해서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정보와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기 쉬운 청소년과 편향된 의식을 가진 집단이 군중 심리에 휩쓸리기 쉽다는 것도 특징이다.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오일쇼크 같은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은 그런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불확실한 정보만으로도 간단히 집단행동(라면 사재기에서부터 폭동까지)을 일으키게 된다. 1923년 일본의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들을 희생양scapegoat으로 삼았던 것도 패닉 상태의 대중의 분노와 불안심리를 다른 공격 대상으로 몰고 간 선동의 전형적인 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해 15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는 물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혼란과 희생을 대가로 치른 다음이다.
사진은 신뢰할만한 시각정보를 제공해 주지만, 증거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사진은 그때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물리적 현상의 일부분을 잘라 낸 것일 뿐, 사건 전체나 사건의 실체 자체를 보여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진압 경찰이 젊은 여성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시위 현장의 바로 가까운 곳에서는 과격한 군중들이 쇠파이프로 경찰을 내려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아무리 민첩한 사진가일지라도 양쪽 모두를 동시에 찍을 수는 없다. 바다를 찍은 사진은 누구 눈에도 바다 사진으로 보이지만, 보는 사람의 지식과 경험, 정서의 레벨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 한 장의 사진에 붙여진 설명문(캡션, 네임)은 그 사진을 바르게 읽을 수 있도록 돕지만, 잘못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설명은 보는 사람에게 전혀 엉뚱한 판단을 내리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 장의 사진이나 단편적인 영상이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을 일으키기 위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사진은 태생적으로 진실과 허위의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모순된 존재다.
영국 심리학자 윌프레드 트롯터는 『평화와 전쟁의 군중의 본능』이라는 책에서 인간을 비판적인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동기에 따르는 존재로 보았다. 전쟁 같은 위기적인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인 이슈를 두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이념으로 단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으로 유효한 이론이다. 자유는 인류가 오래 동안 추구해 온 지상의 가치로서, 사람들은 그 자유를 얻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러 왔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같은 부류 가운데에 속해 있을 때 더욱 큰 안도감을 느끼도록 유전자적인 수준에서 입력되어 있다. 그 숫한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인간이 본능적으로 어느 집단이나 이념에 구속되기를 원하는 한, 개인이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영원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구스타프 르 본은 『군중심리』에서 열광적인 유행, 폭동, 사회운동을 군중crowd의 특성으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군중이 형성되려면 외부로부터의 어떤 암시나 자극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자극은 단정적이고 강렬한 구호가 반복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감정과 사상이 동화된 ‘전염성’이 강한 집단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반드시 같은 장소에 모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의식적인 집합체도 군중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비합리성을 강조한 르 본과는 달리, 최근에는 사회적 불안에서 촉발되어 나타나는 군중의 집단행동을 개인의 일상적인 행동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으로 바라보려는 관점도 있다.
어떤 이슈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공중public의 규모나 구성원의 성격은 그 쟁점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보통 그들 사이에서는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성에 근거한 건강한 토론이 행해진다. 이에 비해 대중mass은 모든 계층의 익명적인 사람들로, 예를 들면 아파트 재개발이나 주식, 매스컴에서 보도된 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은 사람들로 구성된 무정형 집합체다. 따라서 대중은 군중과는 달리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이나 경험의 교환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집단 내부의 일체감이나 행동의 통일성도 없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인터넷 등 매스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에는 사회적인 문제와 쟁점들을 토론하기 위해서 공공의 장소에 참가하는 것보다는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보지만, 작금의 우리의 현실을 둘러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공중은 상황에 따라서 군중으로도 대중으로도 바뀔 수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현대사회는 점점 더 예측이 불가능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은 대량의 정보를 빠르고 손쉽게 얻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정보가 유익하거나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선정 선동을 목적으로 한 허위 정보도 많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메일이 대표적인 예다. 단순히 사용자의 혼란을 노린 것이 아니라, 아예 컴퓨터 기능을 망가뜨려버리는 악질적인 것도 있다. 이런 유언비어demagoguery는 “숭례문이 붕괴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근거 없는 내용이나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것이 많다. 한참 전에 일본에서 한 지방 은행이 자금난으로 곧 망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자 순식간에 500억 엔이라는 저금이 인출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한 여고생이 친구에게 들은 단순한 소문을 부모에게 전한 것이 발단이었다. 내가 유학하고 있던 1973년, ‘화장지 사재기’ 소동이 일본 전체를 휩쓴 적이 있다. 때마침 이른바 제1차 오일 쇼크로 인해 사람들의 불안감이 한창 고조되어 있을 때였다. 지방의 한 슈퍼마켓이 고객을 끌기 위해 제작한 선전물에 ‘화장지가 곧 없어진다.’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원래의 의도는 ‘싸게 팔기 때문에 곧 화장지가 품절될 것’이라는 것이었지만, 이 전단을 돌리자마자 300명 가까운 주부들이 몰려들고 순식간에 그 슈퍼마켓에 있던 화장지가 전부 매진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문제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지방에서 일어난 이 작은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화장지 소동은 전국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대도시나 국가도 이런 유언비어의 발생과 확산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TV, 휴대전화, 인터넷 등을 통해서 유포된 정보는 빠른 속도로 대중 속으로 퍼져나가고,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스스로 확대와 재생산을 거듭한다. 그 정보가 자신의 신변이나 생명에 관한 공포와 불안을 일으키는 내용일 경우, 사람들은 그 진위를 냉정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쉽게 행동으로 옮겨 버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동일한 반응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확신한다. 정보 자체의 신빙성은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직 자기 주장만이 있을 뿐 아무도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주최자 측과 경찰 측이 발표하는 시위 참가자 수도 항상 큰 폭으로 차이가 난다. 왜 그런 것일까?
과거 전제적인 국가에서 주로 사용되던 선전propaganda은 원래 국가나 정부, 정권, 정당이 다수의 국민을 특정한 사상과 여론, 의식, 행동으로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라틴어의 propagare(번식시킨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또 사람들의 감정을 부추겨서 의도된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선동agitation은 라틴어의 agere(움직인다)에서 나왔다. 어느 쪽이나 전염병처럼 퍼져나가서 사람들에게 어떤 판단과 행동을 일으키게 만든다고 하는 특성이 있다. 선전선동 활동에서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미디어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자와 라디오, TV 등 매체를 장악하고 있던 것은 일부의 권력자들이었지만, 지금의 인터넷과 첨단 영상기술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전쟁의 실황을 현장에서 생중계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미증유의 전파력과 영향력을 가진 인터넷을 이용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정보의 발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무수한 루머와 댓글들을 보면 네티즌들의 책임의식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독해능력은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로 보인다.
포털,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 카페에서 매일처럼 무수한 사진과 동영상들이 유통되고 있다. 유용한 정보들도 많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신앙이 무너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상과의 외관상의 유사성이라고 하는 특성 때문에, 사진은 여전히 대중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매체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설득시키는데 있어서 사진만큼 유력한 매체도 없다. 하지만 그 사진에 잘못된 설명이 붙어 있거나 의도적으로 다른 설명이 붙여졌을 때, 그리고 그 진실성을 입(반)증 할만한 설득력 있는 논리가 제시되지 못했을 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초기 교육과정에서부터 숫자나 글자와 함께 ‘사진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결코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알고 나면 사진을 찍는 것도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글 / 김승곤(순천대 교수, 아이포스 대표)
- 이 글은 월간 포토넷 8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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